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직수 초상-초상에 담지 못한 사대부의 삶(이경화).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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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되지 않은 것을 귀하게 여겼다
서직수 초상, 서직수 찬
이명기가 얼굴을 그리고 김홍도가 몸을 그렸다.
두 사람은 이름이 있지만, 한 조각 영대는 그리지 못했다.
아깝다. 어찌 산에서 도를 닦지 않고 명산잡기를 보느라 심력을 낭비했는가.
그 일생을 대략 이야기한다면 속되지 않은 것을 귀하게 여겼다고 할 것이다.”
(李命基畵面, 金弘道畵體. 兩人名於畵者, 而不能畵一片靈臺. 惜乎. 何不修道於林下, 浪費心力於名山雜記. 槪論其平生, 不俗也貴).
한 조각 靈臺[心]를 그리지 못하는 초상화의 속성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살펴보았다. 이 그림을 다시 에로 든 이유는 서직수의 자찬이 말하는 자기 표현의 양상을 더하여 보기 위함이다. 서직수의 글을 풀어 읽으면 이러하다.
“두 화가는 실력이 출중하여 나의 모습을 잘 그렸다. 원래 초상화란 마음을 그리지 못하는 것이며, 유명한 화가들도 예외가 아니다. 아, 나의 생활 태도에는 문제가 좀 있었지. 그래도 내 마음에 속됨이 없다는 것만은 자신할 수 있다.”
이는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자신의 내면을 굳이 말하려는 뜻이지, 마음을 못 그렸다고 화가들을 핀잔하는 내용은 아니다. 서직수 초상은 김홍도, 이명기가 정성스럽게 그린 그림이요, 조선 후기 초상화의 명작으로 꼽힌다.
서직수가 스스로 속되지 않다고 주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속된 행위를 일삼아 心力을 낭비한 것에 대한 자기 변호일까, 혹은 속되다는 오해를 받을 만한 무엇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일까. 당대 최고의 화가들이 그려낸 값비싼 초상화 위에 누군가가 급히 고친 네 글자 ‘名山雜記’가 시선을 끈다. 서직수가 원래 슨 네 글자는 무엇일까. 거기에 그 답이 있을 것 같다.
관련된 기록을 보면, 서직수는 부유했고 상당한 호사취미를 누렸다고 한다. 속되지 않았노라는 강력한 자기 표현이 여러 가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自讚이다.
(고연희, <화상찬으로 읽는 사대부의 초상화>, 2015, 128~130쪽)
4월 4일 아파트 앞 '새천년대로'에 벚꽃이 만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