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오피니언
[사설]“‘검수완박’ 입법 표결권 침해지만 법은 유효” 헌재 결정 이유
입력 2023-03-24 00:00업데이트 2023-03-24 03:10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이 그대로 시행될 수 있게 됐다. 어제 헌법재판소는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6대 범죄에서 부패 경제범죄 등 2대 범죄로 축소하는 것을 골자로 한 개정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의 입법 과정 논란과 관련해 국민의힘이 제기한 권한쟁의심판을 기각했다. 더불어민주당에 속했던 민형배 의원의 위장 탈당 등으로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됐지만 국회의장의 가결·선포권까지 침해된 것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헌재가 국회의 권한쟁의심판에서 심의·표결권이 침해됐다고 판단한 사례는 2009년 미디어법 통과 과정 등 몇 차례가 있었지만 통과된 법률 자체를 무효로 한 사례는 없다. 이번에는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하는 위장 탈당까지 인정하는 것으로 보여 무리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크게 봐서 삼권분립에 입각해 국회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취지다. 헌재는 또 ‘검찰의 수사·소추권을 침해했다’며 통과된 법률의 내용을 문제 삼은 법무부와 검찰의 권한쟁의심판에 대해서는 본안 판단 없이 “헌법에 검찰의 수사·소추권에 대한 근거가 없다”며 각하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명한 유남석 헌재소장과 문형배 이미선 재판관,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명한 이석태 이은애 재판관, 민주당이 지명한 김기영 재판관 등 6명이 진보 성향으로 여겨져 진작부터 기각이 예상됐다. 이번에 이은애 재판관이 이탈해 중도·보수 성향의 이선애 이종석 이영진 재판관 쪽에 서서 심의·표결권과 가결·선포권이 모두 침해됐다고 봤지만 5 대 4에 그쳤다.
헌재 결정이 검수완박법에 문제가 없음을 뜻하는 건 아니다. 이 법은 민주당에 의해 졸속 입법되는 과정에서 고발인의 이의신청권이 삭제되는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검찰의 과도한 수사권을 제한하는 취지는 지키되 총체적인 수사권의 약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내용을 보완해야 한다. 헌재는 위장 탈당 등 입법 절차에 잘못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그런데도 민 의원은 “위장 탈당은 오히려 국회법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민주당은 헌재 결정의 전체 취지를 받아들여 필요한 법의 재개정을 위해 협조함이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