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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실장석 카드놀이
최근 학대파 사이에서 살아있는 실장석을 이용하여 카드 놀이를 즐기는 '실장석 카드 카페’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유희왕과 흡사한 '실장석 카드놀이'는 실제로 카드를 뽑아 실장석을 소환해 서로 죽을때까지 싸움을 붙여 승패를 가리는 게임.
인간의 꼭두각시가 되어 동족의 목을 물어뜯는 실장석들을 감상하는 것은 학대파들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주었다.
학대파 동료이자 친구인 민수와 철수도 오늘 카드카페를 다시 찾았다.
"오늘은 안 진다. 너 운빨인거 오늘 내가 증명해줄게."
"넌 나한테 안된다니까? 참피카드는 실력겜인거 보여준다.”
민수는 이번에야말로 철수를 이기겠노라 다짐한다. 저번처럼 실장석들을 제대로 통제하지도 못하고 홧김에 패죽여버리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오늘을 위해 데스넷을 몇 페이지나 읽었던가.
“예약 주셨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룸 청소가 끝나는 대로 진행자를 붙여 드리겠습니다."
실장석 카드놀이는 진행자 1명을 동반한 1대1 게임. 온갖 종류의 실장석과 학대도구, 진행자의 보조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용료가 비싸다. 하지만 최근의 인기는 비싼 가격에도 예약이 필수일 정도.
민수와 철수는 진행자의 안내를 받아 길다란 복도를 따라 룸으로 향한다. 곳곳에서 실장석들의 비명과 사람들의 비웃음소리가 뒤섞여 들린다.
학대파들이 좋아할 법한 그로테스크한 실장석 포스터가 어지럽게 걸린 복도를 조금 지나면 배정받은 룸이 보인다.
룸 중앙에 자리한 흰색 테이블이 먼저 눈에 띈다. 테이블 위는 곧 실장석들의 동족상잔이 벌어질 투기장이다.
벽에는 작은 케이지가 바둑판처럼 빼곡히 배열되어 있었는데 그 안에 수많은 실장석들이 한 마리씩 들어가 있었다.
케이지 안에 있는 실장석들은 민수와 철수가 방으로 들어왔음에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케이지 안에서 멍하게 앉아 입맛을 다시는 놈, 천장을 향해 팔을 흔들며 무어라 항의하는 놈, 허공에 연달아 주먹질을 하는 놈 등 다양한 실장석들이 있었다. 하지만 방음 처리 덕분에 방안은 조용했다.
진행자의 말에 의하면 케이지 안에서는 바깥이 보이거나 들리지 않는 구조라고 한다.
방 곳곳에는 완전히 지우지 못해 흔적이 남은 실장석의 운치와 핏자국이 듬성듬성 보인다. 다행히 악취가 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방안에 자욱하게 깔린 무겁고 을씨년스러운 기운은 이곳에 아직 수많은 실장석들의 한과 비극이 머무르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민수와 철수는 적당히 테이블 양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짐을 풀었다. 테이블 위에는 체벌도구와 카드팩이 보기좋게 정돈되어 있었다.
"지금부터 게임을 시작하겠습니다. 시작하기 앞서 간단한 룰 설명을 해드릴까요?"
철수는 숙련자라 설명이 없어도 괜찮았지만 민수는 아직 실장석 카드놀이를 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풋내기였기에 진행자에게 간단한 설명을 부탁했다.
규칙은 복잡하지 않다. 3장의 실장석 소환카드를 참가자들이 번갈아 가며 뽑는다. 실장석을 모두 뽑으면 한쪽의 실장들이 다 죽거나 테이블 아래로 떨어질 때까지 서로 싸움을 붙인다.
여기서 싸움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참가자들은 각자 2장의 효과카드를 추가로 뽑는다.
효과카드는 우리팀 실장에게 무기를 쥐어주거나 적팀 실장들을 독라로 만드는 등 참가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싸움의 판도를 바꿀 수 있다.
3장의 소환카드와 2장의 효과카드를 적절히 활용하여 모든 적 실장들을 해치우면 게임에서 승리한다.
싸움에서 살아남은 실장석들은 데려가서 길러도 좋고 즉시 분쇄기에 갈아넣을 수도 있다.
"...이해하셨죠? 실장석을 모두 뽑고 나면 제가 종을 칠 거예요. 종이 울리면 싸움이 시작되기 때문에 그 전까지 애들을 최대한 훈육하고 구슬려서 싸움에 대한 동기부여를 시키셔야 됩니다."
"참고로 간단한 체벌은 가능하지만 실장석을 죽이면 반칙패가 되니까 주의해 주세요.”
진행자의 능숙한 설명이 빠르게 이어지고, 민수의 차례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게임에 들어갔다.
민수는 뒤집힌 소환 카드팩에 손가락을 올렸다. 처음이 중요하다. 제발 시작부터 구더기나 엄지가 소환되지 않기를 민수는 바랬다.
가장 위쪽의 카드 한장을 집어든 민수의 표정이 곧 밝아진다. 민수는 카드를 뒤집어 진행자와 철수에게 보여준다.
[ 소환카드 : 성체실장 ]
공원에서 살던 평범한 성체실장.
소환 카드에는 온갖 종류의 실장석이 다 들어가 있다. 당연히 그 안에는 구더기나 엄지, 자실장 등 나약한 개체들도 포함돼 있기 때문에 성체실장을 뽑은 것은 매우 성공적인 뽑기라고 할 수 있다.
진행자는 민수의 카드를 건네받은 뒤 벽면에 있는 케이지로 향한다. 민수는 기대감과 일말의 불안함에 침을 삼킨다.
진행자는 케이지 하나를 열어 평범해 보이는 성체실장 한마리를 안아들었다. 성체실장은 난데없는 상황변화에 뎃? 하더니 반사적으로 공중에서 팔다리를 허우적댄다. 적어도 사지에 문제가 있는 놈은 아닌 것 같아 민수는 안심했다.
진행자는 성체실장의 앞치마에 큼직한 파란색 콘페이토 모양 스티커를 붙였다. 실장들은 앞치마에 붙은 스티커 색깔을 통해 아군과 적군을 판단한다.
당황하여 분위기를 살피던 실장석이 곧 데스데스 울기 시작했다. 인간에게 잡혀 높은 곳에 매달려있음에도 거만한 표정이 되어 대드는 것을 보니 영락없는 들실장이었다.
"똥닝겐 갑자기 왜이러는데스? 냉큼 내려놓지 못하는 데스?"
"와타시가 아직 옥체에 손대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데스. 노예종족 주제에 하극상을 꾀하는 데스?"
방안에 설치된 스피커형 링갈이 들실장의 분충발언을 여과없이 들려주었다.
"똥닝겐은 팔다리가 찢어발겨지고싶지 않으면 당장 와타시를 공손하게 내려놓고 머리를 조아리는 데스. 셋 세는 데스우."
진행자는 들실장의 으름장을 무시하고 민수 쪽 테이블 위에 내려놓었다. 들실장은 내려오자마자 진행자를 향해 팔을 흔들며 열등종족이- 로 시작하는 갖가지 저주를 퍼부었다.
날뛰는 성체실장을 잠시 지켜보던 민수는 별안간 테이블을 주먹으로 쾅! 하고 내려쳤다.
“데뎃!?!”
제 세상인 양 지랄을 떨던 성체실장은 큰 소리와 함께 땅이 우르릉 흔들리자 깜짝 놀라 주저앉았다. 얼빠진 표정으로 끼기긱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성체실장에게 민수가 인사를 건넸다.
"반갑다 실장석아. 네가 예비 사육실장석이라고 하던데 맞아?"
“…데?”
“이곳에 있는 예비 사육실장들은 분충을 무찌르면 사육실장이 될 수 있다던데 아니야?”
실장석은 조금만 얕보이면 인간을 깔보고 맞먹으려드는 생물. 때문에 이것들을 통솔하려면 어리숙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 그래서 민수는 빠르게 기선제압을 시도했다.
테이블을 내려치는 선택은 실장석을 얌전히 만들기에 효과적이었다. 조금 겁이 난 성체실장은 입을 빠끔거리며 눈치를 살핀다. 민수의 말을 들으면서도 놀라 실금한 운치가 팬티와 흰색 식탁보에 스민다.
보다시피 이곳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실장들은 대다수가 들실장들. 이들은 어느날 공원에서 채집꾼에게 납치되어 카페에서 '예비 사육실장'으로서 주인을 기다린다.
카페 관리인은 잡혀온 들실장들에게 매일같이 "너희들은 용맹한 전사실장으로 선택되었단다~ 주인님의 부탁에 따라 분충을 무찌르면 세레브 사육실장이 될 수 있어요~" 같은 개소리를 하는데, 신기하게도 실장석들은 어느새부터인가 자기가 정말로 용맹한 전사로 선택된 줄로 착각하기 시작한다.
민수가 뽑은 성체실장도 그랬다. 민수의 말을 듣고 눈알을 데록데록 굴리던 실장석은 곧 자신의 본분을 자각했다.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치켜세운 궁뎅이를 이리저리 흔들며 사방을 경계한다.
“좋은 기개다. 앞으로 네 이름은 블루다. 잘 부탁한다 블루."
"데프프픗.. 사육실장에게 어울리는 품위있는 이름인데스. 미래의 노예상은 승리의 만찬으로 가볍게 스테이크를 준비하는 데스웅”
이름을 붙여주면 곧 소환될 다른 실장들과 구별하여 통솔하기 쉬워질 뿐만 아니라 실장석에게 좋은 동기부여가 된다.
“오- 몇 판 해봤다고 많이 늘었네ㅋㅋ 저번에 왔을때는 실장석이랑 한참 말싸움만 하다가 화내면서 죽여버렸잖아ㅋㅋ"
민수를 흥미롭게 지켜보던 철수가 박수를 짝짝 치며 이죽댔다. 하지만 철수 말대로 민수의 대처는 빠르고 정석적이었다.
실제로 민수의 첫 뽑기는 대성공. 성체실장이 뽑혔다고 해도 상분충이라 말을 전혀 안 들어먹거나 맛탱이가 간 놈들이 걸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닥치고 빨리 뽑아~ 오늘은 무조건 이기고 간다."
어느새 등받이에 기대 앉은 민수가 여유롭게 받아친다. 이번 판은 이길 자신이 있었다.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블루도 민수를 거들어 철수를 매도했다.
"오마에가 분충이었던 데스? 데뿝뿝뿝 예비 노예상은 도대체 얼마나 약해빠진 데스까?”
"저런 수수깡 똥닝겐은 와타시의 붐권 한 방이면 사지백해가 터져나가는 데스.~ 노예상은 등 뒤에서 마라잡고 스테이크나 굽는데스우”
민수와 블루의 값싼 야유를 받으면서도 철수는 가볍게 카드 한장을 뽑는다. 그깟 성체실장따위 이쪽도 뽑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카드를 뽑아든 철수의 표정이 점차 어두워진다. 민수는 철수의 카드뽑기가 실패했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 소환카드 : 엄지실장 ]
공원에서 살던 평범한 엄지실장.
“아 엄지실장ㅋㅋㅋㅋㅋㅋㅋ”
철수의 카드를 본 민수는 깔깔 웃었다. 블루도 민수를 따라 데뿌뿌 비웃었다. 엄지실장이라니? 블루의 발길질 한방이면 으깬 엄지 샐러드가 될 것이 분명했다. 철
수는 애써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행자가 케이지로 다가가 엄지실장을 꺼낸다. 그런데 진행자는 케이지 문에 달린 잠금장치를 해제하면서 그 옆에 붙어있던 노란 쪽지도 읽어주었다.
"이 개체는 가족애가 강한 친실장 밑에서 자란 것 같습니다. 자실장 네자매와 함께 집 안에서 자로 대접받으며 꽤 화목하게 살고 있었다는데요?”
진행자의 말을 들은 철수의 표정에 불안감이 더해졌다. 그리고 진행자가 엄지를 꺼내자 철수의 불안한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레챠아아아아아아앗 - ! !”
"무엄한 레챠아아아악! 감히 어디서 하등종족의 불결한 족발로 작고 소중한 공주실장의 보디(Body)를 더듬는 레챠아아악!!”
케이지가 열리기 무섭게 귀청을 들쑤시는 엄지실장 특유의 새된 고음이 방을 찌르듯이 울렸다. 아무래도 상분충이 걸린 듯 하다.
"똥노예에에에에—!!! 담당 똥노예는 어디 쳐박힌 레챠아아ㅏ!! 빨리 기어나와서 이 불경한 열등족속을 토막쳐버리는 레샤아아아아!”
진행자의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 사이에 위태롭게 매달린 엄지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발작을 일으킨다. 엄지실장의 얼굴은 흥분하여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들실장 일가의 막내로 태어난 이 엄지실장은 마마와 오네챠들에 둘러싸여 귀여움과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가족들에게 받는 무상의 애정 속에서 엄지실장은 어느새 자기야말로 우주에 하나뿐인 귀염실장이라고 믿게 되었다.
이곳에 납치돼 온 후론 그 믿음이 더 확고해져, '예비 사육실장' 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쯤엔 이미 케이지 안에서 고함을 지르며 닝겐노예를 대령하려고 요구했다. 빵콘한 팬티를 집어던지며 "가장 먼저 머리를 조아리는 1등 노예에게 와타치의 성물을 하사하는 레치-!" 하고 울어댄 일도 있었다.
똥분충이 당첨된 철수가 이마를 짚으며 아찔한 정신을 부여잡았다. 그래도 자신은 숙련자, 이런 똥엄지라도 어딘가 쓰일 곳이 있을지 모른다.
진행자에게 초록색 콘페이토 스티커가 붙여진 엄지를 넘겨받은 철수. 한손에 조막만한 실장석을 올려놓는다. 조금만 힘을 주면 물풍선처럼 터져 세상에서 사라질 미물. 게다가 짜증나는 데시벨로 울어대며 자기 분을 못이기고 물똥까지 싸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친구에게 실력차를 깨닫개 해 주기 위해서는 이까짓 수모 정도는 참아야 한다. 철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엄지에게 인사를 건넸다.
"귀여운 엄지실장아. 안녕? 사육실장이 되고싶구나? 내가 도와줄까?”
"기억나니? 내 부탁을 하나만 들어주면 세레브한 실장이 될 수 있다는 거?"
철수는 이를 악물고 최대한 상냥하게 엄지와 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엄지는 철수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주인은 아타치인 레샤아아아아앗!!!!! 똥노예 주제애 내려다보지 마는 레츄우우우우우우——!!!”
엄지는 열등한 노예족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 때문에 머리 끝까지 화가 나 있었다. 세상도 감동시킬만큼 귀여운 와타시의 총구나 한번 깨끗이 핥으면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며 머리를 조아려야 할 똥노예가 자신보다 높은 곳에 서 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화가 너무 나서 운치가 멈추질 않는다. 엄지의 빤쮸가 점점 묵지근해진다.
엄지는 자신과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거대한 철수의 손바닥에 올려진 상태에서 자신이 철수보다 상위의 존재라는 것에 한치의 의심도 없었다. 엄지는 철수의 손바닥을 뭉툭한 발로 잘근잘근 밟으며 소리쳤다.
“열등한 노예종족 주제에 어디 음탕한 눈으로 아타치를 더듬는 레츄우우우우!! 불결한 레츄아아아!!!"
“아타치는 공주실장 레칫!! 음란 똥노예는 도게자하여 속죄한 뒤 아타치를 맞이할 세레브 궁전과 특제 한우 스테이크, 흑발의 자를 쑹풍쑹풍 낳을 백마탄 왕자노예나 대령하란 레샤아아악-!"
찌르는 듯한 괴성.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달아올라 바락바락 대드는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엄지실장을 보며 철수는 탄식했다. 어쩜 이렇게 험오스러울 수가 있단 말인가.
철수가 보기에 엄지실장은 제발 자신을 터트려 죽여달라고 손바닥 위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다.
철수는 단시간에 엄지를 교정할 방법을 모색해 보려 했지만 고막을 들쑤시는 엄지실장의 소음공해 때문에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똥노예에에에에에에에!! 고귀한 아타치가 언제까지 고개를 들고 있어야 하는 레츄우우우!! 눈치 1도 없는 쓸모없는 노예종족 레치칫!! 가까이 오는 레챠 주인과 노예의 힘의 차이를 보여주는 레챠앗!!!”
잔뜩 흥분한 엄지는 어설픈 동작으로 철수의 얼굴을 향해 연거푸 우레탄 주먹을 내질렀다. 구제가 불가능할 정도의 분충. 아니, 애초에 대화가 통하질 않는다. 첫 뽑기는 대실패다. 싸움애 도움이 되기는 커녕 발목이나 잡지 않으면 다행인 수준이다.
"그냥 뽑은 셈 치고 죽이면 안됩니까?"
발광하는 엄지실장에게 눈을 고정한 채로 진행자에게 묻는 철수. 그러나 원칙은 흔들리지 않는다. 진행자가 고개를 저었다.
이제는 목을 뻗어 츄아악-! 하며 철수의 엄지손가락을 잘근잘근 씹으려고 하는 엄지실장. 철수는 할수없이 반대손으로 실장채를 집어들었다. 제한된 체벌도구 중 가장 무난한 선택이었다.
"이 벌레새끼. 주인과 노예의 힘차이를 지금 알려주마.."
엄지는 실장채를 장비하고 얼굴이 흉악해진 철수를 보고도 전혀 겁먹지 않았다. 맞아보질 않았으니 저것이 흉기인 줄을 모르는 것이다. 오히려 치프픗 웃으며 철수를 비웃었다.
“치프프프픗- 치프피퍄퍗-! 노예 주제에 반역하는 레치? 덤비는 레치? 가소로운 레츙~ 그따위 똥막대기로 노예족속이 아타치에게 뭘 할수 있는 레츄?”
“지금당장 귀여운 아타찌를 내려놓고 스스로 독라달마가 된 다음 운치굴을 파고 들어가 옹서를 구하는 레츙! 주인의 명령인 레츄!! 아타찌의 운치를 뒤집어쓰고 반성해라 레츄! 아ㅌ..."
엄지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잘 빠진 예리한 실장채가 순식간에 엄지에게 날아들었다. 실장석의 엉터리 동체시력으로는 그것을 쫓을 수 없었다. 엄지가 보기에 실장채는 이쑤시개보다도 가늘었다. 우지챠의 돌기에 맞아도 저것보다는 아플 것이었다.
그러나 엄지의 예상은 엄지의 살덩이 만큼이나 물러터진 것이었다. 쫘악 감기는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엄지는 철수의 손에서 튕겨나가 테이블에 처박힌 뒤, 펑크난 자동차처럼 테이블을 뒹굴었다. 사방으로 엄지의 살점과 피가 비산했다.
"레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생전 처음 느껴보는 혼을 쏙 빼놓을만한 격통. 엄지는 경기를 일으키며 분대 깊숙히 쌓여있던 것들을 터뜨리듯 틸분했다. 있을 수 없는 고통에 테이블 위에서 온몸을 뒤집어 꺾으며 괴로워하는 엄지실장.
엄지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위석이 쩌르르 울리고 슬픔과 구조의 위석신호를 마구 발산했다. 무언가 잘못됐다. 우주에 하나뿐인 귀여운 아타치에게 아픔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러나 철수의 신들린 매질은 멈출 줄을 몰랐다. 장인이 도자기를 다듬는 것처럼 뾰족뾰족한 가시가 박힌 실장채가 아직 상처가 나지 않은 엄지의 살결을 집요하고 섬세하게 찢어놓았다.
엄지는 온 몸의 핏가죽이 맨정신에 해체당하는 끔찍한 경험을 하는 와중에도, 귀염실장인 자신을 빨리 도와주지 않는 똥마마, 똥닝겐, 똥세상씨를 원망했다.
철수는 손끝으로 전해져 오는 야들야들한 쾌감에 흥분해 체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철수는 엎어져 약맞은 벌레처럼 발작하는 엄지를 연이어 후려쳤다. 한 번 후려칠 때마다 엄지의 육편이 테이블을 수놓았다.
“그만두는 레짜아아아악 —!!!! 찌이이이이이이이이이!!!"
철수는 카드놀이 뿐만 아니라 학대파로서도 숙련자였다. 섬세한 손가락과 손목근육의 스냅으로 엄지를 죽음의 문턱 앞에서 고문하고 있었다.
“레히이이이이이이이이.. 구해주는 레히이이이이이이이이.....“
엄지는 피와 운치를 토하며 테이블을 뒹굴었다. 압력을 이기지 못한 눈깔이 튀어나와 시신경에 매달려서 구를 때마다 요요처럼 왔다리 갔다리 하고 있었다.
엄지는 위석에 새겨진 본능에 따라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팔다리를 움직여 철수에게서 멀어지려 하였다.
“레히이이- 레히이이이이-“
엄지는 본능적으로 철수의 반대편을 향해 기어갔다. 그러나 이미 팔다리는 뼈가 드러날 정도로 터져나가고 몸통과 내장은 뭉게졌다. 손가락 한 마디만큼도 자의로 움직이지 못했다. 게다가 7cm짜리 엄지 주제에 널찍한 테이블을 가로지를 수 있겠는가?
"치이... 어ㅉㅐ..서.... 레..히이....”
찌이이... 소리를 내며 구슬피 신음하던 엄지가 곧 정신을 잃었다. 죽지는 않았지만 가사상태애 빠진 듯 하다.
"대단하시군요. 저런 상분충을 뽑았는데 죽이지 않고 기절시키다니 학대 내공이 엄청나신 것 같습니다."
철수의 가공할 테크닉에 진행자와 민수가 감탄했다. 엄지는 붉은색 꽃이 핀 하얀 테이블에 널브러져 이따금씩 경련하거나 입에서 피와 함께 히- 하고 공기빠지는 소리를 토해낼 뿐이었다.
만약 철수가 홧김에 저 분충을 패죽였다면 룰 위반으로 바로 패배했을 것이다. 하지만 철수의 노련한 학대기술이 빛을 발해 사실상 엄지를 전장 이탈시킴으로써 방해물을 안전하게 제거했다. 숙련자다운 대처였다.
한편 멀리서 철수와 분충엄지의 대치를 지켜보던 블루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마음이 솜사탕처럼 너무나 가벼웠다.
저렇게 분수도 모르는 소리나 할 줄 아는 나약힌 똥엄지라면 붐권 한방으로 초전박살 낙승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똥닝겐도 마찬가지. 운치굴에서 비상식 구더기의 똥받이나 하면서 살아가는 약해빠진 엄지실장한테 쩔쩔 매고 있다니?
처음엔 닝겐의 거대한 덩치를 보고 강한 척을 하면서도 속으로 조금은 경계했었다. 그러나 엄지한테도 두들겨 맞는 것을 보니 공원에 찾아오는 무서운 학대파는 아닌 것 같았다. 학대파가 아니라면 닝겐이 드높은 실장석의 고귀함에 당해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철수의 화려한 매타작을 본 블루는 자기도 모르게 부우욱 빵콘하고 말았다. 학대파다. 공원에 찾아오는 학대파들이 저랬다. 저 악마는 공원에 찾아오는 똥학대파들처럼 가녀린 동족을 무참하게 도륙하고 있었던 것이다!
블루는 어느새 운치로 빵빵해진 팬티를 조금씩 들썩이며 민수 쪽으로 주춤주춤 뒷걸음질쳤다. 파킨의 예감이 느껴졌다. 뒤돌아보니 주인상의 듬직한 덩치가 보였다. 방향을 잃고 돌아가던 블루의 탁한 눈깔에 힘이 들어갔다.
"데뎃........ 주인상....?? 와타시 저 학대파와 싸워야 하는데스웅.....?"
블루가 민수를 향해 몸을 베베 꼬며 연약한 척을 하기 시작했다. 민수는 블루의 간절한 마음을 읽었을까? 피식 웃어 버렸다.
블루는 민수의 웃음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눈을 초생달처럼 휘고 필살의 아첨 포즈를 취했다. 불룩해진 빤쮸 때문에 다리가 잘 모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희고 고운 섬섬옥수로 귀엽고 은밀하게 벌어진 요망한 입술을 다소곳하게 가리고 마법의 각도로 머리를 기울였다. 성공할 것이라고 블루는 확신했다.
"주인상~ 와타시 주인상의 사랑스런 블루인 데스웅- 사육실장은 보호받을 권리가 있는 데스웅~ 블루는 주인상이 대신 싸워주길 바라는 데스웅♡"
지금까지 자신을 배신한 적이 없는 필살애교. 자실장 시절, 마마 몫의 푸드를 훔쳐먹다 들켰을 때도, 똥삼녀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치다 마마에게 걸렸을때도 구해주었다.
블루의 아첨을 지켜본 민수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좀전까지 시건방지게 팔을 흔들며 깝치던 위세는 어디로 가고, 학대 좀 본 것 가지고 잔뜩 쫄아서는 똥찬 팬티를 흐느적거리면서 필사적으로 아첨을 떤단 말인가?
블루는 자신이 엄지처럼 쳐맞을까봐 겁을 집어먹은게 분명했다. 엄지처럼 팔다리가 다 터져 공중분해 될까 퍽 조마조마했는지 블루의 처진 볼살을 타고 식은땀이 한방울 흘렀다.
아첨을 빙자한 이 엉터리 생물의 목숨구걸을 보고 있자니 민수는 묘한 쾌감이 샘솟는 것을 느꼈다. 그래 이 맛이지.
"걱정 마라~ 너는 내가 가리키는 실장석이랑만 싸우면 된다."
“데뎃~!! 해낸 데스웅-❤️”
블루는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닝겐도 역시 와타시의 메로매로에 함락됐다. 닝겐에게는 절대 아첨하지 말라던 똥애미의 치졸한 겐세이가 문득 떠올랐다.
와타시는 똥엄지같은 조무래기들만 밟아죽이면 된다. 닝겐이 와타시를 위해 대신 학대파와 싸워주는 것이다. 그리고 와타시는 귀족실장이 된다! 이것이야말로 '선택받은 실장의 운명'이라고 블루는 생각했다.
이로써 민수는 성체실장 블루, 철수는 기절한 분충엄지를 배치한 상태로 두 번째 턴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두번째 턴 부터는 소환카드 한장과 함께 효과카드도 한 장씩 뽑아주세요.”
효과카드는 아군 실장석을 지원하거나 적 실장석을 방해하는 데 쓰인다. 효과카드의 활용에 따라 불리한 전황도 단숨애 뒤집을 수 있다.
민수는 먼저 소환카드를 뽑았다. 첫 차례애 쓸만한 성체를 뽑았기 때문에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그리고 소환카드를 집어든 민수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꽈악 쥐었다. 민수의 카드를 확인한 철수는 복잡한 표정이 되었다.
[ 소환카드 : 성체 원사육실장 ]
한때 사육실장이었으나 주인에게 버림받고 보호소에서 처분을 기다리고 있던 성체 원사육실장.
대개 사육실장은 들실장에 비해 약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이것은 틀리지 않은 사실이다. 영양상태가 좋아 덩치가 들실장보다 훨씬 큰 사육실장이 많지만 사육실장들은 부족함 없이 자랐기 때문에 생존에 대한 절박함이 들실장에 비해 부족하다. 악과 깡이 모자라는 것이다.
선빵과 악다구니가 대부분의 승패를 결정짓는 실장석의 세계에서 유약한 정신상태를 가진 사육실장들은 덩치값을 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보호소에서 처분을 기다리는 것들은 다르다. 이들은 이미 최고로 안락한 실생을 지낸 경험이 있다. 주인에게 버림받아 나락까지 추락한 경험도 있다.
무상의 행복만이 삶의 이유인 실장석에게 두 경험 사이의 간극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 이들은 사육실생을 다시 쟁취하기 위해서라면 들실장보다도 처절해질 수 있다.
"데즈우우우우우우우 —!! 데스우우우 —!”
케이지를 열자마자 저음으로 크게 울부짖는 성체실장. 진행자가 안아든 성체실장의 초조한 얼굴에는 분명히 절박한 빛이 있었다. 인간을 보자마자 필사적으로 데스데스우 울기 시작했다.
"닝겐사마아-!! 제발 와타시를 길러주시는 데스우!! 닝겐사마에게 절대로 버려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데스우우우!!"
"다시는 닝겐사마 몰래 자를 가지지 않는 데샤!!! 닝겐사마가 아끼는 로봇씨도 부수지 않는 데샤!! 닝겐사마가 자는 사이에 침대에 투분하지 않는데즈우우우우-!!"
민수는 자신의 전과를 줄줄이 읊는 성체실장을 넘겨받았다. 그러더니 놀랍게도 성체실장을 품에 안고 인자한 표정으로 꼬질하게 떡진 실장석의 앞머리를 북북 쓰다듬기 시작했다.
"뎃? 데게에ㅔ?!"
갑작스런 상황에 놀란 실장석이 얼빠진 소리를 냈다. 하지만 머리칼을 쓰다듬는 민수의 따스한 손길에 점차 안정을 되찾은 성체실장은 곧 기분좋은 콧소리를 내며 자신의 머리를 민수에게 부비었다. 성체실장의 눈에는 지난날 상냥했던 주인사마와의 아련한 추억이 새록새록 깃들고 있었다.
"데슷- 데스우- 데슈웅-♥"
철수는 극도로 경멸하는 표정으로 민수와 원사육실장을 지켜보았다. 아무리 이기고 싶어도 그렇지 저 정도까지 할 줄이야.
성체실장은 발갛게 홍조를 띄우고 새색시처럼 고개를 들어 애정이 듬뿍 담긴 표정으로 민수를 올려다 본다. 닝겐사마가 사랑 가득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성체실장의 눈가가 촉촉해진다. 오로롱.... 와타시.... 해낸 데스....
"이제 좀 진정되었구나. 똥주인에게 버려져서 많이 힘들었지? 내 말만 잘 들으면 다시 사육실장이 되는거야.”
성체실장은 카페 관리인에게 매일같이 들었던 자신의 운명을 상기한다. 다시 사육실장이 된다는 말에 흥분한 돌씨가 행복신호를 마구 발산한다. 다시 사육실장이 될 수 있다! 콘페이토와 스시, 어여쁜 자들과 무릎꿇고 수발을 드는 집노예가 실장석의 머리를 스친다. 성체실장은 콧김을 뿜으며 결의를 다진다.
"분충은 당장 기어나오는 데샤아아! 분대를 다섯조각으로 잘라 까악씨 푸드로 던져주는 뎃샤악—!!”
"ㅋㅋ마음에 든다. 네 이름은 파랑이다. 잘 부탁한다 파랑아."
전투의지로 가득 찬 원사육실장이 테이블 위에서 방방 뛰며 기세를 내보였다. 결과적으로 민수의 두번째 뽑기는 첫번째 뽑기보다도 성공적이었다. 저렇게 광분한 개체는 기세만으로 적군의 사기를 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진작부터 테이블을 점거하고 있던 블루가 끼어든 것이다. 자신이야말로 사육실장의 지위를 약속받았을 터인데 왠 돼지처럼 살찐 똥분충이 굴러와서는 주제도 모르고 설치고 있다.
"똥노예에에에에에에에!! 개소리마는데샷!!!!!!!! 똥노예는 머리통에 운치만 가득한 데스카?!!”
"사육실장은 고귀한 와타시만의 지위일진데 아까부터 무슨 마라같은 소리를 한보따리 지껄이는 데샤아아앗!!!!!!”
아군 실장석끼리 다투는 일은 매우 흔한 일이다. 특히 체급이 비슷한 개체라면 자신이 서열의 최상위에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실장석의 특성상 십중필구 싸움이 일어난다.
"데쁘쁘쁘.. 더러운 들분충이 뭐라 지껄이는 데스? 오마에같은 천박한 '들의 것'이 고귀한 사육실장 라이프를 꿈꾸는 데스? 격떨어지는 데스우”
"손풀기로 오마에 분대부터 원심분리 시켜주는 데스? 데프픗”
"똥닝겐 치마폭에 싸여 찔찔대는 사육분충이 주제넘는 데샤아아아아아!! 머리통 으깨서 비상식 자판기로 만들어버리는 데샤아아악!!!"
블루와 파랑이는 짐승처럼 네 발로 서서 엉덩이를 높이 들고 서로를 향해 샤아아- 하며 으르렁대기 시작했다. 입으로는 서로를 천갈래만갈래 찢어죽이고 있지만 덩치도 비슷한데다가 사육실생이 걸린 마당이라 섣불리 달려들지 못하고 위협자세만 취하는 것이다.
민수는 황급히 블루와 파랑이를 말리기 시작했다. 이런 돌발 상황에서 실장들을 어르고 달래서 팀으로 뭉치게 만드는 것이 참가자의 역량이다. 자칫하면 싸움이 시작하기도 전에 아군끼리 치고박다가 자멸할 수도 있다.
"블루, 파랑아 진정해. 내가 가리키는 분충을 죽이면 너희 둘다 똑같이 사육실장이 되는거야.”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사육실장이 될 수 없다. 그건 들었지?"
“” …뎃..””
"어차피 너희 둘다 '이웃 사육실장'이 될 텐데 서로 목숨걸고 싸울 필요가 없어. 너희 둘이 힘을 합치면 더 쉽게 사육실장이 될 수 있을걸?"
"" 데뎃.......?? ""
민수의 입에서 청산유수처럼 쏟아지는 말발에 블루와 파랑이는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민수의 말에는 틀린 것이 하나 없었다. 서로 싸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어느새 블루와 파랑이는 손을 맞잡으며 "이웃상 잘부탁하는 데슷!" "전우상과 함께라면 사육실생 좆밥인 데스웃" 하고 의기투합하고 있었다. 손바닥 뒤집듯 돌변하는 실장석의 이중성에 세사람 모두 혀를 내둘렀다.
이로써 민수는 성체실장 2마리의 막강한 전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민수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두 번 뽑아서 연속으로 성체만 2마리 나올 확률은 낮다.
민수는 기세를 몰아서 효과카드 한장을 뽑았다.
"효과카드도 종류가 2가지 있거든요.지원카드는 보여주셔야 하구요. 함정카드는 보여주지 말고 덮어두시면 됩니다."
[ 지원카드 : 연필 ]
잘 깎인 연필 한 자루.
연필은 아주 실용적인 무기다. 잘 깎여 날카로운 연필은 쑤시기 한 방으로 실장석의 내장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고, 무게도 적절해 다루기도 편하다.
"연필 정도면 나쁘지 않네."
민수는 만족하여 고개를 주억인다. 강력한 군대에 적절한 장비까지 지원되었다. 민수는 파랑이에게 연필을 쥐어주었다.
민수의 차례가 끝나자, 착잡한 표정의 철수가 소환카드를 집어들었다. 철수는 기도했다. 이번에도 엄지가 뽑힌다면 승산이 한없이 낮아진다.
철수의 간절한 기도가 통했는지 다행이도 소환카드는 엄지실장이 아니었다. 그러나 철수의 표정은 엄지를 뽑았을 때보다 더 어두워졌다.
"이런"
[ 소환카드 : 식용 저실장(대) ]
친환경으로 길러 가사처리 없이 판매하는 통통하고 건강한 생 저실장. 조리 시 분대를 깔끔히 제거해야 한다(원산지 및 상세표기 하단참조) - 짓소밀 -
카드를 확인한 민수는 박장대소했다. 블루와 파랑이도 일단 철수를 삿대질하며 데퍄퍄 비웃는다. 저실장은 실장석 세계에서 무엇인가? 비상식? 샌드백? 아니면 짐덩이일 뿐이다. 프니프니에 영혼을 팔아먹은 무능한 구더기로 싸움이 될 리가 없다.
"야ㅋㅋ 운 좋네~ 저거 비싼 거 아냐?"
민수와 실장석들이 깔깔대며 철수를 매도하는 동안 진행자가 식용 저실장을 꺼낸다. 두툼하고 길다란 저실장이 든 케이지가 열리자 보통의 저실장보다 훨씬 굵고 탁한 소리로 울어젖히는 저실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프니후... 프니레후....... 레후렛??!”
“레휑? 닝겐상 누구인 레후? 새로운 프니프니 당번인 레후?”
본능적으로 가학심을 불러일으키는 미묘한 구더기의 육성에 모두가 집중했다. 진행자의 손에 올려져 꿈틀거리는 두툼한 구더기는 20cm가 넘었다.
"와 절라게 크네. 고놈 구워먹으면 맛있겠는데 진짜로”
큼직한 구더기를 보고 민수가 감탄했다. 자연에서는 볼 수 없는 무지막지한 구더기를 본 블루와 파랑이도 침이 늘어지는 언청이 입을 벌리고 구더기를 쳐다본다. 철수가 보기에도 저것은 술안주로써는 최고의 카드였다.
"둥실둥실 레후우우웅~~~~~ 우지챠 하늘을 날 수 있는 슈퍼우지 레훙~~~”
진행자가 구더기의 두건에 스티커를 붙이고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철수는 참담한 표정으로 기절한 엄지와 테이블 위에서 배를 까뒤집고 방긋방긋 웃는 구더기를 번갈아 보았다.
"레후? 또 새로운 닝겐상 레후~ 사육우지의 예감이 드는 레후웅”
“잔뜩 커져버린 우지짱 길러주는 레후? 매일 프니프니 해주는 레후?”
천진난만한 저실장은 철수를 보고도 무서워하기는 커녕 돌기와 총구를 벌렁이며 프니프니를 요구했다. 곧 분위기를 파악한 블루와 파랑이가 신나서 발광하기 시작했다.
"데퍄퍄퍄퍄퍗!!!!! 설마 저 쌘드백을 무찌르는 데스카??? 닝겐은 운치굴 구더기가 무서웠던데스??? 똥닝겐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약골인 데스~"
"뎃데로게—! 우마우마한 구더기인 데스~ 집노예가 헌상하던 마라만한 말린 구더기짱보다 훨씬 맛나맛나해 보이는 데스~ 사육실장의 첫 식사로 부족함이 없는 데스~"
거대 구더기를 목도한 성체들은 저마다 흥분해서 침을 흘리며 데스데스 날뛰었다.
구더기는 저를 욕하는 줄도 모르고 누운 상태에서 머리를 젖혀 성체 실장을 보며 "오바상 프니후- 프니프니 도와주는 레후-?” 하고 지껄였다. 민수는 배를 잡고 웃으며 승리를 예감했다.
구더기를 한심하게 바라보던 철수는 힘없이 효과카드를 뽐았다. 저 구더기는 그냥 쳐맞으며 방패막이 되는 역할밖에 수행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은 효과카드 밖에 없다.
이윽고 카드를 확인한 철수의 표정이 신중해졌다. 철수의 눈빛이 민수쪽 성체실장 두마리를 빠르게 훑었다. 그리고는 카드를 뒤집어 조용히 테이블에 덮어두었다. 함정 카드였다.
"함정 카드를 뽑으셨어요? 덧붙이자면 지원카드는 싸움 시작전에 반드시 사용하셔야 하구요. 함정카드는 전투 중에도 사용하실 수 있으니 참고해 주세요."
민수는 철수의 표정을 보고 노림수를 파악해보려 했지만 이런 상황을 뒤엎을만한 사기적인 함정카드는 민수가 알기로는 없었다.
세번째 차례, 민수는 마지막으로 뽑아든 소환카드를 바라보며 자신이 승리할 수 밖에 없는 판이라고 확신했다.
[ 소환카드 : 성체실장 ]
공원에 사는 평범한 성체실장.
3마리 연속 성체실장. 진행자도 흔한 일이 아니라며 운수 좋은 날이라 말했다. 민수의 카드를 확인한 철수는 민수의 예상과 달리 기묘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진행자가 꺼내 온 세번째 성체실장 역시 여느 들실장과 같았다. 건방지고 욕망에 충실하면서도 정글같은 들생활 덕분에 조금의 눈치는 가진 그런 실장석이었다.
이미 두 마리의 성체실장을 포섭한 민수에게 세번째 실장석을 뭉치게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민수는 실장석에게 '바다'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두 번째 효과카드에서 나온 녹색 이쑤시개도 들려주었다.
이로써 민수는 연필과 이쑤시개로 무장한 성체실장 3마리의 빵빵한 전력을 구축했다. 지금도 배를 까고 운치를 흘리는 구더기와 가사상태에서 사경을 해매는 엄지를 가진 철수 쪽의 전력과 하늘과 땅 차이였다.
철수는 비장하게 마지막 소환카드를 집어들었다. 적어도 한 마리 정도는 제대로 된 전력이 있어야만 한다. 이번에야말로 성체실장이 나오기를 철수는 기도했다.
[ 소환카드 : 중실장 ]
공원에 살던 평범한 중실장.
‘애매하다.’
신장이 35cm정도인 성체실장에 비해 막 중실장이 된 실장석은 신장이27cm 정도이다. 성장의 수준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중실장과 성체실장은 근본적으로 키 뿐만 아니라 몸집과 근력에서부터 차이가 있다. 즉 보통의 중실장이 성체실장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
진행자의 손에 꺼내져서 막 자다가 깬 중실장을 본 민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눈대중으로 보기에 키는 30센티 초반. 거의 성체로 자라긴 했지만 그래봤자 아직은 중실장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성체실장 세마리는 중실장이 감당할 수 없다. 승부는 갈렸다.
"텟..스웅......... 자들의 흑발이 참으로 고운 테스..... 텟...테엣-?"
진행자의 팔에 이끌려 케이지에서 꺼내져 곤히 자다가 강제 기상한 중실장이 눈을 비비며 두리번거린다. 곧 상황을 서서히 인지하기 시작한 중실장. 다른 실장들처럼 침을 튀기며 발광을 시작한다.
"똥닝게에에엔!!!!! 어째서 와타시를 이딴 곳으로 데려온 테샤아아아아아!! 따뜻한 낙원으로 돌려보내는 데샤아앗!!! 흑발의 자들을 돌려내는 테샤아아아악!!!"
“와타시는 이미 간택받은 유부녀인 테샷! ! 남편상이 오면 오마에를 전부 독라달마로 만드는 테샤아아!! 내려놓으라고 명령한 테스아아악!!!"
진행자가 아직 잠이 덜 깬 중실장을 테이블 위에 올린다. 중실장은 취객처럼 비틀대면서도 진행자를 향해 분충 토크를 쏟아낸다. 잠자코 지켜보던 철수가 손바닥을 들어 중실장 바로 앞을 내려친다.
- 쿵 !!
"테테텟!?!!?"
깜짝 놀란 중실장이 뿌다닥 하고 물터지는 소리와 함께 주저앉았다. 철수는 별 것도 아닌거 가지고 이정도로 성대하게 빵콘하는 중실장을 보며 겁이 유난히 많은 개체일지 모른다고 판단했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철수를 보더니 몸을 천천히 떨면서 저도 모르게 점점 손을 입가로 가져가는 겁쟁이 중실장에게 철수가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
"예비 사육실장이 너구나? 나는 선택받은 전사실장을 찾고 있었어."
“테-?”
"내 부탁을 하나만 들어줄래? 그렇게 해준다면 특별한 너를 위해 오마카세 스시와 특A급 스테이크를 대접하고 궁궐에서 사는 사육실장으로 길러줄게."
“테에엑——?”
철수의 내려치기에 본능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최후의 수단을 준비하던 중실장. 하지만 적록색 눈깔이 튀어나올만한 철수의 세레브한 제안을 듣고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중실장이 자나깨나 평생을 바라 마지않던 일이 현실이 되는 것이다.
"테에엣.......... 그게...! 그게 정말인 테에에에에에!!!!!"
이 중실장은 오네챠, 마마와 함께 공원에서 힘겨운 겨울을 나던 들실장이었다.
눈쌓인 컴컴한 골판지 안에서 낮인지 밤인지 모를 끝도 없는 어둠과 극한의 추위를 버티며 세 모녀는 똘똘 뭉쳐 악착같이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보존식이 채 절반이 남지 않은 1월의 어느날. 위석이 얼어붙을 것만 같은 추위 속에서, 죽은듯 동면하는 마마와 오네챠를 껴안고 있던 중실장. 혹한에 이빨을 닥닥 부딪히던 중실장이 문득 생각했다.
‘보존식이 다 떨어지면 어떡하는 테스?’
중실장이 보기에 미래는 절망적이었다. 마마는 곧 빌어먹을 겨울씨가 파킨하고 따뜻한 봄씨가 올거라고 말했다.
그때가 되면 와타시를 독립시켜 귀여운 자들로 공원을 가득가득하게 해주겠노라고 마마는 약속했다.
하지만 마마는 거짓말쟁이였다. 겨울씨는 파킨하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더 심술을 부리고 있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지만 중실장은 보존식이 떨어지기 전에 겨울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래서 중실장은 마마와 오네챠가 깊게 잠든 틈에 몰래 보존식을 까먹기 시작했다. 서로를 꼬옥 껴안은 마마와 오네챠의 등뒤에서 몰래 까먹는 보존식은 꿀맛이었다.
어차피 겨울에 골판지 안에서 살아가는 실장석들은 식사 때가 아니면 가족들을 껴안고 대부분의 시간을 죽은 것처럼 잠을 자며 에너지를 아낀다. 마마에게 들킬 가능성이 낮은 것이다. 게다가 거짓말쟁이 마마와 멍청한 오네챠보다는 고귀한 와타시가 살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중실장의 범행은 사흘을 못 넘기고 들통나고 말았다. 보존식의 양을 매일매일 확인하던 영리한 친실장이 이상하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며칠 뒤 중실장은 골판지에서 쫓겨났다.
중실장이 쫓겨난 날은 한겨울치고는 날이 꽤 풀려 낮에는 영상까지 올라가는 따뜻한 날씨였다. 중실장을 자판기로 만들지 않고 따뜻한 날에 내보낸 것은 친실장의 마지막 자비였다. 그러나 중실장은 마마와 언니를 저주했다.
바깥에서 보내는 겨울은 망할 골판지에서 보냈던 것보다 훨씬 가혹하고 끔찍한 것이었다.
날이 플렸음에도 불구하고, 영하15도 날씨의 골판지 안에서 가족들을 껴안고 지내던 것보다 수백 배는 더 괴로웠다.
바람은 칼날처럼 중실장의 살갗을 파고들었다. 햇빛 따위 전혀 따뜻하지 않았다. 한시간도 안 되어 발이 얼어붙어 걷기가 힘들어지고, 반나절이 지나니 귀도 입도 잘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차라리 하우스에서 살던 때가 좋았던테스..’
중실장은 백방으로 살길을 모색했지만 겨울철의 실장석은 바깥에서 하루를 버티기도 힘들다. 골판지에서 쫓겨난지 반나절만에, 중실장은 자신이 오늘 정말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실장은 마지막 행복회로를 불태우며 음료 자판기 앞에서 닝겐을 메로메로 해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중실장이 자판기에서 만난 것은 학대파였다. 중실장은 머리에 딱밤을 맞고 눈에 파묻혀 몸에 차가운 음료를 뒤집어썼다.
“테게에…… 테헤에엑……”
머리가 쪼개지는 고통과 온 몸이 얼어붙는 추위, 자신을 눈속에 파묻고 얼굴에 음료를 퍼부으며 내려다보는 무표정한 닝겐. 중실장은 그날 지울 수 없는 끔찍한 트라우마를 위석에 새겼다.
그러나 딱밤으로 두개골이 함몰되고 음료에 젖은 온몸의 체온이 수직으로 떨어지는 와중에도 중실장은 혀를 움직여 음료수를 음미했다. 살기 위해서 발버둥쳤다. 언젠가 마마가 알려준 낙원으로 가고 싶은 열망이 중실장의 위석을 달랬다. 그리고 실장석 채집꾼에게 발견되어 이곳꺼지 오게 된 것이다.
철수의 꿈빛 사육실장 플랜을 들은 중실장의 눈알이 왕방울만큼 커졌다. 침을 줄줄 흘리는 것을 보아 이미 행복회로에 빠져 있을지도 모른다. 철수는 그것을 눈치채고 재빨리 책상을 다시한번 내려쳐 중실장을 현실로 끄집어냈다.
"와... 와타시 뭐든지 들어주는 테스읏!!!!!! 따뜻한 낙원에서 살아가는 실장이 되는 테스우우우우-!!! 꿈이 이루어지는 테스!!!!"
중실장은 의욕이 충만해져 침과 운치를 튀기며 철수를 향해 안기듯 팔을 뻗었다.
철수가 보기에 중실장은 특히나 ‘낙원’에대한 선망이 강했다. 이 정도 동기부여가 되어 있으면 충분히 써먹을 수 있다. 철수는 곧바로 두번째 효과카드를 뽑아서 나온 나무꼬챙이를 쥐어주며 말했다.
"네 이름은 앞으로 에메랄드야. 에메랄드,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너는 반드시 사육실장이 될 수 있어 알겠지?"
"테-! 테스으으읏-!!"
흥분한 에메랄드가 꼬챙이를 앞뒤로 내지르며 포효했다. 철수는 아직 흥분 상태에 있는 에메랄드가 성체실장 3마리를 상대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저런 겁많은 실장석에게 굳이 말해봤자 도움 될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철수는 뒤집어져 있던 힘정카드에 슬며시 손을 올렸다.
“3분 뒤에 종 치겠습니다. 종치면 테이블에서 손 떼세요. 각자 준비해주세요"
민수의 전술은 간단명료했다. 중실장을 삼각형으로 에워싸고 세 방향에서 동시에 노린다. 3:1의 전력차, 사실상 변수는 없다.
민수의 실장석들은 이미 축제 분위기였다. 세 마리는 벌써 엉덩이를 덩실덩실 흔들며 실장댄스로 기쁨을 발산하고 있었다.
“데쁘쁘쁘쁫— 천박한 들생활과는 이별인 데스~ 존귀한 사육실장으로 다시 태어나는 데스~”
“뎃데로게~ 뎃데로케~”
“역시 와타시는 태생부터 남달랐던 데스.. 고귀하게 살아가야만 하는 운명이었던 데스웅..”
실장석들은 하늘을 날으는 듯 기분이 좋았다. 벌써부터 천장에 콘페이토와 스시,스테이크가 두둥실 떠다니고, 도톰폭신한 솜이불이 깔린 핑크색 퀸사이즈 실장침대가 어서 탱탱한 엉덩이를 누이라고 손짓하는것 같았다.
와타시는 태어날 때부터 축복받은 고귀한 실장석. 세상의 보물임이 분명한 와타시였지만 공원에서 썩어가는 똥분충들의 시기질투 때문에 모진 시련과 역경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모든 것은 결국 순리대로 흘러가는 법. 스시와 스테이크같은 호화스런 식사는 사육실장이 먹어야 어울리는 것처럼, 해씨가 뜨고 달씨는 숨바꼭질을 하는 것처럼 와타시가 사유실장이 되는 것은 당연한 순리다.
민수는 맛이 간 얼굴을 하고 괴기한 춤을 추는 세 마리 실장석이 둥글게둥글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약에 취한 듯 다들 눈깔이 풀려 있었다. 표정에는 한 치의 의구심도 없는 행복이 넘치고 있다.
민수도 자신감이 넘쳤다.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니까.
그러나
민수가 의기양양하게 철수 쪽을 보았을 때 민수의 표정은 천천히 굳기 시작했다. 철수의 손에는 카드 한장이 들려 있었다.
[ 함정카드 : 청혼 ]
지정하는 실장석 한마리에게 예쁜 꽃을 선물하며 자를 낳아달라는 말과 함께 청혼한다.
“…이게뭐냐?”
민수의 동공이 갈 곳을 잃고 흔들렸다. 눈으로 또박또박 카드에 적힌 글자를 다시 읽어 본다. …청혼?
묵직한 방망이로 머리를 강타당한 것처럼 민수는 머리통이 얼얼했다. 어지럽다. 믿을 수 없다. 저런 더럽고 추잡한 녹돼지한테 청혼? 자신이 제일 혐오하는 족속이 애오파 직스충 아니었던가. 아까 원사육실장의 똥내나는 머리털을 쓰다듬는 데도 얼마나 많은 인내가 필요했는데..
민수는 기분나쁜 저음으로 행복의 노래를 부르는 세마리 녹돼지를 내려다보았다. 지저분하다. 추악하다. 민수의 머릿속에서 불꽃이 튀겼다. 이런 녹돼지들한테 청혼같은 것은 절대 할 수 없다. 민수는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녹돼지들에게 청혼을 고민하는 자신에게 화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민수의 감정이 서서히 분노로 달아오르는 사이 진행자는 어디선가 분홍색 꽃을 들고와 민수에게 건넸다. 철수는 멀리서 불구경하듯 사악하게 웃고 있었다.
“ㅋㅋ 젤 오른쪽에서 엉덩이 흔들고 있는 바다한테 청혼해~”
얼떨결에 꽃을 받아든 민수에게 철수의 선고가 이어진다. 민수의 손에 들린 세레브한 색깔의 어여쁜 꽃을 발견한 실장석들은 댄스를 멈추더니 잔뜩 기대하는 표정을 하고 저마다 뺨이나 입가에 손을 가져다대고 교태로운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구역질나는 울음소리에 치맛자락을 위로 슬쩍 들어올리며 우레탄 허벅지를 들이미는 실장석들을 보고 있자니 민수는 토악질이 치고 올라왔다. 더이상 분노를 참지 못하고 민수가 소리쳤다.
“아니 미친 어떻게 시발 청혼을 하냐고!!”
화가 잔뜩 나서 소리치는 민수를 보고도 철수는 빙그레 웃으며 “그럼 기권하든가” 하고 받아칠 뿐이었다.
“2분 뒤에 종치겠습니다. 함정카드 사용하셨으니 안 따르시고 시간 끄시면 반칙패입니다.”
더이상 시간을 끌다간 반칙패. 민수는 화가 난 와중에도 아랫배에서부터 초조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어떻게 뽑은 성체실장 3마리인데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친단 말인가.
민수는 그제서야 철수의 노림수를 파악했다. 철수는 절대로 민수가 실장석에게 청혼할 리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민수는 신실한 학대파다. 학대파가 자존심을 버리고 실장석에게 청혼 따위를 하는 것은 엄청난 수치다. 철수는 민수의 기권패를 노리는 것이다.
민수는 분노와 초조함 사이에서 갈등에 휩싸였다. 녹돼지에게는 장난으로라도 청혼 따위 하고싶지 않다. 하지만 이대로 기권패한다면 철수의 노림수에 그대로 놀아나는 셈.
만약 여기서 눈 딱 감고 실장석에게 청혼을 한다면? 그렇다면 철수의 노림수를 보기좋게 뒤집고 드디어 철수를 납작하게 눌러버릴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성체실장을 3마리나 들고 고작 중실장 한마리에게 기권패 한다는 것도 학대파로서 더없는 수치다.
머릿속을 부유하던 생각들이 차츰 정리되고 민수의 표정이 결연해졌다.
“바다야....”
“뎃! 데스우우우웅——❤️?”
떨리는 목소리로 들실장 출신 바다에게 입을 열었다. 분홍색 꽃을 들고 왕자님처럼 속삭이는 민수를 본 바다는 벌써 볼이 발그레 물들어 점점 달아오르는 몸을 비비 꼬며 처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걸로.. 네 자를.. 만들어......”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민수가 눈을 꾹 감고 바다에게 내던지듯 꽃을 넘겼다. 사랑을 전달하는 아름다운 순간. 배를 까고 프니프니를 보채던 구더기조차 레- 하고 볼을 붉히며 낭만에 젖어들었다.
분홍색 꽃을 받아든 바다는 자신의 가슴팍에 안긴 향기로운 생화를 안고 한동안 망부석처럼 멍하니 서있었다.
부우욱- 뿌우우우욱-
그리고는 아주 시원하게 빵콘했다. 닝겐에게 받은 꽃, 마음, 남편상, 흑발의 자… 바다의 호두알만한 뇌에서 온갖 희망적이고 행복한 것들이 둥실둥실 떠다녔다.
바다는 넘쳐나는 행복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행복을 분출할 길이 없어 전력으로 빵콘했다. 들에서 살던 바다에게는 불행을 감당하는 것이 더 익숙했다.
바다는 곧 눈망울이 촉촉해지고 색눈물을 방울방울 흘리며 꽃을 꼬옥 끌어안았다. 비참하게 살아가던 들실장 시절이 떠오른다. 벅차오르는 감동과 볼을 타고 흐르는 색눈물을 따라 들에서의 슬픈 일도 모두 씻겨 내려가는 것이라고 바다는 믿었다.
“오로롱... 오로로롱... 와타시... 오래 기다린 데스우... 오로로로로롱..”
한편 민수는 바다에게 꽃을 넘긴 뒤 자괴감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민수는 여태 쌓아온 학대파로서의 프라이드에 금이 가고 말았다. 금이 간 프라이드 처럼 민수의 멘탙도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철수의 진짜 노림수를 간파했다면 이 상황을 빨리 정리했어야만 했다.
“데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지랄마는 데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분노로 가득 찬 성체실장들의 울음소리가 동시에 터져나왔다.
“똥분충년 당장 세레브 꽃씨를 내놓는 데쟈아아아악!!!!!!!”
“저시발년 쳐죽여버리는 데샷!!!!!!”
블루와 파랑이 흉포한 기운을 내뿜으며 바다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똥을 싸지르며 들짐승처럼 네 발로 기어다니고 있었다.
“선택받은 5월의 신부는 와타시여야만 하는 데샤아아아아아아악!!!! 똥남편은 눈깔은 운치구멍인 데스카아아아아아아!!”
“집노예는 고귀한 와타시에게 먼저 세레브한 꽃씨를 선물하란데샤아아아아아아악!!!”
당연히 꽃을 받아야 하는 선택된 실장의 운명은 자신이어야만 했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그러나 눈앞에서 다른 실장석에게 프로포즈를 빼앗김으로써 그녀들의 세레브한 ‘운명’이 부정당했다.
뭐니뭐니해도 실장석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활력소는 ‘관심’과 ‘사랑’. 종 전체가 인간에게 과도한 의존성을 나타내는 실장석들은, 특히 주위에 인간이 있을 때 다른 실장에 비해 자신이 인간에게 관심을 받지 못하면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다른 실장들과 비교해 항상 자신이 더 특별하고 세레브해야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실장석. 생전 한번도 받아본 적 없는 분홍색 꽃을 눈앞에서 똥분충한테 빼앗겼으니 그것은 운치가 거꾸로 솟을 만큼 화나는 일인 것이다.
그러나 바다는 이미 행복한 신혼 라이프를 꿈꾸며 황홀경에 빠져 있느라 실장석들이 개돼지처럼 미쳐 날뛰어도 전혀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남편사앙…….”
바다는 발그레해진 고개를 들어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남편상을 올려다 보았다. 남편상도 부끄러운지 고개를 들지 못하고 머리를 감싸쥐고 있다.
애정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민수를 바라보던 바다는 점점 몸이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부끄럼을 타면서도 박력있게 공개고백을 계획한 남편상의 대범함이 섹시하다고 느껴져 바다는 흥분됐다.
“데 프 픗- ! 남편상 발칙한 데스.. 요망한 데스.. 어쩔 수 없는데스 와타시 처음이지만 오늘만큼은 물기있는 여자가 되는 데스웅—!”
바다는 저 혼자 실죽대더니 더욱 흥분했다. 어느새 얼굴이 터질듯 상기되고 브레이크 고장난 폭주기관차처럼 후덥지근한 콧김을 뿜으며 빠르게 옷을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민수가 머리를 감싸쥐고 필사의 자기 합리화를 거치는 동안 바다는 실장복을 벗어던지고 빤쮸를 끌어내렸다. 아까 성대하게 빵콘한 운치덩어리가 질척하게 늘어떨어지며 이미 운치로 범벅된 바다의 총배설구가 드러났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더러운 광경에 룸내에 있던 모든 이가 고개를 일그러뜨렸다.
민수를 향해 다리를 벌리고 앉아 극도로 흥분한 바다는 그대로 꽃을 쥐고 총구에 가져다 비볐다. “뎃스웅-“ 하고 간드러지게 울어젖히는 바다의 표정은 여름에 녹은 아이스크림 같았다.
“” 오마에에에에에에에에 !!!!!!! 죽여버리는데샤아아아아아!!!! “”
블루와 파랑이는 광분하여 당장이라도 바다를 향해 달려들 듯 네 발로 서서 최대한의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그나마 한 줌 남은 이성이 ‘사육실생이 걸려있는 데스!! 여기서 멋대로 싸우다가 전부 물거품인 데슷!!’ 하고 실장석들의 대폭주를 아슬아슬하게 막고 있었다.
“ 데데데뎃뎃—!!! 데스우우우웅——!”
총구를 들락이는 꽃이 색깔을 잃어갈 수록 바다의 헐떡이는 숨소리와 간드러지는 교성도 더욱 농밀해졌다.
이성이 점점 날아가고 있던 블루와 파랑은 대폭발 직전 상태에서 꽥꽥 괴성을 지르며 바다를 찢어죽일듯 위협하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반대쪽 테이블에서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철수가 에메랄드를 불렀다.
“에메랄드.”
“테— 테슷?!”
에메랄드는 어느새 흥분이 가라앉았는지 커다란 성체실장 세마리를 보고 식은땀을 삐질 흘리며 숨을 곳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겁먹고 있을 때가 아니다.
“꼬챙이로 구더기를 찔러.”
“텟?!”
아무리 실장석이 멍청해도 저 구더기가 자기 편이라는 것 쯤은 에메랄드도 알고 있다. 그러나 철수는 고기 방패로라도 쓸 수 있을법한 구더기를 찌르라고 말하고 있었다.
“빨리. 꼬챙이로 옆구리를 냅다 찔러버려”
“테.... 테슷!”
에메랄드는 철수의 의도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은 이 닝겐의 부탁을 들어주고 사육실장이 되어야 한다. 에메랄드는 예비노예, 저실장, 반대편 테이블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곧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 구더기 근처로 다가갔다.
"레후— 오네챠 레후~ 그 뾰족뾰족은 무엇인 레후? 위험해 보이는 레후~”
“그보다 우지짱 배 빵빵인 레후- 오네챠 프니프니 해주는 레후”
가까이 다가온 에메랄드를 발견하고 헤죽헤죽 웃으며 오네짱을 향해 기어오는 구더기실장. 에메랄드는 찌르기 자세를 잡은 뒤 꼬챙이를 양 팔로 잡고 힘껏 뒤로 당겼다.
- 푸욱
“ 렛뺘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꼬챙이에 꿰어 옆구리를 관통당한 저실장이 크기에 걸맞는 우렁찬 비명을 질렀다. 에메랄드는 저실장의 우렁찬 울음소리에 놀라 급히 꼬챙이를 뽑았다. 뽑은 구멍에서 걸쭉한 핏물이 꿀렁꿀렁 흘러내렸다.
“절라게 아픈 레삐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오네짜앙 우지챠 배가 찢어지는 레훼에에에에에엥!!!!”
“오네챠 나쁜 오네챠였던 레삐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구더기실장은 난데없이 찾아온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어 에메랄드를 피해 느릿느릿 기어가기 시작했다.
“야! 쫓아가서 계속 찔러!”
“테..테스으!!”
의도를 알 수 없는 철수의 지령을 받은 에메랄드는 그렇게 몇 번 더 구더기실장의 옆구리를 꿰뚫었다. 구더기실장은 좌우로 심하게 꿈틀대면서 피를 토하며 절망에 찬 비명을 질렀다.
“레히이이이이이이이!!!!”
“그만두는 레훼에에에엥!!!!!! 오네챠 제발 슬픈 일 그만두는 레훼에에에에엥!!!!”
“닝겐사아앙!!! 살려주는 레훼에에에에에엥!!!!! 우지짱 아직 팔다리 길어지지 못한 레훼에에엥!!!!”
저실장은 비통하게 울었다. 저실장은 마지막 희망을 담아 철수를 올려다 보았다. 애타게 철수를 부르며 남은 힘을 다해 그에게 기어갔다.. 그러나 이미 옆구리는 벌집처럼 구멍이 숭숭 나서 오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온 힘을 다해 기어가던 저실장이 점차 느려지다 곧 제자리에 멈추더니 검게 죽은 피를 레봇- 하고 토했다. 짙은 눈물을 쏟아내는 눈망울은 아직도 철수가 구해주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구더기가 중상을 입은 가운데 철수는 저실장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반대편 테이블에만 눈을 고정하고 있었다.
한편, 극한의 대치상황으로 치닫던 반대쪽 테이블은 구더기의 구슬픈 비명과 함께 잠시 소강상태를 맞이하는 듯 잠잠해졌다.
블루는 들생활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맹렬한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와타시만의 행복을 똥분충이 빼앗았다.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불타오르는 눈으로 고귀한 자신을 화나게 한 원흉을 노려보았다.
그곳에 똥벌레 한 마리가 천박하게 총구를 벌리고 꽃을 쑤셔대고 있었다. 발정난 똥벌레의 추잡한 교성이 터질 때마다 몸이 움찔 떨리고 손발이 부들거렸다. 당장 달려들어 저 분충의 숨통을 끊어놓고 싶었다.
그러나 감정의 격류가 몰아치는 와중에도 마지막 남은 이성의 끈을 잡고 똥노예가 어서 저 똥분충을 징벌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은 사육실생이 걸려 있는 중차대한 순간이니까.
그 때, 블루는 먼 곳에서부터 이상한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마마의 뱃속에서 들었던 태교 노래처럼 아련하고도 분명하게 위석을 파고드는 익숙한 울음소리.
- 레 삐 이 이 이 이 이 이 ! ! !
그것은 고통에 울부짖는 구더기실장의 비명이었다. 실장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운치굴 비상식을 뜯어먹으며 들어보았을 기분좋은 비명. 구더기를 더욱 전력으로 찢어버리고 싶게 만드는 가학심을 불러일으키는 울음소리.
그것은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실장석의 내면의 폭력성을 강제로 끄집어내는, 가장 약한 생명체의 절망으로 가득찬 울음소리였다.
블루의 머릿속에 어느새 운치굴에서 한마리 꺼내올린 통통한 구더기를 맛나게 먹었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나쁜 장난은 그만두라고 애원하는 구더기.
‘찢어죽이고 싶은 데스.’
그대로 꼬리를 잡아 뜯으면 분대가 튀어나오고 피와 뼈조각이 후두둑 떨어진다. 구더기는 “우지챠의 소중한 아가방 돌려주는 레휑!!” 하고 울어대지만 감히 하층민 구더기 주제에 임신까지 생각한 것이 괘씸하여 앞니로 분대를 물고 쑤욱 뽑아낸다.
‘달려들어 저년의 목을 물어뜯는 데스.’
산채로 분대가 뽑혀나가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힘없고 약한 구더기실장은 그저 짙은 색눈물을 쏟아내며 원통한 울음소리밖에 낼 수 없다.
그러나 나약한 구더기의 비명은 실장석의 폭력성을 극한까지 끌어낼 뿐이다. 그대로 구더기의 돌기를 하나하나 잘근잘근 씹으며 한 줌 희망도 없이 절망으로 물드는 약자의 표정을 감상한다.
‘사지를 뜯어내고 숨통을 끊어놓는 데스..’
이내 자신이 먹혀버릴 운명이라는 것을 알고 검은색 눈물을 흘리는 구더기. 아직 살아있는 구더기의 하반신을 맛나게 뜯어먹는다. 상반신만 남아 이것은 분명 나쁜 꿈이라며 현실을 도피하는 구더기의 육체와 정신이 붕괴되어 파킨할 때까지 즐거운 포식은 계속된다.
뼈만 남은 구더기의 잔해를 바라보며, 그 끝을 알수없는 잔혹함에 자기자신도 놀란다. 구더기의 비명소리는 그랬다. 실장석들을 더욱 폭력적이고 잔악무도하게 만드는 이상한 힘이 있었다.
“덱!!!!!”
세 마리 실장석의 숨막히는 대치 국면이 급변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블루와 파랑이 갑자기 맹수처럼 바다에게 달려든 것이다. 두 마리 실장석은 그대로 바다의 품에 파고들어 목을 힘껏 물어뜯었다.
“데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바다의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목에서 피가 터져나온다. 블루는 집요한 야수가 되어 몇 번이고 바다의 목을 깊게 물어뜯었다. 파랑은 벌어진 상처에 양 팔을 집어넣고 개가 땅을 파듯이 미친듯 바다의 몸속을 헤집어놓기 시작했다.
“데퀘에에에에엑..... 궤에에엑.....”
남편상의 무릎에 앉아 자들의 머리칼을 매만지던 바다는 갑자기 눈앞이 붉게 물들며 목이 뜯어져 나가는 악몽을 꾸었다.
“퀘에에에에엑…… 데궤곩롥걹…”
그러나 바다는 목 깊숙한 곳으로부터 끓어오르는 핏덩이를 쏟아내며 악몽은 현실이 되었음을 느꼈다. 들생활 시절 매일아침 골판지 바닥에서 꾸었던 짧은 행복처럼, 남편상과 흑발의 자야말로 덧없는 꿈이었다.
- 땡 !
그때 마침 싸움을 시작하는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맑은 종소리는 막 시작된 참극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으나 집나간 민수의 정신은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었다.
“어?!”
머리를 부여잡고 자괴감에 몸부림치던 민수는 종소리와 함께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민수의 눈앞에 보이는 참상은 그의 예상을 한참 벗어난 것이었다.
알몸으로 총구에 꽃이 박힌 채 목에서 분수처럼 피를 뿜고 있는 바다. 흉포한 기세로 바다의 목을 물어뜯는 블루와 광견병 걸린 개새끼마냥 바다의 몸을 파헤치는 파랑.
“데게에에에엑... 데고로로록...”
바다는 이미 눈이 회백색으로 바뀌어 반쯤 잘린 목을 덜렁거리며 경련하고 있었다. 대처할 새도 없이 무방비한 때에 양쪽에서 기습을 당해 목숨을 잃게 된 것이다.
“남편........ 상..”
그 와중에 필사적으로 눈깔을 민수에게 향하는 바다. 회백색 눈깔에는 수많은 감정이 한데 뭉쳐 요동치고 있었다. 하지만 바다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파킨 소리를 내며 죽어버렸다. 바다의 눈깔에는 더이상 어떠한 것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바다의 몸에 달라붙어 끈질기게 온몸을 찢어발기던 두 마리의 실장석은 숨통이 완전히 끊어진 것을 확인하고는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다. 온몸에 피를 뒤집어 쓴 실장석들은 귀신이 따로 없었다.
“데샤아…”
“샤아아아아—“
그러나 동족상잔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서로 닿을 듯한 거리에서 몸을 일으킨 실장석 두 마리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대기 시작한 것이다.
블루와 파랑의 머릿속에는 지금 사육실장도 이웃도 없었다. 서로를 마주보는 실장석 두 마리는 폭력성에 이성이 잡아먹힌 상태였다. 이들의 목표는 오직 세레브한 자신에게 방해가 되는 동족을 모조리 쳐죽이는 것이었다.
“” 데샤아아아아악!!!! “”
몇 초도 채 지나지 않아 블루와 파랑은 서로에게 달려들어 한데 뒹굴며 또다시 살육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블루와 파랑은 마치 새하얀 도화지같은 상태였다. 오로지 위석이 알려주는 본능에 따라 눈앞의 분충을 찢어발기고 자신이 모든 것을 차지하는 것만이 남아 있었다.
“ 뒤져버리란 데샤아아아아아아아악!!!!”
“찢어죽이는 데쟈아아아아아!!:
35cm 남짓한 실장석 두 마리는 테이블을 엎치락 뒤치락 뒹굴며 죽을 힘을 다해 싸웠다. 목을 물어뜯고, 팔로 머리통을 내려치고, 발로 옆구리를 걷어찼다. 실장석이 뒹구는 곳마다 피와 운치가 뒤섞인 오물이 지저분하게 남았다.
“미친새끼들아 뭐해 !! 그만싸우라고!”
한데 뒤엉켜 피투성이가 되어가는 와중에 민수의 통제따위 들어먹을 리가 없었다. 블루와 파랑은 그저 눈앞에 있는 동족의 숨통을 끊어놓는 것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에메랄드. 이틈에 조용히 가서 둘다 찔러 죽여버리는거야.”
그리고 참극이 벌어지는 사이 철수의 은밀한 지령이 에메랄드에게 전달됐다
“ 테— 테스!!!”
그동안 성체실장들의 살풍경을 지켜본 에메랄드는 손발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총구에서 물운치가 뷰릇뷰릇 터져나왔다. 자실장도 아닌데 운치조차 가눌 수 없을만큼 겁이 났던 것이다.
오바상들의 피튀기는 싸움은 너무 살벌해서 끼어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가까이만 다가가도 날카로운 이빨에 팔다리씨가 뜯어져 나갈만큼 두려웠다.
그러나 자신의 손에는 기다란 꼬챙이와 사육실장이 되기 위한 마지막 임무가 남아 있었다. 이 시련만 이겨내면 와타시는 참생 대역전인 것이다.
“데갸아아아아아아악!!!!”
오바상들은 저들끼리 싸우느라 이미 눈이 돌아간 상태. 에메랄드는 돌씨가 실시간으로 쿵쾅쿵쾅 떨리는 와중에도 한발 한발 역전의 용사처럼 성체실장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들실장 시절 괴롭고 슬픈 기억들이 무거운 걸음을 옮기는 에메랄드의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하나둘 스쳐갔다.
전혀 호화스럽지 않은 맛없는 벌레다리를 씹어먹으며 추위를 견디고, 운치냄새 풀풀 나는 하우스 안에서 항상 자매들과 생존경쟁을 벌였다. 똥마마 때문에 하우스에서 쫓겨나고 빌어먹을 학대파에게 죽임당할 뻔했다.
이제 몇 발자국이면… 몇 발자국만 앞으로 내딛으면 드높은 사육실장의 신분이 될 수 있다.
에메랄드가 반대편 테이블 근처까지 다가갔을 때 마침내 두 실장석의 처절한 난투극이 끝을 고하고 있었다.
어느새 가슴이 파헤쳐져 간헐천처럼 피를 뿜어내고 있는 블루의 시체 위에서 원사육실장 파랑이가 악귀같은 얼굴을 하고 거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데스우.......... 데즈우우우우....”
파랑은 전율하고 있었다. 마침내 자신을 방해하는 동족들을 모두 찢어죽이는 데에 성공했다. 두 손으로 동족의 뜨거운 내장을 헤집던 감각이 아직도 생생했다. 돌씨가 내뿜는 불규칙한 신호 때문에 가슴이 근질근질하고 진정되질 않는다. 파랑은 야수처럼 포효하고 싶었다.
“데즈으으으으........ 데... 데뎃??!?”
그러나 파랑도 무사하지 못했다. 한쪽 팔이 흉하게 뜯겨나가고 또 다른쪽 발은 무릎 아래가 없엇다. 게다가 옆구리가 상당 부분 뜯겨 나가 구멍난 내장이 드러나고 있었다. 치명상이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데에에엑!!!!! 뎃데로게에—!!! 뎃데로게에에엑!!! 자들은 가만히 있는데즈우우우우우우우!!!!”
격렬하게 싸우던 와중에 누군가의 피가 이마로 튀어 그것이 눈으로 흘러내린 것이다. 강제출산에 돌입한 파랑의 배는 순식간에 부글부글 끓는 소리를 내며 빠르게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이것은 치명적으로 위험하다.
‘절호의 기회인 테스’
먼발치에서 자세를 낮추고 파랑의 상태를 살피던 에메랄드가 꼬챙이를 꽈악 잡았다.
에메랄드도 알고 있었다. 강제 출산중인 실장석은 그야말로 샌드백. 지금 목을 찔러 죽이면 고대하고 고대하던 세레브 사육실장 낙승인 것이다.
에메랄드는 자세를 낮춘 상태에서 파랑의 등 쪽으로 조용히 돌아 천천히 접근하기 시작했다.
“똥벌레년 가까이오지 마는데샤아아아아아악!!!!!!!!!!!!!”
그러나 귀신같이 에메랄드를 눈치챈 파랑이가 발작적으로 괴성을 질렀다. 파랑은 빵빵해진 배 때문에 주저앉은 상태로 불러오는 배를 틀어막으려 안간힘을 쓰면서도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에메랄드는 파랑의 위협에 몸이 굳어 잘 움직일 수 없었다. 거의 다 죽어가는 시체 주제에 원사육실장의 기세는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뎃데로게에에에!! 데갸아아아아아아악!!! 데기이이이아아악!!!!!”
그러나 실장석 주제에 신성한 출산을 거스를 수는 없다. 곧 총구를 비집고 자아가 없는 미숙 구더기들이 숭풍숭풍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 레후레후레후레후 레후레후레후”””
파랑이의 피와 터진 내장조각 사이로 쏟아져나온 구더기들은 깔려서 파킨하거나 그저 본능에 따라 의미없는 울음소리를 내거나, 살기 위해 어미의 내장조각을 핥아먹었다.
“데갸아아아아아아아악!!!! 지금 나오면 안되는 데즈아아아아아아아!!!”
게다가 파랑의 터진 옆구리에 노출된 분대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그곳에서도 구더기들이 기어나오고 있었다. 분대 외벽을 따라 미끄러지듯 흘러내리는 미숙 구더기들은 그대로 마마의 몸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버렸다.
파랑의 몰골은 처참했다. 온 몸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미숙 구더기들이 파랑의 몸을 갉아먹고 있었다.
“데에에에에엥!!!!!!! 안되는데샤아아아아아아아악!!! 이럴 수 없는 데갸아아아아악!!”
죽음이 가까워오는 순간에도 파랑의 사육실장에 대한 집착은 지켜보는 사람들까지도 소름끼치게 만들만큼 광적인 것이었다.
곧 파킨할 것처럼 절규하면서도 안광을 희번득대며 자신을 구원해줄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찾고 있었다.
“주인사마아아아아아아!!!! 주인사마아아아아!! 와타시 파랑이 데샤아아악!! 어서 구해주는 데샤아아아아아아아!!!!!”
파랑이는 아팠다. 있을 수 없을만큼 아팠다. 팔과 다리가 끊어져 일어설 수 없었다. 옆구리가 터져 너무나 아팠다. 뱃속에서 갓 나온 자들이 자신의 내장을 핥아먹는 것을 보니 돌씨에 쩌적 금이 가고 말았다.
이대로 죽을 순 없었다. 사육실장이 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분하고 허망한 마음은 목에서 올라오는 뜨듯한 피를 토해내도 시원해지지 않았다.
자신이 이렇게나 위기에 빠졌는데 세상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파랑은 세상씨가 야속하고 너무 미웠다.
파랑은 마지막 희망을 담아 주인님을 불렀다. 주인은 사육실장을 받들고 보필하는 존재. 자신이 위험하니 이제 주인이 나설 차례가 온 것이다. 이미 너무 늦어버렸기 때문에 똥주인은 나중에 운치굴에 처박아서 정신을 차리게 해 줄 것이다.
그러나 똥주인의 표정이 이상했다. 영혼이 빠져나간 병신처럼 허탈한 얼굴로 허허 웃고 있었다. 와타시가 이렇게나 아픈 일을 당하는데 웃는 꼴을 보니 파랑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더러운 참피새끼 좀 닥쳐라. 너때문에 또졌잖아.. 제발 그냥 빨리 뒤져”
“데에!!!! 데에에에에에에엑!!!! 데갸아아아아아아아아악!!!!”
위석을 직격하는 주인의 매정한 대답은 파랑이의 희망을 밟아뭉겠다. 똥노예가 와타시를 배신했다. 파랑이는 눈앞이 까마득해졌다. 돌씨에 자꾸만 균열이 생겼다. 반대편에 또다른 닝겐상이 보였다.
“거기 닝겐사아아아앙!! 와타시를 구해주는 데샤아아아아아! 특별히 와타시를 보살필 수 있는 특권을 주는 데샤아아아아아!!!”
“싫어. 구더기나 싸지르는 더러운 녹돼지 새끼 ㅋㅋ 너만 죽으면 끝나니까 빨리 죽어”
“데에에에에에에에에에!!!!! 거짓말인 데샤아아아아악!!! 그런 장난 재미없는 데샤아아아악!!!!”
파랑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이렇게나 슬픈 일을 당하고 있는데 왜 다들 저렇게 질나쁜 장난을 하며 웃어댈 수 있단 말인가. 이러다간 정말 죽을지도 몰랐다.
“아~ 진짜 함정카드 하나때문에 지는게 말이 되냐? 하…”
“그게 실력이라니까 ㅋㅋ”
파랑의 머릿속으로 주마등처럼 옛날 일들이 떠올랐다. 똥주인 몰래 깠던 새끼들이 눈앞에서 똥주인에게 밟혀 죽었던 일, 버리지 말아달라 울며 처량하게 애원하던 일들이 스쳐갔다. 파랑의 붉은 양쪽 눈에 눈물이 한가득 차올랐다.
와타시 해보지 못한 일들이 많았다. 세레브한 사육실장을 꿈꾸었지만 먹어본 것이라고는 푸드와 밍숭맹숭한 콘페이토 뿐. 세레브 하우스는 커녕 분홍색 실장복도 없었다.
그런 자신에게 유일한 행복이었던 어여쁜 자들은 똥주인에게 전부 밟혀죽었다. 똥주인은 악마였다. 똥주인은 항상 자신에게서 행복을 빼앗아갔다.
파랑은 자신이 주인을 잘못 만난 가엾은 실장이라고 생각했다. 실장석으로서 단 한 마리의 자도 독립시키지 못했다. 또다시 파랑의 위석에 쩌저적 금이 가고 원통한 색눈물이 수도꼭지처럼 흘렀다.
파랑은 눈을 부릅떴다. 이럴 수는 없었다. 똥닝겐들은 이렇게 슬픈 때에 저들끼리 한가하게 웃고 떠들고 있었다. 파랑은 똥닝겐들이 원망스러웠다. 와타시를 구해주지 않는다.
많은 것을 바란 게 아니었다. 그저 사육실장이 되어 하루 세끼 주인이 주는 호화스런 식사를 맛보고, 주인이 직접 씻겨주는 아와아와 거품목욕을 받고, 매일밤 자들과 함께 행복의 노래를 부르는 정도만을 바랄 뿐이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나 소탈하고 검소한 사육실장 라이프였다.
‘그런데 어째서 똥닝겐들은 와타시의 마음을 몰라주는 데스?’
파랑은 자신의 착한 마음을 몰라주는 똥닝겐들에게 서러움과 원통함이 복받쳐 올랐다. 아직 와타시의 실장생을 끝낼 수 없다. 파랑은 이번에야말로 똥닝겐들에게 정말로 마지막 기회를 주기로 했다. 정말로 이번에도 자신을 화나게 하면 다시는 똥닝겐을 믿지 않을 것이다.
“닝겐ㅅ ...”
“뒈져버리는 테샤아아아아아아앗!!!!!”
- 콰직
“데컼!!!!!”
그러나 어느새 다가온 에메랄드의 힘껏 내지른 꼬챙이가 파랑의 목을 통렬하게 꿰뚫었다. 파랑은 순식간에 성대가 꿰뚫려 무어라 말도 못하고 켁켁대는 소리만 내었다.
“와.. 목을 뚫어버리네.”
“존나 시끄러웠는데 얘가 센스가 있네ㅋㅋㅋㅋ”
파랑의 목에 깔끔하게 박힌 꼬챙이를 보고 철수와 민수는 박수를 치며 깔깔대고 웃었다. 파랑이 간절하게 부를 때는 본 체도 안하다가 정작 목이 꿰뚫려 고통에 빠지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입을 뻐끔대며 한참을 꺽꺽대던 파랑은 검게 죽은 피를 두어번 토해낸 뒤로는 더이상 입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두 눈은 검게 물들어 새까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철수와 민수는 검은 눈물을 흘리며 비탄에 빠진 파랑을 손가락질하며 비웃었다. 파랑의 눈에는 더이상 원망이나 서러움 따위의 감정이 남아있지 않았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절망, 그리고 사람들을 향한 끝없는 증오와 적개심이 일렁이고 있었다.
“승부가 난 것 같습니다. 청혼 카드 사용법의 진수를 본 것 같네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야 또 이기고 간다~”
승부는 숙련자 철수의 승리로 끝났다. 민수가 성체실장을 3마리나 뽑는 요행이 따랐지만 너무 자만했으며 철수의 함정카드가 절묘했다. 특히 구더기를 고문하여 실장석 내면의 폭력성을 이끌어내 순식간에 내분을 일으킨 철수의 센스가 돋보였다.
진행자는 청소를 위해 테이블로 다가가 목이 꿰뚫린 성체실장을 내려다보았다. 그 원사육실장은 힘을 다해 뒤로 쓰러져 있었다. 아직 숨이 붙어있는지 옅게 색색 숨을 내쉬고 있었다. 정말 삶에 대한 집착이 강한 녀석이라고 진행자는 생각했다.
검게 변색된 실장석의 눈깔이 갈 곳을 잃고 천천히 굴러가다가 진행자를 발견하고는 멈췄다. 진행자는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는 실장석을 굽어보았다.
실장석은 이따금씩 경련을 일으키면서도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이려고 했다. 실장석은 한 쪽만 남은 팔을 덜덜 떨면서도 천천히 올렸다. 그리고는 그것을 어떻게든 자신의 뺨에 가져다 댔다.
한 쪽만 남은 팔을 뺨에 가져다 댄 실장석은 검은 눈물이 아직도 흐르는 눈알을 게슴츠레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힘에 부치는지 눈꺼풀과 눈 아래 살들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보인다.
그렇게 말을 듣지 않는 몸과 한참동안 사투를 벌인 끝에 실장석은 마침내 검은 눈알을 반달처럼 만들었다. 반쪽짜리였지만 그것은 이 실장석의 일생을 건 아첨이리라. “데스웅” 하는 콧소리는 없었다. 내장을 파먹는 수많은 구더기들의 레후— 하는 울음소리만 들렸다.
목에 꼬챙이가 꽂힌 채로 드러누워 시꺼먼 피로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고 자들에게 몸을 파먹히던 실장석은 그렇게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인간에게 아첨을 시도했다.
파랑은 진행자를 올려다보았다. 아첨을 한 것은 그저 본능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위석이 시키는 대로 몸이 움직였다. 흐릿하지만 진행자의 표정이 보였다. 파랑은 그것이 궁금했다. 혹시, 어쩌면?
파랑이 본 진행자의 표정은 조금 찌푸려져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보호소에 맡겨지던 날 마지막으로 보았던 주인님의 찡그린 얼굴과 같았다.
- 파킨
바다가 파킨한 것도 모르고 민수와 철수는 왁자지껄 떠들며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있었다. 진행자는 한켠에서 요금을 정산하고 있었다.
“똥노예들은 당장 집합하는테스.”
그래서 에메랄드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다. 게임이 끝나자 에메랄드의 존재를 까먹은 것이었다.
“테스!!! 테스테스아!!!!!”
에메랄드가 꽥꽥대는 고성을 지르고 나서야 민수와 철수는 까맣게 잊고 있던 에메랄드를 발견챘다.
“테스테스!!!! 테샤아아앗!!!”
철수와 민수가 관심을 가져주자 에메랄드는 팔을 높이높이 흔들며 더 크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스피커형 링갈의 전원이 꺼져 무어라 하는지 들리지 않았다.
“테샤아-! 테스테스아아!!”
“살아있는 똥벌레들은 마음대로 해도 되죠?”
벌써 화가 잔뜩 난 에메랄드의 노성에도 철수는 꿈쩍하지 않았다. 진행자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자 철수는 테이블을 한번 쓱 둘러보고는 사악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철수는 핸드폰을 꺼내 링갈앱을 실행시켰다. 의미불명의 괴성은 곧 음성으로 출력되었다.
“쓸모없는 노예 테샤아아아아아!!!!! 사육실장을 받들 줄 모르는 몹쓸 하층민 뿐인 테샤아아아아악!!!!”
“아, 내가 싸움에서 이기면 사육실장으로 길러준다고 했었나?”
길길이 날뛰는 에메랄드에게 철수는 짐짓 모른 체하며 물었다.
“당연한 테샷!!!! 와타시가 어떤 역경을 헤쳐 나온지 보지 못한 테샤아아아아!!! 오마에는 그것도 기억을 못하는 테스카??!”
뻔뻔한 철수의 물음에 에메랄드는 펄쩍펄쩍 뛰며 개발광을 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에메랄드의 입장에서 자신은 성체실장 3마리를 무찌른 용맹한 전사실장이었다.
“일단 똥노예들은 전부 도게자하고 와타시의 운치를 바르는 테스우! 노예 계약인 테스!”
똥노예들이 좀처럼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고 자신을 무시하자 점점 불안감이 밀려오던 에메랄드는 닝겐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고분고분한 태도로 나오자 속으로 매우 안심했다.
그래서일까. 에메랄드는 어느새 기고만장해져 양 손을 허리에 올리고 배를 잔뜩 내밀어 거만한 자세가 되었다. 에메랄드는 우선 운치를 발라 서열정리를 확실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왜 노예야?”
“텟?”
철수의 물음에 에메랄드가 잠시 멍청한 얼굴이 되었다. 이 똥닝겐이 갑자기 왜 이러는 테스? 그러나 곧 다시 의기양양해진 에메랄드가 삿대질을 하며 울어댔다.
“테에- 똥노예가 사육실장의 수발을 드는 것은 당연한 테스!! 오마에는 노예로 정해진 테스!”
“애초에 닝겐은 하등종족인 테스 실장석은 닝겐보다 세레브한 테스! 거기에 와타시는 실장 중에서도 특히나 고귀한 사육실장 테스! 그러니 오마에는 특급 노예인게 분명한 테스!!”
“그것보다 똥노예주제에 말대꾸하지 마는테스!!! 사육실장의 핵주먹맛을 보고싶은 테샷!?!!”
“..그래?”
에메랄드는 똥닝겐이 혹시라도 화가 나서 학대파로 돌변할까 내심 두려웠다. 그러나 왠지 힘센 닝겐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될 것 같아 잔뜩 으름장을 놓았다. 똥닝겐이 멍청하게 대답하는 것을 보고 에메랄드는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근데 노예는 내가 아니라 넌데?”
“텟..?”
똥노예의 대답이 뭔가 이상했다. 에메랄드는 문득 자판기에서의 악몽이 위석을 스치는 것을 느꼈다.
“정말인 레후?!?!? 이렇게 커져버린 우지짱 길러주는 레휑??”
어느새 특유의 재생력으로 몸에 뚫린 구멍이 대부분 수복된 저실장이 흥분하여 울음소리를 높였다.
“그래. 저실장아 넌 오늘부터 사육우지다!”
“레에!!! 해낸 레후우우우우웃!!! 사육우지 레후우우!!! 주인님 우지짱 행복해서 운치가 나오는 레훙—❤️”
“… 테엣?”
똥닝겐이 방금 천민 구더기에게 무어라 말했는지 에메랄드는 곱씹어 보았다. 사육우지? 그것보다는 자신을 향해 노예라고 말한 부분이 더 이상하다. 분명히 잘못 말한 것이다.
그러나 불쑥 뻗어져 나온 철수의 손이 우악스럽게 에메랄드의 옷을 잡아당기고 나서야 에메랄드는 똥노예가 반역을 일으켰다는 것을 체감했다.
“테-!! 뭐하는 테샤아아아!! 멈추는테샤아아악!!!!! 반역…”
“우지짱? 주인님이 운치굴 노예를 만들어 줄게?”
“노예 레후~ 나쁜 오네챠 똥노예되는 레후~ 우지짱 신분상승 렛훙~”
철수는 에메랄드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옷을 난폭하게 벗겨내기 시작했다. 에메랄드는 갑자기 자신이 공격당하자 겁을 잔뜩 집어먹고 팬티를 부풀리며 양껏 탈분했다.
그러나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실장복이 벗겨지는 것을 눈치채고 필사의 힘을 다해 저항하기 시작했다.
“똥니이잉게에에에에엔 미친 테샥!!!! 와타시의 소중한 옷씨를 놓는 테갸아아아아악!! 꺼지는테샤아악!!!”
에메랄드의 반항이 거세지자 철수는 옷을 벗기는 것을 그만두고 그대로 쪽가위로 옷을 찢어버렸다. 섬유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아래로 처진 에메랄드의 살덩이가 드러났다.
“테갸아아아아아!!! 와타시의 소중한 옷씨가아아!! 테에에에에에에엥!!!”
눈앞에서 옷이 조각나자 에메랄드는 금새 색눈물을 흘리며 테에엥 울어젖히기 시작했다.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실장복이 사라진 상실감은 실장석이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다. 철수는 아랑곳않고 에메랄드의 두건까지 찢어버렸다.
“와타시의 귀여운 두건씨가아아아아!!!! 테아아아아아아아아!!!”
“똥노예가 미쳐버린 테에에에에에에엥!!! 제발 얌전한 노예로 다시 돌아오는 테에에에에엥!!!”
순식간에 두건과 옷이 찢어져 신발밖에 남지 않은 에메랄드의 몰골은 꽤 흉했다. 외형 뿐만 아니라 실장복이 없는 실장석은 실장들 사이에서도 추하게 여겨져 다들 업신여긴다. 철수는 멈추지 않고 그대로 에메랄드의 한쪽 다리를 잡고 거꾸로 들어올렸다.
“테히이이이이이이이!!!!!”
갑자기 거꾸로 들려 시야가 반전되고 높은 곳으로 올라간 에메랄드는 또 겁을 먹어 물똥을 브리릿 싸질렀다. 총구에서 브리브리 새어나오는 물똥들은 그대로 거꾸로 뒤집힌 에메랄드의 몸통을 타고 흘렀다.
물똥이 몸통을 따라 목을 타고 입으로 방울방울 흘러들어가는 와중에도 에메랄드는 본능적으로 신발을 지키기 위해 츄와악 하고 이빨을 세워 철수의 손가락을 깨물려 했다.
그러나 철수는 거꾸로 들린 에메랄드의 양쪽 신발을 손쉽게 벗겨냈다. 에메랄드는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악귀처럼 표정을 찡그리고 이빨을 드러내어 철수의 손가락을 깨물려고 했다.
“아이고 내가 잡는게 싫은가보네 ㅋㅋ”
철수는 그대로 손에서 에메랄드를 떨어뜨렸다. 자신을 잡아주던 철수의 손가락이 없어지자 에메랄드는 비명을 지르며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테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테이블 위로 추락한 에메랄드는 다리뼈가 으스러져 움직이지도 못하고 비통한 울음소리를 내었다. 이제 에메랄드는 머리칼만 남은 반 독라였다.
“오마에에에에—!! 와타시의 세레브 실장복을 당장 돌려내는 테샤아아!!!”
“땅에 머리를 박고 사죄하는 테샷!!! 다시 노예로 돌아오라고 명령하는 테쟈아아앗!!”
에메랄드는 다리가 이상하게 꺾인 모양으로 바닥에 누워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발작에 가까운 외침에도 철수의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걸려 있었다.
에메랄드는 실시간으로 위석이 보내오는 위험신호를 느끼고 있었다. 똥노예가 학대파로 변했다. 명령도 통하지 않는다. 강력한 핀치의 예감이 느껴지자 에메랄드는 이제 나오지도 않는 운치를 쥐어짜내며 필사적으로 철수에게서 멀어지려 하였다.
철수는 총구에서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며 뒤쪽으로 꿈틀꿈틀 움직이는 에메랄드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약속대로 널 사육해 줄게.”
“그러니 오늘부로 너는 우지짱의 운치굴 독라노예다.”
철수의 노예선언과 함께 손이 테이블 위에 자빠진 에메랄드 가까이 다가갔다.
“테, 테샤아아아— 샤아아—!! 가, 가까이 오지 마는 테샤아아-!”
에메랄드는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위협의 소리를 내었지반 무시무시한 닝겐의 손은 자신의 최대 위협수단을 간단히 무시해 버렸다.
“우선 노예로서 서열정리를 확실히 해야겠지? 노예에게 머리칼 같은건 필요 없어”
철수의 손가락이 기름기로 한데 뭉쳐진 에메랄드의 앞머리를 거칠게 쥐어올렸다. 에메랄드의 머리통이 머리칼을 따라 올라왔다.
“테, 테챠아아아아아아아!!!!!”
머리칼이 붙잡히자 화들짝 놀란 에메랄드는 새된 비명을 질렀다. 에메랄드는 색눈물 범벅이 된 얼굴를 도리도리 저으며 머리칼만은 뽑지 말아달라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이제 용서해 줄테니 제발 아까처럼 돌아와 달라고 빌었다.
실장복은 없어져도 들에서 주워 입을 수 있지만 머리칼은 다르다. 어여쁜 머리칼은 실장석의 세레브함을 상징한다. 들실장들도 자신의 침을 발라 틈틈이 머릿결을 관리할 정도로 실장석에게 있어 머리칼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 1호이다.
그리고 머리칼이 없는 실장석은 곧 못생기고 추한 독라이자 하층민으로 취급받는다. 자실장은 물론 엄지실장석에게까지 천박하다며 멸시받는다. 공원에 가끔 보이는 독라들이 유독 쭈글쭈글하고 주눅들어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방금 막 사육실장의 계단을 밟고 세레브 실장으로 올라선 에메랄드에게 있어 소중한 머리칼이 사라지고 독라가 된다는 것은 사육실장은커녕 하층민 계급으로 직행하는 것을 의미했다. 벌써부터 동족들의 비웃음소리가 에메랄드의 귓가에 들리는 듯 했다.
“니, 닝겐상은 와타시에게 메로메로되어 나쁜 장난을 그만두눈 텟승~❤️”
앞머리가 붙잡힌 상태에서 에메랄드는 마지막으로 뺨에 손을 올리고 필살의 애교를 시도했다. 에메랄드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었다.
- 찌지직 찌직
“테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
그러나 철수는 보란듯이 에메랄드의 머리털을 지저분하게 뜯어내 버렸다. 세상이 떠나가라 비명을 지르던 에메랄드는 한뭉터기 떨어진 자신의 머리칼을 보고는 거품을 잔뜩 물고 실신했다.
철수와 민수는 곧 실신한 에메랄드를 챙겨 기분좋게 룸을 빠져나갔다. 룸 안에는 이제 차갑게 식어가는 3마리의 성체실장 시신과 벽면 가득한 케이지 안에서 사육실장이 되기만을 고대하는 실장석들만 남았다.
-fin
부록 - 진단서
민수팀
블루 : 가슴이 공격당하던 중 흉골 뒤에 있던 위석이 깨져 파킨.
파랑 : 정신붕괴로 파킨.
바다 : 과다출혈로 인한 쇼크로 파킨.
철수팀
엄지실장 - 위석처리 후 독라달마가 되어 사육저실장이 잠자는 침대 위에 달린 모빌이 됨.
식용저실장 : 사육우지행
에메랄드 : 사육저실장의 똥빼기 노예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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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최고인 데스... 우마우마한 걸작인 데스..
엄청난 걸작레후..
와우 감탄이 절로
똥벌레들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어쩜 이렇게 찰진지....
띵작 데스우우우우ㅜㅜ
다음편을 격렬하게 요구하는 레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