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청춘 측곡의 방
1974년 겨울
미원탑 사거리에
모여있던 헌책방집들
비오고 안개등처럼 뿌연 밤에
자전거 뒷자리에
남몰래 고일 교과서 참고서 챙겨나와
고마운 책방 아저씨의 주산알에 나의 영혼의 시체는
근대 달아지고 고기 근대 더 쳐주는 책방 저울에 나의
다린 쭉 뻗고...
엄지와 검지 사이로 넘어가는 허기진 천원짜리
종이돈의
겨울빰은 그리 거칠게 터져 찢어져 나갔다
포장마차 한마리 백원짜리 앙꼬 붕어빵에
우리의 청춘은 그렇게 익어갔다
추신, 그리고 일년 조금 더 지나 고삼초에 엄청 후회했다. 고일 교과서가 필요함을 알고......
섣달 그믐날 측곡 편지
즈그 아버지 애지중지하던 즈그집 재산목록 1호 재산, 동네서 잴 힘 씨고 잘생긴 황소를 여름 새벽 일시키로 간다면서 끌고가서 근 칠팔년째 소식이 없던 개똥이가 날 찾아왔다. 동네선 황소같이 듬직하던 개똥이가 황소와 같이 행방불명이 되었던 그해 여름에 아무일도 없었다. 황소 주인인 개똥이네 아부지가 아무말 안하셨는데 황소가 없건 개똥이가 보이지 않건 상관할 바도 없고 뒷구녁 호박씨도 할 일이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설날이 손가락 셈 안에 있는데 개똥이가 동네 어귀 만년 침침한 수퍼 안쪽에서 막걸리 한 잔 하잔다. 고등학교 가르칠 돈이면 이웃 동네 경매난 돈 두어마지기 사겠다며 똘똘한 개똥이 아부지에 반발하며 황소끌고 고향떴던 개똥이가 설을 앞 두고 귀향했나.
황소 판돈으로 도회지에서 장사하는데 첨엔 잘나가던 합작 옷가게, 합작한 옷가게 여자 쥔이 앞 가게 종업원과 눈이 맞아 가게 전세금 빼서 더 큰 도시로 새벽 짐쌌고 그 년 남자 쥔 술 독에 빠진 뒤로 개똥이도 빈털터리가 되어 오늘 우리 마을에 보고싶고 춥고 배고프고 그리고 외로워 동네 어귀에 서서 집에 가지 못하고 나에게 술 기별 때린 것이다. 개똥이네 아버지, 아직도 허리가 빠빳하고 개똥이가 삥친 황소 대신 경운기, 트렉터도 장만하시었다. 언제 개똥이 야기 꺼내신 적 없다. 개똥이 에미만 서방 욕심땜시 귀헌 자식 베렸다고 눈물바람 몇 번 하셨다.
설날엔 차례를 지내며 오고감에 대한 인사를 하는 듯하다. 개똥이네 아버지께서 개똥이에게 지 아버지께 주고받는 위로와 용서와 화해의 말이 오갈 듯하다. 개똥이 아버지는 개똥이 나무라신 것 난 들어 보지 못했다. 개똥이 돌아 올날 기다리시며 꿋꿋이 살아오셨을 것이다. 개똥이가 깨똥이 아버지하고 개똥이 어미한티서 나온 핏댕이인데 나무라고 원망하였으리. 황소 한 마리도, 앞 가게 종업원과 도주한 쥔 여자도, 개똥이네 아버지도 네 밤만 자면 설 차례를 지낸다.
은국정
설 한자락 밑부터
동동구리미 아지메는
머리에 동백기름 뽄때나게 바르고
뚝너머 색씨들 향기 날리며
동네 어귀 부산나게 싸다닌다
개똥애비 개똥에미 개똥이땜시
속끓인날 너무 잘 알기에
옛날같으면 꽃분이에게나 줄 동동분과
구리미 큰맴 먹고 사서
속주머니에 넣는다
예전 같으면 막걸리 주막 앞을 그냥
지나칠 그가 아니었으나
오늘만큼은 뭔가 발걸음에 춤발이 서게 한다
마누라
‘그돈으로 고기나 한근 사오지
무슨 지랄이여’ 그 소리가
그렇게 기다려진다
설이 이런 것인가보다
개똥이가 돌아오고
고생한 마눌님도 생각나고
내일은 어찌될지언정
지금만큼은 행복했으면 하고싶다
저녁노을은
건너마을 굴뚝 연기가
무척이나 풍요로이 비추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