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ruguayan Air Force Flight 571, also known less formally as the Andes flight disaster, was a chartered airline flight carrying 45 rugby team members and associates that crashed in the Andes on Friday the 13th of October, 1972.
2009년5월31일 대서양 상공에서 추락사고를 당한 에어프랑스 AF447편의 탑승자와 유족에게 삼가 애도를 표한다.
그리고 이 참사를 생각하며 이 글을 올리기로 했다.
지금으로부터 37년 전
이 비행기의 추락사고는 1972년10월13일 오후 3시30분 경, 우루과이 공군기(Uruguayan Air Force Flight 571)가 안데스 산맥 정상부근에 추락한 항공사고였다.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Montevideo) 카라스코 공항(Carrasco Intl Airport)에서 이륙한 우루과이 공군기(Uruguayan Air Force Flight 571) 쌍발 프로펠러 페어차일드 FH-227D
이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3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72일 간의 생생한 사투를 다룬다. 45명의 승객 승무원을 태운 비행기의 안데스 산맥 추락과 그들의 생생하고 눈물겨운 처참한 생존기록을 소개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닥나 가는 식량, 눈앞의 시체, 기아라고 하는 사경의 기로에서 "시체로 보느냐 식량으로 보느냐?" 죽느냐 사느냐의 절체절명 선택의 순간이었으며, 이 선택으로 그들의 생사는 결정지어 졌다. "생존자는,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할 의무가 있다." 처절한 절규였다. 살아남기 위한 극한의 선택 그리고 안데스 산맥의 기적적인 생환자들
이 항공사고의 정식 명칭은 "우루과이 공군기 571편 조난사고"(일어명)라고 한다. (Uruguayan Air Force Flight 571, 영어명)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Montevideo) 카라스코 공항(Carrasco Intl Airport)에서 이륙한 우루과이 공군 소속 쌍발 프로펠러기 페어차일드 FH-227D는 안데스 산맥 상공의 기상불량으로, 일단 아르헨티나(Mendoza, Argentina)에 착륙했다. 이 비행기에 타고 있었던 사람들은 시합 때문에 아르헨티나에서 칠레로 향하던 스텔라 마리아 학원(The Stella Maris College of Montevideo)의 독실한 크리스트 교도들로 구성된, 아마추어 럭비팀 "올드 크리스천"(Old Christians team) 외에, 칠레의 친척을 방문하기 위한 승객과 공군 파이럿트 등 5명의 승무원과 승객 40명으로 총 45명이었다.
스텔라 마리아 학원(The Stella Maris College of Montevideo) 아마추어 럭비팀 "올드 크리스천"(Old Christians team) The Old Christians rugby team, Stella Maris College, Montevideo : "Fernando Parrado" is the seventh person standing up from the right.
10월13일 날씨가 회복되기 시작하자 공항(Mendoza, Argentina)을 이륙, 안데스 산맥을 통과해 칠레 샌디에이고를 향해 방향을 잡았다. 이 기종은 상승 가능고도 제한이 9,000미터로 안데스 산맥을 직접 넘을 수 없어, 안데스 산을 따라 남하하면서 우회한 다음, 다시 북상하려는 항로를 택했다. 코스는 구름으로 가린 시야 때문에 관제탑을 의지하며 교신하면서 비행했으나, 결과적으로 이름을 알 수 없는 무명의 산 중턱에 격돌했다.
우루과이 공군기(Uruguayan Air Force Flight 571)의 이륙지점, 비행항로, 추락지점 그리고 목적지
조종하고 있었던 두 명의 공군 파이럿트는 누구나 베테랑이었으나, 기류가 큰 에어포켓의 탓으로 급격히 양력을 잃고 추락해 버렸다. 비행기가 동체 착륙하는 것과 동시에, 조종사 두 사람과 기체의 뒷부분에서 젊은이 세 사람이 밖으로 튕겨 나가 경사진 눈 바닦으로 미끄러져, 9명이 즉사하고, 부상당한 3명은 이날 숨졌다. 많은 승객이 추락 때의 충격으로 죽고, 비행기는 양 날개와 꼬리를 잃고, 추락 현장은 항로를 크게 이탈해 있었다.
이렇게 해 남은 생존자들은, 평균 1만 3천 피트급의 산악지대에 고립되게 되었다. 이 고도에서는 식물은 성장할 수 없으며, 시야에 들어 오는 것은, 15m 깊이로 쌓인 눈 위로 얼굴을 내미는 거암 정도 뿐이었다. 럭비팀 "올드 크리스천"은, 5명의 평수사가 경영관리하는 가톨릭 학교로 멤버는 규율을 중시하는 가톨릭 신자였다.
아마추어 럭비팀 "올드 크리스천"(Old Christians team) Bobby Jaugust, Marcelo, Nando Parrado, Antonio Vizintin, Francois Manchoulas, Gaston Costemalle. (1972)
팀 주장인 마르세로 페레스는, 다리의 골절 등으로 기내에 갇힌 부상자를 구출하기 위해 구조팀을 편성했다. 의학생 출신 로베르토 카넷사와 구스타보 세르비노는 부상자의 응급처치를 했다. 승원승객 가운데 성인 대부분이 사망해 있었다. 부조종사(항공 기관사)는 아직 살아 있었으나, 계기판에 몸이 끼여 움직이지 못하고 신음 중이었으며 빈사의 상태였다.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부조종사는, 자신의 권총을 집어 달라고 청년에게 부탁하였으나, 청년들은 그의 절신한 요구를 끝내 받아 주지 않았다.
가톨릭 신자인 그들에게 있어서 자살은 죄이며, 그 도움에 손을 대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부조종사는 고통스러운 가운데 곧 숨을 거두고 말았다. 총 45명 가운데, 시 시점에서 격돌사망을 가까스로 피한 것은 28명이었다. (사망 12명, 행방불명 5명, 생존자 28명)
그러나 날이 지남에 따라 차츰 죽어 가는 사람이 늘어 가기 시작했다. 깊은 눈 속에서 식량도 의약품도 없는, 살아남은 사람은 위기적 상황이었다. 중상자에게 아무것도 도와주지도 못 한 채, 한 사람, 그리고 또 한 사람 숨을 거둘 때마다, 그들이 할 수 있었던 일은 고작 해야, 시체를 기내 밖으로 운반해 눈 속에 매장하는 일이 전부였다.
그들은 동체만 남은 비행기의 잔해 속에서 몸과 몸을 서로 밀착해, 귀중한 초코렛트를 나누어 먹으며, 눈으로 수분을 보급하면서 구조를 기다리게 되었다. 구조 비행기가 구조로 다가왔다 하더라도, 흰색으로 칠해진 기체를 눈 속에서 쉽게 발견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이들은 구조요청을 위해 조종석에 있는 무전기를 사용하려 했으나, 전원인 건전지가 없는 것을 발견했다. 건전지는 비행기가 동체착륙 때에 떨어져 나간 기체 후미에 있었다.
10월15일, 피토(Adolfo "Fito" Strauch)는 와인 빈병에 눈을 채워 금속 막대기고 쑤시면서 눈을 녹여 물을 만들었다. 난도 파라도("Nando" Parrado)는 의식을 회복, 위독상태의 여동생 수산나를 간병했다. 정오가 지나 3기의 항공기가 머리 위를 통과하는 것을 목격했다. 제일 나중에 지나친 비행기 한 대는 기체 잔해로부터 최근거리를 통과하면서 꼬리를 흔들었다. 생존자들은 발견되었다고 믿었다. 오후가 되어 럭비팀 주장인 마르세로 페레스는 각자에게 배급된 식량일부를 누군가 먹어 버린 것을 발견했다.
The route followed by Parrado and Canessa to climb the Andes for the rescue. 조난자(Parrado and Canessa)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구조요청을 위해 주파한 경로
10월16일, 4명의 청년이, 약 3km 정도 떨어진 곳에 조각조각이 되어 떨어져 나간 기체 후미의 뒷부분까지 가서 보니 2구의 시체와 식량 약간 발견했다.
10월21일, 결국 수산나 파라도는 그녀의 오빠 난도 파라도("Nando" Parrado)의 팔에 의지한 채 죽어갔다.
10월22일, 각자에게 배급되었던 얼마 되지 않은 식량이 바닥나자, 생존자들은 식량부족에서 극도로 쇠약해져, 죽음 일보 직전의 상태였다. 이때 죽은 동료의 시체를 먹자는 방안이 나왔다. 의학생 가넷사(Roberto Canessa)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단백질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지금 여기에서 손에 넣을 수 있는 유일한 단백원은, 밖에 매장된 시체의 육체뿐이다."라고 했다.
더욱이 "사체는 눈 덕분에 냉동되어 있다. 빨리 결단하지 않으면, 다 같이 쇠약해져, 시체에서 고기를 떼 내는 힘조차 없게 되어 버린다." 라고 설명했다. 이것을 들은 다른 사람은, 처음에는 강력하게 반대했으나, 가넷사는 윤리적 측면에서 의론을 전개해 나아가, "생존자는,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남지 않으면 안 될 의무가 있다."라고 주잘했다. "시체를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단지 고기라고 생각하자!" 라고... 그들은 전원 가넷사의 제안을 신중히 의논했다. 이 결정은 인육을 먹는 상대 대부분이 친구와 급우였으므로 가벼운 결정이 아니었다.
안데스 산맥(Andes Mts), 남아메리카 서측에 따라 남북 7,500킬로, 폭 350-750킬로로 뻗은 세계 최대의 산맥으로,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그리고 칠레 6개국에 걸처있다. 최고봉은 6,960미터이고 6,000미터 급의 산이 20개나 있다.
10월23일, 그들은 소식이 끊기고부터, 칠레, 아르헨티나 그리고 우루과이 각국은 비행기 수색활동을 하고 있었으나, 아무런 단서도 발견하지 못한 채 추락으로부터 2주일 뒤에 수색활동을 단념했다. 안데스 산속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그들은, 라디오로 자신들의 수색활동을 듣고 있었다. 수색이 중지된 사실을 알게 된 그들은, 절망감으로 앞이 캄캄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수색대는 더 이상 오지 않고, 믿을 것은 오직 자신들 이 외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결단을 내렸다. 10월27일, 청년들은 시체의 고기를 잘라 내어, 기체 잔해 위에 올려놓고 사자의 영혼에 구제를 기도했다. 가넷사가 선두에 서서, 신에게 기도를 드린 다음, 고기조각을 입에 넣고 삼켰다. 다른 청년들도 뒤를 이었다. 그러나 전원이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다. 인육을 입에 대는 것을 거부한 사람이 몇 명인가 있었다. 종교적 터브로 인육을 먹는 것을 끝까지 거부해 온 사람일수록 육체적 쇠약이 눈에 띄게 나타났다.
Roy Harley(구조됐을 때의 모습)
동료가 어떻게 해서라도 먹도록 설득을 시도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기와 피를 먹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것은 신이 우리에게 주신 식량으로, 신은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생존하게 해주시려는 증거다.". 그러나 아무리 설득해도 반대하는 그들은 인육을 입에 대려 하지 않은 채 쇠약해 죽어갔다.
처음으로 인육을 먹기 시작한 수일 뒤, 그들은 시체에서 인육을 떼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것 같은 작업으로 되어, 잘라 내어 저장하여 둔 용기에서 훔쳐 먹는 사람까지도 나타났다. 알루미늄 호일에다 싸서 구워 먹는 사람도 있었으나, 가넷사는 이 방법에는 반대했다. "조리하는 사이에 영양가가 줄어든다. 제일 좋은 방법은 생으로 먹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생존자 27명이 되었다.
Sabella, Eduardo Strauch y Zerbino(구조됐을 때의 모습)
10월29일, 엄청난 눈보라가 일행을 덮쳐와, 이때 8명이 죽었다. 남은 19명도 육체의 한계에 달해, 최악의 상황이었다. 다음 눈보라가 엄습해 오면 확실히 사망자는 늘어나게 되며 그렇지 않으면 전멸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꼼작 않고 있어도 상황은 나빠지기는 마찬가지다.
이렇게 생각한 그들은 자신들이 여기 있다는 사실을 외부에 알리는 수단과 방법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직 체력이 남아있는 사람이, 혼자서 산을 내려가 구조를 청하는 수밖에 없다."라는 결론에 달했다. 그러나 이것이 실행에 옮기기도 전에 또 한 사람이 죽고, 생존자는 18명이 되었다. 한편 행방불명의 가족은, 개인적으로 파이롯트를 고용해 수색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는 "제랄드 쿠로와제"라고 하는 네덜란드 예언자를 믿는 사람도 있었으마, 이러한 수색은 번번이 허무한 결과로 끝나고 말았다.
Roberto Canessa(구조됐을 때의 모습)
10월30일, 눈이 내리는 가운데 좁은 기내에서 누마(Numa Turcatt, 24세)의 생일을 축하했다. 10월31일, 누마에게 했던 것과 같이, 카를로스(Carlos "Carlitos" Paez, 18세)의 생일을 축하했다. 11월1일, 바람이 멈추고 하늘은 개었다. 생존자들은 기내의 재료로 눈 제거 작업을 시작해 눈을 제거하자 새로운 시체를 발견했다. 이 날은 판초(Alfredo "Pancho" Delgado, 24세)의 생일이기도 했다.
11월17일, 가넷사, 비진틴(Antonio Vizintin) 그리고 파라도("Nando" Parrado) 3명이 구조를 청하려고 출발했다. 3명은 럭비 슈즈를 신고, 입을 수있는 대로 옷을 입고, 주머니에는 인육을 넣을 수있는 만큼 넣고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틀 뒤에 자신들이 산속에서 오직 헤매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허탈감에 빠졌다. 그들은 절망감에 원래의 비행기 잔해로 되돌아갔으나, 이 사이에 또 한 사람이 죽어 갔다.
Roberto Francoise (구조됐을 때의 모습)
이 가운데 체력이 제일 남아 있던 가넷사가 리더가 되어 생존자를 조직했다. "뇌에는 미네랄이 풍부하게 저장되어 있다."고 설명해, 눈 속에서 시체를 파내 식용으로 뇌를 꺼내도록 지시했다. 그런 가운데, 또 한 사람이 죽어 갔다. 파라도는 동료에게 "다들 목숨을 건지려면, 추락 때에 죽은 자신의 부모, 동생을 먹어도 상관없다."라고 말했다.
11월18일, 가넷사, 파라도가 그리고 비진틴 3명의 원정대는 다시 구조 요청을 위해 출발했다. 도중에 몇 개의 여행가방을 발견했다. 그 속에는 담배, 먹다 남은 음식물 그리고 옷가지 상자였다. 이 날 비행기 동체에 남아 있던 사람 가운데 에챠바렌(Rafael Echavarren, 22세)이 죽었다.
Fernando Parrado(구조됐을 때의 모습)
11월28일, 떨어져 나간 비행기의 후부 잔해에서 무전기를 발견해 전기 공학도인 한 사람이 수일간에 걸쳐 수리에 착수했다. 그 러나 이 무전기의 전원은 건전지가 아니라 비행기 엔진의 동력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낙담하게 된다.
3명은 몇 개의 산봉우리를 넘고 넘었으나, 그 앞이 보이는 것은 또 산이었다. 도중에 식량이 걱정되어, 비진텐이 자기의 식량을 두 사람에게 건네고 비행기 동체로 돌아갔다. 생존자들은 라디오를 통해 우루과이 공군의 C-47이 그들의 수색을 재개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12월9일, 이 날은 파라도("Nando" Parrado)의 생일로, 다른 생존자들은 기체에서 발견된 시거(Cigar)를 생일 선물로 주었다.
Roy Harley(구조됐을 때의 모습)
12월11일, 상공을 수색기가 통과할 때를 대비하여 눈 위에다 여행가방으로 커다란 십자가를 만들어 놓았다. 누마(Numa Turcatt, 24세)가 죽었다.
12월13일, 일행은 산을 넘어 행군을 계속했다. 너무나 힘든 행군으로 도중에 되돌아가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결론을 보지 못한 채 일행을 바위 밑에서 하룻 밤을 보냈다.
12월15일, 등산을 계속하여 어느 산 정상에 올랐다.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이들은 다시 절망적인 맛을 보아야 했다. 산맥을 넘으면 틀림없이 뭔가 가망이 있으려니 생각했었으나. 그들 앞에 보이는 것은 산봉우리 그리고 또 산 능선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가넷사, 파라도 2명은 주간에 휴식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 걸었다. 도중에 식량을 남기고 일행과 헤어져 동체잔해로 돌아간 비진텐은, 이날 라디오를 통해 여행가방으로 커다란 십자가를 만들어 놓았던 것을 우루과이 공군의 C-47이 발견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Alvaro Mangino(구조됐을 때의 모습)
12월18일, 가넷사, 파라도 2명은 이 사실을 모른채 활로를 모색하며 계속 앞으로 전진했다. 어느 계곡에 도착했을 때 눈은 점점 적어졌고, 최종적으로 눈길의 종착점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눈은 전혀 없었다. 식물이 조금씩, 그리고 전진함에 따라 식물이 무성히 자라있는 곳에 이르렀다.
가넷사는 이때 자신의 선글라스를 어딘가 빠뜨린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것이 없으면 눈에서 반사하는 태양의 빛으로 시력에 치명적인 손상을 받을 수 있어, 두 사람은 안경을 찾으려고 지금까지 온 길을 다시 되돌아 가야했다. 운 좋게 안경을 발견한 이들은 발걸음을 재촉해 계속 걷기 시작했다. 12월19일, 가넷사, 파라도가 또다시 산 하나를 넘어, 반대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을 때, 계곡에 목초지와 소 한 마리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것은 이들에게 발걸음의 희망이 되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문명의 증거인 빈 깡통과 말발굽의 파편들을 발견했다.
이 두 사람은 "가까운 곳에 민가가 있을 것이 틀림없다."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많은 소떼와 수목을 발견했을 때는 이제야 겨우 문명세계에 도착한 것을 실감하며 구출의 확신을 하게되었다.
12월19일, 아침에 기상한 이 두 사람은, 지금까지 신세를 졌던 배낭과 침대가 필요 없게 되었다고 판단해 버리고 가기로 했다.
12월20일, 피로로 쓰러질 듯한 두 사람의 눈앞에, 강 건너에서 앉아있는 농부(목장 경영자, Sergio Catalan)의 모습을 발견했다. 두 사람은 농부에게 펜과 종이를 던져 달라고 외쳤다.
농부(목장 경영자, Sergio Catalan)
농부가 던져 준 종이에 파라도는, "우리들은 산에 추락한 비행기에서 걸어왔다. 나는 우루과이 출신입니다. 우리들은 10일 간이나 걸어서 왔습니다. 우리는 부상한 동료를 비행기에 14명을 남기고 왔으며, 우리들은 여기서 빨리 탈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식량도 거의 없으며, 상당히 지쳐 있습니다. 당신은 언제 우리를 구출해 주실지? 우리는 더는 걸을 수 없으며, 어디에 우리들의 비행기가 있는지 아시겠습니까? SOS"라고 썼다. 사정을 알아챈 칠레 농부는 두 사람에게 먹을 것을 던져주고 그 장소를 떠났다.
On this day in 1972 Roberto Canessa and Nando Parrado obtained help from a rancher named Sergio Catalan. 이 두 사람 "Parrado and Canessa"은, "우루과이 공군기 571편 조난사고"의 진정한 영웅이었다.
약 3시간 뒤에 농부는 말을 타고 돌아와, 두 사람을 가까운 동네까지 데리고 갔다. 두 사람이 마을에 도착한 것은, 산속을 헤멘 지 10일째, 비행기 추락으로부터 72일째 되는 날이었다. 농부(목장 경영자, Sergio Catalan)는 이 편지를 관세 검사관에게 보여 주었다.
다음날 rescue helicopters 에서 촬영된 추락현장에 구조를 기다리는 생존자의 모습 사진 .
이때 기체에 남아있던 생존자들도 라디오로 2명의 원정대가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듣고 2명이 무사히 구출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12월22일, 가넷사, 파라도는 산속이 아침까지 안개에 싸여 있어 헬리콥터를 띄울 수 없다는 보고에 실망했다. 또 생존자들이 10월13일 발생한 추락사고를 혹한과 최악의 환경을 극복하고 살아 돌아왔다는 뉴스는 전 세계 보도기관의 주목을 받았다. 보도기관의 리포터들이 홍수와 같이 몰려들었다.
Nando Parrado가 추락현장까지 직접 안내하기 의해 헬기에 타고있다.
당국은 눈 속에서 이렇게 장기간 오랫동안 생존하려고는 상상도 못하면서 구조 헬리콥터를 급파했다. 파라도가 헬리콥터에 동승하여 길 안내를 했다. 이렇해 해서 쇠약해진 생존자 16명은 구조되어 샌디에이고 중앙병원에 운송되었다.
동체만 남은 우루과이 공군기(Uruguayan Air Force Flight 571)의 추락 잔해현장에 도착한 칠레의 "레스큐 헬기"
병원에서 검사한 결과, 생존자는 전원이 체중이 한계까지 줄어 있어, 심각한 영양부족에 빠져 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고산병, 탈수증상, 동상, 골절, 괴혈병 그리고 영양실조로 치료를 받았다. 취재로 매스컴이 밀려 왔을 때, 생존자들은 무서운 사실을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시기가 다가왔다는 것을 각오했다(그들은 이미 의사와 승려에게는 이미 자신들이 지금까지 살아남게 된 경위의 이유를 고백했다.)
기자 회견 Colegio Stella Maris
생존자의 기적의 생환으로부터 5일 뒤 12월26일, 샌디에이고의 어느 신문사가, 추락현장 부근에서 눈속에서 먹다 남은 사람의 다리를 발견하여, 그 사진을 신문에 게재했다. 이것으로 모든 사실이 만천하에 알려지게 되었다. 생존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해온 행위를 모두 사실대로 고백했다.
몬테비테오 가톨릭 대사교는, "나는, 도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생존이 걸려 있는 문제로, 예를 들어 생리적 혐오를 품는다고 해도, 그들은 손에 댈 수 있는 모든 무엇이든 먹어야 하였기 때문이다."라고 이야기 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자 이번에는, 인육 먹기를 거부하며 죽어 간 사람들에 대한 의문이 일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생존을 거부한 것이 되며, 도덕상 죄가 되는 자살을 한 것으로 되는가?"라고... 그러나 이것에 대한 대답은 아직까지 대답이 없다.
1973년1월18일 우루과이 공군은, 안데스 산속의 추락현장에 병사를 파견하여, 기체주변의 시체를 모아 합동 매장했다. 묘 위에는 커다란 돌무덤에 십자가를 세워 비행기의 잔해는 석유를 뿌려 소각해 버렸다.
"안데스 산 속의 기적"으로 불리는 이 이야기는영화화 된 유명한 이야기이다. 조난자가 인육을 먹고 살아 남았다는 이야기는 사실은 그다지 희귀한 일도 아니다. 이런 이야기 뒤에 항상 붙어 다니기 쉬운, "꺼림칙함", "두려움" 또는 "광기"와 같은 것은 이 이야기에서는 그다지 느낄 수 없다.
그들은 "살고 싶다."라는 비원과 "자신들에게 처해 진 극한 상황에서 절박한 처지" 등이 절실하게 가슴에 파고든다. 마치 나의 일인 것 처럼. 그들이 처한 상황을 상상하면, 가넷사의 무서울 정도의 결단과 영단을 생각하면, 원래는 섬뜩할 정도로 무서운 판단이지만 왠지 가슴에 울리는 부분이 있다.
그들의 기적적인 생환은, 인육을 먹는다는 행위 없이는 실현되지 못했다. 그 때문에 당시에는 여러 면으로 주저했으며, 틀림없이 고통스러운 가운데의 판단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16명의 생존자는 충분한 의논을 거쳐, 이 과거를 평생 짊어지고 가기로 각오하고 그 행위를 선택한 것이다.
시체의 인육으로 생명을 이어온 그들은, 죽은 사람의 목까지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고 가슴에 새기고 현재도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생존자는,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남지 않으면 안 될 의무가 있다." - Roberto Canessa -
LOS MILAGRO DE LOS ANDES
2005년2월 미국 등산가에 의해, 이때 생존자의 소유물이 안데스 산속에서 발견되었다. 지갑, 카메라의 필름 그리고 재킷 등의 물건이 32년 만에 소유자에게 곁으로 돌아갔다.
생존자들의 모임 사진. 2005년2월
16명의 생존자 (당시의 나이) Adolfo "Fito" Strauch 24세 Alfredo "Pancho" Delgado 24세 Alvaro Mangino 19세 Antonio "Tintin" Vizintin 19세 Carlos "Carlitos" Paez 18세 Daniel Fernandez 26세 Eduardo Strauch 25세 Gustavo Zerbino 19세 Javier Methol 36세 Jose Luis "Coche" Inciarte 24세 Jose Pedro Algorta 21세 Nando Parrado 22세 Ramon "Moncho" Sabella 21세 Roberto "Bobby" Francois 20세 Roberto Canessa 19세 Roy Harley 20세
Roberto Canessa Adolfo "Fito" Strauch Nando Parrado
관련 서적 1974년, Piers Paul Read, Alive: The Story of the Andes Survivors, Lippincott Williams & Wilkins 1973년 , 栗原勝譯 『그들은 인육으로 살아 남았다. 안데스 16인이 전 증언』 雙葉社 2005년, Piers Paul Read, Alive: Sixteen Men, Seventy-two Days, and Insurmountable Odds, Adventure Library
2006년, Vince Rause, Miracle in the Andes: 72 Days on the Mountain and My Long Trek Home, Random House Large Print
관련기사 Dowling, Claudia Glenn. "Still Alive." LIFE(1993년2월호)48-59 페이지
관련영화 1975년, 안데스의 성찬 (La Odisea de los Andes, 부제 "인육으로 생존한 16명의 젊은이들") 1975년 브라질, 1976년 일본에서 공개되었다. 1976년, 안데스 지옥의 방황 - Supervivientes de os Andes - 멕시코 영화 1993년, Alive (Alive : The Story of the Andes Survivors, 1974년) 1993년, Alive: 20 Years Later - 미국영화, "사고 20년 뒤의 생존자들의 인생을 반추해 본다." 미국.일본 극장 미공개 작품. 2007년, 생존자(Alive, Stranded: I've Come from a Plane That Crashed on the Mountains) - 2007년 프랑스 영화 생존자 전원과 그 가족, 구조에 과계한 사람들의 인터뷰와, 생존자가 추락 현장 원정의 기록되어 있다. 2007년 International Documentary Film Festival Amsterdam에서 상영되어 최고상 수상, 일본에서는 2009년4월11일 극장공개되었다.
"Vicuna, Inca Gold of the An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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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람괴기가 그리 맛있다며?
이거 영화로 봤어~ 재밌었음
영화제목이??
그건 기억이 안남..ㅠㅠ암튼 사람이 시체먹고..중간에 눈사태 한번 나서 많이 죽고.. 가방에 사람고기 썰어서 담고 산맥넘어가는..내용이 딱 맞아떨어졌거든.
Alive 임.
얼라이브..16년전에 본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