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의 물리학 ]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순간,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김인육시인의 이 시는 도깨비 공유에게 다가온 첫사랑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해 준다.
아마 첫사랑의 감정을 물리학적 무게 감으로 색다르게 표현한 시는 처음인 것 같다.
어느 순간 내게 다가온 첫사랑이 이제 나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가 되었다. 나는 지구라는 질량보다 미약한 존재인 사과!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존재... 그냥 지구로 굴러 떨어진 사과처럼 어쩔 수 없이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는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시...
<사랑의 물리학>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제비꽃같이 조그마한 그 계집애가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순간,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 새 –피그말리온 >
새들은 죽어서 나무가 된다.
새의 애절한 눈동자를 들여다보노라면 이를 알게 된다.
새의 발은 나무의 뿌리를 닮았다.
새가 나무와 한 족속임을 보여 주는 확실한 증거다.
새의 날개는 욕망이다.
날개는 언제나 새를 지치게 한다.
새가 지쳤을 때
그의 안식처는 오직 나무가 된다.
새는 간절히 나무가 되고 싶다.
그 열망이 제 발을 나무의 발과 닮게 만들었다.
어떤 간절함은 그것이 되게 한다.
새는 나무에 앉아서 나무가 되는 법을 배운다.
바람이 불면 함께 흔들리고 비가 오면 같이 비를 맞는다.
욕망을 버린 날개는 날개가 아니다.
그러므로 나무 위의 새는 새가 아니다.
하늘로 푸드덕 떨어지는 하나의 열매다.
새가 날개를 다소곳이 접고 나무에 앉으면
온전한 열매의 형상이 된다.
그는 온전한 열매의 형상이 된다.
그는 온 힘을 다해 나무가 된다.
적멸의 무량한 희열에 든다.
함허(含虛)에 든다.
새가 말없이
우주의 중심으로 깊이 뿌리를 내린다.
어떤 간절함은 그것이 되게 한다.
김인육 시인의 [사랑의 물리학]이라는 시집에 있는 시 중 하나인 '새'라는 시다.
어떤 간절함은 그것이 되게 한다는 문장이 마음에 들어서 아침부터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던 시다.
< 낙엽의 에필로그>
떠나야 한다는 걸 안다
한때의 눈부신 푸름을 접고
내 운명 여기 어디쯤에서
가지런히 손 모으고
이젠 안식해야 한다는 것
온종일 서늘한 빛으로 퍼부어 대는
늦가을 햇살이
마지막까지 나를 아파하는
그대의 아린 사랑임을 안다
머잖아 그대가 다스렸던 영토에도
눈이 내리고
그대에게로 가는 길도
내게로 오는 길도
하얗게 묻히어
가끔 그대 생각에 꿈속에서도 까무러치다가
나는 선연하게 삭아갈 것이다
서슬 퍼런 바람이 불어
그리움에 여위어간 가지들이
바이올린처럼 울어대는 동안
어느새
짓밟힌 눈들이 녹고
흙으로 스며 내린 여린 뼈마디마다
문득 내 영혼의 젖꼭지가 가려운 봄날
치운 겨울 내내 마려웠던 그리움
고양이처럼 발톱을 세우고
그대 훤히 바라보이는 꼭대기까지
싱그러운 수액으로 기어올라
내 사랑, 깃발처럼 푸르게 팔랑 일 것이다 그대.
< 눈오는 날에 >
창 밖을 보아라
어깨동무를 하고
가야할 곳 어디든 두려워 않고
달려가는
저 눈꽃들을 보아라
하나, 둘, 무수히
제 목숨 땅에 눕히어
하얗게 새 지평을 열고 있는
위대한 정신을 보아라
혁명의 자세를 보아라
죽음이 축조하는
눈부신 평등의 세계를
보아라
미안하다
죽음으로 더욱 빛나는
저 눈발같이
스무 살의 들녘에선
나 또한 순결한 눈꽃이고 싶었던 것을
미안하다
꽃이 되지 못하는
언어의 시든 풀씨여
하얗게 백묵가루로 부서져 가는
고독한 나의 정신이여
오늘은
타성으로 부끄러운 교과서를 덮고
저 눈발 속에서
눈동자 맑은 너희들 웃음꽃 속에서
두 팔 벌려 용서받고 싶구나
영혼의 눈 하얗게 뜨고 싶구나.
<잘 가라, 여우>
바람 속으로 긴 꼬리 가오리연을 띄운다
여름이 가고 있다
폭풍 속
영혼을 탕진한 나의 여름은 컹컹 울부짖으며 가고 있다
꼬리가 긴, 그녀는 틀림없는 여우
나의 간을 빼내어 호호 갖고 놀던 여우
바람이 부는 저녁
긴 머릿결의 여우가 날아오른다
살랑대며 바람을 타는 유연한 꼬리
나, 홀딱 홀리어서 죽음도 두렵지 않던 마법의 긴 꼬리
빙글빙글 바람을 굴리며 재주를 넘는다
붉게 울음 우는, 미친 꽃아
두 눈 숭숭 불타버린, 청맹과니 꽃아!
너도 더듬더듬 허공을 짚으며 길 떠나는구나
거친 바람 속 선혈의 낙화송이 흩날리는 해거름
내 간을 빼내, 호호 갖고 놀던
홀린 사랑을 날려보낸다
깊은 어둠이
어둠보다 더 깊은 절망이 야수처럼 오기 전에
손목의 동맥을 끊듯 이제 연줄을 끊어야 할 시간
바보 같은 열망을 뚝, 끊어야 할 시간
빙글, 재주를 넘으며 내 넋 달뜨게 호리던
긴 머리결의 여우를
푸드득, 새처럼 날려 보내야 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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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물리학>에 대한 서평
정직하고 힘찬 사랑의 시학, 풍자적인 사랑의 문법
동시대 타자들에 대한 깊은 애증이 담긴 김인육의 두 번째 시집
1. 진솔하고 따뜻한 ‘바보의 사랑법’
김인육 신작 시집에서 가장 중요한 시적 기율은, 그가 어머니의 생애에서 흘깃 바라본 이른바 ‘바보의 사랑법’일 것이다. 그만큼 이번 시집은 자신의 기억 속에 깃들인 대상들에 대한 지극하고도 순후(醇厚)한 사랑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 사랑 법은 세상에서 소외된 이들, 오랜 기억 속에 있는 이들, 눈에 밟히는 가족들을 향해 ‘사랑의 동심원’을 그리면서 차츰 넓은 세상으로 퍼져간다. 시인은 그들을 향한 “외롭고 쓰라린 짝사랑의 형벌”(시인의 말)을 마다하지 않고 서정의 극점에서 자신의 그 지극함을 선연하게 발화하고 각인한다. 그 ‘바보의 사랑 법’이 그들에 대한 각별한 사랑과 반성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그의 시들은 어둡거나 무겁지 않다. 그 현실에 대항하듯 익살스럽기도 하고 힘차고 풍자적이다.
우리가 잘 알듯이 서정시의 보편 문법은 남다른 기억을 재현하고, 그 기억과 힘겹게 싸우고, 마침내 그 기억을 항구화하려는 욕망에 있다. 김인육 시인은 우리가 상실한 가장 소중한 삶의 지표들을 새삼 기억하고 호명하고 복원함으로써, 우리 시대의 불모성에 대한 항체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이것은 이번 시집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종교적인 비유의 선명한 음역이다.
경건하여라,
꼬물꼬물 저 어린 생명들
세상으로 제 목숨 내밀며
온몸으로 올리는 저 성스런 경배!
두건을 벗어 들고
고개 숙여
발원하는
저 순정한 묵도!
( '콩나물 앞에서' 전문)
2. 타인을 향한 연민과 공감
김인육 시인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절실한 목소리는 동시대의 타자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에서 우러나온다. 가령 시인은 “어미아비 다 버리고 간 어린 것 지키기 위해/온종일,/시장 바닥에 껌처럼 붙어 있는/저 위대한 걸레”([중광아, 걸레야]) 같은 소외된 존재자들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리고 “장마에 불어터진 희망을 싣고/자본에 불어터진 절망을 싣고” 떠나는 이 시대의 상징을 따라 “달려가도 달려가도/열리지 않는 길/열리지 않는 하늘”([희망버스는 정오에 떠나네])을 상상해보기도 한다. 모두 그의 시선이 지니고 있는 너른 편폭(篇幅)을 명료하게 보여주는 실례들일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이러한 상황을 두고 격정이나 분노 대신 애잔한 연민과 공감을 지속적으로 표한다.
새는 간절히 나무가 되고 싶다
그 열망이 제 발을 나무의 발과 닮게 만들었다
어떤 간절함은 그것이 되게 한다
새는 나무에 앉아서 나무가 되는 법을 배운다
바람이 불면 함께 흔들리고 비가 오면 같이 비를 맞는다
욕망을 버린 날개는 날개가 아니다
그러므로 나무 위의 새는 새가 아니다
하늘로 푸드덕 떨어지는 하나의 열매다
새가 날개를 다소곳이 접고 나무에 앉으면
온전한 열매의 형상이 된다
그는 온 힘을 다해 나무가 된다
적멸의 무량한 희열에 든다
함허(含虛)에 든다
새가 말없이
우주의 중심으로 깊이 뿌리를 내린다
( '새 ―피그말리온' 중에서)
간절하게 나무가 되고 싶은 ‘새’는 그 열망으로 하여 나무와 닮아간다. 시인은 그것을 “어떤 간절함은 그것이 되게 한다.”는 아포리즘으로 표현한다. 그렇게 ‘새’는 나무에 앉아 나무가 되는 법을 배워간다. 하지만 ‘새’는 날개의 욕망을 버린 탓에 그저 “하늘로 푸드덕 떨어지는 하나의 열매”일 뿐, 비상하는 ‘새’가 되지는 못한다. 그렇게 나무를 닮아가며 나무가 되어가며 “적멸의 무량한 희열”에 든 ‘새’는 우주의 중심으로 천천히 뿌리를 내린다. 이러한 우주론적 상상력은 ‘피그말리온’이라는 서사를 개입시키면서 완성된다.
이처럼 김인육 시인은 베켓(S. Beckett)의 [고도를 기다리며]의 주인공들처럼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다/그래도 우리는 기다려야 한다”([부조리不條理])는 삶의 양식을 긍정하면서, “그리운 것은 꽃으로 다시 핀다는 것을 알기까지/50년이 걸렸다.”([그리운 것은 꽃으로 핀다])는 고백이나
“사랑은/전복하는 것이 아니라 순치하는 것/천둥을 포획하여 쿵쿵 심장고동으로 길들이는 것/기꺼이 목숨 다하는 순교인 것”([목련 일기])이라는 자각을 지속적으로 표한다.
이러한 타자들을 향한 사랑의 힘이 이번 시집의 제일 근간이 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의 고해성사는
맑고 맑아서
내 가슴을 뚫고, 억만 길 어둠을 뚫고
멀리 하늘까지 가 닿는다
참방참방 젖은 별들이 발등으로 떨어진다
심장이 울컥 박자를 놓친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어머니
다 아파서 그런 걸요
졸지에 사제가 된 아들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그녀를 용서한다
(/ '고해성사' 중에서)
어머니의 고해성사는 곧 시인 자신의 것으로 몸을 바꾼다. 어머니의 맑은 고해성사가 어느새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시인의 가슴을 뚫고 하늘까지 닿았기 때문이다. 다른 시편에서 이미 시인은 “어머니의 정신 맑은 몇 가닥 말씀에, 폐부를 찔린 나는
병든 개처럼 허정거리며
21세기 막된 고려인의 집으로 돌아온다”([후레자식])고 고백한 바 있다.
그런데 이 시편에서는 ‘맑은 몇 가닥 말씀’이 하늘에 닿았다가 젖은 별들을 발등으로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고해성사 앞에서 심장 박자를 놓치고 “졸지에 사제가 된” 시인은 하느님 대신 어머니를 용서하지만, 오히려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다.
그렇게 시인의 생애에서 “착한 밥/보시바라밀”([올인])이기만 하셨던 어머니는 “이제는 오래되어, 먹지 않는 밥/낡고 해어진, 몹쓸 주머니/백발 치매의 병주머니 우리 엄마/가엾은 내 밥”([올인])이 되시어 아픈 기억으로만 머무르고 계신 것이다. 시인의 사랑이 대상의 부재를 통한 지극한 현존을 상상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성찰하는 품과 결속한 것임을 보여주는 순간이 여기 펼쳐진다.
<출처미상>
첫댓글 좋은글에 취해서 머물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