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중심강국이 되는 인구 5-10억의 한국연방시대를 열자!
한반도까지 중공과 러시아에게 넘겨주고 한민족은 사라질 것인가?
한반도 한민족은 세계 최강 군사.경제.문화강국인 자유대한민국으로 통일한 후에 우리 동포 조선족과 고구려만주족과 힘을 모아 일제가 청나라에 넘겨준 대한제국의 영토인 만주와 연해주지역을 회복하고 차이나 공산당이 몰락하고 차이나대륙이 분열된다면 단군조선의 직할영토였던 황하이북지역까지 회복하고, 고구려나라인 몽골을 포함한 중앙아시아 한민족 계열의 국가들과 연방시대를 열어 내수시장으로도 생존할 수 있는 인구 5- 10억의 대한민국을 건설해야 합니다.대한민국의 대통령과 정치인들과 국민이라면 이러한 스케일을 가지고 미래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정치인들과 국민이라면 이러한 스케일을 가지고 미래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널리 국민과 인류을 이롭게하는 과학적 시스템에 기반한 국가운영이 필요하고 한글.한복.한식의 세계화에 힘써야 합니다. 차이나대륙의 인민들도 언어만 다를 뿐 우리 한민족의 피가 많이 섞여 있습니다. 하북-산동지역은 고대부터 우리 한국문화가 뿌리내린 땅으로 차이나의 한국화는 하북-산동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는 고인돌문화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한류는 고대부터 존재했고, 한국은 고대부터 전 세계문명의 중심국이였습니다. 한반도 고인돌들에 새겨진 북두칠성을 중심으로 수 많은 별자리들은 세계 천문학의 고향이 한반도였음이 증명됩니다.
이는 북반구가 빙하기 시대인 1만년을 전후하여 북반구 인류가 대거 서해 대평원지역을 중심으로 한반도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1만5천년 전의 세계 최초의 볍씨가 청주 소로리에서 출토된 이유이고,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의 원형인 선돌이 한반도에서 수없이 존재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는 빙하기가 끝나고 북반구의 기온이 상승하면서 한반도의 한민족이 북진하여 만주를 기점으로 차이나대륙과 중앙아시아와 인도,중동,이집트.아메리카로 이주해 갔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이집트.그리스 문명의 뿌리가 되는 중동 슈메르문명의 주역이 지금의 한국말을 사용하고 한국문화를 가지고 있던 한민족 슈메르족이였다는 사실만으로 입증되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황하.인더스.중동.이집트.아메리카 문명의 뿌리에 한민족의 문명인 요하지역의 홍산문명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국의 세계중심국이 실현되는 징후로써 한류문화가 음악과 드라마를 통하여 전 세계를 강타하는 한류시대를 맞아 중공이 역사날조를 하고 있는 고구려사극의 경우 소중화사관으로 기록된 삼국사기 사료보다는 고구려인들이 남긴 고구려사초의 고구려 태왕들의 기록내용을 기반으로 제작되야 합니다.
고구려는 단군조선을 계승한 부여 해모수의 손자인 해상해(주몽)가 동부여에서 홀본부여로 망명하여 홀본부여의 공주 소서노와 혼인하고 홀본부여의 왕에 즉위하고 분열된 부여제국을 통합하고 추모(신같은 존재)왕에 즉위한 제왕으로 왕후가 아니라 황후가 맞는 호칭입니다.
고구려 태왕들은 황족의 번성을 위해서 3명의 황후와 5명의 부인,그리고 수 많은 후궁들을 거느렸습니다. 고구려 추모왕의 아버지는 해모수의 손자로서 부여제국 옥저왕이였던 고모수이고 어머니는 청하족장 옥두진의 딸인 옥유화입니다. 추모왕의 본부인 예씨는 추모왕의 외할머니 호인과 동부여 금와왕 사이에서 낳은 동부여 공주로 유리왕의 어머니가 됩니다.
그리고 백제 건국자들이 되는 비류.온조는 홀본국 소서노 공주와 추모왕 사이에서 낳은 친자식들입니디. 백제를 건국하기 이전에 비류와 온조는 고구려의 분국왕들이였습니다, 한반도 한강지역에 백제를 세우기 전에 온조는 고구려의 한남왕이였습니다. 온조의 아들 다루왕이 신라 공격을 고구려가 방어해준다는 조건으로 아버지 온조왕의 땅이였던 한남지역을 고구려 대무신 태왕에게 넘겨준 것입니다. 온조왕이 다스렸던 고구려 한남국은 지금의 조양지역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백제가 요서지역을 지배한 이유가 되겠습니다.
한나라왕 유석이 한나라 최고 미인 왕소군을 보낸 흉노의 대선우 호한야는 고구려 추모왕의 누나되는 해금의 친아들로 호한야 흉노대선우는 고구려 추모왕의 친조카가 됩니다.[유기 추모경]에는 고구려와 흉노가 합세하여 한나라를 정벌할 것을 약속했으나 호한야가 왕소군에 빠져 약속을 지키기 않자 고구려 추모왕이 조카 호한야에게 약속을 지키지 않는 줏대없는 놈이라고 질타하는 기록내용이 있고, 왕소군을 보고 고구려 여인들이 한나라 여인들보다 훨씬 이쁘다고 추모왕이 말하는 기록내용이 있습니다.
한나라는 단군조선의 부단제 번한들이 다스리던 서토를 멸망시키고 지금의 요서지역에 한군현을 설치한 철천지 원수국가로서 단군조선(부여)을 계승한 고구려 입장에서는 반드시 정벌하여 멸망시켜야할 나라였습니다.
낙랑.진번.임둔.현토군 등 한4군은 현재 북한지역이 아니라 지금의 요서지역에 존재했습니다. 태조태왕시대에 난하와 황하 사이에 요서10개성을 쌓고 한나라 침략에 대비하면서 요서지역내의 한군현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후 100여년 동안 고구려가 한족과 싸워 미천태왕 14년에(2646·313) 한군현을 완전히 멸망시키고 고구려 영토로 회복시킵니다. 그리고 광개토태왕 시기에는 황하이북지역에 해당하는 유주지역을 행정책임자 유주자사 진을 임명하여 행정적으로 지배하게 됩니다.
단군조선의 화폐 명도전은 황하이북지역에 집중 분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고고학적 진실은 단군조선의 직할영토가 고대에는 황하이북지역까지 해당된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나 연나라와 한나라가 난하지역까지 동진하면서 우리 단군조선의 영토를 잠식해 들어온 것이고, 단군조선-부여를 계승한 고구려는 이를 회복해야 했기 때문에 한군현지역을 회복하면서 서진을 했던 이유입니다.
참고로 고구려의 초기 도읍지는 고구려 초기 적석총과 추모왕이 하느님께 천제를 지냈을 지금의 오녀산성(홀본 서성산?)이 존재하고 있고 광개토태왕릉과 광개토태왕비와 수 많은 고구려 태왕들과 귀족들의 적석총이 존재하고 국내성과 환도산성이 존재하고 있는 집안지역이라고 할 수 있고, 고구려 평양성은 한군현지역을 회복한 후에 기자.위만조선이 도읍지로 삼은 하북성 평주지역에 존재했을 왕검성이였습니다.
그리고 현재 북한 평양은 고구려 평양성이 아니라 고구려 한성입니다. 이는 고고학적으로 '한성'이라는 기록과 함께 성을 축성한 고구려 책임자 관등이 적힌 석비가 발견되었기 때문이고, 고구려 연개소문 셋째아들 연남산이 당나라 침략을 막아내지 못하고 항복한 성이 '한성'이라고 묘비에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고구려 도읍지는 단군조선의 서토를 모두 회복하겠다는 의지로 하북성 평주에 존재했던 평양성이고, 국내성과 북한 한성은 고구려의 부도읍지들이였습니다.
이러 고구려역사의 기본 지식을 전제로 고구려태왕들의 통치내용을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고구려사초]를 토대로 고구려 사극을 제작해야 겠습니다.
참고로 [고구려사초]는 일제시대 일본이 수집해서 일본왕실지하도서관에 감춰둔 우리 고구려사료입니다. 중국을 상국으로 섬긴 소중화 조선왕조는 우리 한민족의 영광스러운 고대사를 보지 못하도록 전국적으로 수집해서 불사르거나 왕실도서관에 보관했듯이 일제 역시 우리 고대사의 진실을 알 수 없도록 전국적으로 수집해서 일본 왕실 지하 도서관에 감춘 것을 일본 왕실 도서관에서 일했던 남당 박창화 선생이 몰래 필사해서 가져온 중요한 고구려 사료인 것입니다. 그러나 일제 식민사관을 앵무새처럼 떠들며 대한민국 국민에게 세뇌시켜온 식민사관론자들은 소설책이라고 매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 역사는 식민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여 이제 모든 진실이 다 드러나는 인터네시대를 맞아 깨어서 거짓세력을 청소하고 한국의 홍익인간-사해동포주의-순리세계가 실현되는 새로운 영광의 시대를 열어 봅시다./윤복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