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노조의 전임자 수를 대폭 축소한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근면위)의 결정으로 대형 노조 중심의 강성 노동운동을 뜻하는 '노동의 1987년 구(舊)체제'의 해체가 더 빨리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화 흐름 속에서 태동했고,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1987년 체제'는 지난해 KT·쌍용차 노조 등이 민노총을 "구시대적 노동운동"으로 비난하며 탈퇴함에 따라 균열 조짐을 보였으며, 타임오프제 도입으로 갈수록 존립 기반이 좁아질 전망이다.
◆"대형노조는 임금 스스로 감당할 수 있다"
근면위는 1일 새벽 3시 표결을 통해 타임오프(유급근로시간면제) 상한선을 ▲대형노조는 지금보다 대폭 축소 ▲중·소 규모 노조는 현행 규모 유지하는 골격으로 의결했다.
근면위는 4월 30일 오후 3시부터 마라톤협상을 벌인 뒤 새벽 2시 50분쯤 노동계 위원들의 반발 속에 표결을 통해 찬성 9, 반대 1, 기권 5으로 타임오프 상한선을 결정했다. 근면위는 조합원 규모에 따라 타임오프 상한선 적용 구간을 총 11개로 나눴으며, 규모가 커질수록 전임자 수를 늘려가되, 대기업에 대해서는 증가폭을 역진적으로 적용했다.
김태기 근면위원장은 2일 기자 브리핑에서 "사용자가 돈을 지급하는 유급(有給) 노조활동시간을 축소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과 함께, 근로조건이 열악한 중소규모 노조의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는 현실을 감안했다"며 "조합원 1만5000명 이상 대형노조는 재정자립도가 높기 때문에 유급 전임자 수를 대폭 줄여도 노조 스스로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들은 반발… "전임자 오히려 늘 수도"
민노총으로 상징되는 '1987년 체제'의 주도세력은 그동안 대기업 노조가 확보한 수백명의 전임자들을 통해 조합원의 투쟁의식을 고취시키고, 대외적으로는 정치적 이슈를 내걸어 대규모 대중집회를 주도해왔다. 근면위가 타임오프 상한선을 역진적으로 결정한 것도 대기업 노조에 타깃을 맞춘 것으로 해석된다.
노동계는 크게 반발했다. 양 노총은 근면위가 법정 활동기한인 4월 30일을 넘겨 5월 1일에 표결처리한 것은 "불법"이라며,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양 노총은 법원에 효력정지가처분신청을 제기할 방침이다. 민노총은 총파업 등 전면적 투쟁도 경고하고 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도 2일 민노총 지도부를 만나 "5월 국회에서 이 문제를 환노위차원에서 철저하게 따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노동자들과 국민 여러분의 뜻을 반영하는 필요한 조치가 꼭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전경련 등 경제4단체는 노동계의 요구를 너무 많이 반영했다는 불만을 제기하면서도 이 제도의 철저한 시행을 정부에 촉구했다. 반면 중소기업들은 반발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대기업 노동조합의 전임자 수는 대폭 줄어드는 데 반해 중소기업의 전임자 수는 오히려 늘어날 수도 있다"고 비난했다.
◆'비공식 전임자'는 당분간 존속할 듯
실제 노동현장에 새 제도가 뿌리내리기까진 장애물이 적지 않다. 민노총이 경고하는 총파업은 실현 가능성이 적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지만, 더 큰 문제는 실제 노사협상 과정에서 '비공식 전임자'들이 다수 출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형노조들이 사용자를 압박해 타임오프 한도 이상의 전임자를 편법으로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형노조들이 힘의 논리로 사용자를 압박, 다양한 명목으로 비공식 전임자를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며 "그러나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노조의 반발 속에 서서히 정착된 것처럼, 타임오프제도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기본 흐름을 바꿔놓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타임오프(time-off·유급근로시간면제)
사용주로부터 임금을 받으며 근로 대신 노조 활동을 할 수 있는 제도. 지난 1월 개정된 새 노동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포함돼 오는 7월부터 시행되며, 타임오프 상한선을 어기면 사용주가 처벌받는다. 미국·영국 등에서 노조 간부가 회사 일을 하면서 노사협의 등 노사공동의 업무에 한해 예외적으로 노조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편의를 봐주는 제도에서 유래했다.
첫댓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