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8-25(수)■
(에스겔 36장)
29 내가 너희를 모든 더러운 데에서 구원하고 곡식이 풍성하게 하여 기근이 너희에게 닥치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
30 또 나무의 열매와 밭의 소산을 풍성하게 하여 너희가 다시는 기근의 욕을 여러 나라에게 당하지 아니하게 하리니
31 그 때에 너희가 너희 악한 길과 너희 좋지 못한 행위를 기억하고 너희 모든 죄악과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스스로 밉게 보리라
32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닌 줄을 너희가 알리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 행위로 말미암아 부끄러워하고 한탄할지어다
33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너희를 모든 죄악에서 정결하게 하는 날에 성읍들에 사람이 거주하게 하며 황폐한 것이 건축되게 할 것인즉
34 전에는 지나가는 자의 눈에 황폐하게 보이던 그 황폐한 땅이 장차 경작이 될지라
35 사람이 이르기를 이 땅이 황폐하더니 이제는 에덴 동산 같이 되었고 황량하고 적막하고 무너진 성읍들에 성벽과 주민이 있다 하리니
36 너희 사방에 남은 이방 사람이 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폐한 자리에 심은 줄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37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효를 양 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
38 제사 드릴 양 떼 곧 예루살렘이 정한 절기의 양 무리 같이 황폐한 성읍을 사람의 떼로 채우리라 그리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느니라
(묵상/겔 36:29-38)
◆ 이스라엘 회복을 위한 약속
"너희가 다시는 기근의 욕을 여러 나라에게 당하지 아니하게 하리니"(30)
이스라엘 백성의 귀환과 풍성한 곡식의 복을 약속하신다.
그러나 이렇게 돌아오게 하심은 이스라엘 백성의 행위가 의로워서가 아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다(22, 32).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죄악을 사하시고, 정결케 하시는 은총을 베푸셨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놀라운 눈으로 이스라엘의 회복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역사적으로 두 번의 귀환을 보여주었다.
첫 번째는 기원전 527년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한 사건이다.
두 번째는 기원후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 사건이다.
에스겔 예언의 성취는 이 둘 중 어디를 가리킴인가?
이것은 에스겔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전자와 후자가 모두 일리가 있지만, 담고 있는 문제도 있다. 이것은 차차 다루게 될 것이다.
◆ 그래도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37)
이 말씀은 기도의 원리로 많이 인용되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을지라도 우리는 간구해야 한다.
그런데 이미 주실 것을 약속하셨는데, 구한다는 것이 모순처럼 느껴진다. 약속했으면 감사하고 기다리면 되지 않을까? 구하는 것은 불신의 태도가 아닐까?
그러나 이 말씀을 해석하기 전에 다른 번역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표준새번역은 이 말씀을 이렇게 번역했다.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이제 나는 다시 한 번 이스라엘 족속을 시켜서 내게 도움을 간청하게 하겠고, 그들의 인구 수를 양 떼처럼 불어나게 하겠다."
즉 개역개정과 킹제임스버전은
약속했을지라도 여전히 간구해야 한다는 의미로 번역했고
표준새번역과 NIV는
약속했으니까 이제는 간구하면 들어주시겠다는 의미로 번역했다.
아마도 이 번역의 차이는 히브리어 '오드'를 '그럼에도(yet)'로 번역하느냐, '다시(again)'으로 번역하느냐의 차이에서 나온 듯하다.
두 번역 모두 기도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이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개역개정은 마치 하나님께서 약속했을지라도 예의상 계속 구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기 쉽다. 그런 식으로 해석하면 기도가 형식적이 되고, 약속을 믿지 않는 불신의 태도가 된다. 기도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
그러나 표준새번역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서 그 약속을 이루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것이 오히려 기도의 원리에 맞다.
다니엘은 예레미야를 통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
그 약속은 70년 만에 포로 생활을 끝내고 귀환한다는 것이다(단 9:2).
그러나 다니엘은 이것을 놓고 간구했다.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단 9:19)
이것은 약속을 믿지 않는 불신의 태도가 아니라, 오히려 약속을 굳게 믿고 그 믿음 안에서 하나님께 약속을 이루실 것을 촉구하는 기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약속을 이루시기를 원하신다. 왜 그렇게 번거로운 과정을 요구하실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단순히 은혜 베푸심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우리와 더욱 가까워지길 원하시기 때문이다. 기도하고 들어주심으로써 약속이 이루어질 때, 기도하는 자와 들어주시는 자는 더욱 밀접하고 가까운 관계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냥 불쌍해서 돕는 차원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며 가까운 관계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은혜 위에 은혜다!
내게 주어지는 모든 선물보다도, 내가 하나님과 가까운 관계가 된다는 것이 더욱 큰 기쁨이고 은총이다.
기도하라.
그것이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비결이다.
기도 없이 무슨 방법으로 하나님과 가까워지겠는가?
은혜가 풍성하신 아버지, 아버지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내 평생에 아버지를 경외하고 사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