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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일등(貧者一燈)
가난한 사람이 밝힌 등불 하나라는 뜻으로, 가난 속에서도 보인 작은 성의가, 부귀한 사람들의 많은 보시(布施)보다도 가치가 큼을 이르는 말이다.
貧 : 가난할 빈(貝/4)
者 : 사람 자(耂/4)
一 : 한 일(一/0)
燈 : 등잔 등(火/12)
출전 : 현우경(賢愚經) 빈녀난타품(貧女難陀品)
이 성어는 가난한 사람이 바치는 하나의 등(燈)이라는 뜻으로, 물질의 많고 적음보다 정성이 중요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왕이 부처에게 바친 백 개의 등(燈)은 밤 사이에 다 꺼졌으나 가난한 노파 난타(難陀)가 정성으로 바친 하나의 등은 꺼지지 않았다는 데서 유래한다. 원래 가난한 자의 등불 하나라는 뜻으로 불경(佛經)인 현우경(賢愚經)의 빈녀난타품(貧女難陀品)에서 비롯된 말이다.
석가(釋迦)께서 사위국(舍衛國)의 어느 정사(精舍)에 머물고 있을 때 그곳 국왕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각각 신분에 걸맞는 공양을 하였다. 그 모습을 본 어느 가난한 여인이 "모처럼 스님을 뵙게 되었는데도 아무런 공양도 할 수 없다니 정말 슬픈 일이다"라고 한탄하였다.
그리고는 온종일 구걸하여 얻은 돈 한 푼을 가지고 기름집으로 갔다. 한 푼어치 기름으로는 아무런 소용도 되지 않았으나 그 여인의 말을 들은 기름집 주인은 갸륵하게 생각하여 한 푼의 몇 배나 되는 기름을 주었다.
난타(難陀)라고 하는 이 여인은 그 기름으로 등을 하나 만들어 석가에게 바쳤다. 그런데 그 수많은 등불 속에서 이상하게도 난타가 바친 등불만이 새벽까지 남아서 밝게 타고 있었다. 손으로 바람을 보내거나 옷자락으로 흔들어도 불은 꺼지지 않았다. 나중에 석가는 난타의 그 정성을 알고 그녀를 비구니로 받아 들였다고 한다. 바로 빈자일등(貧者一燈)의 유래다.
이런 연유로 법당(法堂) 앞에 석등(石燈)이 하나씩 서 있다. 그 전하는 뜻은 물질적인 것보다는 마음과 정성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의 꿋꿋한 정성과 올곧은 뜻이 세상의 으뜸 빛이 된다는 교훈으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회자된다.
우리는 흔히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고 사람의 인격이나 진실됨을 평가하는 것에 익숙해 있다. 이런 기준으로 본다면 난타와 같은 가난한 여인은 이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불쌍한 인생일지 모른다. 그러나 진실하고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은 재산의 많고 적음, 지위의 낮고 높음, 외모의 추하고 아름다움에 있지 않다.
사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허우대 멀쩡한 사람도 의외로 도덕적 흠결이 많은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겉은 번지르르한데 속은 비열한 사람, 남에게는 정직과 양심을 강조하면서 돌아서서는 고약한 짓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런 사람을 지도자라고 믿었다가 실망한 적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럴 때마다 우리는 인간에 대한 한없는 회의와 절망을 경험한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속 모습이다.
그러나 세상이 반드시 그런 사람들만 판치는 황량한 벌판은 아니다. 돌아보면 그 속에도 난타처럼 아름답고 진실한 삶을 사는 사람이 얼마든지 많다. 병든 아내를 보살펴 가며 아이를 키우는 남편,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잠자리를 만들어 주고 일자리를 찾아주는 사람, 평생 모은 재산을 좋은 곳에 써달라며 기부하는 할머니, 버려진 동물을 데려다 기르는 아주머니…
꼽자면 한도 없고 끝도 없을 정도다. 이런 얘기는 들을 때마다 우리를 황홀하고 행복하게 한다. 이들이야말로 세상의 후미진 곳을 밝히는 난타의 등불과 같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어둠을 밝히려면 우리 스스로 이웃을 위해 작은 등불이 되어야 한다. 내 몸을 등불 삼아 가까운 사람의 얼굴부터 환하게 밝혀 주어야 한다.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이 있을 수 없다는 맹자(孟子)의 말은 에누리 없는 진실이다.
우리는 육체의 양식과 안식처를 마련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다. 사회 안전망이 부족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이 도회지 생활을 하면 현실적 고통이 뒤따른다. 그러나 돈이 없는 것보다 애정의 결핍이 더 무섭다. 애정은 돈 주고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애정은 이웃에 대한 관심을 뜻한다.
나에게 관심 갖는 이가 없고 내가 사랑할 사람이 없을 때 살맛이 없다고 하지 않는가. 소외감과 허무, 고독감을 느낄 때 사람의 마음과 인격은 심한 병이 들게 돼 있다. 사회가 어지럽고 살림살이가 힘들 때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은 더욱 빛이 난다. 그래서인가. 나폴레옹 점령하 베를린에서 독일인의 단합을 강조했던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란 연설로 유명한 피히테 또한 사랑은 인간의 주성분이라고 말했나 보다.
사랑이 크고 많으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이 정성껏 바치는 하나의 등불은 부자가 바치는 만 개의 등불보다 오히려 불빛이 밝다는 불가의 빈자일등(貧者一燈) 고사처럼, 정성껏 바친 물질은 약소할지라도 그 공덕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베푸는 사랑과 자비의 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진실되게 주변에 어짐을 베풀었는지가 중요하다는 뜻이리라.
한국 유림(儒林)들이 "인은 사람의 마음이요, 의는 사람의 길이다(仁人心也 義人路也)"라며 주위에 어짐을 베풀며 사는 게 옳은 인생 길이라고 가르친 연유도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겠다.
빈자일등(貧者一燈)
가난한 사람의 등(燈) 하나라는 뜻으로, 물질이 많고 적음보다 정성이 중요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부처님 오신 날이 지났는데, 갑자기 웬 철 지난 부처님 이야기인가? 하고 의문(疑問)을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부처님이 중생을 구제하심에 때가 있겠는가! 불심(佛心)을 발휘하심은 일년 내내 해도 부족할 뿐이다. 부처님의 염원과는 멀게 이 세상은 참으로 추악해져 가고 있다.
권력과 재물앞에 한없이 무기력해지는 비열한 인간들의 비참한 삶이 도리어 이 밝고 올바른 세상을 조금씩 침식하여 버젓이 정당한 것 인양 선도하며 행동하고 있는 듯하다. 참다운 삶이란 어떤 것인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성찰해 보자
어느 날 부처님이 아합세왕(阿闔世王)의 초청을 받아 왕의 궁궐에 가서 설법하시고 밤에 기원정사(祇園精舍)로 돌아가려 할 때, 왕이 길에 수만 개의 등불을 밝혀 공양하였다. 코살라국의 사위(舍衛)에 난타(難陀)라는 가난한 여인이 살고 있었는데, 구걸로 겨우 목숨을 이어 갈 정도로 가난했다.
어느 날 석가모니가 사위성(舍衛城)에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파세나디왕과 모든 백성은 등불 공양을 올리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난타(難陀)는 비록 가난하였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분에게 등불 공양을 올리기 위해 거리에서 하루 종일 구걸해 얻은 돈 두 닢을 들고 기름집으로 달려갔다. 기름집 주인은 여인의 갸륵한 마음에 감동하여 기름을 갑절이나 주었다. 난타는 기쁨에 넘쳐 등(燈) 하나에 불을 밝혀 석가모니께 바쳤다.
그날따라 밤이 깊어 가면서, 세찬 바람이 불어 다른 등불은 다 꺼졌으나 난타의 등불만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등불이 다 꺼지기 전에는 석가모니가 잠을 자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시자(侍子)인 아난타(阿難陀)가 가사(袈裟)자락으로 난타가 공양한 등(燈)을 끄려 하였으나 등은 꺼지지 않았다.
이때 석가모니가 아난에게 말했다. "아난(兒難)아! 부질없이 애쓰지 마라. 그것은 가난하지만 마음 착한 한 여인의 넓고 큰 서원(誓願)과 정성으로 켠 등불이니 결코 꺼지지 않으리라. 그 등불의 공덕으로 이 여인은 앞으로 30겁(劫) 뒤에 반드시 성불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을 '수미등광여래(須彌燈光如來)'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난타의 정성스런 마음을 알고 그 후 그녀를 비구니로 받아들였다.
모든 불꽃의 화염과 광채와 광명은 동일한 것이다. 그러나 더욱 밝게 빛나는 등불은 등불의 기름과 심지가 오염되지 않고 순수했을 때이다. 사람의 마음이 오염되어 있으면 빛이 나지 않고, 반대로 청정(淸淨)하다면 밤하늘의 보름달처럼 빛나 보일 것이다. 번뇌(煩惱)와 무지(無智)로 가득 찬 어둠의 세계를 부처님의 지혜로 밝게 비춰 준다는 연등(燃燈). 부처님 오신 날 저 등불을 내거는 것은 어둠과 번뇌를 물리치고 영원한 진리의 광명을 밝힌다는 뜻일 것이다.
부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물질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가진 자의 백 개보다 가난한 자가 정성을 다해 바치는 하나가 더 큰 빛을 발한다. 가진 게 없어 작고 보잘것없을지라도 지극 정성으로 마음을 다하는 것. 그것이 하늘이 알고 사람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가난하다고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없다고 뒤로 물러설 일도 아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상황과 여건에 따라 정성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저 연등이 밝혀주는 빈자일등(貧者一燈)의 교훈이다.
이 고사에 왕과 귀족들이 밝힌 화려한 등(燈)은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모두 꺼졌는데 난타(難陀)라는 가난한 여인이 밝힌 등불만은 날이 밝아도 꺼지지 않았다. 이 가난한 여인이 밝힌 불은 외관상 보잘것없는 평범한 등불에 불과했지만, 거기에 담긴 정성이 너무 지극하고 진실되어 그 등불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마음의 등불이 된 것이다.
부처님께서 "정성을 기름으로 삼아 밝힌 등불이니 바닷물을 기울여도 끄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씀이 연유가 되어서 사람들의 어두운 마음을 밝히는 지혜의 상징물로 '부처님 오신 날' 등불을 밝히는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삶이란 어려운 문제들의 연속이며, 힘들고 고달픈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 마음이 무명의 어둠에 가려 지혜가 흐려질수록 정의와 질서도 무너지게 된다. 이제 현대인들은 개인의 이익과 탐욕에 목말라하고, 일부 사람들과 단체들은 비리와 부정에 눈이 멀어있다.
무지와 번뇌로 가득 찬 우리의 마음을 부처님의 지혜로 밝게 비추어야 한다. 자비한 마음과 따뜻한 눈길로 소외된 이웃, 고통 받는 이웃과 상생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혼돈과 무질서를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은 각자의 마음에 지혜의 등불을 밝히는 것이다. 가난한 여인이 밝힌 마음의 등불처럼 어리석고 삭막한 우리들의 마음에 밝고 빛나는 지혜의 등불을 밝혀야 한다.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올바른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면 세상의 빛이 될 수 있는 참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들 밖에 있는 남을 보려하지 말고, 어둡고 그늘진 내 마음, 오직 내 마음을 바로 보아야 할 것이다.
三日修心千載寶, 百年貪物一朝塵.
삼일수심천재보, 백년탐물일조진.
3일간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 한평생 탐하여 모은 재산은 하루 아침의 먼지가 된다.
▶️ 貧(가난할 빈)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조개 패(貝; 돈, 재물)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分(분; 나누는 일)으로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貧자는 ‘가난하다’나 ‘모자라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貧자는 分(나눌 분)자와 貝(조개 패)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금문에 나온 貧자를 보면 宀(집 면)자 안에 分자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집안에 아무것도 나눌 것이 없다는 뜻이다. 금문에서는 집안에 쌀 한 톨조차 나눌 것이 없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었다. 이후 소전에서는 貝자와 分자가 결합한 형태로 바뀌면서 나누어주고 나니 아무것도 없다는 뜻의 貧자가 되었다. 그래서 貧(빈)은 재산이 나누어져서 적어지다, 가난함 등의 뜻으로 ①가난하다 ②모자라다 ③부족(不足)하다 ④빈궁(貧窮)하다 ⑤결핍(缺乏)되다 ⑥구차(苟且)하다 ⑦천(賤)하다 ⑧품위가 없다 ⑨인색(吝嗇)하다 ⑩말이 많다 ⑪수다스럽다 ⑫가난 ⑬빈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곤할 곤(困), 다할 추(湫), 다할 극(極), 다할 진(殄), 다할 진(盡), 다할 궁(窮), 다할 갈(竭),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부유할 부(富)이다. 용례로는 가난하고 궁색하여 살기 어려움을 빈곤(貧困), 가난함과 넉넉함을 빈부(貧富), 피 속의 적혈구나 혈색소의 수가 적어지는 현상을 빈혈(貧血), 가난하고 천함을 빈천(貧賤), 가난하고 힘이 없음을 빈약(貧弱), 가난하여 궁함을 빈궁(貧窮), 가난한 백성을 빈민(貧民), 가난한 나라를 빈국(貧國), 가난한 사람을 빈자(貧者), 가난한 집을 빈가(貧家), 가난한 사회를 빈국(貧局), 가난한 농가나 농민을 빈농(貧農), 야구에서 안타를 잘 치지 못하는 것을 빈타(貧打), 가난하고 쓸쓸함을 빈한(貧寒), 가난하고 고생스러움을 빈고(貧苦), 가난한 사람이 많이 사는 고을을 빈촌(貧村), 음식이 넉넉하지 못한 부엌이라는 뜻으로 가난한 살림을 이르는 말을 빈주(貧廚), 성품이 깨끗하여 가난함을 청빈(淸貧), 천하고 가난함을 천빈(賤貧), 몹시 가난함을 극빈(極貧), 아주 가난하여 아무 것도 없음을 적빈(赤貧), 집이 가난함을 가빈(家貧), 더할 수 없는 가난을 철빈(鐵貧), 극히 가난한 사람을 구제함을 구빈(救貧), 가난하지 아니함을 불빈(不貧), 가난할수록 더욱 가난해 짐을 빈익빈(貧益貧),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이룬 거리를 빈민가(貧民街), 살림이 가난한 백성으로 된 사회의 계층을 빈민층(貧民層), 지극히 가난한 사람을 극빈자(極貧者), 넉넉한 사람의 재물을 빼앗아다가 어려운 사람을 구원하여 주는 도둑의 무리를 활빈당(活貧黨), 가난한 사람이 밝힌 등불 하나라는 뜻으로 가난 속에서도 보인 작은 성의가 부귀한 사람들의 많은 보시보다도 가치가 큼을 이르는 말을 빈자일등(貧者一燈), 내가 가난하고 천할 때 나를 친구로 대해 준 벗은 내가 부귀하게 된 뒤에도 언제까지나 잊어서는 안된다는 말을 빈천지교(貧賤之交), 가난한 몸이지만 하늘의 뜻으로 알고 도를 즐김을 일컫는 말을 빈이낙도(貧而樂道), 가난함과 부유함이나 귀함과 천함을 일컫는 말을 빈부귀천(貧富貴賤), 가난한 사람은 굽죄이는 일이 많아서 뻣뻣하지 못한 까닭에 저절로 낮은 사람처럼 된다는 말을 빈자소인(貧者小人), 빈한함이 뼈에까지 스민다는 뜻으로 매우 가난함을 일컫는 말을 빈한도골(貧寒到骨), 자기자신을 과소 평가하는 망상으로 자기가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빈곤망상(貧困妄想), 가난해도 세상에 대한 원망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빈이무원(貧而無怨), 구차하고 궁색하면서도 그것에 구속되지 않고 평안하게 즐기는 마음으로 살아감을 일컫는 말을 안빈낙도(安貧樂道), 청렴결백하고 가난하게 사는 것을 옳은 것으로 여김을 일컫는 말을 청빈낙도(淸貧樂道), 가난하기가 마치 물로 씻은 듯하여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적빈여세(赤貧如洗) 등에 쓰인다.
▶️ 者(놈 자)는 ❶회의문자이나 상형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者(자), 者(자)는 동자(同字)이다. 원래의 자형(字形)은 耂(로)와 白(백)의 합자(合字)이다. 나이 드신 어른(老)이 아랫 사람에게 낮추어 말한다(白)는 뜻을 합(合)하여 말하는 대상을 가리켜 사람, 놈을 뜻한다. 또는 불 위에 장작을 잔뜩 쌓고 태우는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❷회의문자로 者자는 ‘놈’이나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者자는 耂(늙을 노)자와 白(흰 백)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者자는 耂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노인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者자의 갑골문을 보면 이파리가 뻗은 나무줄기 아래로 口(입 구)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사탕수수에서 떨어지는 달콤한 즙을 받아먹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사탕수수’를 뜻했었다. 후에 者자는 ‘놈’과 같은 추상적인 대상을 지칭하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본래의 의미는 더는 쓰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者(자)는 (1)어떤 명사(名詞) 아래에 붙여, 어느 방면의 일이나 지식에 능통하여 무엇을 전문적으로 하거나 또는 무엇을 하는 사람임을 뜻하는 말 (2)사람을 가리켜 말할 때, 좀 얕잡아 이르는 말로서, 사람 또는 놈 이란 뜻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놈, 사람 ②것 ③곳, 장소(場所) ④허락하는 소리 ⑤여러, 무리(모여서 뭉친 한 동아리) ⑥이 ⑦~면(접속사) ⑧~와 같다 ⑨기재하다, 적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병을 앓는 사람을 환자(患者), 신문이나 잡지 따위에 글을 쓰거나 엮어 짜냄을 업으로 삼는 사람을 기자(記者), 학문에 능통한 사람이나 연구하는 사람을 학자(學者), 책을 지은 사람을 저자(著者), 살림이 넉넉하고 재산이 많은 사람을 부자(富者), 힘이나 기능이 약한 사람이나 생물 또는 집단을 약자(弱者), 그 사업을 직접 경영하는 사람을 업자(業者), 달리는 사람을 주자(走者), 어떤 종교를 신앙하는 사람을 신자(信者), 어떤 일에 관계되는 사람을 관계자(關係者), 물자를 소비하는 사람을 소비자(消費者), 근로에 의한 소득으로 생활하는 사람을 근로자(勤勞者), 해를 입은 사람을 피해자(被害者), 노동력을 제공하고 얻은 임금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을 노동자(勞動者), 희생을 당한 사람을 희생자(犧牲者), 부부의 한 쪽에서 본 다른 쪽을 배우자(配偶者), 그 일에 직접 관계가 있는 사람을 당사자(當事者), 권리를 가진 자 특히 선거권을 가진 자를 유권자(有權者),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어 있다는 회자정리(會者定離), 일을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결자해지(結者解之),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는 근묵자흑(近墨者黑), 붉은빛에 가까이 하면 반드시 붉게 된다는 근주자적(近朱者赤) 등에 쓰인다.
▶️ 一(한 일)은 ❶지사문자로 한 손가락을 옆으로 펴거나 나무젓가락 하나를 옆으로 뉘어 놓은 모양을 나타내어 하나를 뜻한다. 一(일), 二(이), 三(삼)을 弌(일), 弍(이), 弎(삼)으로도 썼으나 주살익(弋; 줄 달린 화살)部는 안표인 막대기이며 한 자루, 두 자루라 세는 것이었다. ❷상형문자로 一자는 ‘하나’나 ‘첫째’, ‘오로지’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一자는 막대기를 옆으로 눕혀놓은 모습을 그린 것이다. 고대에는 막대기 하나를 눕혀 숫자 ‘하나’라 했고 두 개는 ‘둘’이라는 식으로 표기를 했다. 이렇게 수를 세는 것을 ‘산가지(算木)’라 한다. 그래서 一자는 숫자 ‘하나’를 뜻하지만 하나만 있는 것은 유일한 것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오로지’나 ‘모든’이라는 뜻도 갖게 되었다. 그러나 一자가 부수로 지정된 글자들은 숫자와는 관계없이 모양자만을 빌려 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一(일)은 (1)하나 (2)한-의 뜻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하나, 일 ②첫째, 첫번째 ③오로지 ④온, 전, 모든 ⑤하나의, 한결같은 ⑥다른, 또 하나의 ⑦잠시(暫時), 한번 ⑧좀, 약간(若干) ⑨만일(萬一) ⑩혹시(或時) ⑪어느 ⑫같다, 동일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한가지 공(共), 한가지 동(同),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무리 등(等)이다. 용례로는 전체의 한 부분을 일부(一部), 한 모양이나 같은 모양을 일반(一般), 한번이나 우선 또는 잠깐을 일단(一旦), 하나로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음을 고정(一定), 어긋남이 없이 한결같게 서로 맞음을 일치(一致), 어느 지역의 전부를 일대(一帶), 한데 묶음이나 한데 아우르는 일을 일괄(一括), 모든 것 또는 온갖 것을 일체(一切), 한 종류나 어떤 종류를 일종(一種), 한집안이나 한가족을 일가(一家), 하나로 연계된 것을 일련(一連), 모조리 쓸어버림이나 죄다 없애 버림을 일소(一掃), 한바탕의 봄꿈처럼 헛된 영화나 덧없는 일이라는 일장춘몽(一場春夢), 한 번 닿기만 하여도 곧 폭발한다는 일촉즉발(一觸卽發), 한 개의 돌을 던져 두 마리의 새를 맞추어 떨어뜨린다는 일석이조(一石二鳥), 한 가지의 일로 두 가지의 이익을 보는 것을 일거양득(一擧兩得) 등에 쓰인다.
▶️ 燈(등 등)은 ❶형성문자로 灯(등)은 통자(通字), 灯(등)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불화(火=灬; 불꽃)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登(등)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登(등)은 위에 올라가다, 위에 얹는 일이다. 여기서는 고기 따위를 소복이 담아 신에게 바치는 도구(道具)인 豆(두) 대신 썼다. 그 도구(道具)가 금속제인 것을 鐙(등) 또는 錠(정)이라 하였다. 나중에 불을 켜는 촛대의 모양이 이것과 닮았기 때문에 鐙(등)을 촛대의 뜻으로도 썼다. 촛대는 불을 켜는 것이기 때문에 燈(등)이라고 쓰는 속체(俗體)가 생겼다. ❷회의문자로 燈자는 ‘등’이나 ‘등잔’, ‘초’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燈자는 火(불 화)자와 登(오를 등)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登자는 제사음식을 들고 제단에 오르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오르다’라는 뜻이 있다. 이렇게 ‘오르다’라는 뜻을 가진 登자에 火자가 결합한 燈자는 높은 곳에 올려져 주변을 밝히던 ‘등’을 표현한 글자이다. 그래서 燈(등)은 불을 켜서 어두운 곳을 밝히는 기구의 뜻으로 ①등(燈) ②등잔(燈盞) ③초(불빛을 내는 데 쓰는 물건의 하나) ④촛불 ⑤불법(佛法)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기름을 담아 등불을 켜는 그릇을 등잔(燈盞), 등잔걸이로 등잔을 걸어 놓는 기구를 등가(燈架), 등불 앞이나 등불 가까운 곳을 등전(燈前), 등불의 아래나 등잔 밑을 등하(燈下), 불심지 끝이 타서 맺힌 불꽃을 등화(燈花), 등불의 빛을 등광(燈光), 불의 심지를 등주(燈住), 등불의 그림자를 등영(燈影), 등불과 촛불을 등촉(燈燭), 등롱을 파는 시장을 등시(燈市), 넓은 지역에 등불이 총총하게 많이 켜 있는 광경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등해(燈海), 인재를 뽑아 씀을 등탁(燈擢), 마음의 등불을 심등(心燈), 등에 불을 켬을 점등(點燈), 등불을 끔을 소등(消燈), 전구에 전력을 공급하여 광원으로 한 것을 전등(電燈), 손에 들고 다니는 네모진 등을 각등(角燈), 어두운 곳에 외따로 있는 등불을 고등(孤燈), 처마에 다는 등을 헌등(軒燈), 수많은 등불을 만등(萬燈), 자동차 따위의 뒤에 붙은 등을 미등(尾燈), 글을 읽으려고 켜 놓은 등불을 서등(書燈), 심지를 돋워 불을 밝게 함을 도등(挑燈), 등불을 끔을 멸등(滅燈), 이마의 앞에 달고 다니며 일하는 때에 쓰는 조그만 전등을 액등(額燈), 등을 높이 닮 또는 그 등을 현등(懸燈), 등불 빛이 밖으로 비치지 않도록 가림을 차등(遮燈), 등불을 가까이 할 수 있다는 뜻으로 가을 밤은 시원하고 상쾌하므로 등불을 가까이 하여 글 읽기에 좋음을 이르는 말을 등화가친(燈火可親), 등잔 밑이 어둡다는 뜻으로 가까이 있는 것이 도리어 알아내기 어려움을 이르는 말을 등하불명(燈下不明), 바람 앞의 등불이란 뜻으로 사물이 오래 견디지 못하고 매우 위급한 자리에 놓여 있음을 가리키는 말을 풍전등촉(風前燈燭), 객창에 비치는 쓸쓸하게 보이는 등불이란 뜻으로 외로운 나그네의 신세를 말함을 객창한등(客窓寒燈), 외로이 자는 방안의 쓸쓸한 등불이라는 뜻으로 외롭고 쓸쓸한 잠자리를 이르는 말을 고침한등(孤枕寒燈) 등에 쓰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