|
* 내일 밤은 속인들이 의미를 특별하게 맞이하는 '10월의 마지막 밤'... 낮 오후2시 서울 한국불교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정목스님의 <무량수경종요> 역서 출판기념법회가 봉행됩니다.
소생은 그 뜻깊고 자랑스러운 출판기념법회에 참석할 수 없는 입장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2008년 08월에 있었던 <오룡골에는 여자가 없다> 출판기념법회에 참석했던 소회의 글을 대신 올리는 것으로 위안삼고자합니다. 비록 정제되고 깔끔한 글 솜씨는 아니지만...
이번 출판기념법회에도 그 분위기와 감동을 자세히 전해주시는 어떤 도반 한 분이 분명히 계실 것이라 기대해 보면서 출판기념법회에 참석치 못하는 죄송스러움을 이 글로서 대신하는 저의 심정을 해량하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무애올림-
「오룔골에는 여자가 없다」
출판기념법회 소묘
1. 법회 장면
2008년 8월 24일 일요일 오후 4시, 으리으리하고 비까번쩍한 부산시청 26층‘동백 홀’. 바깥 복도에는 3단 높이의 축하화환과 화려하게 꽃피운 서양난분과 청초한 모습으로 방향을 내뿜는 동양난분들이 길게 줄을 서서 놓여 있고, 그럴듯한 원탁들이 실내를 메운 외형의 모양새로 보면 여느 세속의 작가들이 스스로 제 모습 띄우기나 인세(印稅)라도 건질 요량으로 펼치는 이벤트성 짙은 출판기념회나 진배없는 법회 같아서 첫 인상이 영 입맛을 찜찜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어! 이거 큰일 났는데! 요새 보기 드문 이판승으로 믿었던 정목스님도 결국 가난에 굴복하고 배고파 사판승이 되는 건가?...’ 의아해 하면서 개회 30여분 전부터 지정된 좌석을 메우고 앉은 아미타파 카페 회원들과 부산불교대학 수강생 수십 명이 듬성듬성 자리를 차지한 것을 보고 ‘역시 정목스님은 오룡골에서 염불공부만 하고 계시니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가본데, 오늘 의자를 놓은 150여개의 좌석이나 다 채우겠나...’ 내심 우려하면서 가슴을 조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개회 시간이 임박하자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들더니 금방 좌석이 꽉 차고도 모자라 연단을 제외한 세 벽면과 출입문 바깥 복도까지 도열한 불자님들이 있고 여러 큰스님들도 바쁘게 입장하고 계셨는데, 특히, 오늘 법회의 좌장으로서 개회직전에 입장하신 부산 범어사 주지 여산 정여 큰스님께서 참석자들을 죽~ 둘러보시며 사람들 사이로 돌아 나오시더니 그 중에 제일먼저 내 손을 잡으며 “성불하십시오.”라며 합장을 해 주신 그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고, 아마도 신심 깊으셨던 내 어머니 보살님께서 생전에 닦으신 선근공덕의 덕분이 아닌가싶었습니다.
정목스님의 염불수행 주변 이야기를 담은 「오룡골에는 여자가 없다」라는 수상집 출판기념법회는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내가 지켜주지 않으면 먼지만 날리는 작은 바람에도 꺼져버리고, 등유는 언제 어떻게 스스로 보충해야 하는지도 몰라서 사그라지고 말 밤눈 어두운 ‘등불’은 봄 소풍 가는 초등학생처럼 시종 두리번거리며 “망양님이 오실 건데 이상하네. 직지사에서 10시에 출발했으면 지금 충분히 도착했을 것이고 이 자리에 왔으면 우리 카페회원들을 찾을 것인데...”
법회보다는 ‘망양’님 오시는데 더 정신을 팔고 있을 정도로 평소 카페회원들에게 가지고 있던 등불의 애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아침부터 법회에 참석할 망양님을 기다리며 들떠있었습니다.
법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연방 “서울에 사시는 망양님은요, 얼마나 신심이 깊으신지 어제 출발해 오시다가 날이 저물어 직지사 근처에 주무시고 직지사 새벽 예불까지 참관하셨는데 10시에 출발했대요.”라며 좋아하기에 나는 “아, 그 박정희대통령 내외분의 영정이 명부전에 모셔져 있는 직지사란 말 아니요? 김천이니 오후 4시까지는 충분히 도착할 수 있을 거요. 그 정도로 신심 깊은 카페회원이면 이 자리 어디엔가 와 계실 것이니 나중에 법회가 끝나고 사회자 ‘선각’님께 부탁해서 찾아봅시다.” 라고 하면서 등불의 달뜬 관심을 법회 쪽으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법회가 시작되고 부산불교교육대학장 강선태님의 축사말씀이 있었는데 원고도 없는 즉석 축사를 어떻게 저렇게 짧으면서도 논리 정연하고 또박또박하게 전달하실 메세지는 다 담을 수 있을까 싶었고, ‘출판 동기의 변’을 말씀하신 「자연과 인문」의 전승선 대표님 말씀도 충분히 경청하면서 점점 법회 본래의 분위기가 자리 잡게 되면서 처음에 내가 세속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미혹이 해소되어 갔습니다.
이어서 작가 이봉수님의 ‘서평’이 있었는데 그 내용이 참석자 모두를 사로잡으며 분위기는 점점 「오룡골에는 여자가 없다」라는 책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우선 서평을 하고 있는 작가의 모습이 그랬고 서평에 잔잔하게 흐르는 사람의 냄새가 책을 내는 정목스님을 너무 닮아있어서 혹시 일란성 쌍생아 분들이 아닌가싶은 감동으로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있었습니다.
범부인 나는 아무리 책을 열심히 읽고 소화하고 되새김질까지 하여 수십 장의 원고지를 찢으며 내놓는 7,8매의 역작(?)이라도 ‘독후감’이고, 작가가 출판 될 책을 미리 읽고 내놓는 말씀은 ‘서평’이라니... 부럽기도 하고 일면 내 모습이 엄청 작아져 보이기도 했습니다.
서평은 대개 새로 출판되는 책의 지은이 보다 지명도가 높거나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저명인사들이 하는 것이 통상의 예인데 작가로서 정목스님의 심오한 염불수행의 경지까지 내다보면서 저런 알찬서평을 할 때에는 뭔가 우리가 모르는 공부의 깊이가 있다. 나중에 원고를 얻을 수 있다면 곱씹어 읽어보고 한 수 배워야지 생각하면서 서평이 아니라 사람이 그렇게 좋았으면 사랑 고백이라도 할 번 하였습니다.
아무튼 한국토지공사에 재직 중이라는 그 작가님이 통폐합이다 구조조정이다 하는 어수선한 직장분위기와 장로님 대통령 정부 하에서 ‘불자라는 이유로 불이익처분을 받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인데...’라는 걱정이 없지 않았습니다.
연이어 법문을 하시기 위해 등단하신 범어사 주지 여산 정여 큰스님. 법맥으로는 정목스님의 사형(師兄)이신 정여 큰스님께서는 “서평이나 축하 인사 말씀에서 좋은 말씀을 다 하시어 내가 더 할 말이 없으니 법문이라기보다는 간단하게 인사말씀이나 드리겠습니다.”라는 양해를 구하시며 조주선사의 ‘차나 한 잔 들고 가게〔喫茶去〕’라는 일화를 들려주신 다음, “우리는 조그만 조약돌 한 개도 물에 띄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큰 배에 실으면 수많은 돌을 실을 수 있는 이치와 같은 것이 염불법입니다. 정목스님은 그러한 염불법과 원효사상을 열심히 공부하는 정토학회 회원의 한 사람으로서 여러분을 안전하게 정토로 싣고 갈 큰 배의 선장입니다. 열심히 염불공부하고 부처님 믿으시면 극락왕생 합니다.”라는 말씀으로 마무리 하셨는데, ‘더 무슨 긴 법문이 필요하리요, 앞서 좋은 말씀 하신 분들이나 내 이야기나 다 같은 뜻을 담고 있으니 이해하고 깨우치는 것은 너희들의 몫이다.’라고 일러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정여 큰스님 말씀 뒤에 성악가 정서영님이 찬불가를 불렀는데 마이크 성능이 영 신통찮았는데도 어찌 그리 말고 청아하게 들렸는지, 불국토의 소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정서영님이 바로 극락에서 내려온 화신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오늘의 법회를 영혼의 소리로 승화시켜 주었습니다.
원효성사께서 원효산 깊은 계곡에 좌정하시고 중생의 고뇌를 위무하시기 위해 염불하시던 그 목소리가 현현한 소리가 아니고서야 어찌 영혼을 울리는 저런 소리가 사람의 목소리라 할 수 있을 것인가 싶었고, 그의 사홍서원 제창도 장엄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끝으로 오늘 법회의 주인공이시고 「오룡골에는 여자가 없다」를 지으시고, ‘아마타파 카페’를 열어 우주공간의 시공을 넘나들며 염불 법을 전파하고 계시는 정목스님의 인사말씀이 이어졌습니다.
“와~! 많이들 오셨네요. 어디서들 이렇게 많이 오셨습니까?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는 분은 별로 없습니다(참석자들 일제히 웃음).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로 시작된 인사말에서 “자비광명에 의지 하는 길, 나무아미타불 명호를 부르고 무량광명을 염원하며 정토의 경계를 관찰하는 염불수행이 의식의 혁명, 대중 불교의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설파 하셨고, “저는 오늘 여기 모이신 분들의 이름도 삶도 잘 모릅니다. 오직 진실한 신심만 확인할 뿐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여기 사회를 맡고 있는 ‘선각’님은 우리 아미타파카페의 운영자인데 오늘 처음 봅니다.”라는 말씀으로 오늘 출판기념법회가 속인들이 단세포적으로 생각하는 그렇고 그런 자리가 아니라는 일깨움을 주셨는데 그때에야 나도 제정신이 돌아왔습니다.
‘역시 정목스님은 이판승이 맞다. 그래, 그럴 리가 없지...’ 내 신심이 미약해서 오늘 법회가 시작되기 전 잠시 세속의 눈으로 미혹에 빠졌던 일이 부끄럽게 생각되었습니다.
정목스님의 「오룡골에는 여자가 없다」라는 신앙생활 수상집 출판기념법회는 그렇게 끝을 맺었습니다.
나는 사회자의 법회 종료 멘트가 나오는 즉시 서평을 하신 이봉수 작가님 곁으로 다가가서 “작가님, 아까 서평하신 내용이 원고로 작성된 것이 있으면 제가 한 부 갖고 싶습니다.”라고 간청했더니 “가만있자, 그럼 주소가 어떻게 되십니까?”라고 물으며 잠시 머뭇머뭇하다가 “이걸 그냥 드릴게요.”라고 하면서 원고를 선뜻 나에게 건네주시기에 “아니, 원고를 그대로 저에게 주신다고요!?”라며 감복해 서평원고를 건네받았으니 적어도 서평만은 내가 진신사리(?)를 가지게 된 것처럼 기쁠 수밖에 없었습니다.
2. 법회 그 후 만찬까지
법회가 끝나고 기념촬영이 있기 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회자의 멘트가 나왔는데 다름 아닌 “정여 큰스님께서 정목스님의 출판기념법회를 축하하는 격려금을 전달하시겠습니다.”라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격려금이라면, 더욱이 큰스님께서 내놓는 격려금이라면 아무도 모르게 직접 전달하셔도 될 일인데 굳이 왜 많은 대중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전달하시는 것일까...’싶은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정여 큰스님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부산 범어사 주지스님이시며 정목스님의 사형이시니 뭔가 그럴만한 뜻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손뼉을 크게 치고는 기념촬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잠간, 정목스님은 오직 공부를 통해 수도하며 중생제도와 불법 전파에 전념하시는 무소유의 이판승(理判僧)이라서 우리가 크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스님이라면, 사판승(事判僧)은 그럼 어떤 스님을 일컫는 말인가. 여산 정여 큰스님같이 큰 절의 주지스님을 일컫는 말일까? 아니지.
궁지에 몰린 사람, 천 길 벼랑 끝에 한 쪽 팔로 매달린 극한상황(極限狀況)에 놓인 사람이, 그 아래 수풀을 향해 몸을 날리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서 죽거나 살거나 한 번 뛰어내려본다는 그런 뜻과 함께 더 나아갈 수 있는 다른 방편이 없는 막다른 골목의 선택을 두고 흔히 통용되는 ‘이판사판’은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이 극심했던 조선시대부터 유래된 말로서 출가하여 산으로 들어가 참선과 수도를 통해 궁극적인 불법의 진리를 탐구하는 스님, 즉 이판승이 될 것이냐, 호구지책의 탁발승 즉 사부대중을 먹여 살리는 절집 살림을 잘하는 사판승이 될 것이냐를 선택하기 어려웠던 시대적 배경에서 유래된 것일 뿐, ‘위대한 사판승이 없으면 위대한 이판승도 없다.’라는 말에서 보듯이 서로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 통상적인 조계종의 인사 관례로서 엄격한 의미의 이판승도 사판승도 따로 구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급자족을 위한 울력이 아니면 거의 생산과 소득활동이 없으면서도 ‘한 가지 소원은 들어주는 절’이라느니, ‘천도재가 영험 있는 절’이라느니 하면서 중생을 현혹시키거나 ‘대웅전 기와불사’에 동참하라는 식으로 중생들의 주머니를 털어서 3,000cc급 승용차에 버젓이 몸을 기대어 다니는 스님들이 없지 않은 현실이니 그들마저 사판승의 반열에 포함시켜야 하는 것인지는 하나의 의문으로 남습니다.
적어도 진정한 사판승은 중생을 오도하거나 현혹시키지 않으면서 정법 전도를 통하여 절집 살림을 지혜롭게 잘 꾸려가며 종권(宗權)을 지키고 나아가 나라가 위태로울 때는 분연히 자기 육신을 던지며, 훌륭한 이판승의 후원자가 되어 문중 사부대중을 먹여 살리고 이끌어 가는 능력과 공부와 권위를 두루 갖추어야 가능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법회에 임석하신 범어사 주지 정여 큰스님은 범어문중 사자상승(師子相承)의 사형(師兄)이시며 이판승과 사판승을 넘나드시는 큰스님으로서 염불 법 전파와 원효사상 공부에 목숨을 거는 이판승, 스스로 배고프게 공부하겠다는 정목스님을 그림자처럼 뒤에서 돕고 격려하시고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큰 언덕이 되어주시는 고마운 원로 스님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큰스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목스님 공부의 고삐를 절대로 놓지 마시고 산처럼 버티고 서 계셔주십시오. 저희 아미타파 카페 도반들은 정목스님이 출중한 이판승이 되도록 힘이 되어주시는 큰스님 원력에 감읍하여 염불수행에 정진 또 정진하겠습니다. 불법 맥을 이어 갈 이판승 한 분 만들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나무아미타불()()()
기념촬영이 끝나고 때는 오후 7시경, 만찬이 시작되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줄을 섰는데 어째 구수한 된장 냄새가 없나 싶었더니 ‘뷔페’식사였습니다. 족히 50여 가지는 넘을 듯한 음식들이 다양하고 정갈하고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는데 음식냄새가 퍼지고 있으니 금방 시장기가 확 달라 들었습니다.
모두들 줄을 섰고 아미타파 카페의 좌장이신 ‘송암’님을 위시하여 서울에서 이른 새벽에 나섰다는 ‘레드베어’형님과 짝지 ‘감로화’님, 감로화님의 남동생‘선광’님, 부산에 사신다는 ‘덕인’님, 선량하고 착한 ‘인연’아우님, 그리고 등불과 그 옆지기인 나까지 모두 8명이 자기 취향에 따라 들고 온 음식 쟁반을 앞에 놓고 둘러앉은 테이블은 마냥 유쾌하고 즐거운 식사자리가 되었습니다.
혈연, 지연, 학연이 없는 낯선 사람들이 단지 아미타파 카페 회원이라는 인연으로 만나 통성명을 하자마자 곧바로 격의 없이 융화되고 화기애애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불법을 통해서만 가능할 수 있는 동화현상이라고 생각하는 만찬자리였습니다.
말씀마다 격조 높은 유모어가 넘쳐나는 레드베어 형님은 전자업종 글로벌 기업의 임원이셨던 왕년의 관록과 식견이 묻어나고 있었는데 식사 중에도 “이건 생선이 붙어 있어서 혹시 상했을지도 모르니 내가 먼저 시식을 한 다음에 처남이 자시게나.”하시며 선광님의 쟁반에 놓인 초밥을 집으시자 서 너 개 가져 온 초밥을 가리키며 “그럼 초밥은 모두 형님께서 시식을 하신다음에 제가 먹겠습니다.”라고 응대하던 처남매부간의 정겨운 만담 장면을 보면서 그의 곁에 앉아계시던 감로화님은 “이 양반은 무엇이든 이렇게 싱겁고 남을 잘 웃기는 양반이에요.”로 마무리 하셨습니다.
그렇게 즐거운 만찬이 끝나 갈 무렵 사회자 ‘선각’님과 ‘법경화’님, ‘월명화’님, 류미혜· 정혜 자매님이 합석하게 되어 비록 종이컵 셀프 커피였지만 잠시 환담하는 티타임을 가질 수 있었는데 누군가의 제의에 의해서 옆 자리에 계시던 정목스님을 우리들 자리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부산에 살면서 김해시에서 한약국을 경영하신다는 송암님은 투철한 직업의식과 아미타파 카페 좌장으로서의 염려가 묻어나는 말씀으로 “스님, 혼자 그렇게 많은 일을 하시면 건강에 해롭습니다. 그러시다가 혹 병이라도 나시면 어떻게 하시렵니까?”라고 하시며 스님의 건강을 걱정하셨는데 정목스님은 “괜찮습니다. 밝으면 일하고 어두우면 염불하면서 부처님께 의지하면 감기나 몸살 같은 잡병은 절대 침범을 못해요. 암이라든지 큰 업병(業病)은 모르지만... 일 열심히 하고 공부하다가 폭 고꾸라지면 그때는 그렇게 가는 겁니다. 어쩔 수 없잖아요?” 하시는데 나는 순간 ‘일체무애인 일도출생사(一切無碍人 一道出生死), 즉 모든 것에 걸림이 없는 사람은 단박에 생사를 벗어난다.’라고 했던 원효성사의 말씀이 바로 저런 모습 이었구나, 죽음의 두려움마저도 뛰어넘는 저런 수행의 깊이를 그 경지에 이른 스님이 아니면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 것인가 싶었습니다.
그렇다. ‘정목스님은 이미 원효사상이 몸속에 녹아내려 다시 집으로 돌아오신 입전수수(入廛垂手)의 경지에 있는 스님이라 도반들과 대화하면서도 삶과 죽음의 표현이 저토록 자연스러울 수 있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빙그레 웃음이 나왔습니다. 이정목 스님과 박무애의 통함이니 가섭존자의 염화미소는 못될지라도 신조어 이심박심(李心朴心)이라고 해도 될 일인지...
제 코 밑 가리기가 바빠서 늘 마음뿐이지 별로 도움 드리지는 못하면서도 정목스님이 공부하시면서 끼니를 거르지는 않으시는지, 추위에 떨고 계시지는 않은지 가난한 집안에 시집 간 막내 누이 걱정하듯 가슴만 아려 온 내 무심함을 자책하면서 “스님, 오늘 법회 비용이 만만찮을 것인데 어떻게 충당하시나요?”라고 물었더니, 정목스님은 조금도 구김 없는 모습으로 대뜸 “아까 보셨지요? 정여 큰스님이 늘 그렇게 도와주시고 오늘 오신 도반스님들도 모두 정목이가 가난하다고 십시일반 도와주시기 때문에 저는 돈 걱정 같은 것은 안 해도 됩니다. 뒤에서 표 나지 않게 도와주시는 도반님들도 계시고요...”라는 대답을 들으면서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아하, 그래서 아까 법회가 끝날 때 정여 큰스님께서 격려금을 대중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내놓으시며 ‘이 대중들아, 정목이는 가난하게 공부만 하는 스님이라서 문중 사형인 내가 먼저 수범을 보일 테니 너희들도 십시일반 도와주어라’라고 하는 메세지를 전달하시기 위한 깊은 뜻이 담겨져 있었음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형광등처럼 그렇게 늦게야 깨우치는 우리는 어쩔 수없는 우바이, 우바새들입니다.
‘생성된 만물은 반드시 사그라지고, 만나는 사람은 반드시 헤어질 운명에 있는 것(生者必滅 會者定離)’이라, 귀한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이기에 서로가 새롭고 반가워서 헤어지기가 싫었겠지만 떠나왔던 보금자리로 되돌아 가야할 시간이 닥아 왔습니다.
등불은 “감로화 형님, 법경화 형님, 월명화 형님, 우리 언제 또 만나나요? 시월 달 부처님 봉안식 때 정토원에서 또 뵙도록 할게요.”라며 마치 그 도반님들을 따라가기라도 할 듯이 작별을 아쉬워했고, 나 또한 후미진 담 모퉁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눈 못 뜬 강아지처럼 늘 풀죽어 있어서 쳐다보면 애련한 인연님 동생을 남겨두고 오려고 하니 발걸음이 무겁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정토에는 남여뿐만 아니라 그 어떠한 경계도 없다는 윤회하지 않는 영원한 빛의 생명을 말씀하시는 정목스님의 「오룡골에는 여자가 없다」 출판기념법회는 그렇게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3. ‘망양’과 작가 이봉수
남자와 여자가 부부로 만나 세월의 풍상을 겪으며 오래 살다보면 동질성을 가진 동형배우자(同形配偶者)가 되어간다고들 알고 있지만 겉보기에 그럴 뿐이지 실은 정반대의 동질이상(同質異像)의 부부로 사는 사람들이 없지 않은 것은 남자와 여자가 가진 원초적 이질성의 한계를 극복하기가 그리 쉽지 않아서 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윗대의 선근공덕으로 부처님 법을 만나는 귀한 인연 덕분에 인욕수행을 통해 동화동질(同化同質)뿐 아니라 그 어떤 경계에도 걸림 없이 정토환생을 염원하며 염불수행의 길을 같이 가는 도반입니다.
등불과 내가 부부의 연으로 맺어진 것도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헤쳐 날 수없는 윤회의 업연(業緣)에 의해서였겠지만 이제는 어떤 업연도 서로가 녹여 내릴 수 있는 불자요, 아미타파 카페에서 염불수행을 같이하는 도반입니다.
그런데 등불은 함께 공부한다는 사실도 잊어버리는지 하루에 하는 이야기의 8할 이상을 아미타파 카페 도반들의 이야기로 채웁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 같은 것은 아예 백판(白板)이고 관심 밖이라 반경 5미터 안에 내가 없으면 금방 더듬이가 작동을 멈추어 방향감각을 잃어버리는 등불은 세상사와 별로 부딪힐 일도 없고 카페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길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이해를 하기는 합니다.
등불은 “우리 카페에요, 선각님과 무량의라는 운영자 둘은 정말 어디 있다가 나타난 보배들일까요. 선각님은 아름다운 영상, 테그, 음악, 법문들을 정말 많이 올려 주고요, 무량의는요, 어디서 그렇게 좋은 글과 그림을 가져 올까요. 기특해서 내 속을 다 빼주고 싶어요.”를 시도 때도 없이 반복하는가 하면, “감로화 형님, 법경화 형님, 월명화 형님 세 분은요, 그 시대에 수재들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었던 부산의 경남여고 동기생 친구들인데요, 세 분이 모두 모습도 아름답고 우애가 너무 깊은 것 같았어요.”라든가, “서울 사는 미르님은 수시로 자기 일상의 이야기를 글로 올리는데요, 읽으면 왠지 가슴이 아파요, 그리고 시인이나 작가들 뺨치게 문장력도 좋아요.”에 이르면 묵묵히 듣고만 있는 것이 미안하기도 해서 “아, 그래 맞아. 모두들 대단하신 분들이고 특히 미르는 그런 자질이 글의 요소요소에 번득이고 있는 것 같았어.”라고 반응이라도 할라치면 등불은 금방 등유가 아니라 휘발유를 보충 받은 듯 신바람이 납니다.
그러든 등불은 출판기념법회가 있기 얼마 전부터 더욱 신바람이 나서 재잘대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망양님은요, 섬 이야기를 한 번씩 올려주시는데요, 마치 그 섬이 눈 속에 그려지듯이 표현을 잘 해 주시는 것을 보면 작가이신 것 같아요. 공부의 깊이도 대단하신 것 같던데 혹시 스님은 누군지 알고 계실 것이라 싶기도 하고요. 그런데 망양님이요, 우리 카페 정회원들이 정례적으로 모이는 ‘정모’를 만들어 수시로 만나 서로 얼굴도 익히고 염불공부도 함께하자는 제의를 했거든요, 이번 출판기념법회에 오신다는데 어떤 분인지 한 번 봐야지.”라며 벼르고 있는 모습이 대단하였습니다.
내가 가시권에 들어오기만 하면 조잘조잘 재잘재잘 대는 것이 등불의 사는 재미인데 일상사 이야기가 대부분이니 나는 정영 듣는 체도 잘 안하지, 과묵하지, 말 많은 사람들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모습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사는 등불의 말씀(?) 중에도 때로는 꽤 들을만하고 공감이 가는 부분도 없지 않은데 바로 망양님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나도 출판기념법회를 손꼽아 기다리며 보고 싶어 했는데 망양님은 끝내 법회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 등불과 나를 크게 실망시키고 말았습니다.
그 후 며칠이 지나서 등불은 나에게 “송암님이 의문을 제기해서 밝혀졌는데요, 그날(출판기념법회 날) ‘서평’을 하신 작가 이봉수님이 바로 망양님이래요. 그래서 세상에!!! 자기가 ‘정모’까지 제의했던 사람이면서 그 자리에 와서 서평을 하면서도 말 한마디 없이 그냥 갈수 있었느냐고 지금 카페에 난리가 났어요. 운영자 선각님은 법회 두 시간 전에 도착하여 일찍 도착한 도반 몇 분과 좌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그 자리에 망양님이 같이 앉아 있었는데도 자기가 망양이라는 말 한마디 없었던데 대해 엄청 열 받아 있어요. 망양님이 잘 못한 게 맞죠?”였습니다.
가만히 들어보니 내가 카페 운영자였더라도 열 받았겠다 싶어서 “선각님이 크게 열 받은 것은 세속의 일반적 상식으로는 틀림없이 공감이 가고 맞는 말인 것 같소.”라고 응대한 나는 두 시간이나 선각님과 한 자리에 앉아서 좌담을 하면서도 자신이 카페 회원 망양이라고 밝히지 않은 것은 잘 못된 일이 틀림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발짝 옆으로 내딛어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볼 일이 있었으니, 법회를 마친 뒤에 등불이 정목스님에게 “망양님은 오늘 왜 안 오셨어요?”라고 물었을 때 스님께서 “작가들 회의가 있어서 공양도 못하고 황급히 가셨습니다.” 라고 했던 말씀에서나 ‘서평’속에서 ‘한려수도’라는 수필집과 ‘이순신이 싸운 바다’라는 역사 기행서를 쓴 작가라고 자기를 소개할 때 ‘아하, 저 분이 바다를 그리워하고 좋아하시는 망양(望洋)님이구나!’라고 읽어내지 못한 우리의 무지함을 더 부끄러워해야할 일이 아닌가싶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등불에게 “작가회의 시간에 쫓기어 통성명을 하고 악수를 나누고 잠시 차 한 잔 나눌 시간도 없어서 저녁 공양도 하지 않고 황망히 떠난 망양님의 입장을 역지사지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오. 중요한 것은 스님들이나 문학 하는 분들의 정신적 세계관을 우리 범부들의 의식과 키 맞추기 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오. 스님들이 불법공부를 통해서 자신들의 세계관을 성불로 완성시켜가는 분들이라면, 문학하는 분들은 근본 의식이 본래 맑고 고와서 그 깊고 깨끗한 내면 의식의 소리를 작품으로 표현하는 선천적인 선인(仙人)들이라고 이해하면 이번 일도 그렇게 내 안목이나 세속의 의식으로만 재단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오. 그러나 망양님도 여러 카페 회원님들에게 직접 자신을 망양이라고 밝히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사과를 하는 것이 맞는 일 같소.”라고 하면서 열 받아 있는 등불을 다독여 주었습니다.
망양님은 그렇게 말없이 작가 이봉수로 「오룡골에는 여자가 없다」 출판기념법회에 다녀갔으며, “꽃의 매력 가운데 하나는 그에게 있는 아름다운 침묵이다.”라는 소로우의 말처럼 오늘도 아미타파 카페를 통해 우리와 조우하면서 조용히 도반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경계와 분별 심을 내려놓아야 한다.”라는 정목스님의 방하착(放下着) 법문을 함께 들으며 영원한 빛의 생명으로 살아갈 아미타파 카페의 염불수행 도반들입니다. 「오룡골에는 여자가 없다」 출판기념법회에는 작가 이봉수님만 다녀갔으므로 시월 초 부처님 봉안식 때 오룡골 정토원에서 만나게 될 도반 망양님을 다 같이 기다려 봅시다. 나무아미타불()()() <2008. 09. .>
|
첫댓글 "꽃의 매력 가운데 하나는 그에게 있는 아름다운 침묵이다" -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아미타 ()
悲郎子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일심 광명 화신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일원심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감사드립니다
밥회참석차 올라가는 차안에서
무애님의글이 마음에 많이 다가옵니다
일심 광명 화신 아미타 아미타 아미타불()()()
아하~오시고 계시군요.
나중에 반가이 만나겠습니다.
조심해서 편안히 오세요.
일심 광명 화신
나무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 아미타波 _()()()_
반야행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옛날일을 다시 생각하게해 주시는 긴글을 단숨에 읽고 다시또 읽었습니다.
작가 이봉수, 망양님의 자기 밝힘이 한참 얘기꺼리가 됬었지요? 우리가 미쳐 알아차려내지 못한건 생각안하고...
돌아보니 세월이 참 많이 흘렀네요.
무애님께서 오늘 등불님 손잡고 오시려나? 기다렸던 마음이 싸~악 사그라져 버렸습니다. 보고싶은데...
하여간 섭섭하신 마음 달래시느라 마음고생 좀 하셨네요. 마음은 서울이죠?
언제 또 좋은날에 뵙게 되기를 바래며 눈에 보이듯 자세하고 꼼꼼하신 표현의 글, 감사합니다.
등불님, 그래도 마음 편히 두분 편안하시게 잘 지내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일심 광명 화신
나무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 아미타波 _()_
감로화님, 감사합니다.
2008년 08월의 '오룡골에는 여자가 없다' 출판기념법회 장면들을 먼 기억속에서 되살려야 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저도 등불도 오늘 하루 '무량수경종요' 역서 출판기념법회에 마음이 가 있음을 헤아려 주시니 여간 고맙지 않습니다. 늘 건승하십시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세월따라 사람도 다 흘러가고 있네요.
그때 만큼만 젊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그래도 이 늙음에도 좋은점이 많은것 같아서 즐거운 마음으로 살고 있는것 같습니다.
옛날 같으면 우리가 이리 글만 주고 받겠습니까? 당장에 달려갈것을...
그래도 좋은세월이라 금방 글이 전해지고 또 받고 주고...행복한 세상이지요?
두분 늘 즐겁고 아프지 말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저만 다녀 올게요...
일심 광명 화신
나무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 아미타波 _()()()_
참석하지못하여 많이 아쉽습니다
잘들 다녀오십시요!!!!!!
다음주 정토원에서 뵐께요......
일심 광명 화신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여불심'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벽공(碧空)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소심'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