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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무더운 여름철도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지난 7월 21일부터 8월 18일까지 실크로드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귀국하였습니다. 올림픽으로 뜨거웠던 감동을 해외에서도 고스란히 느꼈습니다. 여행길에 고생도 하였지만 보람도 있었지요. 그 기록을 몇 차례 나누어 싣습니다.
문명과 교역의 통로, 카라코람 실크로드 탐방기(1)
1. 빈부가 섞여 사는 세상, 뉴델리의 이모저모
한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월 하순이 시작되었다. 그 첫날인 21일, 여러 번 벼르던 실크로드 탐방 길에 나섰다. 저녁 8시, 30여 명의 우리 일행을 태운 아시아나 항공 767편으로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7시간의 비행 끝에 밤 11시 25분(한국시간 22일 새벽 2시 55분) 첫 기착지인 뉴델리 공항에 무사히 착륙하였다. 기장의 설명으로는 밤인데도 현지 기온이 섭씨 30도라니 꽤 무더운 날씨다.
입국 비자 발급 절차가 복잡한 것과는 달리 공항의 입국 수속은 까다롭지 않아서 좋다. 현지에서 합류하는 여성 가이드의 안내로 대형버스에 올라 뉴델리 외곽에 있는 호텔에 도착하니 새벽 1시가 가깝다. 거제도에 사는 베낭여행전문가 장병섭씨(59세)와 룸메이트가 되어 2층에 있는 방에 여장을 푸니 밖에서 보기보다 객실이 깨끗하고 냉방시설도 잘 갖춰져 편안한 기분으로 인도의 첫 밤을 잘 보냈다.
배낭여행에 익숙하지 않은 터라 일행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 염려가 되었으나 좋은 룸메이트를 만나서 그의 의견을 따라 같이 행동하기로 하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호텔에서 아침이 제공되는 것이 아니어서 아침식사부터 해결해야 할 일, 준비해간 비빔밥에 객실에 있는 포트로 물을 끓이니 10분 만에 즉석조리가 된다. 룸메이트는 햇반과 컵라면에 끓는 물을 부으니 조리가 끝난다.
오후 5시에 호텔로 집결하기까지는 각기 자유 시간, 룸메이트가 미리 짜놓은 코스를 따라 지하철과 릭샤를 이용하여 16세기의 전통궁전 레드포트와 11세기의 이슬람사원 꾸뜹미나르를 돌아보고 도시 중앙에 있는 인도의 문(1차 대전 때 숨진 이 들의 위령장소)을 찾으니 오후 세시가 지났다. 규모가 크고 정원이 넓은 레드포트 궁전의 박물관은 관리가 허술하고 소장품도 빈약한 느낌이고 꾸뜹미나르 사원은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데 첨탑이 웅장하나 모스크는 특별히 인상적이 것이 아니어서 뜨거운 햇볕을 쬐며 멀리 찾아간 것에 비하여 약간 실망이다.
지하철과 릭샤 요금은 합쳐서 1달러도 안될 만큼 저렴한데 궁전과 사원의 입장료가 5달러씩으로 비싸다. 내국인에게는 5센트가 안되는데 외국인에게 25배를 받는 것은 너무 지나친 일로 황당한 느낌이다. 한때 중국이 내외국인의 입장료를 차등으로 징수하다가 균일하게 한 것이 십 수 년 전 일인데…….
첨탑에 오르면 뉴델리 시가지가 다 보인다는데 지금은 첨탑출입이 금지된 꾸뜹미나르
낮 기온이 섭씨 40도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인데 지하철의 냉방시설이 잘 되어 그런대로 더위를 견딜만하다. 지하철에서 겪은 일, 일요일이어서 이용객들로 만원인데 어느 칸에 오르니 이상하게 서 있는 승객이 없다. 잠시 후 인도여성이 무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잘 알아들을 수 없어 되물었다. 사연인즉 여성 전용 칸이니 옆의 객실로 옮기라는 손짓을 한다. 급히 옆 칸으로 건너가니 서 있을 자리가 없을 만큼 붐빈다. 그 중의 어떤 이가 친절하게 응대하는데 우리가 한국인 인 것을 알아보고 삼성의 인도 공장에서 일한다고 자기소개를 한다.
'빈부가 섞여 살거니와 그들을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잠언22장2절)는 말씀처럼 세계 어디를 가던 가난한 자와 부자가 섞여 사는데 인도는 아직도 가난한 이가 많은 나라, 그들과 섞여 지낸 하루가 감사하다.
지하철 입구에서 어린이를 안고 구걸하는 여인네들이 보기에 안타깝다. 그 가운데 남자 어린이가 쫓아오더니 들고 있는 물병을 낚아채려한다. 망설이다가 물병을 건네주니 쏜살같이 달아난다. 궁전에서는 서너 살 된 여자아이가 달려와 가만히 손을 잡는다. 호주머니에 있는 캔디를 한 알 살짝 집어주니 조용히 돌아선다. 지하철에서 올라오는 길옆의 쓰레기더미에서 젊은 청년 두 명이 태연히 볼일을 보는 모습이 안타깝다.
이슬람사원을 찾는 외국청년 남녀가 다가와 릭샤와 동승하여 요금을 나누어 내자고 제안하는 모습이 실용적이고 스무 살 젊은 릭샤 기사가 지하철역에 가는 길에 정부에서 운영하는 '쇼핑센터를 들려가기를 청하여 예정에 없이 상품 판매점을 돌아보기도 하였다.
점심은 길거리에서 파는 햄버거로 때우고 더위에 목이 말라 병마개가 느슨하게 닫힌 물을 두 병 사 마셨는데 배탈이 나지 않는걸 보니 불량품은 아닌 모양이다. 호텔에 돌아오니 오후 4시, 땀으로 온몸이 젖었는데 샤워할 곳이 없다. 화장실에서 대충 몸을 씻고 잠시 휴식을 취하니 기차 타러 갈 버스에 오를 시간이 되었다.
오후 5시 반, 호텔에서 10여분을 걸어 나와 큰길에서 대기 중인 버스를 타고 기차역으로 출발하였다. 가는 길목에 인도의 문 등 낮에 보았던 곳을 지나 20여분 만에 역에 도착하니 시간 여유가 있다. 역 앞의 가게에서 물과 식품들을 사들고 대합실에 들어서니 시내 중심역이 아니라서 비교적 한산한 편이다.
인도의 문에는 더운 날씨인데도 놀러 나온 시민들이 많다.
플랫폼에서 다음 목적지인 임랏차르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니 예정시각보다 10여분 늦게 도착한다. 일행은 세 대의 침대칸에 나누어 승차하였다. 좌석은 냉방이 안 된 침대 열차의 3층에 배정되었다. 1층 자리에 앉아 준비해간 과일과 빵으로 저녁을 메우고 일찌감치 3층으로 올라가 피곤함 몸을 뉘니 금방 잠속으로 빠져든다.
2. 신발을 벗고 들어간 황금사원과 모스크
7월 23일, 새벽 5시 반에 인도 북부의 국경도시 임랏차르에 도착하였다. 전날 저녁 7시에 뉴델리를 출발하여 10시간 넘게 밤길을 달린 셈이다. 냉방이 안 된 낡은 기차의 3층 꼭대기에서 저녁 8시부터 새벽 3시까지 잘 자고 일어나니 전날 더운 날씨에 땀 흘리며 고단했던 피로가 많이 풀렸다. 어떤 이들은 덥고 습하여 땀띠가 생겼다며 힘든 여정이라고 말한다.
어두운 새벽에 창밖의 풍경을 살피니 넓은 평원이 끝없이 이어지고 정거하는 역마다 맨바닥에서 노숙하는 이들이 많이 눈에 띈다. 꽤 큰 도시인 임랏차르 역에는 어머니와 아들, 딸 등 온 식구가 한데 모여 자는 모습도 보인다.
역사 밖으로 나오니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차에 오르니 황금사원이라 불리는 시크교 사원 쪽으로 향한다. 사원에 이르니 아침 이른 시간인데도 많은 참배객들이 넓은 광장과 식당, 예배 장소에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입장할 때 신발을 벗고 물에 발을 씻은 후 모자 대신 스카프로 머리칼을 가리게 한다.
사원의 중앙에 정사각형의 큰 호수가 있고 주변으로 큰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는데 그 규모가 뉴델리에서 본 왕궁이나 이슬람사원보다 커 보인다. 어느 코너에 이르니 떡을 두 개씩 나누어 주고 호수 중앙부분에는 세례를 받듯 팬티차림의 몸으로 호수에 몸을 담그는 이들도 많다.
큰 건물의 강당에서는 수많은 참배객들이 계속 들어서며 여러 사람이 큰 양동이에서 따라주는 짜이(양의 젖인가?)를 한 대접씩 받아 마신다. 일행에 끼어 난생 처음으로 짜이를 맛보았는데 배가 고픈 터여서인지 따끈한 국물이 구수하고 향긋하다.
건너편에 있는 서너 살 여자 어린이가 다가와 손을 잡는다. 사탕 한 알 쥐어주니 고마운 표정이다. 호수안의 금박으로 장식한 참배 장소에는 차례를 기다리는 인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1998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타지마할과 옛 사원, 궁전 등을 돌아본 적이 있는데 과거의 유물로 들린 명소보다 수많은 인파가 숙연한 모습으로 북적이는 삶의 현장이 훨씬 아름답고 생동감이 느껴진다.
새벽부터 찾는 이들로 붐비는 황금사원
구도의 길을 따라 이곳을 찾은 신앙인들이나 낯선 문화를 따라 먼 길 떠나온 우리 모두 나그네요, 순례자인 것을 되새기며 머나먼 땅에서 충만한 아침을 맞은 소회가 뜻 깊다.
사원에서 젊은 청년들이 같이 사진 찍자고 요청하여 함께 포즈를 취하고 길을 지나던 다정한 부부가 사진 찍기를 원하는 등 대도시보다 친절한 서민들의 모습이 보기에 좋다.
오전 8시 반, 먼저 인도에 들어왔다 이곳에서 합류한 4명과 함께 버스에 올라 30분쯤 달리니 말쑥하게 새로 지은 출입국관리소에 이른다. 제복을 입은 수십 명의 직원들이 친절하게 출국수속을 밟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전에는 뙤약볕에 두 시간 넘게 출국수속을 밟느라 크게 힘들었다는데 쾌적한 청사에서 선풍기 바람을 쐬며 기다리는 시간이 견딜 만하다. 출국장에서 파키스탄 입국장까지 20여 분 걸리는 거리를 인도 쪽의 냉방을 갖춘 버스로 이동하여 한결 수월하다. 작년 만해도 포터에 짐을 맡기고 땀 흘리며 걸어갔는데 1년 만에 와 보니 이렇게 바뀌었다며 가이드가 기뻐한다.
파키스탄의 입국 수속장소에 이르니 갑자기 전기가 나가 컴퓨터 작업을 할 수 없다며 한 시간 가량 기다린다. 전기가 나가니 에어컨과 선풍기도 작동을 멈추어 찜통더위에 온 몸이 땀에 젖어 견디기 힘들다. 전기가 들어오자 입국절차가 비교적 신속히 이뤄진다. 수속을 마치고 대기 중인 버스에 오르니 오후 1시, 30분 만에 호텔에 도착하여 서둘러 방을 배정 받고 전날부터 씻지 못한 몸을 닦으니 한결 개운하다.
파키스탄의 국경도시 라호르는 오랜 역사의 숨결이 스며있는 꽤 큰 도시인데 치안이 불안하여 개별적인 시내관광이 어려우므로 단체로 움직이기를 권한다. 오후 2시 반에 버스에 올라 석가모니의 큰 보물이 보존되었다는 박물관에 이르니 월요일이라 문이 닫혔다. 다음 행선지는 규모가 크고 역사적 가치가 있는 이슬람사원과 라호르 성벽이다. 파키스탄에서 중국의 신장 위구르,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은 모두 이슬람문화가 강하게 뿌리내린 지역이다.
호텔 옥상에서 바라본 라호르 시내 모습
일행들과 떨어져 사원을 한 바퀴 돌다가 큰 대리석 광장으로 치장한 사원에 신발을 벗고 맨발로 입장하였다. 그 중앙에 들어서니 한편에서는 머리를 조아리며 기도하는 가운데 반듯하게 누워서 잠을 자는 이들도 괘 많다. 그 틈에 끼어 피곤한 몸을 눕히고 10여 분간 휴식을 취하니 찜통더위 속에 출입국 수속하느라 지친 몸이 스르르 잠에 빠져든다. 20여 분 휴식을 취한 후 잔디밭에 앉아 쉬노라니 파키스탄 사람들 여럿이 와서 악수를 청하며 어떤 이는 가족과 함께 사진을 찍자고 부탁한다. 파키스탄은 치안이 불안하고 국제적인 분규가 있은 탓인지 외국인의 발길이 뜸하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우리를 대하는 시민들의 태도가 매우 우호적이라 반갑다.
호텔에 돌아오는 길에 바자르에 들러 가자고 요청하니 재래시장은 위험하다며 경계가 삼엄한 곳에 있는 현대식 쇼핑센터로 안내한다. 전날 저녁부터 제대로 먹지 못한 일행들이 식품과 과일 등을 한 아름씩 사느라 분주하다. 호텔에 돌아오니 오후 6시가 넘었다. 시장에서 사가지고 온 과일과 음료. 빵으로 저녁식탁이 푸짐하다.
구약시대의 모세가 여호와를 만날 때 그곳은 거룩한 곳이니 신발을 벗으라고 명하였다.(출애굽기 3장 5절) 아침과 오후에 찾은 종교의 성지에서 모두 신발을 벗었다. 젊은 시절에 교회에서 '신발을 벗으라'는 제목으로 성경 말씀을 전한 적이 있다. 그때는 관념적으로 말하였는데 실제로 신발을 벗고 발을 씻은 후 내딛는 발걸음이 가볍다. 험난한 나그네 인생길도 신발을 벗고 가볍게 걸을 수 있으면 좋으리라.
3. 넓은 평원과 소금광산을 거쳐 이슬라마바드에 이르다
아침에 일어나 호텔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잠시 걷는 사이에 땀이 흐를 만큼 무더운데 길가의 긴 의자에는 거구의 중년이 상의를 벗은 채 깊은 잠에 빠져 있고 소년들이 차도에서 크리켓 놀이를 하는 모습이 귀엽다. 호텔 주변의 큰 건물마다 제복을 입은 남자들이 경비를 서고 있어서 삼엄한 분위기다. 며칠 전부터 이슬람의 제전인 라마단 기간이어서 전날 저녁에는 호텔 옆의 골목에 수천 명의 신도들이 운집하여 기도드리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산책을 마치고 호텔 옥상에 올라 시내를 살피니 사방이 평지로 둘러싸여 끝이 보이지 않는 꽤 큰 도시다. 오전 9시 반, 호텔을 나서 전날 문이 닫혀 들어가지 못한 라호르박물관으로 향하였다. 라호르박물관에는 기원 전 300년 경 알렉산더대왕이 페르시아를 넘어 인도까지 원정할 때 동서 문명이 마주친 간다라(GANDARA) 문화의 유적들이 많이 소장되어 있는데 이 박물관 소장품의 백미는 석가가 금식 중의 여윈 모습을 담은 작은 불상(길이 84~넓이 53cm)이다. 너그럽고 인자한 모습의 불상에 익숙한 것과 달리 온몸이 깡마르고 눈빛이 형형한 구도자의 풍모가 잘 묘사된 2세기의 작품인데 어떻게 이곳에 보존되었는지 궁금하다. 박물관에는 영국 식민지배의 영향인지 빅토리아여왕의 위용을 담은 커다란 동상과 조지 5세, 에드워드 7세의 흉상이 나란히 세워진 방이 있고 각종 도자기, 석상, 카펫, 무기 등 하나하나가 귀중한 물품들이 많다.
라호르 박물관에 보존된 2세기 작품의 불상
한 시간 가량 박물관을 둘러본 후 일행은 이곳에서 430여km 서쪽에 있는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로 향하였다.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고속도로에 접어드니 광활한 평야지대가 끝없이 펼쳐진다. 갓 심은 벼들이 푸릇푸릇 자라는 논이 한국의 곡창지대인 호남평야보다 넓어 보이고 아낙네들까지 모내기를 하는 모습이 수십 년 전의 우리 농촌을 떠올리게 한다.
세 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 휴게소에서 한 시간의 휴식을 취하며 점심을 들고 최근에 개발되었다는 소금 광산을 찾았다. 휴게소에서 출발하여 30여 분을 달리니 긴 평야의 끝자락에 길게 뻗은 산맥이 시야에 들어온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한적한 시골 길로 한참 들어가니 KMEWRA SALT MINE 이라는 소금광산이 나타난다.
10년 전에 가 본적이 있는 폴란드의 소금 광산에 이어 세계 두 번째 크기라는 소금 광산은 거대한 산속에 17층의 광구로 형성되었다는데 갱도입구에서 2~3km 지점까지 궤도기차를 타고 들어갈 수 있다. 기온은 섭씨 40도 가까운데 갱도 안은 18도라 입구부터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갱도 옆 좁은 공간에는 수백 명의 피서인파가 더위를 식히며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평지로 연결되는 지층이 6층, 지하로 11충이 개발되고 지상으로 5층이 개발되었는데 6층 갱도를 따라 들어가니 거대한 규모의 동굴 안이 형형색색의 소금기둥과 소금다리, 수십 미터 깊이의 소금호수, 크리스탈이라 이름 붙인 보석들로 눈부시다.
동굴 안이 시원한 소금광산의 현란한 모습
한 시간 넘게 소금광산을 돌아보고 나오니 오후 5시가 넘었다. KHWERA라는 작은 도시에 여자대학교가 있고 소금광산에는 관광객을 유치하는 리조트도 만들어졌는데 찾아오는 이들의 발길이 뜸하다. 버스의 조수는 길가에서 커다란 소금덩어리(마치 광석처럼 단단하고 맑은 색깔이다)를 하나를 주워 차에 싣는다.
고속도로를 힘차게 달려 평원을 지나는 이슬라마바드에 이르니 저녁 8시가 지났다. 외곽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서니 깨끗하고 큰 방에 에어컨도 달려 있어 이틀간 묵기에 쾌적한 휴식처다. 한국에서 가져온 즉석 비빔밥으로 저녁식사를 한 후 더위에 지친 몸을 씻고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켜니 아내의 문자메시지가 들어와 있다. '이곳도 불볕 더위, 몸조심하고 열심히 챙겨 드세요' 다른 배낭여행팀과 달리 이번에는 여러 쌍의 부부가 참여하였다. 일행 중 최고령에 해당하여 언행이 조심스러운 터, 아내의 격려에 힘을 얻어 기쁜 마음으로 꿈나라에 빠져든다.
추신,
예수는 사람들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교훈하거니와 뜻하지 않게 거대한 소금광산을 찾게 한 섭리를 가슴에 새긴다. 때에 맞춰 이슬라마바드의 숙소에서 'DAWN'이라는 파키스탄 영자지의 표지에 이명박 대통령이 형과 측근의 부패 스캔들을 머리 숙여 사죄하는 사진이 크게 실려 있는 신문을 보았다. 관련기사에는 이대통령 이전의 여러 대통령들도 측근과 친인척들의 부패스캔들에 휘말렸다는 내용도 덧붙여져 부끄럽고 안타까운 마음이다. 이를 보며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태복음 5장13절)는 성경구절이 떠올랐다.
정수일이 쓴 '실크로드문명기행'에는 간다라 지방이 또 다른 실크로드루트의 시작이라고 적혀있다. '파미르고원 서쪽의 서아시아 지방에는 기원전 6세기경에 이어 정비된 교통로가 있었다. 아케메네스 조 페르시아 다리우스 1세(기원전 522-486 재위) 때에 인도 서북부의 간다라지방부터 이집트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정연한 교통망이 사통팔달하여 영내 23개 주와의 연계가 활발했다. 그 바탕에서 오아시스 발단이라고 할 수 있는 수도, 수사로부터 아나톨리아의 사르디스에 이르는 이른바 '왕의 길'이 개통되었다.' 우리는 오늘 그 길의 초입에서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로 온 셈이다.
4. 간다라를 대표하는 탁실라와 숲이 많은 이슬라마바드
7월 25일, 아침에 일어나니 구름이 짙게 끼고 빗방울이 떨어진다. 나중에 알아보니 연간 강수량이 1,130mm로 한국과 비슷하다. 비가 제법 내렸는지 기온이 약간 내려간 느낌이다. 숙소에서 제공하는 아침식사를 들고 휴식을 취하다가 오전 10시에 수도에서 35km가량 떨어진 전통 유적지 탁실라로 향하였다.
탁실라 가까운 산 전체를 반 토막으로 잘라서 석재를 캐 낸 큰 산의 모습이 장관이다. 탁실라로 들어서는 길 좌우에 공업 단지가 제법 크고 교육 과학 도시와 공과 대학 표지도 눈에 띈다.
탁실라는 2세기 전후 수백 년에 걸친 불교의 흥성을 간직한 여러 유적지가 각기 세계 헤리티지 자연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간다라를 대표하는 유적지다.
쥴리안 유적지 강당자리의 옥상에서 바라본 간다라 문화의 흔적들
첫 번째 들른 줄리안(JULIAN) 유적지는 300피트의 약간 높은 언덕에 2세기 무렵에 조성된 많은 불상과 교육 현장이 생생하게 보존되어 있다.
두 번째 들른 시리캅(SIRICAP)은 고대 도시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어서 불교와 함께 배화교(조로아스터교)의 제단도 눈에 띈다.
세 번째 들른 다라마라지카(DHARAMARAJIKA)는 5세기 전후의 불교 유적지로 탁실라 지방이 원시 불교의 중흥에 큰 역할을 한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유적지 인근에서 현지음식으로 점심을 든 후 탁실라 박물관에 들르니 석가모니의 탄생으로부터 불교 증흥에 이르는 여러 유적과 기록들이 일목요연하게 전시되고 있어서 지금까지 피상적으로 알았던 초기 불교의 진면목을 그 현장에서 생생하게 접한 셈이다.
탁실라 유적 탐방을 마치고 이슬라마바드 시내로 들어오니 오후 4시가 넘었다. 내일 오전부터 24시간 이상 버스로 장거리 이동하는 것에 대비하여 쇼핑센터를 찾으니 이틀 전 라호르에서 들른 대형 시장이 아니라 동네 슈퍼 같은 소규모 상점들이다. 진열된 상품이 빈약하고 값은 엄청나게 비싸서 일행 모두 혀를 내두르며 울며 겨자 먹기로 빵과 과일 물 등 필요한 것들을 한 아름씩 사들고 나온다.
이어서 찾은 곳은 파이잘 모스크, 사우디아라비아의 파이잘 왕이 재정 형편이 어려운 파키스탄에 무료로 세운 파이잘 모스크는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초대형 이슬람 사원으로 알려져 있다. 로켓트 모형처럼 뾰족하게 솟은 파키스탄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구나.
오후 6시 지나 모스크를 출발하여 이슬라마바드의 산길을 따라 500여 미터 높이의 전망대에 이르니 숲 속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이슬라마바드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전망대의 안내판에는 1960년에 그리스 건축가가 설계하여 1963년부터 수로로 조성한 계획 도시 이슬라마바드의 인구는 교회를 포함하여 63만, 시내에는 32만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최저 기온은 섭씨 영하 3도, 최고 기온은 섭씨 45도라고 기록되어 있다.
바쁜 하루 일정을 마치고 호텔에 돌아오니 저녁 8시가 가깝다, 서둘러 저녁 식사를 하고 휴대폰을 켜니 외교통상부에서 보낸 문자 메시지가 뜬다. 파키스탄은 여행 제한 국가이므로 긴급한 용무가 아니면 빠져 나오라는 내용이다. '귀하는 여행 제한 국가 방문 중 미긴급 용무 시 신속히 제 3국으로 출국 요망'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네며 사진을 같이 찍자고 친절을 베푸는 모습들이 평온하다. 이런 순박한 국민들과 달리 불안을 조성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세계 도처에 잠복하고 있는 갈등과 불안의 요소가 사라지기를 염원하며 우리 일행은 물론 인류 전체의 평안을 비는 마음이다.
이슬라마바드의 산길 전망대에서 바라본 숲속의 도시 모습
추신,
친지로부터 다음과 같은 문자 메시지가 왔다.'여긴 폭염으로 고생, 스탄에 항상 즐거움이 가득하길." 이곳 도로에서 근무 중인 경찰이 햇볕을 막느라 양산을 받쳐 들고 있다. 여름철은 어디나 덥기 마련, 이열치열이라, 폭염도 즐거운 마음으로 이겨내자.
5. 카라코람 하이웨이와 히말라야의 끝자락을 달리다
7월 26일, 오전 9시, 이슬라마바드를 출발하여 파키스탄의 동북 지방을 종단하는 장거리 버스 투어에 나섰다.
원래는 대우 익스프레스(현지의 장거리 시외버스)를 이용할 계획이었으나 도중에 다른 버스 편으로 갈아타는 불편함이 있어서 파키스탄 현지 여행사가 입국 때부터 제공한 관광버스로 최종 목적지까지 이동하게 되었다.
카라코람 하이웨이는 이슬라마바드에서 파키스탄의 최북단까지 이어지는 전날 문화 탐방을 다녀 온 탁실라를 거쳐 여러 중소 도시를 경유하는 800여 km의 산간도로다.
세 시간여를 쉬지 않고 달리니 산자락을 배경으로 군부대와 대학 등이 있는 큰 도시가 나타난다. 도로변의 식당을 탐문하니 라마단 기간이어서 낮에는 영업하는 곳이 별로 없다. 한 곳을 찾아 볶음밥과 비빔면을 주문하니 미처 준비가 안 되어서인지 한 시간 이상 기다리게 한다. 늦게 나온 점심을 들고 오후 2시 반에 다시 버스에 오르니 점점 깊은 산들이 도로 양편으로 이어지고 울창한 전나무 숲이 10여 km 넘게 펼쳐진다. 오후 4시쯤에는 짙은 먹구름이 끼고 비가 내리기도 한다. 점점 깊은 산길로 접어드니 짙은 석회수의 강줄기가 나타나고 큰 다리를 건너니 무장 군인들이 삼엄하게 경계를 서서 검문을 한다.
험준한 산맥을 끼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 이곳에서부터 수백km가 이어진다.
강줄기를 따라 험준한 산자락을 깎아 만든 아슬아슬한 도로를 버스는 서너 시간을 달리다가 30분쯤 휴식을 취한 후 밤에도 계속 달린다. 저녁 8시가 지나니 주변 경관이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의자에 않은 채 잠을 청하니 차체가 덜컹거리는 충격 속에도 잠결에 빠져든다. 자정쯤 어느 마을에 도착하니 늦은 시간에도 자두와 살구를 파는 행상이 전을 펼치고 있어서 자두를 1Kg 샀다. 가이드는 탈레반이 출몰하는 지역을 빨리 벗어나야 한다며 갈 길을 재촉한다. 경찰관이 버스에 동승하고 경찰차 한 대가 버스 뒤에 따른다. 갑작스럽게 약간 불안한 기분이지만 트럭이 줄을 잇고 다른 버스도 운행 중이어서 마음을 놓는다.
새벽 4시에 질라스라는 마을에 도착하니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다. 오전의 목적지인 길깃트까지는 150km,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4시간쯤 걸린다고 한다. 산세가 점점 높아지며 1000미터가 넘어 보이는 절벽들이 끝없이 펼쳐지고 멀리 설산의 모습도 눈에 띈다. 웅장하게 펼쳐지는 산맥들은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암벽들이어서 큰물이 흐르는 강변이 온통 모래와 바위 뿐의 황량한 풍경이다. 오전의 목적지인 길깃트에 이르니 오전 9시 반,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초목이 무성하다. 작은 비행장도 있고 군부대, 휴양시설 등이 눈에 띈다.
길깃트에서 오늘의 목적지 훈자까지 다시 네 시간 거리, 점점 높은 산들이 나타나고 설산도 많아진다. 두 시간쯤 달리니 멀리 보이던 설산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버스가 멈춰 선 곳은 락카포쉬(Rakaposhi) 전망 포인트, 높이 7,783미터의 고봉이 흰 눈에 뒤덮인 채 장대한 모습을 드러낸다. 전망 지점의 표고가 2.000미터쯤이니 실제로는 5,800여 미터의 까마득한 봉우리가 지척에 펼쳐진 것. 네팔과 티베트에서 멀리 에베레스트 정상은 살핀 적이 있지만 이처럼 근접한 곳에서 8천 미터 급 정상을 바라보는 감회가 별다르다. 설산과 웅봉들의 장엄한 모습을 보기 위해 밤새워 달려온 카라코람 하이웨이의 대장정이 보람 있구나.
길가의 전망 포인트에서 바라본 라카포쉬(7,783m) 설산의 웅장한 모습
라카포쉬를 뒤로 하고 최종 목적지인 훈자로 향하였다. 설산과 영봉을 보고나니 낭떠러지 강변길이 아찔하게 시야에 박힌다. 건장하고 듬직한 운전기사는 이곳까지 한숨도 자지 않고 버스를 몰았다. 라마단 기간이어서 낮에는 식사도 거른 채, 베테랑 기사여서 험난한 코스를 안전하게 운전하는 노고가 고맙다. 실수가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난코스, 추락하면 끝장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탈레반보다 더 무서운 것이 안전사고 아닐까, 여행사는 고객의 안전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하겠다.
중국의 시인 도연명이 이곳이 샹그릴라라고 찬탄하였다는 훈자에 이르니 오후 3시, 표고 2,250미터의 산속 마을이 아늑하고 시원하다. 언덕받이에 있는 호텔에 여장을 풀고 주변을 잠시 돌아보았다. 고봉들이 사방으로 들러 있고 누렇게 익은 살구가 지천으로 달려 있다. 길가에 떨어진 살구를 주웠더니 살구를 한 바구니 따가지고 가던 소녀가 다가와 잘 익은 살구를 한 웅큼 집어준다. 마음씨 좋은 훈자의 소녀야, 행복한 삶을 이루라.
저녁이 되니 제법 서늘하다. 밤하늘에 별빛이 총총하고 설산 위에 걸린 반달 빛이 영롱하다. 도연명이 아니라도 설산과 영봉으로 둘러싸인 한적한 명승에서 마음 속 깊이 스며드는 영감을 필설로 담기 어려워라, 몸과 마음이 가뿐하여 날아갈듯 하도다.
추신,
오늘(7월 27일)은 한국 전쟁의 휴전 조인 59주년이고 런던 올림픽 개막일이다. 아직도 전운이 감도는 파키스탄 땅에서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모든 나라에 평화가 깃들기를, 온 인류의 화합과 페어플레이를 기리는 올림픽에서 좋은 소식 있기를 염원한다. 어제 멕시코와의 축구 경기는 어찌되었는지 궁금하다.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