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로 따지면 추운 정도는 아니었지만, 흐린 날씨에 바람까지 부니 손이 곱을 정도로 추위가 느껴졌습니다. 모임 장소인 대가야고분군 주차장에 약속 시간보다 30분 이른 9시 반에 도착했음에도 먼저 오신 분들이 꽤 계셨습니다. 사진에 대한 그분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날이 차니 모두 장롱에 넣었던 겨울옷을 다시 꺼내 입으셨답니다. 거기다가, 몇몇 분은 핫팩을 가져와 사용하시며, 추워 보인다고 다른 분의 손에 잠시 핫팩을 건네주어, 잠시 뜨거움을 맛보며 따사로운 정을 느꼈습니다. 순간, 내 차에도 핫팩이 있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누군가에게 10봉짜리를 받았는데, 한 번도 써 보지 않은 채 1년을 묵었던 겁니다. 처음 써 보는 핫팩이라, 사용설명서를 읽어보았습니다. 개봉 후 여러 차례 흔들어주면 열이 난다고 하더군요, 1년 이상 지난 상품이라 테스트 한다고 몇 번 흔들어 보았는데 뜨거워지는 느낌이 없기에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주려던 당초 생각을 접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출발, 고분군 초입의 솔숲을 지나는데 핫팩이 달아올라 뜨겁더군요. 그냥 흔들면 바로 뜨거워지는 게 아니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거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동행분들께 나눠드려 온기를 함께 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열이 많은 제겐 꼭 필요하진 않지만, 이왕 뜯은 거니 오른쪽 상의 주머니부터 왼쪽 바지 주머니까지 수시로 옮겨가며 온기를 느꼈습니다. 고분군 반쯤 돌았을 때 다시 만난 일행 중 한 분의 손이 찬바람에 벌게진 게 보여서 제 핫팩을 건네드렸습니다.
처음 써 본 핫팩의 특성을 잘 몰랐기에 나눔이 불발된 게 다시금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몇 가지 깨우침이 있었습니다. 경험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다른 이들은 이미 써 보았기에 여러 번 흔들어 주고 기다려야 한다는 걸 아셨지만 저는 아니었지요. 기다림도 필요함을 재삼 느꼈습니다. 사용설명서도 좀 더 친절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면 끓이는 법에는 몇 분 몇 초까지 상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만, 핫팩의 설명서에는 몇 번 흔들어주면 된다는 정도로, 저같이 처음 사용하는 이에게는 충분치 않은 설명이 전부였습니다. 아무리 과해도 지나치지 않는 상세한 설명, 고객을 위한 배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논리의 비약이겠지만, 얼마 남지 않은 총선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사용설명서를 충분히 보는가, 그들은 자신의 사용설명서를 충분히, 상세히 기록하고 밝히는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 올해 예순넷이니 총선이건 대선이건 온갖 선거를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 십 번은 했겠는데 - 적확하게 그들의 사용설명서를 이해했던 기억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걸 적절히 이용하는 게 정치겠지만요... 하지만 이번에 만큼이라도 그들이 제대로 밝히는 사용설명서를 꼼꼼히 읽어보고 판단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함으로써 제 선택에 대한 후회를, 그들에 대한 원망을 하지 않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간절히, 간절히. 6년 전 모셔왔던 ‘마음 사용 설명서’를 다시 모셔왔습니다. 반의 반만 따라도 늘 행복할 것 같습니다.
자연과 역사의 유물은 사용설명서가 따로 필요 없습니다. 그냥, 느꺼운 마음만 가지면 됩니다. 고령대가야의 흔적을 따라가는 일정이 그러했습니다.
https://blog.naver.com/bornfreelee/223364935898
마음 사용 설명서(모셔온 글)========
고통은 10개월 무이자 할부를 활용하고, 감동은 일시불로 구입할 것. 사랑은 30년 만기 국채를 그리고 우정은 연금처럼 납입하고, 행복은 언제든 입출금이 가능한 통장에 넣어둘 것을 권함.
감사는 밑반찬처럼 항상 차려놓고, 슬픔은 소식할 것.
고독은 야채샐러드처럼 싱싱하게, 이해는 뜨거운 찌개를 먹듯 천천히, 용서는 동치미를 먹듯 시원하게 섭취할 것.
기쁨은 인심 좋은 국밥집 아주머니처럼 차리고, 상처는 계란처럼 잘 풀어줄 것.
오해는 잘게 다져 이해와 버무리고,
실수는 굳이 넣지 않아도 되는 통깨처럼 다룰 것.
고통은 편식하고, 행복은 가끔 과식할 것을 허락함.
슬픔이면서 기쁨인 연애는 초콜릿처럼 아껴 먹을 것.
고통은 10개월 무이자 할부를 활용하고, 감동은 일시불로 구입할 것. 호기심은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해서라도 마음껏 소비하고, 열정은 신용대출을 권함.
은혜는 대출이자처럼 꼬박꼬박 상환하고, 추억은 이자로 따라오니 특별히 관리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리움은 끝끝내 해지하지 말 것.
사랑은 30년 만기 국채를, 신뢰는 선물투자를, 의심은 단기 매도를 권하며, 평화는 종신보험으로 가입할 것.
변덕스러움은 애널리스트가 분석하듯 꼼꼼하게 다루고, 아픔은 실손 보험으로 처리하고, 우정은 연금처럼 납입하며, 행복은 언제든 입출금이 가능한 통장에 넣어 둘 것을 권함.
-----김미라의 <삶이 내게 무엇을 묻더라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