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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과 ‘또 다른 일상’ 포착하다
| 입력 : 2023.06.19 06:41
[서성록, 한 점의 그림] 작가 김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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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 사진작가 김상훈 전쟁 사진
키이우와 최대 접전지 돈바스 등
우크라이나 한 달간 방문해 촬영
평범한 삶 잃어버린 사람들 모습
전쟁 맞서는 국민들 실상 보여줘
야만적 행위 기록 남겨 비극 대비
▲김상훈, 스비틀라나 젤다트, 2023. ⓒ김상훈 작가 제공 |
‘세계의 빵 공장’으로 불리던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으로 하루아침에 폐허가 되어 버렸다. 러시아군은 드넓은 우크라이나 평야에 폭탄과 지뢰를 대거 투하, 우크라이나인들의 식량을 앗아가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침공 후 1년이 흐른 지금, 800만 명 넘는 사람들이 국경을 건너 난민 신세로 전락해버렸고, 600만명이 우크라이나 내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겨 다니며 피난살이를 하게 되었다. ‘난민’이라는 이름표를 달게 된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개전 후 ‘또 다른 일상’을 겪게 되었다.
국제 분쟁지역을 취재해 온 김상훈(Kish Kim)은 올해 2월, 한 달 동안 여행 금지국으로 지정된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와 최대 접전 지역인 돈바스 전방 및 전쟁 초기 격전지 이르핀, 부차, 호스토멜, 체르니히우 지역을 다녀왔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이스라엘-가자, 레바논-이스라엘 전쟁, 9.11 뉴욕테러, 홍콩 민주화 현장 등 여러 전장과 분쟁 현장을 취재한 베테랑이지만, 긴장된 감정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전장을 찾아다니면서 생긴 병, 곧 전투기 소리를 들으면 식은땀이 흐르고 구덩이를 보면 그 안에 시신이 있을 것같은 트라우마를 감수하고, 그는 또 다시 풍전등화의 위험지역을 찾았다.
그는 포탄이 떨어지는 격전지임에도 삶을 이어가는 민간인에 시선을 맞추었다. “우크라이나는 전쟁을 겪고 있는 뚜렷한 성격이 드러나지 않아 작가로서 고민이 좀 되긴 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알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의 저항이 거세지자 병원과 학교와 민간 거주지에도 총과 포탄을 쏘아대고 있다. 이로 인해 전쟁과는 무관한 어린이와 노약자, 시민들의 사상자가 대거 늘어가고 있다.
김상훈의 작품은 평범한 일상을 빼앗겨 버린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발전시설이 폭격당해 단전과 단수가 반복되는 가운데서도 상점을 여는 상인, 공습경보가 해제되자마자 학교로 향하는 학생, 폭격으로 부서진 창문을 합판으로 막고 사는 주민들, 남편과 아들을 전쟁터에 보내고 무사히 돌아올 것을 기원하는 여인, 피난 간 주인을 영문도 모른 체 기다리는 강아지, 공습경보가 울려도 가로수를 심거나 도로를 청소하는 사람들 등은 일상을 유지하면서 전쟁에 맞서는 모습들이다.
이 중에서 눈에 띄는 작품이 있었다. 그것은 어느 중년 여인의 초상이었다. 지난해 3월 자신의 집에 떨어진 미사일에 스비틀라나 젤다크(45)는 남편(42), 딸(21), 예비사위(33), 아들(14), 할머니(86) 5명의 온 가족을 한꺼번에 잃는 슬픔을 겪었다. 그녀는 폐허 더미 위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녀의 눈은 충혈되어 있는데, 어떤 슬픔을 겪었는지 감히 짐작하기조차 어려워 보인다.
스비틀라나 젤다크는 어떤 결연함으로 자신을 억누르고 있는 것같다. 작가와의 인터뷰 내내 눈시울을 붉히면서도, 그녀는 끝내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나의 소원은 가족들 곁으로 가는 것이다. 가족들이 그들 곁으로 나를 데려가 주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다. 나는 우리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을, 미사일이 비처럼 쏟아지는 순간에도 우리를 지키려 했던 군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그녀를 만난다면 그녀의 비통함을 이해할 수 있을까.
▲김상훈, 블라디슬라우 빈차르스키, 2023. ⓒ김상훈 작가 제공 |
다음은 전쟁으로 인해 달라진 일상을 사는 어린아이를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이다. 소년이 살고 있는 호스토멜은 우크라이나 공군기지가 있는 지역으로, 격전지 중 한 곳이다.
공군부대 근처에 사는 블라디슬라우 빈차르스키(11)는 전쟁 첫날부터 전쟁 때문에 겪지 않아도 될 끔찍한 경험을 하였다. 블라디슬라우의 취미는 소년답게 구슬, 레고블록, 조개껍데기, 조약돌, 동전 등을 수집하는 것이었지만, 전쟁 이후 그가 모으는 수집물들은 전쟁의 흔적인 포탄 파편들이다. 소년은 전쟁 전 수집품들과 새로 모은 포탄 파편들에 둘러싸여 있다.
이전만 해도 구슬, 레고블록, 조개껍데기, 조약돌, 동전을 모으며 세상에 대해 꿈을 꾸었다면, 이제 소년은 그런 꿈 대신 탄피와 파편을 모으며 공습의 공포와 두려움으로 하루하루를 이어갈 뿐이다.
무너진 동심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포연(砲煙)이 자욱한 그의 사진작품은 상처 입은 자들과 연대하고 그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우리가 뉴스를 통해 보는 장면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군대의 공방들이다. 그날그날의 단편적인 소식들이 자극적인 장면들과 함께 스쳐지나간다. 이런 뉴스들은 정작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실생활이 어떤지, 그들이 전쟁에 맞서는 실상은 알려주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작가가 우크라이나 전쟁 속에서도 ‘비정상적인’ 일상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주제로 삼은 것은 우리에게 전쟁의 참화를 되새기게 하는 의미가 있다. 그가 몸을 사리지 않고 우크라이나 땅을 밟게 된 것은 그곳의 진실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그만큼 강렬했기 때문이리라.
작가는 전쟁이라는 추악한 소굴을 찾아다니며, 이루 헤아릴 수 없으리만치 반복하여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작가인들 근사하고 멋진 장면을 담아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는가. 그런 장면에 집중하는 이유는 이같은 ‘야만적 행위’를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이같은 비극을 막고 대비하자는 차원에서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지구 공동체의 일원, 곧 가족이 있고 살아 숨쉬는 동료임을 알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평강과 위로가 임하길 염원하는 바람이 실려 있다. 부디 우크라이나 땅에 파괴와 혼돈의 힘이 제거되고 속히 샬롬이 임하길 기도한다.
6.25 전쟁을 겪은 우리로서는 그의 작품을 보며 남다른 감회를 갖게 된다. 이 같은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분들과 유가족에게 심심한 애도와 존경의 마음을 갖게 된다.
▲서성록 교수. |
서성록(안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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