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9 주일설교
본문: 눅 14:25-33
제목: 주의 제자가 되려면
여러분 생각에, 제자가 되지는 못해도, 구원은 받을 수 있을까요?
제자는 너무 어려워서 못하겠고, 구원만 받을래요 해도 될까요?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면, 구원도 못 받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제자 수준과 구원의 수준이 다르다고 주님 말씀하신 적 없다.
구원 받은 자가 적으니이까? 물음에 주님 대답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이셨다.
결국 우리가 주님의 제자가 능히 되지 못하고,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은
자신과 가족과 재물과 소유에 집착하는 데 있다.
1. 자기 가족, 자기 목숨까지 미워해야 한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14:26)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 자매가 누구인가?
자기 가족이요 자기 가정 아닌가?
자기의 소속이요 혈연이요 분리할 수 없는 관계요 자기의 연장이다.
자기 목숨과도 연결되어 있는 관계요 밀착되어 있다.
그런데, 주님은 서로 밀착되어 있는 이 가족 관계는 물론,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하신다.
심리학, 상담학은 가정 가족 중심, 부부 중심, 자녀 중심을 노래하는데,
기절하고 절망하고 분노할 일이다.
이 관계, 내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
다른 것의 제자가 이미 되어 있는 사람은 그 다른 것을 끊어내지 않고서는
주님의 제자가 능히 될 수 없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맞는 말이다.
한 공간을 다른 둘이 차지할 수 없는 것이 물리학의 기본 법칙이다.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다.
가족과 자기 목숨의 제자가 되어 있는 사람이 주님의 제자가 동시에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현실적으로 물리학적으로 너무도 당연한 이치를 왜 거부하고 놀라는가?
둘 다 갖고 싶은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재물도 하나님도 다 갖고 싶고, 세상의 것도 하나님 나라도 다 갖고 싶고, 자기 의도 하나님의 의도 다 갖고 싶고, 가족과 자기 목숨의 제자도, 주님의 제자도 다 되고 싶은 것이다.
모든 것 움직이는 ‘마음의 자리’는 공간처럼 하나가 차지하면 다른 것은 들어갈 수가 없다.
둘 다 가질려고 하는 것은 이중인격이요, 겉과 속이 다른 것이다.
그래서 너희 의가 바리새인의 의보다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바리새인의 의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돈과 재물을 사랑하고,
근채와 회향의 십일조는 드리면서도 의와 인과 신은 버리고
율법을 지킨다고 하면서, 세상을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탐한다.
사실은, 능히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자기 부모, 처자, 형제 자매, 자기 목숨도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진리이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자가,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는 것과 같다.
2.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라야 한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27)
자기 십자가가 무엇인가?
주님의 십자가에는 주님의 목숨이 달려 있었다.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자기 십자가에는 당연히 자기의 목숨이 달려 있어야 한다.
자기 목숨이 죽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능히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
내가 살아 있는 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자기 의대로 살려고 할 것이니,
주님의 제자가 능히 될 수가 없다. 자기의 제자가 될 뿐이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라”(눅17:33)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10:39)
이 역설이 기독교이고, 참 신앙이고, 참 교회 신앙이다.
사도 바울의 고백은 치 참 신앙의 모델이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3:7-9)
아브라함도,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이 보여 줄 땅으로 갔다.
모세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
요셉도, 자기 가족을 떠나 자기 목숨까지도 위험한 과정을 거치게 하셨다.
다윗도, 자기 가족을 떠나 적국에 망명생활하고 시글락 위기를 거치게 하셨다.
욥도, 자기의 모든 것과 목숨까지도 위태로운 과정을 거치게 하셨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 다 그물과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려면 자기가 의지하고 소유하던 모든 것을 내려 놓아야 한다.
그런 과정을, 주님은 통과하게 하신 다음, 능히 당신의 제자가 되게 하신다.
그 광대한 광야 불뱀과 전갈이 있고 간조한 땅을 통과하게 하는 것은 자기 십자가 지는 것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는 것은 주님의 제자가 능히 되는 과정이다.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이 고난이 많고 극심한 것은 능히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인생 여정을 주관하시고 통치하시면서 홍해로 광야로 가나안으로 인도하신다.
소중한 관계와 자기 목숨까지도 버리는 과정을 통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게 하신다.
3.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려야 한다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27-33)
주님의 제자가 될려고 시작은 했다가 능히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유와 결말을 말씀하신다.
처음은 되었다가 나중은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제자가 되겠다고 쉽게 나서지만 그 과정을 쉽게 보고 우습게 여기다가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고 보는 자가 다 비웃는 대상이 되고 마는 것이다.
망대 하나 세우는 것도 자기가 가진 것으로 그 비용을 계산해 봐야 준공할 수 있다.
전쟁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능히 주님의 제자가 되기까지 내가 가진 것으로 준공할 수 있는지 계산해 보아야 한다.
그 비용 계산이 말씀 공부이고, 믿음의 선진들의 삶을 공부하고 본 받는 것이다.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이 말씀을 가볍게 듣지 말라.
‘너희 중의 누구든지’는 한 사람의 예외도 없다는 것이다.
버릴 것은 ‘자기의 모든 소유’이다.
부분적으로 버리고, 흉내만 내어서는, 겉으로만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않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쳐야 한다.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인간의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거듭나고, 말씀으로 거듭나야 제자가 될 수 있다.
선교도 변질되고, 회심도 변질된 제도권 종교에서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초기교회와 발도교회의 사도적 전통을 회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