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산도 종도사님 도훈말씀
본래 우주가 태어난 조화세계를 신이다, 도다, 하나님이다, 부처다 등 여러 가지로 얘기한다. 그것을 우리 순수한 한글세계에서는 ‘알’이라고 한다. 태초에 우주가 태어난 생명의 ‘알’이 있었다. 그런데 그 ‘알’에서 마음이 나왔다는 것이다.
“내 마음이 아프다.” “내 마음이 기쁘다.” 할 때 ‘맘’이란 우주가 태어난 생명의 근원자리 ‘알’에서 왔다. 그러므로 마음은 온 우주가 태어난 생명의 근원이다. 그런데 그 마음에 무슨 문제가 있어서 닦는다는 것인가?
닦는다는 것은 이미 더러워진 걸 깨끗하게 씻어낸다는 뜻 아닌가. 우리의 생명을 움직이게 하는, 우리의 생명을 끌고 나가는 주인이 마음이다. 그런데 그 주인의 깨어있는 경계가 시시각각 다르다. 잘 때와 일할 때가 다르고, 무엇에 집중할 때와 흐리멍덩하게 딴 생각할 때가 다르다. 밥 먹으면서 재미있는 뉴스를 듣는다든가 좋은 영화를 본다든가 할 땐, 뭘 먹고 있는지 조차도 잊어버린다. 보는 쪽으로만 정신이 가 있기 때문에 감각이 마비되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 몸 속에서 사물을 느끼고 터득하고, 뭘 배우고 아는 인식 작용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인간의 감각 작용은 너무도 변화무쌍하다.
서양 명언에 이런 말이 있다. “(Now and here.지금 그리고 여기)” 생명, 진리, 깨달음, 고통, 자유, 구원, 그 모든 삶의 궁극적인 명제는 지금, 여기를 떠나서는 성립될 수 없다. 곧 인생은 지금 여기서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마음을 닦으려면, 현실의 삶을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바탕으로, 불가, 선가, 유가의 가르침을 알아야 된다.
감각에 따른 마음의 작용
불가의 유식학(唯識學)에서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마나식 그리고 알라야식을 얘기한다. 일반적으로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이 오식(五識)이다. 안식(眼識)은 눈으로 보고 아는 것이고, 이식(耳識)은 귀로 들어 아는 것, 비식(鼻識)은 코로 냄새 맡아서 아는 것, 설식(舌識)은 혓바닥으로 맛을 봐서 아는 것, 신식(身識)은 온몸으로 느껴서 아는 것이다. 그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주는 것이 첫 번째 안식(眼識)이다. 눈으로 강력한 게 들어오면, 그것이 장애물이 되어 끊임없이 괴롭힌다. 수행을 할 때 집중을 못 하고 자꾸 딴 생각으로 빠져버린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온몸으로 느끼는 안이비설신 다섯 가지 감각을 통해 사물이 우리 의식에 들어오는데, 그것이 정상적으로 순화되어 내 생명을 기쁘게 하고, 내 마음을 밝게 해주고, 나를 깨어있게 하고,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경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그게 전부 마장(魔障)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오식(五識) 다음에 의식(意識)이 있고, 일곱 번째 마나식이 있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연결해주는 중간 고리가 마나식이다. 그리고 제8식이 인간의식의 바탕, 생명 의식의 창고 역할을 하는 알라야식이다. 그걸 장식(藏識)이라고도 하는데, 장藏이란 저장한다는 의미다. 우리가 우주에서 태어나 살아온 삶의 전과정이 의식의 바다인 장식(藏識), 무의식에 전부 그대로 기록돼 있다.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
수행을 하다보면 어릴 때 생각이 그대로 다 난다. 비록 어려서 말은 못해도,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문득 자연과 하나가 됐었다면, 그 때의 장면이 평생토록 잊혀지지 않는다. 사진이 찍히듯 순수의식에 기록되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어릴 때 일이 모두 떠오른다.
마음을 닦는다는 것은, 첫째 사물에 대한 인식 능력을 높이는 것이다. 수행을 통해, 몸의 기운이 수승화강(水昇火降)의 과정을 거쳐 정화된다. 생리학적으로 우리 몸의 기능은 삼초(三焦)로 나누어진다.
폐, 심장, 머리가 상초(上焦)이고, 비위 중심의 소화기관이 중초(中焦), 방광, 신장 등 배설, 생식하는 기관이 하초(下焦)다. 즉 상초上焦에는 신神이 작용하고, 하초下焦에는 신神이 생성되는 힘의 근원, 내 몸이 생명활동을 하는 에너지의 근원인 정精이 자리잡고 있다. 그게 내 몸 속의 천지다.
정精은 곧 땅이요, 신神은 곧 하늘이다. 정신精神! 인간은 몸 속에 하늘과 땅을 지니고 사는 것이다. 수행을 통해 우리 몸의 천지 기운이 밝아지면, 사람을 바르게 보고, 사물의 내면과 본성을 보기 시작한다.
둘째, 수행을 하면 모든 생명의 본성인 신성(divinity)을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이 열린다. 마음은 체(體)와 용(用)으로 나누어 말할 수 있다. 체體란 무엇을 보고 듣고 말하는 등, 주변의 사물과 관계를 맺고 마음이 작용하기 전 단계, 근원 마음이다. 그것을 성性, 본성이라고 한다. “야~, 그래도 걔는 바탕은 착해. 본래 마음은 그런 애가 아니야. 본성은 착해.” 이런 말에서처럼, 본성이란 ‘본래 성품’이다. 그런데 모든 생명의 본래 성품은 같은 경계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늘이나, 땅이나, 사람이나, 짐승들이나, 돌멩이나, 흙덩어리나, 흐르는 물이나, 타오르는 불이나, 저 태양과 달, 은하계 별들이나, 그 본성은 모두 똑같다는 말이다. 본성은 열려있는 우주생명 의식이다. 대우주와 완전히 하나가 돼 있는 환한 불덩어리, 그러면서도 아주 시원하고 의식이 평온해지는 대광명의 경계다. 거기 보면 우주 만유가 다 살아 있다. 천지만물과 하나가 된 일심 경계, 그런 절대 평등의 경계, 절대 순수 의식에 돌아가 머물러야 한다. 이것이 선후천을 막론하고 모든 종교의 핵심 가르침이다. 이러한 본성에 머무르려면, 그 동안 살아오면서 저지른 모든 죄업을 정화해 나가야 한다.
마음 닦는다는 것은, 바로 자기의 후천적인 성품 그걸 기질이라고 하든, 성격이라고 하든, 환경적인 요인 등 여러 구조적인 문제 속에서 형성된 지금의 ‘나’라는 독립된 개체가 갖고 있는 것 가운데 문제되는 것을 정화해서, 천지율려의 조화 속에 일체를 이루는 본래의 자기 생명의 모습, 즉 본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 경계를 불가에서는 불성佛性이라고 한다.
그 다음, 하나의 개체로서 구체적인 의식활동을 하는 것,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느끼는 걸 정(情, emotion)이라고 하는데, 마음은 동하기 전의 본래의 근원 모습인 본성과, 구체적으로 사물에 동화되어 작용할 때의 감정 둘 다를 포괄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가에서는 “심통성정心統性情”, 즉 “마음은 성性과 정情을 통섭한다.”고 말한다. 앞서도 말했듯이, 불가의 유식설에서 말하는 인간의 감정활동에는 오식五識과 의식, 그 다음 의식과 무의식을 연결해주는 통로로서 제7식 마나식, 그리고 내 생명 의식의 거대한 바다와도 같은 바탕인 장식藏識, 알라야식이 있다.
나무로 얘기하면, 잔가지들이 오식(안이비설신)이고, 잔가지들 아래로 뻗은 줄기가 의식, 의식의 줄기와 뿌리를 연결하는 가운데 큰 줄기가 마나식, 그 다음 뿌리가 알라야식이다. 뿌리에서 모든 게 뻗어나가는 것처럼, 인간의 말이나 행동, 습관들은 그 사람이 과거에 행해 온 모든 것이 바탕이 되어, 저도 모르게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을 닦으려면 자기의 과거 인생사, 더 나아가 전생부터의 어둠까지 모두 씻어내고, 잘못한 것, 죄 지은 것을 정화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도 기초 작업에 불과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수행을 통해 내 몸 자체를 정화해서 의식의 경계를 넓혀야 하는 것이다.
수행하려고 눈을 감으면, 처음에는 아무 것도 안 보인다. 안식(眼識)이 막혀 있기 때문이다. 또 몇 미터 이상만 떨어져 있어도 소리를 듣지 못한다. 냄새도 일정한 거리 이상이 되면 맡지 못한다. 이것이 보통 중생들의 몸이다. 그런데 수행을 통해 수승화강(水昇火降)이 되면서, 내 몸의 음양 기운이 개벽되어 율려도수를 회복하기 시작하면, 혼탁한 음양이 순수음양으로 정화된다. 그렇게 되면, 눈을 감아도 다른차원의 경계가 환히 보인다. 또 깊은 밤 주문(呪文,mantra)을 읽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귀에서 뚝 소리가 난다. 귓밥이 스스로 파헤쳐져서 떨어져 버리는 것이다. 또 아주 먼 곳에서부터 소리가 들린다. 산에 있는 나무들이 바람에 춤추면서 자기들끼리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수행을 한다는 것은 바로 내 의식의 경계가 천지의 대생명과 하나가 되어, 내 생명이 온 천지의 생명 자체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체득하게 되는 경계가 있다. 정신이 확 깨져서 수행을 잘 하면, 어느 순간 내 몸이 없어진다. 내 몸뚱아리가 온 우주 생명 자체라는 열려있는 의식의 경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첫 경험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렇게 되면 수행을 하지 말라고 해도 하게 된다.
수도修道의 궁극의 목적은 세속적인 말로 도통道通이다. 불교의 도법은, 오로지 견성見性을 하려고, 부모형제도 세상도 다 등진다. 도통을 하기 위해 그러는 것이다. 수행이란 자기가 자기 심법을 연마하는 것이다. 명칭이야 참선이라 하든, 수도, 수련이라고 하든, 뭐라고 명명하든지 간에 다 一心을 강조하는 것이다. 오직 일심으로써만 참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
우리민족 고유의 수행법인 태을주 수행을 해보면 알겠지만, 거기까지 가는 과정에서, 왜 그런지 쓸데없는 생각이 자꾸 난다. 잡념을 버려야 하는 것이 원칙인데, 잡념을 버리기는커녕 엄마 젖 먹을 때 생각까지 다 나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다 잊어버렸던 게 정신이 아주 말쑥해져서 더 많이 생각나는 것이다. 열 배 스무 배 더 난다. 그러다 차차 시간이 지나면 그런 게 없어진다. 그게 마치 뭐와 같으냐 하면, 물 한 동이 떠다가 하루고 이틀이고 놔두면 물 찌꺼기는 가라앉고 아주 맑은 물만 남는 거와 같다. 그것과 같이, 수도할 때는 세속적인 혼탁한 생각이 다 가라앉아야 한다.
화식火食, 불로 익힌 밥을 먹고 세상 사물을 접하면서 여러 십 년 동안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정신이 혼탁해지는데, 물 찌꺼기 가라앉듯이 잡념이 없어져야 한다. 지속적으로 수도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망형망재’가 된다. 나의 형상도 잊어버리고 나의 존재도 잊어버린다. 망형망재가 되면 ‘물아物我가 구망俱忘’이다. 사물도, 나라는 것도 함께 다 잊어버린다. 아무 것도 없다. 자연하고 내가 합치되어 하나가 돼 버린 것이다. 그렇게 되면 훤하게 다 보인다.
광명이 어느 정도까지 열리게 되느냐 하면, 1년 중 가장 밝을 때가 가을인데, 말쑥한 가을하늘처럼 환하다. 다시 얘기하면, 저 십 리 밖의 소나무에 송충이가 솔잎 갉아먹는 것까지 환하게 보인다. 그렇게까지 광명이 열린다. 그러면서 자꾸 점입가경漸入佳境으로, 다른차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경계까지 간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알아둬야 할 것은 수도를 하다 보면, 기혈 순환하는 데 따라서 신체의 온도가 40도 이상이 되기도 한다. 그 때 손으로 살을 대면 껍데기가 벗겨져 버린다. “그러면 생리학상으로 큰일나지 않습니까?” 이렇게 물을 수도 있지만, 괜찮다. 그렇게 해서 다른 차원의 세계에 들어가면 몇 시간이고 있을 수 있고, 그런 경계를 넘어서면 수행공부가 금방 된다.
그런데 수도 공부를 하려고 보면, 쉽게 얘기해서 무슨 마魔라고나 할까, 그런 게 자꾸 낀다. 공부하다가 잘못되는 사람이 숱하게 많이 나오는데, 그래서 올바른 공부를 하려면, 바른 길로 인도해 주는 사수師首가 있어야 한다. 수도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첫째 심법이 발라야 된다. 간혹 공부하는 사람들 중엔 공부도 못 하고, 입 삐뚤어지고 눈 삐뚤어지는 구안와사口眼喎斜 같은 병도 걸리는 사람이 있다. 또 수도라는 걸 잘못하면 귀신한테 홀려서.”살살 꾀어내면 그냥 넘어가 사도邪道, 곁길로 빠지는 사람도 그렇게 많다. 한 백 명 공부하면 90% 이상은 곁길로 빠져 버린다. 그게 왜 그러느냐?
세간에 사람 뚜겁을 쓰고 나온 사람 쳐놓고 원억을 맺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 원한 맺힌 신명들이 원한을 풀지못해서, 무슨 코만 있으면 달려붙어 삐꾸럭길로 끌고 가는 것이다.
하나 예를 들어 과거에 일주일을 한도로 해서 수련공부를 하는데 한 닷새쯤 되어서 박선경이라는 사람이 공부하다 말고 “왁!”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뒤로 나자빠진다. 그러니 여러 사람이 “왜 그랬냐?” 하고 물으니 이런 얘기를 한다.
그의 큰아버지 얘기다. 강원도 산골짝에 갈 것 같으면 나무뙈기로 얽은 삽짝문(사립문)이 있어서 밤에는 그냥 지쳐두고 낮에는 열어 놓는다. 그게 문 닫고 여는 것이다. 거기는 도적도 없다.
하루는 그 큰아버지가 볼일을 본다고 어디를 갔다. 그 일정이 거리로도 그렇고 한 사흘 걸려야 일을 마치고 돌아오게 됐다. 그런데 그날은 얼마 가다가 아는 사람도 만나고 해서 술 몇 잔 먹다가 시간이 없어서 못 가고, 얼큰하게 술에 취해서 밤중에 집으로 들어왔다. 그가 제 집에 돌아와 보니까 토방에 자기 마누라 신발하고 알 만한 동네 사람의 신발이 나란히 있다.
그걸보고 그 사람이 눈이 뒤집어져 버렸다. 그래서 욱 하는 생각에 헛간으로 달려가 도끼를 들고 연놈을 찍어 죽인다고 뛰어 들어갔다. 하니까 벌써 그 마누라는 뒷문으로 도망가고 동네 사람만 그 도끼에 찍혀 죽어 버렸다. 이유야 어떻든지 그의 큰아버지는 사람을 죽였으니 철창엘 갔다. 그런 사실이 있었는데, 그때 박선경이 도통을 하려고 하니까 그 죽은 신명이 도끼를 가지고 찍으러 달려붙더라는 것이다.
사실은 자기가 유부녀 보다가 도끼 맞아죽었으니 제 잘못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그게 아니다. 제가 아무리 잘못했어도 죽었기 때문에 복수를 하려고 한다. 신명세상도 그렇고 인간 세상도 저 잘못한 것은 전혀 생각을 안 한다. 그런 것이 척(隻)이다. 여러 백 대 내려오면서 그런 크고 작은 척신들이 달려붙어서 보복하려고 하는 것이다.
또 하나 예를 들어서, 인간세상에서는 다시 찾아볼 수도 없는 그런 미인이, 옥 같은 것으로 만든 좋은 술상을 차려놓고, 빵긋빵긋 웃으면서 한 잔 대접한다고 했다고, 그런 좋은 걸 봤다는 것이다. 왜 그런 게 보이냐 하면, 그가 본래 그런 걸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의 정신 자세가 그렇게 되어져 있다. 한마디로 얘기해서 그가 신명에게 코를 내준 것이다. 사람이나 속지 신명은 속지않는다.
신명神明은 인간의 정신을 다 들여다보고 있다. 신명이 보니까 고놈 정신이 꼭 그렇게 되어져 있더란 말이다. 하니까 그런 여자 신명이 달려붙어서 자기가 뜻하는 행위를 하려고 한 것이다. 신명神明은 육신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혼자서는 행위를 못 하고, 사람이 필요하다. 사람이 동조해야만 행위를 할 수 있다.
과거에 한 일주일을 한도로 해서 수련을 시켜보면, 어지간하면 사흘이면 다 개안開眼이 된다. 열 개開 자 눈 안眼 자, 개안은 신명神明세계를 보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우리 선조들은 그걸 ‘개안開眼’이라고 한다. 개안이 되면 신명을 본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유체이탈을 하여 어느 누구의 가정도 찾아갈 수 있다. 개안이라 하는 것이 도통하는 첫 관문이다.
그런데 개안시키는 게 원 목적은 아니다. 잘못 개안시켜 놓으면 게중에는 틀림없이 허튼 사람이 나온다. 개안이 되면 신神의 세계를 보니 참 요지경 속이다. 학을 타고 천상 구경도 하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마음 약한 사람들은 잡신한테 걸려든다. 사람이 어디 좋은 사람만 있는가? 젊은애들은 연애도 걸고 싶고, 그걸 표현 못해서 그렇지, 그러면 그런 신명이 달려붙어 버린다.
또 나만 잘 되려고 하는 사람들에겐 역신逆神이 붙는다. “네가 잘하면 하나님이 된다. 네가 교주도 하고, 네 방식대로 하면 구제중생도 할 수 있다. 판 하나 차려라.” 하고 홀리기도 하고, 별스런 일이 다 생긴다. 개안시켜 놓으면 관리하기도 어렵고, 그러다 잘못되면 사람을 버린다. 그런데 한 가지 좋은 점은 있다. 신명을 보기 때문에 ‘야, 정신세계라는 게 이렇구나. 이건 참 절대적이다.’ 해서, 삐꾸러지지만 않으면 새사람이 될 수도 있다.
또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데, 신계神界에 다녀와서 옛날 고고학을 줄줄 내리꿰는 사람도 있다. 그런 걸 보면 참 신기하다. 자기 성명도 못 쓰는 사람이 주역, 시전, 서전을 다 읽는다. 그게 사람마다 천태만상으로 나타나지만, 예를 들면 인간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풍모도 잘 생기고 인자하고 위대해 보이는 분을 접촉하게 되는 수도 있고, 또는 자기 조상님들을 만나기도 한다.
잡념이 없고 바른 기운을 갖고 사는 사람은, 예를 들어 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있을 때에는 그 기운이 보여지기도 한다. 미래상황을 볼 수도 있고, 또 어느 경지까지 가면 자기의 전생도 볼 수 있다. 그런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여러 가지를 체험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것에 너무 집착하면 못 쓴다. 그러다 잘못 되면 삐뚤어진다. 또 거짓말로 보여지는 것도 있다. 그런 데에 속아넘어가면 안 된다. 수도는 천지신명과 더불어 하는 것이다. 무형인 정신은 그렇게 되는데, 체질적으로는 어떤 변화가 오느냐?
첫째로 사람 인체 구조라 하는 것은 수화水火로 되어져 있다. 사람은 물기운과 불기운, 두 가지 기운을 가지고 산다. 사람의 콩팥이 양쪽으로 하나씩 붙어 있는데 콩팥 하나는 물(水)을 맡고 있고, 하나는 불(火)을 맡고 있다. 그런데 본래 물水은 밑으로 내려가려 하고 불火기운은 올라가려는 성질이 있다. 수화水火의 성질이 그렇다. 그렇건만 시간적으로 앉아서 수도를 하다 보면 수승화강水昇火降이 된다.
수화水火 기운이 뒤집어져서 물기운은 올라오고 불기운은 내려가는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수승화강이 더 잘된다. 제대로 하자면 물기운은 올라오고, 불기운은 아주 착 가라앉아서 다 꺼져야만 된다. 그래야 체질변화가 완전히 된 것이다. 며칠 수련해서는 그렇게까지 될 수 없다. 그건 시간이 필요하다.
수승화강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수기水氣가 척추를 통해 올라온다. 그러면서 이 얼굴에서 만의회집지상萬蟻會集之像이 일어난다. 만의회집지상이란 일만 마리의 개미가 모여드는 현상을 말한다. 만의회집지상이 되면 개미가 얼굴에 기어다니는 것처럼 섬섬대서 못 배긴다. 그런데 이건 피부 밖에서 그러는 게 아니고 피부 속에서, 살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가려워서 도저히 못 배긴다.
그게 바로 수기水氣가 순환循環하느라고 그런 것이다. 만의회집지상은 아주 미세한 세포에까지 수기가 올라오면서 기혈이 작용할 때 생기는 현상이다. 몸의 수분은 기氣가 끌고 다닌다.
기氣가 생동해서 수분을 끌고 와 수기水氣가 상승하는데, 그게 얼마 지나면 완전히 수승화강이 돼서 체질 개선이 된다. 그 경지에 가면 그런 현상이 다 없어져 버린다.
그렇게 되면 아주 피부도 말쑥해지고, 눈도 유리알보다 더 반질반질하니 광채가 난다. 수도하는 사람은 눈을 보면 안다. 또 한편으로는 인당印堂이 얼음을 갖다 얹은 것 모양 시원하다.
또 백회 부분을 정문頂門이라고도 하는데, 거기서 아주 맑은 기운이 뻗쳐오른다. 정문은 또 삼리三離라고도 하고, 이궁離宮이라고도 한다 그 이 자가 이방離方 이 자인데, 남쪽을 뜻한다. 턱 아래쪽이 북쪽이고, 위쪽이 남쪽이다. 기운은 정문頂門을 통해 내려온다. 그래서 정문을 쥐구멍이라고도 하는데, 수련을 하면 이 쥐구멍으로 기운이 오르고 내리는 걸 느낀다. 심령으로 통을 하고 육체적으로 수승화강이 돼서 체질이 완전히 변화되면, 청명한 맑은 기운이 하늘까지 꽨다. 체질이라는 게 그렇게까지 변화한다.
수도되는 과정을 좀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질·량·시·리·변質量時理變, 다섯 단계를 거쳐야 한다. 질質은 바탕 질質 자, 양量 자는 헤아릴 량量 자다. 또 때 시時 자, 이치 리理 자, 변할 변變 자, 이렇게 다섯 단계가 있다.
질質이라는 것은 바탕이다, 예를 들어 십리밖에 있는 물주전자라고 하면, 그 물주전자가 실물 그대로 보이는 게 질質의 단계이다. 또 량量의 단계라고 하면 물주전자가 어느 때時, 어떻게理 변變하게 되느냐 까지를 알 수 있는 그런 다섯 단계를 파악할 수 있게 되면 그게 도통이다. 그렇게 되면 미래도 알 수 있다. 묶어서 자연섭리하고 내 정신이 합치되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섭리를 통투할 수 있다. 그걸 문자로 “상투천계上透天界하고”, 위로는 하늘 경계를 뚫어볼 수 있고, 또 “하철지부下徹地府”, 땅 밑바닥까지 꿰뚫어 볼 수 있는, 그런 경지를 간다.
그래서 사람이 불학이능문장不學而能文章하고, 배우지 않고도 문장이 되고, 부점이지길흉不占而知吉凶하고, 점치지 않아도 좋고 그른 것을 안다. 도통은 신통神通이다. 인간이 신통을 하게 되면, 인간과 신명이 자유롭게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식이 부족한 인간이라 하더라도, 큰 공덕을 쌓으면, 그 공덕에 걸맞는 대신명이 응기하여 신통이 열리기 때문에, 사람이 그 대신명의 지식을 공유할 수 있게 되어 경우에 따라 대문호도 될 수 있는 것이다(神人合一).
도통의 범주를 또 다른 방식으로 유형화하는 방법이 있다. 도통의 뿌리와 그로부터 뻗은 도맥을 기준으로 하여, 크게 정력통精力通과 감화통感化通으로 나누는 것이다. 정력통은 문자 그대로 직접적인 수행을 통해, 내 온 정력을 쏟아 얻는 깨달음을 말한다. 정력통은 한 마디로, 자기 스스로의 정성과 힘으로 성취한 도통이다. 그 대표적인 게 불가의 선禪 수행으로, 앉아서 죽기살기로 수행에 용맹정진하여 도를 통하는 것, 그게 다 정력통이다. 물론 유가의 정성공부나 선가의 일심수행도 마찬가지다. 감화통이란 스승이 가지고 있는 도력道力과 천지정기에 힘입어 도통을 이루는 걸 말한다. 선천에는 어떤 도통이 쉽게 얻어질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불가에서 수행의 핵심으로 말하는 ‘명심견성(明心見性)’도 궁극으로 내 마음을 밝혀서 성(性)을 본다는 것이다. 명(命)은 내 몸에 들어와 있는 삼신의 생명을 말한다. 명命은 목숨이요, 생명이요, 천명天命이며, 궁극으로는 조물주의 생명이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이다. 인간의 육체는 얼마 살다 땅속으로 들어가 썩어 버리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삼신의 성령의 생명은 영원하다. 그 불멸의 생명력이 내 몸에 그대로 들어 있는 것이다. 그 불멸의 생명력을 회복하는 게 수행이다.
유교도 성(性)과 명(命)을 닦는 것이 목적이다. 중용에 이런 구절이 있다.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요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요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니라.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 하고, 성性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 하며, 그 도를 닦는 것을 교(敎)라 이른다.(『중용(中庸)』) 조화신(三神)이 나에게 내려 주신 가장 위대한 선물이 바로 삼신의 본래 마음. 성(性)이다. 내 마음이 곧 하느님의 마음이요, 천지의 마음이다. 하늘로부터 천명으로 받은 위대한 신성(神聖)! 그 본성을 따르는 것이 생명의 길(道)이요, 인간이 가야 할 궁극의 길이다.
하늘의 조화신(造化神)이 내려와서 바로 나의 본래 마음, 인간의 본성이 됐다. 이 성性이라는 것은 심心방 변 옆에 날 생生자를 썼는데. 우리 마음이 생하는, 태동하는 그 바탕, 우리 마음의 본체, 심체, 우리 마음의 본원은 수행을 통해 내가 자연과 하나가 되었을 때 나라고 하는 이 색신(色身), 몸은 사라지고 이 우주 자체 법신(法身)이 된다. 그게 바로 성(性)이다. 불가에서 말하는 자성自性, 법성法性, 불성佛性과 같은 경계이다. 따라서 인간은 천지와 그 생명성, 신성이 동일한 존재인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가장 체계적인 해석을 한 인물이 고려 공민왕 때 문하시중(門下侍中), 지금으로 말하면 국무총리까지 역임한 행촌 이암(李嵒,1297∼1364)선생이다. 그는 ‘신(神)의 세 가지 본성이 바로 조화신,교화신,치화신, 조교치(造敎治) 삼신이다.’라고 했다. 즉 신神은 창조적 손길로 만물을 끊임없이 지어내는 조화신(造化神), 만물을 낳아놓고 가르치는 교화신(敎化神),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치화신(治化神)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변하다가 늙어서 땅속으로 들어가는 이 작은 몸뚱아리, 색신(色身)이 아니고, 이 우주 자체인 우리들의 본래 몸뚱아리 법신(法身)은 조화신이 우리 몸에 들어와서 우리 본성(性)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 마음의 본성자리는 바로 조물주 신성 그 자체다. 이건 엄청난 사실이다.
조화지신(造化之神)은 강위아성(降爲我性)하고, 교화지신(敎化之神)은 어머니의 이 지구의 신성은 우리 몸에 들어와서 명(命)이 됐다. 이것은 영원한 생명, 불멸의 생명이다. 그래서 이 선사상(仙思想)이라는 것은 바로 성명정(性命精)에서 이 지구의 어머니의 신성을 근본으로 해서 선도(仙道)가 나왔다.
그다음에 만물을 다스리는 치화신(治化神)은 바로 우리 몸에 들어와서 정(精)이 됐다. 이것을 성명정性命精. 하늘의 조화신, 땅의 교화신, 사람의 치화신. 사람은 우주만물을 다스리는 그런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래서 우리 몸속에 있는 3가지의 참된 것. 이것을 하나님의 마음(性),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命), 그리고 만물을 다스리는 생명의 동력원 정기(精)를 서양 사람들은 essence로 번역하는데 우리가 의학으로 보면 신장(腎腸)의 정수(精水)를 말하는 것이다. 이 신장(腎腸)의 정수를 축적해서 그걸 굳히는 것이 우리가 영원히 사는 수도공부의 핵심인데, 지금은 남녀가 정(精)을 성을 즐기는데 쓰고 그러니까. 대부분 소멸당하는 것이다.
천지일월이 나를 만들어주고, 나에게 생명을 내주는 그 모든 열매가 정(精)이다. 정기를 잘 간직해야 여기서 힘도 나오고, 생명력도, 지혜도 나온다. 모든 것을 극복하는 힘의 원천이 정(精)이다. 그런데 지금의 음란문화는 인간의 정(精)을 파괴하고 분열시킨다. 수행의 근본은 정(精)을 굳히고 맑히는 가의 문제로 떨어진다. 정(精)을 순화해야만 공부가 된다. 수행을 통해서 본래의 성(性)과 명(命)이 하나였던 그 경계 자리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내 생명력이 우주와 더불어 하나인 영원의 경계, 그 자리는 무한의 광명 그 자체요, 성(性)과 명(命)이 하나인 상태다. 그럼 성(性)과 명(命)은 무엇이 다른가? 밝은 모습 자체는 성(性)이고, 그 모습이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한 것, 그것을 하나의 생명력으로 표현할 때 명(命)이라고 한다. 수행이 아니면 내 생명의 본래 모습을 회복할 수 없다. 내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갈 수 없다. 생명(生命)의 원래 말이 성(性)과 명(命)이다.
수행은 내 몸과 마음을 닦는 것이다. 유형의 정(精)과 무형의 마음(心)을 닦아 생명의 본래 자리로 들어서는 것이 바로 수행이다. 결국 모든 것이 마음 닦는 공부로 떨어진다. 마음을 바르게 가짐으로써 정(精)이 변화된다. 정(精)이 굳어지고 맑아지고 승화된다. 그러면 그만큼 높은 성(性)과 명(命)의 세계로 진입해 들어가는 것이다. 수행의 궁극은 생명의 본성인 성(性)과 명(命)을 회복하는 것이다.
인간은 왜 사는가?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인간은 본래 내 생명의 밝은 모습(性),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한 생명력(命)을 회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다. 나의 생명을 회복하는 과정, 이것이 우리들 삶의 목적이다. 인간에 깃들어 있는 생명의 본래 모습, 성(性)과 명(命)은 하늘땅과 같다. 어머니 뱃속에서 천지와 더불어 호흡할 때는 성(性)과 명(命)이 하나이다.
그런데 세상에 나와 탯줄을 끊는 순간 인간적인 호흡을 시작하게 되고, 본래 우주와 하나인 성(性)과 명(命)이 분리된다. 눈을 뜨고도 예측할 수 없는 거대한 우주적인 어둠에 휩싸여 그 이면의 세계를 전혀 못 보게 된다. 우주를 비추고도 남을 만큼 밝은 내 생명의 본래 모습, 내 마음의 근원인 성(性)이 후천적인 성(性)으로 바뀌면서 어둠의 세계로 떨어진다.
또한 하늘같은 무한의 생명력인 내 명(命)이 불과 몇 십 년 살다가 병들어 죽는 유한의 명(命) 자리로 떨어진다. 온갖 인생의 시련과 역경, 고난의 파도를 만나 고통과 슬픔 속에서 살다가 죽음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수행을 함으로써 어머니 뱃속에서 가지고 있던 본래의 성(性)과 명(命)을 회복한다. 천지와 같은 내 본래의 생명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마음을 닦는다는 것은 내 생명의 기반인 성명정(性命精) 3가지 요소를 닦는 것이다. 이것을 구체적인 작용 요소로 보면 심기신(心氣身)이다. 마음(心)과 기(氣)와 몸(身)을 닦는 것이다. 내 몸(身)을 닦는 것은 구체적으로 정(精)을 닦는 것이고, 마음(心)을 닦는다는 것은 원래의 생명력(性)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 몸의 기(氣)를 닦는다는 것은 하늘땅의 무한의 생명력(命)을 회복한다는 것이다.
우주의 본성이 대광명이다. 수행공부가 어느 경계로 들어가면 눈을 감고 있는데도 해가 뜬 것처럼 밝다. 생명의 본성, 인간 마음의 본성은 광명이다. 삼신(三神)이 바로 대우주 광명의 실체다. 동양에서는 이 삼신(三神)이 스스로 현현(顯顯)해서 하늘과 땅과 인간이 나왔다고 한다.『천부경』에서는 이 하늘과 땅과 인간을, 천일天一, 지일地一, 인일人一이라고 한다.
천지인(天地人) 모두가 하나(一)의 자리에서 나왔으며, 도의 본원이 같다는 말이다. 이렇듯 삼신三神이 자기 현현하여 하늘과 땅과 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천지인 모두가 조물주 삼신의 생명과 신성과 지혜와 광명을 가지고 있다. 삼신의 생명, 지혜, 숨결은 우리 몸속에도 다 들어있는 것이다. 이 우주만유 속에 삼신의 숨결이 살아 있고, 온 우주를 채우고 있는 이 삼신의 생명은 우리 몸속에 그대로 들어 있다. 이걸 생각해 볼 때, 인간의 창조적 신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궁무진한가! 또 진리를 제대로 깨친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인간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제대로 알기만 하고 살아도 인간의 품격이 전혀 달라진다. 그러면 삼신(三神)은 우리 몸에 들어와서 어떻게 작용하는가?
인간 몸속에 깃든 삼신(三神)의 3가지 손길은 만물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조화신(造化神)은 내 생명의 근원, 내 마음의 뿌리 자리, 성(性) 이 되어 자리를 잡는다. 만물을 양육하는 교화신(敎化神)은 나의 명 命 , 순수한 우리말로 목숨이 된다. 목숨을 영어로 옮길 때, 수명(lifespan)으로 흔히 이야기하지만, 여기서의 명命 은 수명, 생명, 그리고 천명(天命) 사상까지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
만물의 생명 질서를 바로잡는 치화신(治化神)은 내 몸의 정(精)이 된다. 내 몸속에서 삼신의 마음(性)과 생명(命)이 발동되는 것은 실제로는 내 몸의 정(精) 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내속의 참 마음(性)을 닦고 내 속의 참 생명(命)을 키우는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정(精) 을 잘 확보하는 것에 달렸다.
인간 몸속에 깃든 삼신(三神)의 3가지 손길은 만물을 낳는 조화신(造化神), 만물을 깨우치고 기르는 교화신(敎化神), 그리고 만물의 질서를 잡아나가는 치화신(治化神)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하늘의 조화신 교화신 치화신의 삼신(三神)이 인간의 몸에 내려와 性,命,精 삼진(三眞)이 된다. 환단고기는 하늘에는 삼신(三神) 이 있고, 땅에는 삼한(三韓)이 있으며, 인간 몸속에는 삼진(三眞)이 있다고 말한다.
삼신(三神)이 우리 몸에 들어와 생긴 3가지 참된 것‘이 곧 성명정(性命精) 삼진( 三眞) 이다. 조화신, 교화신, 치화신이라는 삼신이 들어와 성(性)-명(命)-정(精) 삼진(三眞)이 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조화신이 내 몸에 들어와 성(性)이 되고, 교화신이 들어와 명(命)이 되고, 치화신이 들어와 정(精)이 된다. 이는 내 몸 속에 삼신 하나님의 생명이 그대로 다 들어 있다는 것이다. 내 몸속에 우주의 생명이 그대로 다 들어 있다. 이것이 삼신문화가 인간의 위대함에 대해 전해주는 깨달음의 한소식이다. 性,命,精 삼진三眞은 인간이 진리를 깨달음에 있어서 어떻게 그 길을 추구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말해준다. 그래서 진리를 성취한 인간이 되고자 할 때, 삼진三眞은 우리에게 삼관三關으로 작용한다.
관關이란 무엇인가? 여행에서 뜻하는 목적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 있다. 그렇듯 성명정性命精을 지키는 것이 내 안에 내주한 삼신의 생명과 신성을 온전히 지켜 진리를 성취한 인간이 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관문이다.
성(性)이란 무엇인가? 성性은 마음의 본래 실상, 내 마음의 본래 모습을 말한다. 세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마음은 변화막측하다. 수시로 바뀌고 변덕스러워서 도저히 측량할 수가 없다. 그런데 마음의 본래 모습은 가을 하늘의 순수한 모습처럼 불변지체(不變之體)다.
성(性)은 심(心)방 변 옆에 낳을 생(生) 자를 쓴다. 문자 그대로 만물을 낳는 마음이다. 하늘땅과 인간과 만물을 낳아 주는 조물주의 마음, 대자연의 마음이 바로 성(性)이다. 성性은 마음의 본체, 마음의 본래 모습, 본마음이요, 다른 말로 도심(道心), 천심(天心)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마음은 인간의 총체적인 의식 현상을 뜻한다. 그런데 불가나 도가에서 말하는 마음은 본래의 마음(本心), 진리의 마음, 도심道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껍질속에 가려 잊혀진 역사, 600만의 보천교
道典 1:64) 증산 상제님께서 전주 종남산(終南山)에 있는 송광사(松廣寺)에 가시어 며칠 동안 지내실 때, 하루는 어떤 중이 무례하게 굴거늘
상제님께서 노하시어 큰 소리로 꾸짖으시기를 “요망한 무리들이 산속에 모여 불법(佛法)을 빙자하고 백악을 감행하여 세간에 해독을 끼치니 이 소굴을 뜯어 버리리라.” 하시고
대웅전의 커다란 기둥 하나를 손으로 잡아당기시니 기둥이 한 자나 벗어나는지라
온 절이 크게 놀라 중들이 몰려와 절하며 사죄하거늘 이에 노여움을 거두시니라.
그 후로 법당을 여러 번 수리하여도 그 기둥이 원상대로 회복되지 아니하더라.
道典 7:63) 내 세상이 되기 전에 손님이 먼저 오느니라.
앞으로 시두(時痘)가 없다가 때가 되면 대발할 참이니 만일 시두가 대발하거든 병겁이 날 줄 알아라.
그 때가 되면 잘난 놈은 콩나물 뽑히듯 하리니 너희들은 마음을 순전히 하여 나의 때를 기다리라.” 하시니라.
시두(천연두)가 대발하거든: 천연두는 인류가 퇴치에 성공한 유일한 질병으로, 1980년 5월 세계보건기구(WHO)는 천연두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박멸되었음을 선언하였다. 질병의 역사상 가장 혹독하게 인간을 괴롭혔던 죽음의 사자인 ‘마마여신’에게 인류의 이름으로 사망 선고를 내린 것이다. 그러나 상제님의 이 말씀을 통해 병겁이 터지기 전 개벽의 신호탄으로 천연두가 다시 창궐할 것임을 알 수 있다. 시두는 곧 의통목의 전주곡인 것이다.
道典 5:415) 오선위기 도수의 총결론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를 마치시고 말씀하시기를 “상씨름으로 종어간(終於艮)이니라.
전쟁으로 세상 끝을 맺나니 개벽시대에 어찌 전쟁이 없으리오.” 하시니라.
상씨름 대전(大戰)의 대세
또 말씀하시기를 “아무리 세상이 꽉 찼다 하더라도 북쪽에서 넘어와야 끝판이 난다.
난의 시작은 삼팔선에 있으나 큰 전쟁은 중국에서 일어나리니 중국은 세계의 오고 가는 발길에 채여 녹으리라.” 하시고
“장차 병란(兵亂)과 병란(病亂)이 동시에 터지느니라.
전쟁이 일어나면서 바로 병이 온다. 전쟁은 병이라야 막아 내느니라.
道典 5:406) 상씨름 종결 대전쟁 공사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장차 난리가 난다. 우리나라에서 난리가 나간다.” 하시고
문득 크게 호통치시기를 “불칼로 쳐도 안 들을거나!” 하시니라.
이어 말씀하시기를 “대란지하(大亂之下)에 대병(大病)이 오느니라. 아동방(我東方) 삼일 전쟁은 있어도 동적강(銅赤江)은 못 넘으리라.
서울은 사문방(死門方)이요, 충청도는 생문방(生門方)이요, 전라도는 둔문방(遁門方)이니 태전으로 내려서야 살리라.
○○은 불바다요 무인지경(無人之境)이 되리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무명악질이 돌면 미국은 가지 말라고 해도 돌아가느니라.
이마두가 선경을 건설하기 위해 도통신과 문명신을 거느리고 화물표를 따라 동방 조선으로 들어오리니
신이 떠난 미국 땅은 물방죽이 되리라.” 하시고
“일본은 불로 치리니 종자도 못 찾는다.” 하시니라.
동적강(銅赤江): 동작강. 한강의 여러 이름 중 하나. 동작동 앞의 한강을 말한다.
道典 4:39) 천지신명들이 다 손을 잡느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개벽이 될 때에는 온 천지에 있는 신명들이 한꺼번에 손을 잡고 나의 명을 따르게 되느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병겁이 밀려오면 온 천하에서 너희들에게 ‘살려 달라’고 울부짖는 소리가 진동하고
송장 썩는 냄새가 천지에 진동하여 아무리 비위(脾胃)가 강한 사람이라도 밥 한 술 뜨기가 어려우리라.” 하시니라.
道典 7:42) 가을개벽의 대급살병
시속에 부녀자들이 비위만 거슬리면 ‘급살 맞아 죽으라.’고 이르나니 이는 곧 급살병(急煞病)을 이름이라.
하룻밤 하루낮을 잠도 못 자고 쉬지도 못하고 짚신 세 켤레씩 떨어뜨리며 주검을 밟고 넘어 병자를 건지게 되리니
이렇듯 급박할 때에 나를 믿으라 하여 안 믿을 자가 있으리오.
시장이나 집회 중에 가더라도 ‘저 사람들이 나를 믿으면 살고 잘되련만.’ 하는 생각을 두게 되면, 그 사람들은 모를지라도 덕은 너희들에게 있느니라.
道典 2:13) 천지만물이 나로부터 다시 새롭게 된다
증산 상제님께서 객망리로 돌아오신 후, 집안 대대로 전하여 오던 진천군 교지(敎旨)와 공명첩(空名帖), 족보, 문집 등 일체의 문서와 서책을 가져다 불사르시며
“내 세상에는 천하의 모든 성씨(姓氏)의 족보를 다시 시작하리라.” 하시니 부모님과 수십 호 문중의 노소가 모여들어 만류하는지라
상제님께서 “앞세상에는 이런 것에 의지해서는 아니 됩니다.” 하시고
“유도(儒道)의 구습을 없애고 새 세상을 열어야 할진대 유도에서는 범절(凡節)밖에 취할 것이 없도다.”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모든 것이 나로부터 다시 새롭게 된다.” 하시니라.
신축년 이후의 연사는 내가 친히 다스린다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에 내려오면서 하늘과 땅의 정사(政事)를 천상의 조정(天朝)에 명하여 다스리도록 하였으나
신축년 이후로는 내가 친히 다스리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2:45) 천하창생이 진멸지경에 이르렀는데
대저 사람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편할지라. 오는 일을 아는 자는 창생의 일을 생각할 때에 비통을 이기지 못하리로다.
이제 천하창생이 진멸(盡滅)의 경계에 박도하였는데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이(利)끗에만 몰두하니 어찌 애석치 아니하리오.
때가 되어 괴병이 온 천하를 휩쓸면
장차 십 리 길에 사람 하나 볼 듯 말 듯한 때가 오느니라.
지기(至氣)가 돌 때에는 세상 사람들이 콩나물처럼 쓰러지리니
때가 되어 괴병(怪病)이 온 천하를 휩쓸면 가만히 앉아 있다가도 눈만 스르르 감고 넘어가느니라.
道典 7:48) 인류의 운명을 생각하며 통곡하심
하루는 어디를 가시다가 흐르는 도랑물에 호연을 씻겨 주시고 나서 감발을 풀고 발을 씻으시던 중에
문득 “아차차! 아차차!” 하시며 큰 소리로 목 놓아 슬피 우시거늘
호연이 상제님의 발을 닦아 드리며 “누가 도망가는데 못 잡아서 ‘아차차’ 해요? 누가 어쩌간디 발 씻다 말고 울어요?” 하고 여쭈니 “저 물을 들여다봐라.” 하시는지라
호연이 보니 맑은 도랑물에 송사리들이 먹이를 먹으려고 사방에서 모여들거늘
호연이 “고기 새끼구먼!” 하니 말씀하시기를 “아서라, 너는 뒤로 가 있거라.
천하창생이 모두 저 송사리떼와 같이 먹고살려고 껄떡거리다가 허망하게 다 죽을 일을 생각하니 안타깝고 불쌍해서 그런다.” 하시고
“허망한 세상! 허망하다, 허망하다!” 하시며 혀를 차시니라.
이에 호연이 “아이고, 노래나 하나 하세요. 나 노래 듣고 배울라요.” 하니
상제님께서 “세상만사 덧없이 넘어간다. 세상만사 헛되고 허망하다!” 하고 구슬피 읊조리시니라.
일제와 친일언론, 보천교와 민족종교를 사이비종교로 매도
일제는 1915년 8월에 조선총독부령으로 포교규칙을 선포하여 독립활동에 적극적인 민족종교를 유사종교단체로 분류하여 건전하지 못한 반사회적집단, 미신집단, 사이비종교단체로 규정했다. 언론도 일본 총독부의 선전도구로 전락해 보천교와 민족종교를 유사종교 및 사교와 같은 사회악의 존재로 취급하였다. 친일 언론들은 보천교를 비윤리적 반사회적 사상과 가르침을 펴는 미신, 사교집단으로 매도했다.
일제는 민족종교를 독립운동이나 민족운동과 같은 정치적 변혁을 꾀한다고 판단해 민중과 격리시키고 통제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이비종교단체라는 올가미를 씌워 종교가 아닌 일반결사단체로 취급하여 '보안법', '집회취체에 관한 건'을 적용시켰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후 일제는 '정치에 관한 범죄처벌의 건'을 만들어 보천교를 비롯한 민족종교를 탄압하고 파괴시켜 나갔다. 1920년 청송군 일본경찰서는 안동을 비롯한 경상북도 북부지역의 보천교 신도 3천여 명을 체포하여 감금하였고, 그 중 수십 명이 고문치사, 700여 명을 기소하였고,
고등법원에서 징역을 받은 사람이 129명이나 되었다. 당시 전국에서 검거된 보천교 신도가 3만여 명에 이르렀다." (출처:강영한 상생문화연구소 연구원, 일제의 보천교 탄압과 해체)
일제, 유사종교해산령 만들어 보천교와 민족종교 강제 해산시켰다.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을 계기로 민족말살정책을 펼쳤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완전히 없애기 위해 일제는 한국의 민족성, 독립 등을 풍기는 모든 단체는 철저하게 해체시켰다. 그 정점은 1936년에 내린 '유사종교 해산령'이다. 두 사람 이상의 집회가 금지되고, 1원 이상의 금전수합 역시 금지되었다. 유사종교 해산령에 따라 각도 경찰국은 종교 시설물을 폐쇄시키고, 종교지도자들을 검거하는 등 대대적인 탄압을 시작하였다.
1936년 6월 6일, 일경이 보천교 간부 24명을 연행하였고, 6월 15일에는 보천교 건축물을 강제로 경매에 부쳐졌다."
민족종교는 사이비, 외래종교는 진짜
1924년에 최남선이 창간한 시대일보時代日報 사건이 있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더불어 그 당시 민간 3대 신문 중 하나가 시대일보다. 경영난에 처한 시대일보를 보천교에서 인수하자, 보천교의 교주가 천자로 등극할 것이다라는 천자등극설을 유포하게 된다.
천자 등극설은 당시 보천교를 탄압하기 위한 일제와 친일언론이 만들어낸 자작극이었다. 이를 빌미로 이 해 9월 일제와 친일언론들에 의해 보천교 박멸운동이 전개 된다.
이러한 난국을 극복할 방법으로 보천교 주요간부들을 일본 동경으로 보내 보천교의 취지를 한번 설명하기로 한다. 그래서 동경을 방문해 조선총독으로 오게 될 사람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일제가 제시한 것이 '시국광구단'을 만들어 총독정치를 홍보하는 연설회를 만들어 전국을 순회하면 우리도 보천교를 적극 지원해주겠다는 취지였다. 그렇게 해서 "시국대동단"을 만들게 되는데
결과적으로는 1925년 1월부터 6개월정도 운영하다가 지지부진하게 되는데, 여기에 당시 11개 친일단체가 결성된 '11연맹'이라는 단체가 보천교라는 명칭을 빌려 "시국대동단"이란 이름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일제의 정책들을 지지하게 되는데,
그래서 당시 조선민중들은 보천교 박멸운동에 가담을 하며, 보천교 성토대회가 여러 곳에서 열린다. 이것은 보천교 입장에서는 친일이라는 오명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것은 철저하게 일제의 간계에 속아 넘어간 것이다.
이 때문에 민족의식 선양과 대한독립의 큰 업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이 위대한 업적은 역사속으로 묻히고 친일파라는 꼬리표가 붙게 되었다. 보천교는 일제와 친일세력이 의도한대로 1925년을 지나면서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걸었다.
1929년 십일전이 완공되자, 다시 일제와 친일언론은 보천교 교주 차월곡이 천자에 오를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리고, 이를 빌미로 보천교 간부들을 체포하고, 1936년 일제는 보천교를 해산시키고, 흔적을 제거하기 위해 보천교 본소 건물들을 해체하기 시작한다.
해체한 보천교 본소 십일전의 자재들은 서울 조계사에 보내고, 보천교 청기와는 청와대의 전신, 경무대에로 보낸다. 완전히 보천교 흔적을 지워버린 것이다.1936년 보천교 해체와 더불어 조선인을 일제 황국신민으로 만들자는 심전개발운동(心田開發運動)이 이때부터 본격화되었다. 조선민중을 일제와 친일세력들의 노리개로 만들겠다는 정책이었다.
첫댓글
@한울타리
@한울타리
@한울타리
@한울타리 작년에도 무더워졌지만 올해는 더 무덥고, 내년,내후년은 점점 더 무더워집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물가에도 심각한 영향을 줍니다.
왜? 남북극 빙하가 대량으로 녹아내릴까요? 그 이유는 지구 1년이 360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160년 전, 대학자 김일부 선생은 남북극 빙하가 대량으로 녹아내릴 것을 예고하였고, 그 영향으로 23.5도 기울어진 지구 자전축 이동, 극이동의 영향으로
지구 1년이 360일로 바뀌게 된다는 것을 정역팔괘(正易八卦)의 이치로서 밝혀주었습니다.
@한울타리
@한울타리
@한울타리
@한울타리
@한울타리
@한울타리
@한울타리
@한울타리
@한울타리
@한울타리
@한울타리
@한울타리
@한울타리
@한울타리
@한울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