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運命)에 대하여
염백우(冉伯牛)가 나병에 걸리자, 공자가 문병 가서 창문으로 그의 손을 잡고 “이런 병에 걸릴 리가 없거늘, 운명(運命)인가 보다. 이런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이런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論語ㆍ雍也』
孔子 제자 십철(十哲)중 하나인 염백우는 뛰어난 덕행으로 사랑 받았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불치의 병에 걸리자 병문 간 공자가 탄식했다.
공자는 염백우의 병을 운명 탓으로 돌렸다.
니체(1844~1900)는
"자연은 스스로의 힘에 의해 돌아가는 바퀴다" 라고 했다.
즉 누가 시켜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모습이다.
"파도는 하루에 70만 번 철썩이고,/
종달새는 하루에 3천 번씩 우짖으며 자신을 지킵니다./
한 꽃대에 3천 송이 꽃을 피우는 나무도 있습니다./
벌은 1kg의 꿀을 얻기위해 560만 송이의 꽃을 찾아다니고~~"
-천양희 시인(부산 출생:1942~) '운명이란 것'에서
김동인(1900~1951)의 소설 '배따라기'(1921)에서 형은 아내와 동생의 관계를 의심하여 이를 아내의 책임으로 돌려 자주 때렸다. 결국 아내는 자살하고 동생은 가출했다. 오해에서 비롯된 비극이다. 그후 동생은 뱃사람이 됐고 형은 지난 일을 사과하기 위해 뱃사람이 돼 찾아 나선다. 그러던 중 형은 조난을 당해 표류하다 문뜩 정신을 차려보니 오랫동안 찾지 못한 동생이 자신을 간호하고 있었다.
형은 “어떻게 된 거야?”
라고 묻자 동생은
“형님, 거저 다 운명이외다.” 했다.
한 세기를 넘게 산 김형석(1920~) 선생은 철학자이면서 개신교 신자다.
그는 운명을 인정하면서도 노력 여하에 따라 어느 정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사람이 어떤 목적이 있으면 더 큰 일을 할 수 있어요. 그 목적이 운명의 한계를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 있게 하는 것 같아요.”
김형석 선생은 자신의 지난날에서 신(神)의 섭리 같은 것을 느꼈다고 한다.
해방이 되고 2년 후 나는 조국의 반인 북한을 떠나 38선을 넘어야 하는 현실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공산사회에서는 더 이상 살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태어난 지 열 달밖에 안 된 큰아들을 아내가 업고 남쪽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습니다. 황해도 해주 쪽에서 약속한 배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을 때, 불심검문에 걸려 파출소로 가게 됐어요. 계장이 조서를 꾸미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아서 심문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전화벨이 크게 울렸습니다. 전화기 너머 통화 내용이 나한테까지 들렸어요.
“지금 평양에서 연락이 왔는데. 이제부터 잡혀 오는 놈들은 무조건 떠난 곳으로 되돌려 보내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계장은 전화를 끊고 나한테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었고, 나는 “장연까지 간다”고 둘러댔어요. 그는 아랫사람을 불러 “이분들을 데리고 버스정류장까지 가서 장연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것을 확인하고 오라”고 지시했습니다. 정류장에서 나는 따라온 사람에게 “표를 사고 기다려야 할 텐데, 안심하고 돌아가라”고 권했어요. 그 사람은 꼭 그렇게 하라고 순순히 떠나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남쪽으로 무사히 올 수 있었어요.
김형석 선생이 남쪽으로 향하던 중 불심검문에 걸려 잡혀 왔을 때, 마침 상부에서 걸려온 전화 한통이 그를 살린 것이다. 그때 그 전화가 없었더라면 선생의 남쪽행은 이뤄질 수 있었을까? 장담할 수 없다. 선생은 자신의 삶을 돌아봤을 때, 자신이 모르는 어떤 힘이 이끌었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선생은 운명을 섭리(攝理)로 받아들었다. 섭리란 내가 모르는 제3자가 자신을 이끄는 것인데, 지금도 선생의 선택과 결정이 자신의 자유의사(自由意思)라기 보다는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소설 '배따라기'와 김형석 얘기는 '월간조선'(4월),pp.510~512 참조
화가 오지호(吳之湖, 1905~1982) 선생의 운명은 김형석 선생보다 더 극적이다. 그는 해방 후 경성 생활을 거쳐 고향 동복(同福:전남 화순)에 내려왔을 때 6ㆍ25전쟁이 발발했다. 그때 선생은 빨치산에 납치되어 남부군에 끌려 다녔다. 선생은 지주 집안 출신에다 해방 후 조선대 교수였으니 ‘악질반동분자’로 몰려 남부군에서도 요주의 감시 대상이었다. 그러던 중 1952년 1월, 오지호가 속한 부대는 광양 백운산에서 군경토벌대와 대치하다가 국군에게 붙잡혔다. 오지호는 즉결 처형될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전시라는 특수상황에서 이상할 것 없는 조치였다. 목숨이 경각에 이르렀을 때 선생은 “나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얼마 만에 눈을 떠보았다. 기막힌 일이 아니랴. 내 눈 앞에 펼쳐진 갈대숲, 그 희게 핀 갈대꽃무리 사이로 이제 막 떨어지려는 해가 타는 듯이 붉은 햇살을 비추고 있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나는 살고 싶었다. 살아서 이 아름다운 자연을 다시 그리고 싶었다.”
오지호, ‘그 슬프게 핀 갈대꽃 무리’ 중에서
죽음에 직면해서도 갈대꽃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은 오지호는 천운(天運)으로 살아남았다. 처형직전 그를 알아본 국군장교 덕분에 오지호는 처형을 면했고 군법재판에 회부돼 1심(20년)과 2심(무죄)을 거쳐 풀려났다.
'삼국지'에서 위(魏)나라의 사마의(司馬懿)의 삶도 어떤 운명이 장난친 듯 하다. 제갈량(諸葛亮)은 호로곡(葫蘆谷)에 가짜 식량 창고를 만들어 놓고 사마의를 유인해 불태워 죽일 계책을 꾸몄다. 제갈량의 예상대로 사마의가 호로곡에 들어왔고 촉(蜀)나라 군대의 화공(火攻)이 시작됐다. 순간 사마의는 “내가 이곳에서 죽는구나(我命于此)!”라고 탄식하는데, 그때 갑자기 마른 하늘에서 예보에도 없던 비가 쏟아졌다.
제갈량은 탄식한다.
“하늘이 사마의를 버리지 않는구나(天不絶司馬懿啊)!”
사마의는 이틈을 타서 호로곡을 잽싸게 빠져나갔다.
이때 제갈량은
“일은 사람이 계획하지만 이루는 것은 하늘이구나, 억지로 되는 게 아니야(謀事在人 成事在天 不可强也)”
라고 했으니 인간의 힘은 하늘(운명)을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이선희 노래 ‘인연’(2005)에서
“인연을 거부할 수가 없죠” 라고 했으니 인연을 운명과 동일시했다.
노사연 노래 ‘만남’(1989)에서도
“우리 만남은 우연히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잊기엔 너무나 나의 운명이었기에/
바랄 수는 없지만 영원을 태우리” 했고,
진미령 노래 '미운 사랑'(2012) 에서도
"그 끈을 놓을 순 없어
너와 나 운명인거야" 라고 했으니 만남(인연)을 운명이라 봤다.
여기서 우연(偶然)은 실상은 되돌아봤을 때 필연(必然)이다.
즉 우연은 필연이자 운명인 셈이다.
인복(人福)이 최고의 福이란 말이 뜻 깊게 다가온다.
운명을 바라보는 시각은 사람마다 다르다. 우리 선배(부모)들은 운명을 팔자소관(八字所關)으로 돌렸다. 이미 벌어진 일을 두고 과거 탓을 해봤자 소용없다 했으니 여기엔 미래 지향적인 사고가 담겨있다.
좋은 인연은 좋은 운명이니, 우선 나 자신부터 좋은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으니, 이로 보면 운명은 어느 정도는 개척할 수 있다는 김형석 선생의 말이 허언(虛言)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결국 인간은
'盡人事待天命(진인사대천명)'을 안고 살아야 할 운명이다.
그게 최선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