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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문제와 중동문제의 변수에 따라 앞으로의 세계 질서가 새롭게 구축될 것 같다. 중동문제는 참으로 복잡다단하고 정확한 정보를 얻기도 쉽지 않다. 더구나 저같이 국제문제 전문가도 아닌 사람에게야! 더구나 서양언론에 의해 조작되고 왜곡되고 있는 현실에서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정된 자료를 참고하고 세계사의 흐름을 유추하면서 현 리비아 사태를 간략히 조명해 보기로 한다.
1. 중동에서 제국주의적 침탈은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다. - 중동에서의 민주화는 반제전선에 대응한 서방세력의 고육지책(苦肉之策)이다. 중동의 민주화 세력은 친 서방세력과 이슬람근본주의의 결합이기 때문에 반드시 서방세력에 유리하다고만 말할 수 없다. 아무튼 호메이니의 이란혁명이후 이슬람혁명이 지속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상태이다.
<참고1>
미국의 중동 대외전략
곽동기 연구원
기사입력: 2011/08/16 [02:51] 최종편집: ⓒ 자주민보
튀니지에서 이집트, 예멘, 리비아, 팔레스타인, 시리아,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에 이르기까지, 중동지역 전체가 불도가니 마냥 뜨겁다. 중동지역 여러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대응을 종합하며 미국의 대외패권전략을 살펴본다.
도둑이 제 발 저린 미국
이집트와 예멘의 경우에서 보듯, 오바마행정부는 제 손으로 키운 친미정권을 스스로 내던지는 일면 “정신분열적”인 증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이 친미정권의 뒤를 봐주지 않는 역설은 세계의 여러 친미정권들을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일례로 사우디의 압둘라 국왕은 2월 9일, 오바마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미국이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에게 굴욕감을 줘선 안 된다고 항의했다고 한다. 미국이 무바라크를 버리자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표출한 것이다.
미국이 제 손으로 친미정부를 끌어내리는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중동을 유린해 온 주범은 바로 미국이다. 그렇기에 미국도 중동의 시위진압에 섣불리 나서다가는 자칫 아랍민족주의의 반미투쟁이라는 “잠자는 사자”를 깨워버리는 파국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중동에서 친미정부의 협력자이자 국제물가대란의 주범인 미국에 대한 반대투쟁이 촉발되고 중동거리에서 또 다시 성조기가 불탄다면 향후 중동의 민심은 더욱 더 반미성향인 이란, 시리아 쪽으로 쏠리게 된다. 이 경우 이라크와 아프간을 침공, 점령하면서 발판을 구축해온 미국은 이제 다시 이란, 시리아 등과 대결하며 전면전을 결심해야 하느냐, 아니면 그 동안의 개입이 물거품되면서 속절없이 중동패권을 잃느냐의 갈림길에 설 수 있다.
실제로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이 리비아 공습을 단행한 3월 19일 이후, 중동지역의 대중투쟁은 더욱 확대되는 양상을 띤 바 있다.
결국 현 중동투쟁에서 미국의 일차적 바램은 대중투쟁이 반미자주화투쟁으로 상승되지 않고 반정부민주화투쟁에서 적당히 마무리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현재 중동민심의 눈치를 살피며 여론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패권을 유지하려고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가 무바라크 퇴진을 직접 거론한 것은 무바라크와 대립지점에 서서 이집트 민중의 호감을 사고 이를 이용해 다음에도 이집트에 친미정부를 지속시키기 위함이다. 미국이 예멘의 살레 정권 퇴진을 거론한 것도 살레 이후의 예멘에 친미정부를 지속시키기 위함이다.
미국은 바레인 문제에 있어서도 직접적인 군사지원에 나서지 않고 관망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바레인에는 미군이 거대한 미 해군 5함대 기지를 주둔시키고 있는데도 바레인 당국은 미군에게 군사지원을 요청하지 않고 엉뚱하게도 사우디아라비아 군에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는 미군개입이 자칫 중동의 반미투쟁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리비아 공습에도 스스로 전면에 나서지 않고 외형상으로 영국과 프랑스를 앞세우고 자신은 그들에 뒤따라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역시 중동의 반미투쟁을 경계한 것이다.
놀라운 점은 오바마 대통령이 5월 19일 국무부에서 실시한 중동정책 연설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국경선은 1967년 당시 경계에 근거를 둬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스라엘까지 곤경에 빠뜨렸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1967년 경계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현재 이스라엘이 점령중인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를 도로 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바마행정부가 이스라엘과 갈등을 무릅쓰면서 이러한 발언을 내뱉는 것은 그만큼 오바마행정부가 중동민심의 반미자주기류를 극도로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미국, 알 카에다로 민심분열 시도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중동민중들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미국은 지난 200년 동안 세계 각지를 휩쓸면서 제국주의 침략전쟁도 해보았고 제국주의 국가 간의 1, 2차 세계대전도 주도하였으며 제3세계의 각종 군사분쟁에도 주도적으로 개입한 분쟁개입의 “고단수” 국가이다.
중동의 대규모 대중투쟁을 접한 미국의 기본적인 대응은 대체로 언론을 동원한 “민심 분열 작전”으로 나타난다. 중동투쟁의 경우, 이제는 실체도 모호해진 “알 카에다”가 여론분열에 활용되고 있다. 즉, 반정부 투쟁을 주도하는 세력을 “이슬람 급진주의” 또는 “알 카에다 연계세력” 등으로 호도함으로써 광범위한 민중의 대중투쟁결합을 막아 항쟁세력과 광범위한 대중들을 분리시켜보자는 것이다.
이집트 대중투쟁이 한창이던 2월 8일, 오마르 술레이만 이집트 부통령은 언론인들과의 간담회에서 감옥에서 수천명의 죄수가 탈출하였는데 이 가운데 알-카에다 대원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며 이들을 재검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2월 9일, AP통신은 알-카에다 연계조직인 이라크 이슬람국가(ISI)가 성명을 통해 이집트 정부를 상대로 한 성전을 촉구하며 “재소자들을 모두 구출할 때까지 쉬지 말라”고 촉구했다고 보도하였다.
서방 언론들은 예멘이 오사마 빈 라덴 조상의 고향이라는 점을 주요하게 제기한다. <로스엔젤레스 타임즈>지는 한 '예멘 대테러 전문가'를 인용하여, 예멘에 약 2000명의 알-카에다 대원들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7월 15일에는 미국의 무인폭격기가 예멘 남부 아비얀주(州)에서 알-카에다 연계조직의 거처를 대상으로 공습작전을 벌여 50여 명이 숨졌다고 CNN이 보도했다.
미국이 대중투쟁역량을 자살폭탄 테러로 이름높은 과격한 불법세력과 연계시키는 모양새는 한국사회에서 “색깔론”으로 이미 익숙해진 방식이다. 한국에서는 진보적 운동단체를 대중들로부터 유리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색깔론”이 자행된다. 보수진영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한국전쟁 이후 행적이 수상하다느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인이 좌익계열이라느니 하며 “뭐가 있는 거 아니냐”는 식의 정치공세를 펼치고, 급기야 “친북좌파”라는 단어로 진보운동단체를 탄압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대중투쟁진영과 민중들 사이의 이간작업은 중동에서 알 카에다 또는 이슬람 근본주의의 이름으로 나타난다. 물론 미국도 중동의 수많은 단체들을 알 카에다 직속단체라고 지명하지 못하고 그저 “알 카에다 연계조직”이라 에둘러 표현한다. 이는 흡사 한국의 진보운동단체들을 “이적단체”라고 애매모호하게 규정하는 것과 상당히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민중의 투쟁역량이 관건
중동의 대중투쟁에 대해 일부 국가들은 강경대응, 유혈진압으로 대응하고 또 다른 국가들에서는 정권퇴진이란 성과가 나타나는 차이는 무엇인가.
이는 바로 정권과 민중투쟁 역량간의 힘의 대결에서 나타난다.
민중의 투쟁역량이 취약하고 정권의 대응능력이 갖춰진 경우에 중동 친미정권은 대체로 강경진압을 선택하고 미국은 이에 대해 침묵한다. 이집트, 튀니지와 달리 사우디, 바레인은 몇 가지 면에서 정치경제적으로 기반이 넓다고 할 수 있다.
민중투쟁에 노동대중의 파업투쟁이 결합되느냐의 여부도 중요한 판단기준이다. 시위대열이 강경진압당한 사우디, 바레인의 경우는 도시중산층과 지식인들이 봉기하였으나 노동대중이 침묵하며 파업투쟁과 결합되지 못하였다.
반면 정권이 무너진 이집트, 튀니지의 경우는 대중투쟁역량이 노동운동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었다. 이집트는 광범위한 대중투쟁과 노동계층의 파업투쟁이 결합되어 대중투쟁의 궁극적 형태를 보여주며 미국을 위협하였으며 예멘의 경우는 이를 뛰어넘는 무장항쟁 대오까지 구축되었다. 튀니지의 경우도 1월 14일, 노조 총파업이 단행되며 벤 알리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었다.
해당 국가의 정치체제도 고려의 대상이다. 서방언론은 리비아와 시리아의 내전이 통치자의 장기집권에 있다고 하지만 사우디와 바레인은 장기집권에서 한술 더 뜬 “임금님”이 통치하는 왕정국가이다. 만일 리비아, 시리아의 내전이 장기집권 때문이라면 사우디, 바레인, 요르단에서는 민중봉기가 일어나 왕정이 붕괴되어야 맞다.
해당 정권의 경제력도 무시 못 할 요소이다.
사우디는 국민들의 정치개혁 요구를 누그러뜨릴 경제력도 갖추고 있다. 사우디는 막대한 석유자본에 기초해서 1인당 국민소득이 대략 24000달러 수준에 이르고 있어 국민들에게 지출할 재원을 갖고 있다. 실제 압둘라 국왕은 강경진압과 더불어 2월 23일, 총 350억 달러 이상이 소요될 대규모 사회복지계획을 발표하는 이중전략을 쓰고 있다. 이 계획은 실업구제사업, 주택보조금, 해외유학지원기금, 고용기회프로그램 등을 담고 있다.
민중들의 개혁요구를 무마할 경제력은 산유국인 바레인도 갖추고 있다. 바레인의 1인당 국민소득은 사우디보다도 높은 2만7000달러에 이른다.
반면 정권이 무너진 튀니지, 이집트, 예멘은 경제적으로 취약해 해당정권이 민중들의 경제난을 무마할 능력이 없었다. 이집트의 1인당 국민소득은 6000달러에 불과하며 튀니지도 9000달러에 머문다. 예멘은 중동에서 가장 가난하며 유일한 외화수입원인 석유수출도 2003년 하루 45만 배럴에서 2009년 초에는 28만 배럴로 떨어졌다고 한다. 이들 국가는 폭등하는 국제식량가격에 대해 사회복지정책을 구사할 경제력이 없다.
결국 중동에서 대중투쟁의 대응책은 해당국가 민중들의 결집정도, 정권의 정치경제적 처지를 종합적으로 고려되어 결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중동 발판을 잃고 있는 미국
중동민심을 구걸하기 위해 무바라크, 살레 등 공들여 키운 친미정권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심지어 이스라엘에까지 점령지 반환이라는 충격제안을 요청하는 오바마행정부의 속마음은 지극히 비참할 수밖에 없다.
조심스러운 행보에도 불구하고, 이미 미국은 중동민심을 완전히 잃고 있다. AFP 통신은 7월 13일, 13일 아랍 아메리칸 연구소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집트, 요르단, 레바논, 모로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에서 절대 다수는 오바마 대통령이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 조사는 이들 6개국에서 4천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다고 한다.
미국 정부가 팔레스타인 문제와 이슬람 세계와의 관계 개선에 "상당한 에너지"를 쏟아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응답자의 9%만 미국정부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러한 여론은 이라크를 침공한 부시행정부의 마지막 해보다 악화된 것이라 한다.
그나마 미국을 우호적으로 본다는 응답이 가장 높았던 곳은 사우디 아라비아였으나 그것도 30%에 머물렀다. 이집트에서는 우호적인 대미 평가가 5%로, 가장 낮았다. 이집트, 요르단, 모로코에서 응답자 대다수는 미국이 아랍권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제적으로 패권을 상실해가는 미국이 반미국가의 운명에 개입하던 시대는 영원히 끝났다. 중동에서 반미투쟁이 촉발되고 이란, 시리아 등 반미국가가 여기에 합세해 나서면 중동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급속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미국은 동북아에서도 이명박 정부에게 남북대화를 종용하는 등, 지금까지의 강경한 모습과 일면 달라 보이는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세계적 판도에서 나타나는 미국의 약세는 바야흐로 미국중심의 세계질서가 붕괴되고 세계가 다극화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2. 카다피의 전략 실패 - 스스로의 패배
<참고2>
미국의 리비아 침공에 숨겨진 비화
<연재> 한호석의 진보담론 (150)
2011년 03월 28일 (월) 11:16:31 한호석 tongil@tongilnews.com
백악관 상황실에서 끝난 특대형 사기극
2008년 9월 5일 세계 각국의 정세분석가들은 영국 텔레비전방송 BBC가 방영한 보도에 관심을 집중하였다. 동영상 보도에는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Tripoli)에 있는 어느 저택에 들어서는, 연회색 정장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흑인 여성이 나오고, 흰색 전통의상을 입고 머리에 검은 모자를 쓴 사람이 나온다.
그 흑인 여성은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고, 그를 맞이한 사람은 무아마르 카다피(Muammar el-Qaddafi) 리비아 국가원수였고, 그 두 사람의 상봉장소는 1986년 4월 15일 미국군 전폭기 편대의 공습으로 파괴된 적이 있는 카다피 국가원수의 관저였다.
이번에 미국군이 리비아 공습을 시작하기 불과 2년 6개월 전에 카다피-라이스 상봉이 있었다는 사실은 좀처럼 믿기 힘들다. 카다피-라이스 상봉과 미국군의 리비아 공습이라는 양극단 현상 뒤에는 복잡하게 얽힌 미국과 리비아 관계가 있다.
그 복잡한 관계를 살펴보려면, 미국과 리비아가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점진적으로 관계정상화를 추진하기 시작한 2004년 6월 28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 날 미국 국무부는 리비아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로부터 이태가 지난 2006년 5월 15일 콘돌리자 라이스 당시 국무장관은 미국이 리비아와 관계를 정상화하였다고 발표하였고, 조지 부쉬(George W. Bush) 당시 미국 대통령은 리비아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한다는 보고서를 연방의회에 제출하였다.
조심스럽게 추진되어온 미국과 리비아의 관계정상화가 가시적 성과를 전 세계에 보여준 때는 2008년이다. 그 해 1월 3일 압델 라흐만 샬감(Abdel Rahman Shalgam) 당시 리비아 외무장관이 워싱턴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미국-리비아 과학기술협력 협정이 체결되었고, 8개월 뒤인 9월 5일에는 콘돌리자 라이스 당시 국무장관이 트리폴리를 답방하였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2008년 10월 5일 미국은 리비아에 무역사무소를 개설하였다. 리비아에 미국 무역사무소가 개설되자 자연히 교역량이 늘어났고, 그에 따라 두 나라는 2010년 5월 20일 트리폴리에서 미국-리비아 무역투자기본협정(TIFA)을 체결하였다.
이처럼 리비아와 미국은 2004년 이후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하게 관계정상화를 추진해왔다. 리비아는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하여 자국의 주권과 안전을 보장받고 있는 줄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미국이 리비아와 관계를 정상화한 것은 리비아를 기만하고 농락한 특대형 사기극에 지나지 않았고, 미국의 사기극에 감쪽같이 속아넘어간 리비아는 자국의 주권과 안전이 보장받았다고 안심하며 깊은 최면상태에 빠져들었다.
미국이 리비아를 기만하고 농락한 특대형 사기극은, 2011년 3월 15일 백악관 지하에 있는 상황실(situation room)에서 끝났다. 그 날 오후 4시부터 밤 11시까지 백악관 상황실에서는 버락 오바마(Barack H. Obama)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국가안보회의가 계속되었고, 그 회의에서 결정된 것은 리비아 무력침공이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무력침공 결정에 따라, 나흘 뒤 미국 군부는 영국군, 프랑스군을 참가시킨 가운데 미사일구축함, 핵추진 잠수함, 스텔스 전투기, 전폭기, 공중조기경보통제기, 전자전기, 무인정찰기, 특수전 병력, 강습상륙함, 상륙소송함 등을 동원한 ‘오디세이 새벽 작전(Operation Odyssey Dawn)’이라는 선제공습으로 리비아에 대한 무력침공을 개시하였다.
2011년 3월 19일은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세 번째로 이슬람 국가를 침공한 날이다.
그런데 미국이 리비아 공습을 개시하기 보름 전인 2011년 3월 4일 미국 군부가 지중해로 급파한 41,000t급 초대형 강습상륙함 키어사지호(USS Kearsarge)와 16,000t급 상륙수송함 폰스호(USS Ponce)가 수에즈 운하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해병대 병력 1,890명, 지상공격기 5대, 틸트로터(tiltrotor) 헬기 22대, 대잠수함전 헬기 6대를 실은 키어사지호는 폰스호와 함께 그리스 크레테섬(Crete)의 수다만 해군기지(Souda Bay Naval Base)에 도착하였다.
그보다 앞서 2011년 2월 28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 공보실장 데이빗 레이펀(David Lapan) 대령은 “결정이 내려질 경우 유연하게 다양한 선택방안들을 택할 수 있도록 미국 공군력과 해군력을 리비아 쪽으로 좀 더 가까이 이동시키고 있다.
리비아에 대한 여러 가지 비상계획(emergency plan)이 있다”고 말했다. 리비아에서 반정부 투쟁이 시작되자마자 미국 군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리비아 침공계획을 행동에 옮기고 있었다.
미국 중앙정보국과 하프타군의 은밀한 관계
내막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리비아의 반정부 투쟁이 격화된 현상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이해하고, ‘민주혁명’ 또는 ‘재스민혁명’이 리비아에까지 번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리비아 반정부 투쟁의 격화과정을 정밀분석하면, 그런 주장이 얼마나 이치에 맞지 않는 헛소리인지 알 수 있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내막은 이렇다.
2011년 2월 13일부터 16일까지 지방도시들인 벵가지(Benghazi), 다르나(Darnah), 바니 왈리드(Bani Walid)에서 소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당시 시위대가 외친 구호는 지연된 공공주택 건설을 하루속히 마무리해달라고 정부당국에 촉구하고, 정치인들의 부패를 청산하라는 수준이었다.
그러한 수준의 요구를 제기하는 소규모 시위는 다른 나라에서도 얼마든지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2월 17일부터 시위양상이 갑자기 폭동화되었다. 카다피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면서 경찰본부를 방화하는 폭력사태로 돌변한 것이다.
왜 이런 급변현상이 일어났을까? 그 까닭은, 2월 17일을 이른바 ‘분노의 날(Day of Rage)’로 선포하고 전국적 범위에서 폭동을 일으키라고 선동하였을 뿐아니라 실제로 폭동을 조직한 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대를 위한 리비아 전국회의(National Conference for the Libyan Opposition)’가 폭동을 선동하고 조직하였다.
이 단체는 카다피 정권 타도를 주장하는 해외 망명객들이 2005년 6월 25일 영국 런던에서 결성한 것이다. 시위가 폭동으로 돌변한 때로부터 불과 열흘 뒤인 2월 27일 미국 피츠벅 대학 출신의 전직 법무장관 무스타파 압둘 잘릴(Mustafa Abdul Jalil)을 대표로 한 ‘과도국가협의회(Transitional National Council)’가 벵가지에서 결성되었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친미독재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일어난 다른 나라의 반정부 투쟁과 리비아의 반정부 투쟁이 근본적으로 다른 차이는, 리비아에서 시위발생 열흘만에 신속하게 과도정부가 출현한 것에서 나타난다.
이것은 리비아의 반정부 투쟁이 자연발생적 대중투쟁이 아니라 처음부터 준비되고 조직된 반란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과도국가협의회’는 결성되자마자 반란군 조직부터 서둘렀다는 점이다. 반란군은 개인화기는 물론이고, 다련장로켓포, 대전차 미사일, 견착식 대공미사일, 방공포, 곡사포, 전차, 보병전투차량, 미그 전투기, 정찰기, 공격헬기, 수송기, 프리깃함, 콜벳함으로 무장하였다.
리비아 반란군은 자기들의 공군부대를 ‘자유리비아공군(Free Libyan Air Force)’이라 부르고, 자기들의 지상군부대를 ‘리비아인민군(Libyan People’s Army)’이라 부른다.
리비아 반정부 투쟁이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일어난 다른 나라 반정부 투쟁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또 하나의 차이점은, 리비아 국민들이 일으킨 자연발생적 시위가 경찰 탄압으로 과격해지면서 차츰 폭동으로 전화된 것이 아니라, 반란세력이 폭동을 선동하고 경찰 탄압을 유도하여 내전을 일으킨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리비아군의 무장반란 덕택에 리비아 반란군이 정규군의 각종 무기로 중무장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정규군의 무장반란을 군사정변(coup d'état)이라 하는데, 군부에 침투한 반란세력이 오랜 기간 동안 암약하면서 준비하지 않고서는 군사정변이 일어나지 않는 법이다.
이번에 리비아에서 일어난 무장반란이 어떠한 준비과정을 거쳤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 없으나, 오래 전부터 미국이 반란세력을 배후에서 조종하며 무장반란을 은밀히 준비해오고 있었던 것이 분명해보인다. 리비아 무장반란에 얽힌 비화는 아래와 같다.
리비아 반란군을 지휘하는 리비아군 출신 군사지휘관이 두 명 있는데, 리비아군 육군 대령으로 복무한 경력과 미국 망명경력이 있는 칼리파 벨카심 하프타(Khalifa Belqasim Haftar)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리비아에서 폭동이 일어나자 그는 미국 망명생활을 급히 청산하고 리비아로 돌아가 반란군 지휘관이 되었다. 하프타의 정체는 무엇일까?
프랑스의 국제전문 월간지 <르 몽드 디플로마띠끄>가 2001년 3월에 발간한 책 ‘아프리카를 조종하다(Manipulations Africaines)’에 따르면,
리비아와 차드가 영토분쟁을 벌인 1980년대 후반, 당시 리비아군 육군 대령이었던 하프타가 차드군에게 전쟁포로로 붙잡혔는데, 차드에 잠입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도움으로 전쟁포로인 그가 갑자기 종적을 감추었다.
<워싱턴 포스트> 1996년 3월 26일 보도에 따르면, 하프타는 미국 중앙정보국의 배후조종을 받으며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리려는 반란단체인 ‘리비아 구국전선(Libyan National Salvation Front)’ 산하의 무장조직 ‘리비아 국군(Libyan National Army)’ 지휘관이었다.
미국 중앙정보국의 도움으로 전쟁포로 신세를 면한 하프타는 1990년대에 어느덧 반란군 지휘관으로 변신해 있었던 것이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1996년 12월 19일에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리비아 구국전선’과 ‘리비아 국군’에게 무기와 재정을 지원해주고 있었다.
미국 중앙정보국은 ‘리비아 국군’을 하프타의 이름을 따서 하프타군이라 불렀다.
<월 스트릿 저널> 2011년 2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리비아 토브룩 지방의 군지휘관이었던 술레이만 마흐모드(Suleiman Mahmoud) 육군 중장이 2월 20일 자기 휘하의 병사 3,000여 명을 이끌고 무장반란을 일으켰다.
런던에 있는 반카다피 망명단체 ‘반대를 위한 리비아 전국회의’의 선동으로 폭동이 일어난 때로부터 불과 사흘 만에 현역 중장이 병사 3,000여 명을 이끌고 무장반란을 일으킨 것은,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반란사건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미국 중앙정보국의 배후조종을 받으며 리비아군에 침투하여 암약한 하프타군이 은밀히 준비해온 반란사건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
위의 정보를 종합하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2004년 6월 28일 이후 앞에서는 리비아와 관계를 정상화하는 척하면서 뒤에서는 미국 중앙정보국의 카다피 정권 전복공작을 추진하면서 내란을 일으킬 결정적인 기회를 찾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리비아 인접국인 이집트에서 반정부 시위로 친미독재정권이 무너진 기회를 이용하여, 미국 중앙정보국은 하프타군에게 리비아군이 무장반란을 일으키도록 지령을 내렸다.
하프타군과 리비아군 반란세력이 합세하여 내란을 일으키자, 미국 군부는 내란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방대한 무력을 리비아 인근으로 급파하여 무력침공을 개시하였고, 원래 대사가 없었던 리비아 주재 미국 대사관에서 대리대사로 있었던 크리스토퍼 스티븐스(J. Christopher Stevens)를 ‘연락관’에 임명하였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리비아 반란군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임무를 ‘연락관’에게 맡겼다는 점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위에서 논한 것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이번에 리비아에서 일어난 내란은 미국의 배후조종으로 일어난 ‘급변사태’인 것이다. 내전을 교사하고, 내란에 개입하는 무력침공을 감행하고, 무력침공으로 반미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선호하는 전형적인 침략전쟁 시나리오다.
지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리비아에서 실행에 옮기고 있는 침략전쟁 시나리오는 리비아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 시나리오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원래 리비아가 아니라 한반도에 적용하려던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지시에 따라 미국 군부는 북측에서 ‘급변사태’를 일으키려는 ‘작전계획 5030’을 세워두었고, 북측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나는 즉시 선제공격을 감행하여 정권을 무너뜨리고 핵무기를 탈취하려는 ‘작전계획 5029’도 세워두었다.
리비아에서 하프타군이 일으킨 내란이 격화되어 미국군이 선제공습을 감행하고 있을 때, 한반도에서는 ‘작전계획 5030’과 ‘작전계획 5029’에 의거한 ‘키 리졸브/독수리’ 북침전쟁연습이 벌이지고 있었다.
공격 받고서도 반격하지 못하는 리비아
리비아군은 119,000명 정규군과 45,000명 예비군으로 편성되어 있다. 다 합해봐야 164,000명밖에 되지 않는다. 총인구가 660만명인 나라에서 그 정도의 병력을 유지하는 것은 정상이다.
내란이 일어난 직후 수 천명이 반란군으로 넘어갔으니 160,000명 정도로 줄었을 것이다. 리비아군이 비록 160,000명밖에 되지 않지만, 침공을 격퇴할 전투력을 가졌더라면, 미국군이 함부로 공격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리비아군이 미국군의 침공을 격퇴하려면 미국군 전략거점을 타격할 작전능력이 있어야 한다. 만일 리비아군이 미국군의 선제공습을 받은 즉시 반격에 나서 지중해 지역의 미국군 군사기지를 한 곳이라도 타격하였다면, 전세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군이 영국군, 프랑스군을 참가시킨 가운데 선제공습을 계속하는데도 리비아군은 반격하지 못하고 있다. 왜 속수무책으로 타격만 받는 것일까?
미국 군부는 리비아 침공을 위해 지중해 지역에서 군사기지 세 군데를 사용하고 있다. 이탈리아 씨실리섬(Sicily)의 씨고넬라(Sigonella)에 있는 씨고넬라 해군항공기지(Sigonella Naval Air Base)를 리비아 침공을 위해 사용하는데, 이 군사기지는 미국군이 중시하는 지중해의 전략요충지다.
또한 그리스 크레테섬의 수다만 해군기지도 리비아 침공 군사기지다. 또한 이탈리아 동북부에 있는 아비아노 공군기지(Aviano Air Base)도 리비아 침공 군사기지다. 바로 이 공군기지에서 출격한 미국군 F-22 랩터(Raptor) 스텔스 전투기가 리비아를 공습하였다.
트리폴리에서 씨고넬라 해군항공기지까지 직선거리는 537km이고, 리비아 중부 내륙에서 수다만 해군기지까지 직선거리는 800km이고, 트리폴리에서 아비아노 공군기지까지 직선거리는 1,470km다.
지리적 조건을 살펴보면, 리비아군에게 사거리 1,500km의 준중거리 미사일만 있었어도, 미국군은 함부로 리비아를 침공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리비아군은 지중해에 전진배치된 미국군 기지를 타격할 준중거리 미사일이 한 발도 없어서 무력침공을 당하고 말았다. 리비아군의 미사일 전력은 왜 그렇게 약할까?
원래 리비아군은 ‘약골’이 아니었다. 1980년대에 미국은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리려고 무력침공에 매달렸다. 미국은 리비아 북쪽 지중해 연안에 있는 싸이드라만(Gulf of Sidra)에서 해상작전권을 장악하기 위해 지중해에 배치한 제6함대를 동원하여 리비아 군사시설을 여러 차례 공습, 파괴하였고,
리비아 남쪽에 있는 리비아-수단 국경지대에서는 수단군을 배후에서 지원하여 무력충돌을 일으켰다. 미국은 리비아 북쪽과 남쪽에서 이처럼 협공을 퍼부으면서도 리비아와 전면전을 벌이지 못했다.
그 까닭은, 리비아군이 무력침공을 격퇴할 미사일 전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비아군의 미사일 전력은 미국의 농간에 의해 완전히 무장해제되고 말았다. 그 기막힌 사연은 이렇다.
1979년 12월 29일 미국은 리비아를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려놓았고, 1981년 5월 6일 리비아와 단교하였다. 미국이 리비아 압박이 더 심해진 까닭은, 1981년 1월 20일 극우성향의 레이건 정권이 출범하였기 때문이다.
레이건 정권은 리비아와 단교한 뒤 석 달이 지난 8월 19일 미국군 전투기를 출격시켜 지중해 상공에서 리비아군 전투기 두 대를 격추하였다. 공공연한 도발의 시작이었다.
레이건 정권은 1986년 1월 7일 리비아에 대한 강력한 경제제재를 추가로 실시한다고 발표하였고, 1986년 4월 5일 독일 베를린에서 일어난 폭탄테러로 미국군 두 명이 죽은 것에 대한 보복이라고 하면서 4월 15일에 미국군 전폭기 편대를 동원하여 리비아를 공습하였다.
미국이 이처럼 리비아를 공습하면서도 공습을 한 차례만 감행하고 금방 물러선 까닭은, 계속적인 공습에 맞선 리비아군의 반격이 가해질 경우 리비아군의 미사일 공격이 자기들에게 적지 않은 타격을 입힐 것으로 예상하였기 때문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리비아를 지원해준 소련이 해체되자, 미국은 리비아에서 ‘급변사태’와 ‘정권교체’를 일으키기 위한 봉쇄와 압박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였다. 미국은 유엔안보리를 움직여 리비아를 압박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도록 공작하였다.
1992년 1월 21일 유엔안보리 결의안 731호, 3월 31일 유엔안보리 결의안 748호, 1993년 11월 11일 유엔안보리 결의안 883호가 잇달아 나왔다. 거기에 더하여, 1996년 8월 5일 미국 연방의회는 ‘이란-리비아 제재법안(Iran-Libya Sanctions Act)을 의결하였다.
굴욕적인 비밀협상과 무장해제
10년 이상 지속된 강력한 봉쇄와 압박으로 더 이상 버티기 힘들게 된 리비아는 결국 1999년 봄 미국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고 말았다.
리비아가 요청한 굴욕적인 비밀협상에 관한 정보는 오랫동안 비밀로 묻혀있다가, 클린턴 정부 시기 미국 국무부 중동 담당 차관보였던 마틴 아인딕(Martin S. Indyk)의 발언이 2004년 3월 31일 <파이낸셜 타임스>에 실리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그가 언론에 전한 바에 따르면, 당시 리비아는 미국에게 리비아군 화학무기를 폐기하는 문제를 다룰 비밀협상을 시작하자고 요청하였는데, 미국은 비밀협상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리비아가 미국 항공기 테러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희생자 유족들과 보상문제를 해결하라는 전제조건을 내걸었다.
누구가 알 수 있듯이, 미국이 내건 전제조건은 리비아에게 굴복을 요구한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리비아는 미국이 내건 굴욕적인 전제조건을 받아들였다. 미국에게 굴복한 리비아는 1988년에 있었던 미국 항공기 테러에 연루된, 리비아 정보기관에 연관된 혐의자 두 사람의 신병을 1999년 4월 5일 네덜란드에 넘겨주었고, 1989년에 있었던 프랑스 항공기 테러에 대한 프랑스 당국의 조사에 협조하기 시작하였다.
미국은 리비아가 굴복한 것을 보고 나서야 리비아의 비밀협상 요구를 받아주는 척하였다. 1999년 봄에 시작된 비밀협상에서 리비아는 리비아군 화학무기를 자진해서 폐기하겠다고 미국에게 공약하였다.
리비아가 화학무기를 폐기하는 것은 무력침공을 막을 전쟁억지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인데도, 리비아는 자국의 주권을 지킬 마지막 군사적 수단까지 포기하면서 미국에게 굴복하였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리비아가 전쟁억지수단을 포기한 것은 회복하기 힘든 치명적 실책으로 되었다. 리비아를 얕잡아본 미국은 화학무기를 폐기하겠다고 공약한 리비아에게 이번에는 생물학무기 의혹을 들이대면서 계속 압박하였다.
2001년 11월 19일 생물학무기 국제협약(Biological Weapons Convention) 검토회의(Review Conference)에 나타난 당시 미국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 담당 차관보 존 볼튼(John Bolton)은 리비아가 국제협약을 위반하고 생물학무기를 개발 또는 배치하려고 한다고 주장하였다.
2002년 5월 6일에도 그는 리비아가 생물학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사태가 그처럼 심각해지고 있었는데도, 리비아는 미국과의 굴욕협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2003년 3월 초 리비아는 자국의 대량파괴무기 프로그램을 제거하는 문제를 다룰 포괄적 협상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그에 따라 미국, 영국, 리비아의 비밀협상이 시작되었다.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관리였던 플라인트 레버렛(Flynt Leverett)이 2004년 1월 23일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비밀협상에서 미국은 리비아가 대량파괴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하면 그에 대해 “확실하고 응당한 보상(explicit quid pro quo)”을 주겠느라고 약속하였다.
미국이 그런 약속을 꺼내놓은 것은, 미국이 대량파괴무기를 제거하겠다는 거짓명분을 내걸고 이라크를 침공하기 불과 한 달 전에 있었던 일이다.
미국이 2003년 3월 19일 이라크를 침공한 것을 뻔히 보면서도, 일단 대미관계에서 기가 꺾인 리비아는 미국과의 굴욕협상에 계속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2003년 8월 15일 리비아는 미국 항공기 테러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희생자 유족들에게 보상하기로 공약하였고, 9월 11일에는 프랑스 항공기 테러 희생자 유족들에게도 보상하기로 공약하였고,
12월 19일에는 핵확산금지조약(NPT)과 화학무기 국제협약(CWC)을 준수하여 핵무기 및 화학무기 프로그램을 폐기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허용하고,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의 규정에 따라 탄도미사일의 사거리와 탄두중량을 제한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에 따라 미국은 2004년 1월 18일 실무처리반을 리비아에 파견하여 대량파괴무기 프로그램 제거작업을 개시하였고, 1월 27일 27.5t에 달하는, 핵개발 및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관한 기밀문서들과 각종 관련장비들을 압수하여 미국으로 공수하였다.
3월 15일 스펜서 에이브러햄(Spencer Abraham) 당시 미국 동력자원부 장관은 미국이 가져온 기밀문서들과 관련장비들은 앞으로 미국이 압수할 전체 분량에서 불과 5%밖에 되지 않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2004년 3월 10일 당시 미국 국무부 검증 및 이행 담당 차관보 폴라 드수터(Paula DeSutter)는 미국 연방하원 국제관계위원회에 출석하여 미국은 리비아군이 보유한 사거리 800km의 스커드-C 미사일을 포함한 각종 탄도미사일들과 우라늄농축설비를 제거하였다고 보고하였다.
9월 22일 그는 연방하원 국제관계위원회에 다시 출석하여 리비아의 무장해제에 대한 검증이 기본적으로 완료되었다고 보고하였다.
미국은 리비아군 무장해제를 2010년까지 집요하게 추진하였다. 화학무기 금지기구(Organization for the Prohibition of Chemical Weapons)가 펴낸 2009년도 보고서는 2009년 말 현재 리비아가 보유한 화학무기 원료 가운데 39%가 폐기되었고, 겨자개스 23t 폐기작업은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고 지적하였다.
2011년 2월 23일 화학무기 금지기구 대변인이 <합동통신(AP)>에 전한 바에 따르면, 리비아가 보유한 겨자개스 가운데 약 54%에 달하는 13.5t이 폐기되었다.
위의 정보를 종합하면, 미국은 리비아군 무장해제를 개시한 2004년 1월 18일부터 2011년 1월까지 7년이 지나는 사이에 리비아의 전쟁억지력을 완전히 제거해버렸음을 알 수 있다. 2011년 1월 현재, 리비아군에게는 미국군의 침공을 막아줄 전쟁억지력이 전혀 없었다.
리비아의 전쟁억지력 제거작업이 완료된 직후인 2011년 2월 25일 미국은 리비아 주재 미국 대사관을 폐쇄하고, 리비아에 있는 미국인들을 항공편으로 해외 대피시키고, 카다피 국가원수와 주변인물들의 미국 내 자산을 압류하는 제재를 재개하였다. 리비아를 침공하기 위한 사전조치였다.
어느 길이 옳았는지 오늘의 현실이 말해준다
2004년 2월 28일 아프리카연합(African Union) 정상회의에 참석한 카다피 국가원수는 “핵무기는 나라의 안전을 보장해주지 못하므로, 다른 나라들도 리비아처럼 대량파괴무기를 포기하라”고 촉구하였고, 5월 13일에는 대량파괴무기 확산의 우려가 있다고 미국이 지목한 나라들과 군사교류를 중단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발언과 행동은, 미국의 집요한 봉쇄와 압박에게 굴복하여 무장해제의 길을 택한 리비아가 미국의 사기극에 농락당하고 있는 줄 알지 못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이었다.
또한 카다피 국가원수는 2008년 9월 1일 집권 39주년 기념연설에서 “우리가 미국에게 굴복하는 일은 없을 것이지만, 미국과 같은 나라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리비아의 이익에 부합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발언은 이미 비밀협상에서 미국에게 굴복하고 무장해제를 당한 치욕을 감추고 체면이나 차리려는 허세발언에 지나지 않았다.
주목하는 것은, 리비아가 미국에게 굴복하여 무장해제를 당하였건만, 미국은 리비아가 그토록 기다리던 ‘보상’에 대해서 철저히 외면하였다는 점이다.
리비아 외무장관 출신으로 유엔주재 리비아 대사로 부임한 압델 라흐만 샤이감은 2009년 3월 11일 <뉴욕 타임스> 보도기사에서 “우리는 장비들을 내주었고, 뇌관을 제거했지만,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아무 것도 없다”고 투덜거렸다.
2009년 9월 1일 모하메드 사야라(Mohammed Sayara) 리비아 국제협력부 장관은 <파이낸셜 타임스> 보도기사를 통해, 리비아가 미국의 요구대로 행동하였으나 그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고 하면서 불만을 표시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리비아를 기만하고 농락한 특대형 사기극을 벌인 것이었으니, 리비아에게 아무 것도 보상할 필요를 느끼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이치다. 미국의 특대형 사기극에 감쪽같이 속아넘어간 리비아가 어리석었던 것이다.
이번에 리비아는 미국의 배후조종으로 일어난 내란과 미국의 무력침공이 시작되자 그때서야 자기들이 기만과 농락을 당했음을 깨닫고 가슴을 쳤을 것이다.
그러나 때는 너무 늦었다. 리비아가 무력침공을 받고 있지만, 자국의 이해관계만 따지는 냉혹한 국제사회에서는 아무도 리비아를 도와주지 않는다.
미국의 눈치나 슬슬 살피는 중국과 러시아는 리비아 침공을 유엔안보리의 이름으로 합법화한 유엔결의안을 채택한 자리에서 반대표를 던져 저지하지 않고 기권하며 뒤로 물러서더니, 미국의 리비아 침공이 시작되자 반대성명도 아니고 고작 유감성명이나 발표하고 말았다.
지구 위에 있는 수많은 나라들 가운데 오직 북측만이 미국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미국의 리비아 침공을 강하게 단죄하였다.
2011년 3월 22일 북측 외무성 대변인은 미국의 리비아 침공을 “최대의 반인륜범죄로 준렬히 단죄한다”고 지적하였다. 미국의 리비아침공을 반인륜범죄로 단죄한다는 지적에는, 반인륜범죄를 징벌하는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에 미국을 제소해야 한다는 뜻이 들어있다.
지난 날을 돌아보면, 10년 동안 계속된 미국의 봉쇄와 압박을 견디지 못한 리비아는 대미 비밀협상에서 굴복하였지만, 60년 동안 미국의 봉쇄와 압박을 받아오는 북측은 혹독했던 ‘고난의 행군’에도 굴하지 않고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고 ‘강성대국 건설’을 추진하여 미국의 봉쇄와 압박을 완전히 무력화하였다.
미국에게 굴복한 리비아는 미국으로부터 기만과 농락을 당하면서 무장해제를 당하여 전쟁억지력마저 잃어버렸고 결국 무력침공까지 받았지만,
미국과 정면대결을 계속해온 북측은 ‘선군정치’를 실시하고 핵무기 보유와 인공위성 발사로 미국을 강하게 압박하면서 미국의 북침전쟁위험을 막아내고 그들을 한반도 평화회담으로 끌어내려고 한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선군노선’을 선택한 북측과 굴욕협상으로 무장해제를 선택한 리비아, 그처럼 상반된 두 갈랫길 중에서 어느 길이 옳았는지 오늘의 현실이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3. 리비아 사태는 카다피가 독재자이고 부정부패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서방언론의 패악질이고 심리전일 따름이다.
<참고3>
「우선 제가 카다피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씀 드립니다. 그리고 이 동영상이 리비아 정부의 홍보물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습니다 (뭐, 아무래도 좋은 점만 추려서 요약한 것이겠죠). 하지만 일단 색안경을 벗은 후 시청해 보시기를... 주요 내용을 정리하였습니다:
- 석유 팔아 벌어들인 돈으로 학교와 병원을 짓고, 인프라(대수로) 구축에 투자 (우리나라의 동아건설이 참여했던 프로젝트죠 아마?)
- 카다피가 집권하기 전 리비아 국민 중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5명에 1명 꼴도 되지 않았으나, 지금은 83%의 국민이 글을 깨우침
- 무상교육 (대학교 포함)
- 전국민 대상으로 무상 의료지원 제공 (심지어 반군들에게도 무상 의료지원 제공), 해외에서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경우에도 국가에서 비용을 부담
- 농사를 짓고자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토지, 집, 농기계, 가축, 씨앗 등을 무료로 제공
- 모든 국민들이 집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음, 모든 리비아 국민들에게 무상으로 집을 제공할 때까지 자신의 부모도 텐트 생활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약속, 그런데 그 약속을 현재까지 지켜왔음 (부친은 집에서 살아보지 못한 채 몇 년 전 텐트에서 타계, 한편 모친은 아들에 대해 이 점을 가장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음, 그런데 개인적으로 이건 좀 심한 듯... 자기는 좋은데 살면서... 흐...)
- UN의 HDI(Human Development Index: 인간개발지수)에 따르면 리비아가 러시아, 브라질, 사우디아라비아보다도 잘 사는 것으로 되어 있음
- 2007년 African Executive지에서 리비아를 다음과 같이 평가: "나이지리아와 같은 아프리카의 여타 산유국과는 달리, 리비아는 석유로 벌어들인 돈으로 국가 개발에 힘쓰고 있다"
- 모든 국민들에게 부가 분배되어야 진정한 경제의 민주화를 달성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음, 석유판매 대금의 일부를 모든 리비아 국민들의 통장에 정기적으로 입금시켜 줌
- 여성들의 자유와 지위의 신장을 위해 노력함(교육, 직장생활 등), 카다피가 보수적인 아랍권 사람들로부터 욕먹고 있는 이유 중 하나임
-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동조하는 아랍 국가들(사우디 등)을 욕하다가 아랍권에서 왕따 됨
- 2010년 10월, 아랍 지도자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프리카인들을 탄압한 것에 대해 공식 사과함, 이것 때문에 다른 아랍 지도자들의 공공의 적이 됨
- Africa 연합을 구현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함, 아프리카의 독립을 위해 다양한 후원 활동
- 넬슨 만델라가 카다피를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자유의 투사 중 한 명"으로 평가함
그리고 동영상에는 나오지 않지만, 제가 예전에 올렸던 글도 하나 소개합니다. 이게 결정타였을지도...
http://blog.naver.com/krysialove/150108227899
미국, 영국 등 리비아 공세에 나선 국가의 정부들은 "리비아 국민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저지하기 위해", 그리고 Gerald Celente와 같은 재야(?) 인사들은 "리비아의 달콤한 원유를 빼앗기 위해" 연합군이 리비아를 공격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는 내용의 보도입니다.
카다피가 오래 전부터 석유 판매대금을 미국 달러 대신, Gold Dinar(금화)로 받으려는 계획을 추진해 왔다는군요... 그리고 여러 중동 및 아프리카 국가들이 그의 주장에 어느 정도 수긍을 해 왔던 듯합니다. "Oil dollar"라는 용어 아시죠? 석유대금은 달러로만 지불해야 한다는 얘기인데... 지난 2000년에는 사담 후세인이 "앞으로 석유 판매대금은 달러 대신 유로화로 받겠다"고 했다가... 맴매를 맞았었죠... 후세인뿐만 아니라, 링컨과 케네디 대통령의 모습도 오버랩 되네요...
RT에서 보도하는 내용입니다...
<참고4>
출처 :http://blog.naver.com/krysialove/150117038560
카디파가 리비아에서 이룬 업적
년간 GDP per capita가 - $ 14,192.
* 실업수당 월85만원 Unemployment benefit - $ 730.
* 가족수당을 정부가 년간 120만원 지급 Each family member subsidized by the state gets annually $ 1,000
* 간호사 급여 월 120만원 Salary for nurses - $ 1,000.
* 신생아 출산시 840만원 지급 For every newborn is paid $ 7,000.
* 신혼부부 살림집 구입비 7천7백만원 지급 The bride and groom receive a $ 64 thousand to purchase flats.
*세금과 헌금은 금지됨 Major taxes and levies prohibited.
* 개인 사업을 열면 재정보조금 2천4백만원 지급 To open a personal business a one-time financial assistance of $ 20.000
*교육과 의료비 면제 Education and medicine are free.
* 해외 유학비는 전액 정부보조 Education Internships abroad - at government expense.
* 대가족 음식은 기본 식비 보조 Stores for large families with symbolic prices for basic foodstuffs.
* 의약품은 자유 지급 Part of pharmacies - with free dispensing.
* 자동차와 아파트 구매비는 이자 없음 Loans for buying a car and an apartment - no interest.
* 부동산 거래 브로커는 금지됨 Real estate services are prohibited.,
* 자동차 구입비는 50% 정부보조 Buying a car up to 50% paid by the State.
* 인구를 위한 전기료는 면제됨 No Payment for electricity for the population.
* 술 판매와 사용은 금지됨 Sales and use of alcohol is prohibited.
* 석유는 리터당 170원으로 물보다 저렴 Petrol is cheaper than water. 1 liter of gasoline - $ 0.14.」
4. 리비아 사태를 예측키 어려우나 장기간 혼돈 상태에 빠질 것 같다. 서방 언론의 표현과는 달리 인민의 지지를 받고 있는(다만 어느 정도인지는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카다피는 쉽사리 제거될 것 같지는 않고, 설사 제거된다하더라도 ‘이라크의 늪’과 같은 상황으로 미국과 서방의 발목을 계속 잡을 것이다.
5. 현재 한반도와 중동에서 평화협정의 논의가 물밑에서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다. 중동에서는 이스라엘이 굴욕을 강요당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중동전에서 침탈한 땅을 모두 뱉어놓아야 할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세계사의 흐름이 수상하다. 지켜보면 흥미진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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