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 미국으로 .....
https://youtu.be/AHfsi4PnEPY
" 주연아 . 세명약국 옆에 정육점에 가서 돼지고기 좀 사와라. 비계 빼고 달라고 해라 "
아들만 네 형제가 주르르 달린 과수댁이 우리 엄마였다.
서울 을지로 입구가 엄마의 고향이였다.
무남독녀 외동딸.
피붙이라고는 외조부 한 분이셨는데 새할머니를 들이고 얼마 안가 세상을 등지셨다 .
많지 않은 재산도 결국은 새할머니와 그 자식에게 돌아 갔다한다.
처음부터 재산이니 이따위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이야기가 궁상맞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어쨋던 뱃가죽이 등갈비에 찰싹 접선하던 ( 진실임다 ) 시절의 글이라고 할 수 있다.
고기라고 해봤자 소고기 몇 알갱이가 전부였던 고깃국은 겨우 일년에 딱 한 번 .
설명절이나 되야 맛 볼수 있었던 우리집이었다 .
갑작스러운 고깃국 (비록 돼지고기지만 ) 에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형과 아우 둘 .
둥근 밥상에 둘러 앉아 저녁을 먹는다
상 가운데는 반찬으로 김치 한 대접 뿐이다 .
물론 주식은 수제비였다.
미국에서 넘어 온 구호물품 .
다니던 성당에서 밀가루며 , 옥수수가루. 간혹가다 초코렛 형태의 버터가 오기도 하고
입다 보내온 옷들도 있어서 추운 겨울을 버티기도 하였다
이 구호품들은 그때 삼 년여간의 허기진 , 아니 기아선상에서 깔딱거리던 시간을 용케도 살아갈 수 있게 해주었던 아주 유용한 양식이었다.
엄마는 그날따라 내 그릇에 수제비를 듬뿍 담아 주었다.
물론 살코기 덩어리도 듬뿍 담아 주었다.
형제들의 눈길이 모두 내 밥그릇으로 쏠렸다.
막내의 얼굴에 버짐이 피기 시작했다
막내는 아버지 얼굴을 . 아니 바로 아래 아우도 아버지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엄마는 그런 아우들에게 눈치를 주었다
나는 내 그릇의 고기를 덜어 주었다.
내가 무지막지하게 아우들을 사랑한다거나 해서는 아니다
수제비를 뜰 때 엄마를 도와, 같이 반죽을 떼어 넣고 나서, 그때 엄마는 내게 고기 덩어리를 건져 주었기 때문이다.
혼자 많이 쳐 먹는다고 행복이 아님을 이르게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간혹 동생들이 엉기며 대들거나 , 치사한 부탁이라도 할냥이면 협박내지는 협조의 압력을 하기 수월한 까닭이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아우들애게 건네는 돼지고기 몇 점은 그런 사유는 없었다.
며칠 전이었다 .
집으로 수녀님이 오셨다.
쌀쌀맞아서 냉기가 핑핑 도는 무시무시한 전교 수녀였다.
전교수녀. 프란치스코-사베리오 라는 타이틀 답게 두루 지역의 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다행히 그 빽으로 삼년여 동안의 우리는 양곡을 양식을 얻어 먹을 수 있었다 .
" 그래 . 이냐시오 하나 보내면 어때 ! 없는 집에 입도 덜고 또 양친회비도 계속 받을 수 있으니 애 앞날을 생각해서라도 보내 "
학교 다녀 오다 문앞에서 얼핏 들은 소리였다.
엄마는 한달에 한번씩 수녀원을 통해 미국의 양부에게서 양친회의 기부금을 받았다.
솔직히 물가 사정을 알 수는 없지만 지금 돈으로 30~40 만원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쌀 한 말. 연탄 몇 장 . 그리고 기본적으로 삶을 이어가는 최소한의 부식을 사고 나면 남는 것은 없었다.
생활능력이 거의 제로였던 엄마.
소위 거지아닌 거지였다.
어쩌다 상갓집이나 잔치집 품이라도 팔면 몇 푼 받아오고 먹을 것이라도 얻어와서 먹고 살아가던 집안 환경이었다.
실은 엄마의 음식 솜씨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그날도 학교에서 쫒겨 와서 비슷한 처지의 반 아이들과 골목에서 시시닥거리다 시간을 채우고 들어오는 중이었다.
기성회비를 내지 못한 아이들은 그랬다.
새학기부터 밀린 기성회비.
집에 간다고 없던 돈이 생길리도 만무하지만 말이다
얼마전 기성회비 안 가져 왔다고 대나무 자로
손등을 모질게 맞았다.
칠십이 내일인 지금도 그녀의 증오와 비하의 눈초리를 잊지 못한다.
거기다 학업 성적까지 나쁘지 않으니 밉기도 하고 꼴값스러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적순으로 자리 배치를 하니 앞자리에 앉아 턱 고이는 꼴이 이쁘게 보였겠는가 싶었다.
지난 번에는 대나무 자로 뺨을 맞았었다
빨갛게 부은 얼굴로 들어갈 수 없어서 저녁 늦게까지 아이들과 수다를 떨다 집으로 돌아갔었다.
ㅡ 뱀 같은 년 ㅡ
수녀님은 가끔씩 찾아 오시는 분이라 그러려니 했지만 엄마의 표정이 영 밝아 보이지 않았다.
이런 날은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그런 까닭일까 ?
눈치보기가 내 길고 긴 삶의 일부분이 되고 말았지만 ㅡ
#. 녹색 골덴바지는 낡아서 무릎이 나오고 하얀 고무신이 눈에 띈다.
마르고 퀭한 시선이 나를 아프게 한다.#
다음날.
이발소를 들러 곱게 상고머리로 깍고
엄마 손에 이끌려 사진관으로 갔다
엄마는 이웃집 상님이가 입던 교복을 빌려 왔다
엄마의 손은 내 작은 손을 꼭 쥐고 놓지 않으셨다.
아펐지만 참았다.
돌아 와서 엄마는 나와 마주 앉았다.
" 너 엄마 없어도 잘 살 수 있지 ?"
눈치로 느끼고 있었지만 막상 듣고보니
깜깜했다
무슨 대답을 해야할지 ~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치 못했다
정말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말이였다.
" 미국의 양아버지가 널 부르신댄다.
미국 주교님 집에 양자로 들어 가는거야. 거기서 공부도 하고 옷도 잘 입고 먹는 것도 잘 먹고 ....... "
이어가는 엄마의 목소리는 점차 떨리고 있었다.
엄마는 자기감정에 충실해지셨다.
결국 흐느낌으로 변하더니 통곡을 하였다.
듣고 있는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말이다.
" 미안해 . 미안해 "
옆에 있던 막내도 덩달아 터지고 말았다.
아우도 눈치가 있었겠지.
합리적 생각은 할 줄 몰라도 이별은 언제나 누구나 서러운거다.
나는 안다 .
정릉에 살던 나 보다 한 살 어린 계집애가 미국으로 갔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울고 있는 엄마를 보고 눈물만 뚝뚝 흘렸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불효할 것 같았다.
나는 효자이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러나 소리맞춰 장단맞춰 울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면 아마도 앞집 정호네 할머니 . 뒷집 순금이네 엄마 , 주둥이가 톡 튀어나온 새댁내라고 하는 여자 .그리고 가끔씩 엄마에게 수상한 눈길을 보내는 문간방 키다리 노총각까지 들이닥칠 것이다
최선의 방법은 튀는 일이다
대문을 나섰다.
소리없이 .....
학교는 아직 담장도 세워지지 않았다.
공동묘지를 밀어버린 너른 땅에는 가끔 슬픈 유골이 햇살아래 반짝거린다.
땅깍는 차 ( 불도저 ) 가 종일 통통거리다 해 저물녘이라 그런지 조용하다
명아주며 깨꽃같은 풀 그리고 막내에게 간질리면 까르륵 거리던 강아지풀들이 무릎을 넘게 자라있다
풀풀 먼지나는 운동장 가에는
묻다 말은 키 만한 토관들이 쌓여 있었다
그 토관 (노깡:예전 거지들이 살았다 한다)
운동기구라곤 철봉이 달랑 한 가지가 멀대처럼 서 있었다
철봉을 올라 거꾸로 바라보면 참 재미있었다
세상이 거꾸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미국에 안가도 되고 , 기억이 가물거리는 아버지도 볼 수 있을텐데 ....
그리고 토관 안에 들어가 밤하늘을 기다린다
반짝반짝 가을 별들이 무수히 빛을 비추고 았었다.
이제 이 학교도 교실도 떠나가겠구나 .
그것보다 매일 나를 구박하던 형을 안봐서 살 것도 같았다.
그리고 업고 다녔던 아우들.
막내를 업고 버스정류장까지 엄마를 마중나갔던 길
찰싹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던 피붙이의 온기.
과수댁 엄마의 잔소리도.
순서없이 밀려오는 일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기억으로 남을 내 짧은 이땅에서의 어린 시절.
모든 것이 슬퍼졌다
이별이란 의미도 모르면서 슬퍼졌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눈물은 그치고 싶다고 해서 그칠수 없다.
얼마나 흐느끼며 울었는지 모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른다.
갈빗뼈 아래가 빠끈해졌다 .
우는 일도 체력이 중요하다 .
대문의 빗장은 열려 있었다.
컴컴한 방으로 숨어 들었다.
사형제의 이불속은 언제나 따듯했다 .
막내는 엄마보다 나를 더 껴안고 잔다
내가 그 나이에 무슨 신앙심이 있었을까 ?
성당의 종소리를 들으며 눈을 뜨면 ( 자명종도 없었다 ) 새벽 미사 복사를 서야한다는 이유로 기도를 중얼거리며 어둡고 무서운 골목을 잰 걸음으로 지나는 은밀한 즐거움.
은행나무. 감나무 . 향나무 그리고 사철나무로 둘러 쌓인 성당 마당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즐거움. 성신강림대축일의 아카시아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눈을 감고 맴맴을 돌던 황홀한 즐거움이 내 어린 날 신앙생활의 전부였을 뿐이었는데 .....
엄마는 그렇게 침울한 모습이었다
훗날 알았지만 아버지와 재혼전에 낳은 아들이 있었다.
그 아들과도 헤어졌는데 이 또 무슨 일이란 말인가 ?
여인으로 얼마나 기구한 운명이었을까 ?
박복한 여인 .
꿈도 많았을텐데 가는 길이 어찌 가시밭길 뿐이란 말인지 .
한달쯤 지났나 싶었다.
엄마가 환한 얼굴로 나를 꼬옥 안았다.
" 주연아 . 엄마가 미안해 . 다시는 너를 안 버릴께 "
내막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였다.
글쎄 요즘은 애견센타에서 강아지도 이쁜 녀석부터 골라 입양시킨다는데 .....
.........
.........
..........
그렇게 나의 해외입양은 잠깐의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사람의 일이나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내가 그때 미국으로 갔었다면 ......
까마득한 옛날.
남기고 싶은 과거는 아니지만 어쩌면 잊어서는 안될 지나온 발자국이었기에
부끄러움을 담아 남기고 싶었다.
엄마 . 잘 계시지요 ?
인연의 끝은 이미 지났을지 몰라도
이제나마
사랑합니다 말하고 싶어요
꼭 안아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해 . 엄마 .
이곳에도 곧 계절이 바뀌어 갑니다
당신이 좋아하시던 돈 없어도 살만한 계절이지요.
그곳은 어떠신지요 ?
뵐 수 있을런지 그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처럼 받아드리겠지만 오늘따라 그리운 건 왜이지요 !
첫댓글 어린시절의 디데일한 묘사가 손에 잡힐듯 합니다
혹 미국 갔으면 말띠 한분 빠져서 풍주방이 한가로웠을 것 같지요
근데 저랑 비교해서 체급 차이가 납니다
평균점수 깎아 먹는다고 저는 자주 뚜드리 맞았어요
잘 읽었습니다
후일의 성공담이 흥미진진할 것 같습니다 기대합니다 ~~
디테일한 묘사라기 보다는 그저 지나온 일들 그대로 회상하듯 적어 내려갔지요 .
ㅎㅎ ~ 궁상이나 청승스러운 부류의 글이니 읽는 분들이야 마치 눈물이나 강요하는 신파조의 글로 비쳐지겠지요 .
지난 봄부터 일종의 자서전 ? 회고록? 너무 거창하고 지나온 날을 돌이켜 반성의 시간으로 삼고자 쓴 글입니다 .
아시겠지만 나이드니 미래보다는 과거를 돌아보게 되더라구요 ~^^*
늘 올리시는 진심이 가득한 댓글에 감사드릴 뿐입니다
평안한 휴일 되소서
이 신새벽에 뭐 땀시
옛날 이야기는 꺼내가지고
로시난테 셋이 궁상을 지기냐
하여간 인생에 돔이 안돼
묘사만 디테일하면 뭐 해
공부도 못 하면서 밝히기는 ㅋ
어디나 낑기 들고 싶어서~
뭐라능겨 여긴 대낮이야
왜이려
소싯적 공부는 몬해도
내가 원서로 로시난태를 15페이지는 읽은 사람이야 -
15페이지 읽는데 2달 걸리데 아직 완독은 몬했지
그짝도
공부는 별 재미 없었겠는데
서너문장 댓글이 문맥 앞뒤 정렬이 안되네
뭔 말 하는지를 모르겠어
@단풍들것네
참새가 방앗간을 못 넘지 ㅋ
ㅎㅎ ~ 독설은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거지만 호태친구의 댓글들은 편안한 잔소리처럼 귓가에서 잘랑거리네 ~^^*
마치 피곤한 영혼에 술 한잔 하라고 권하는 것 같아서 .....
백날 밝히면 뭐하나 ?
로또 같은 인생인데 ....^^
@오분전
"묘사만 디테일하면 뭐 해
공부도 못 하면서 밝히기는 ㅋ"
요건 단풍이 들으라구 ㅎ
@호 태 ^^*~ ㅋ
하마터면 오분전님을 미국시민 으로 뺏길뻔 했군요
어머님의 사랑도 뼈저리게 느껴져 마음이 아프네요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늘 기도하실 어머니의 모습도 그려지고 훌륭하게 일궈낸 아드님을 자랑스러워 하실거에요
글 휘리릭~~잘 읽었습니다
글속에 바퀴가 있는지 ㅎㅎ
댓글 내용이 본문보다 더 훌륭해서 이거 어떻게 하지요 ~^^*
이런 댓글 받으면 부끄러워서 숨고만 싶습니다
^^*~
사실 제대로 올곧게 살아보지 못한 것 같아서요.
마음만 허우적거렸으니 말입니다 ~
즐거운 일이 가득한 휴일 되시길 바랍니다 ~^^*
멋진 리즈향님 !!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2.08.28 06:13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2.08.28 06:19
지릿지릿 가슴저려 읽었네요.
그 시절...겨우 저보다 몇 살 위신데
마이너리그 끝세대와
메이저리그 첫세대의 갭이 상당합니다.
서울 출신애들이
시골 출신 애들의 무궁무진한 추억담(?)에
기가 죽는 것처럼 그런 느낌 살짝 받습니다.
어제도 친구가 학교 끝나면
산에 자루를 가져가 나뭇가지등을
잔뜩 가져다 놓은 후에야 놀 수 있었다는둥
침을 질질 훌리며 들었어요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에 울컥합니다~
ㅎㅎㅎ ~ 메이저구 마이너구 어디 감당이나 할까요
동네야구 레벨의 어린시절이었으니 .....^^*
촌에서 올라 온 녀석이 메뚜기볶음으로 반찬을 가져온 날 ㅡ 말로만 듣던 그 매뚜기를 또 한 마리 입에 넣고 앂을 때의 충격 !!
그래요 ~ 미아리는 다 망해버린 도시빈민들이 모여살던 곳이었어요 .
공동묘지. 화장터가 자리한 동네 ~ 그래서 지방에서 온 애들한테도 기가 죽을 것 같았던 시절 ㅋ ~
답글이 길었네요
아직 병실이시면 어여 탈출하시고
평안한 휴일 맞으시길 비나이다 ~~~()
에공
주연님의 암울한 어린시절이 있었기에
이런 주옥같은 글이 나오지 싶습니다
그 때 나이가 좀만 덜 먹었음 미국으로다가
사진보니 그때 모습이 지금도 있는것 같아요
여리여리 착한 심성이 말입니다
오분전님 글
단숨에 빨려 들어가듯 술술 잘 읽었습니다
저도 울 엄니 생각이 많이 납니다요
감사해요
읽을거리 주셔서 ^^~
만일을 대입시킨다면 ~
아마도 늙은 은퇴신부가 되어 한국땅 어느 수도원에서 여생을 시작했겠지요
이런 글과는 다른 회상록을 쓰거나 절대자이신 분께 참회의 글을 쓴다든지 ~
몇몇 ( 아네스 등등....ㅋ) 고해성사도 베풀면서 말입니다
그래도 지금에 나에게 그리 실망하지는 않습니다
이룬 것은 없으나 열심히 살았으니까요 ....
그리고 읽을꺼리 지난 주에 응모방에 올린게 있습니다
이쪽으로 옮기기에도 귀찮고 누가 되는 것 같아서요 ~
< 싱글아파트 / 803호 여자 > 흥미율율 합니다 ~^^
쉬는 휴일 즐거운 시간 되소서 ~
@오분전 네 803호 여자
물론 읽었지요
댓글은 못 달았지만 말입니다
늘 오분전님의 글 기다리는 열열한 팬 입니다요(^^)~~
@석 우 무서워 ~^^*
요즘 새글 시작했는데 예전만큼 진도가 빠르지 않아요 ~
겨울이 시작 될 쯤 탈고 할 것 같아요 ㅋ
이제 눈치 보지 말고 삽시다.
하긴 어린시절을 벗어나서는 그렇게 살아왔겠지만요..
이 카페에서도 이리저리 눈치 볼 거 없지요.
그저 좋은 이야기만 하면서 어울립시다.
네 .
좋은 말씀 감사히 새기겠습니다
오늘도 건강 . 환희
성취 가득찬 날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
이 아침에....육남매 키우느라 고생하신 울 엄마 생각나네요
미아리에서 조금더 촌 우이동 토박이랍니다
그래요 ~
우리 세대의 어머니들은 인고의 세월을 사셨다해도 틀린말이 아닐거예요.
지혜를 전해주시고 삶의 이치를 몸으로 가르쳐 주셨지요
댓글로 화답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우이동이면 9번 영신여객 종점쯤이신가요 ? 가오리쯤 ?
인수동에서 걸어걸어 잠자리잡고 물놀이 하러 갔던 곳입니다 ^^
~ ☘
다같이 어려웠던 시절이 갑자기 훅하고 들어오네요 ㆍ
다시 돌아가고 싶지않은 시절입니다 ㆍ
이생에 남은날 마음 편하게 살다 가는게 남은 소망입니다 ㆍ
생각조차 되돌리기 싫은 시절이 있으셨군요 .
서러움으로 가득차 색깔마저 퍼렇게 멍이 새겨진 영혼 ~
그래도 믿는 구석이 있잖아요 .
믿는 것도 내 의지가 크게 작용하더라구요 ~^^
즐거운 명절 되소서 ~
제 세례명은 이냐시오입니다 ^^
소사(부천) 달동네에서 어둠의 자식으로 자랐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오분전님과 공유하는 부분도 있구요. 그리보면 우리는 행복한 중늘그니 시절을 보내고 있는것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
가끔 옛이야기 하다보면 비교가 되는 경우도 있어요 .
그래도 잘못되지 않은 것에 늘 감사드리지요 ~
그러면서도 ..... ^^*~
이 글 읽고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울 엄마. ㅡㅡ ㅡㅡ
우리집 형제가 3남1녀
그중 막둥이가 저랗니다
저 낳고 아버지가 10개월 만에 돌아가셨고
어머님은 재출하셔서
부자집 아들을 바랳는되 딸을 나으셨고 ᆢ ᆢ
우리형제는 뿔뿔이
큰아버지 댁
작은 큰아버지 댁
외삼촌 집 ᆢ
그후 어머님께서 자식이 뭔지 돌아오셔서 갖은 고생으로 우리식구를
키우시며 ᆢ ᆢ
울컥 ㅡ
엄마 무척 보고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공연히 이런 글을 올려서 님의 기억 저편의 상처를 찌르지나 않았나 싶습니다.
미안합니다.
닉 처럼 참 좋은 계절이 되시길 빌어봅니다 ~()
따듯한 명절 되소서
하마터면
5분전님을 지금 제가 볼 수 없을뻔 했네요.
참말 다행입니다.
그때의 그 아픔과 어려움이 승화 되어서
지금 이렇게
감수성 풍부해진 오분전님으로
완성된건 아닐까요..
그 덕에 저희는
그런 좋은 글을 읽을 수 있구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ㅎ~
어찌보면 궁상이겠지만 꼭 남기고 싶은 지난 날의 편린들이예요 ~
그저 사라져 갈 추억이겠지만 ~^^*
건강 잃지않는 여유로운 명절 되소서 ~()
이 글 만 읽고 자야겠어요.
어머님도 오분전님도 어려운 시절을 보내셨네요.
저는 유복하게 자란편이라
가난은 모르고 자랐죠.시집 갈때 조차도
누구나 다 집은 있는줄 알 정도로 세상물정을 몰랐으니.
황혼이 다가오니 이제서야 조금 알게 됩니다.
이벤트 당첨자에
님의 닉을 보고
찾아와서 한편의 소설같은 글 접하고
처음으로 댓글 남겨봅니다
정말 술술 읽히는 글인데
가슴은 먹먹한
그시절 여인들의 일생 한편을 보는듯 했습니다
저는 아직 엄마가 생존해 계시고
지금 저희집에 오셔 곁에계시니
그 그리움 다 알지는 못합니다만
자식을 보내려 결심했던 그 마음은
저도 엄마인지라ㅠ.ㅠ
그런 시절도 있었건만
앱하나 숨죽이는데도
난리인 세상이 되었네요
^^*~
반갑습니다 ~
글이야 다 지난 이야기니 담담하게 풀어나갈 수 있지요.
엄니 살아 계실 때 더 살갑게 ~ 다가서세요 ~
그래도 후회만 남는다는데 ...
딸은 더 그렇더라구요 ^^*
편안한 밤 하루의 노고가 풀리는 따듯한 밤 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