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를 보면 가끔 왕의 임종을 확인하는 장면이 나온다. 주상(主上)의 얼굴에 감히 손을 댈 수 없어서인지 가는 실올을 가까이 대어 호흡에 따른 동요를 확인하여 마침내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싶으면 붕어(崩御)를 현실화한다. 이렇듯 호흡은 생명을 지탱하는 근원이면서 때로는 생명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한의학의 인체구조에 대한 관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동의보감(東醫寶鑑)』의 ‘신형장부도(身形臟腑圖)’가 있다. 오장육부(五臟六腑)를 기능적 관점으로 형상화한 이 그림은 현대의 해부학 그림에 비해 상당히 다른 느낌을 준다. 왜 그럴까? 구조론에서 출발한 서양의학 체계에서는 눈에 보이는 기관을 사실적(寫實的)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지만 천지음양(天地陰陽)의 조화를 지향하는 기능론에서 출발한 동양의학에서는 오장육부의 유기적인 기능 체계를 도식적으로 보여주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에 단촐하기까지 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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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의 ‘신형장부도(身形臟腑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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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을 자세히 보자. 입을 벌리고 있지 않은가. 화공은 ‘후후’ 하면서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모습을 그렸던 것이다. 입으로 들어온 날숨은 허파를 팽창시키고 위로 상승하려는 심화(心火)를 견제하면서 아울러 외부에서 들어오는 차갑고 더운 기운을 가려서 인체의 군주(君主)인 심장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허파 혹은 폐장(肺臟)에 대해 한의학에서는 상부지관(相傅之官)이라 한다. 이 직책은 군주의 기관인 심장(心臟)을 도와 그 통치권이 합리적으로 전달되도록 출납시키는 관직에 비견할 만하다 하여 붙인 것이다. 호흡은 생명력의 출납현상임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인식이다.
한의학에서는 호흡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호흡과 맥박, 즉 폐장의 기능 발현인 호흡과, 심장의 기능 발현인 맥박이 서로 균형 있게 유지되도록 권고하고 있다. 예컨대 ‘일식삼지(一息三至)’라 한 것은 한번 호흡하는 동안 맥박이 세 번 뛴다는 것이다. 마음의 질병인 번뇌 망상이 없고, 몸의 질병이 없다면 호흡과 맥박은 서로 균형을 맞출 것이며, 의식적인 자기 조절 시도와 침 치료는 호흡과 맥박의 절율성(節律性)을 회복시켜 줄 것이다.
물론 호흡은 폐 자체의 기능과 작용은 물론 흉곽을 움직이는 뼈와 근육의 움직임에 의해 이루어지는 기본적인 생명활동이며, 자율신경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요기 라마차라카(Yogi Ramacharaka)’는 심리치유의 과학적 접근을 다룬 그의 저서에서 “호흡은 인간의 모든 활동의 근원적 힘이 되고, 육체를 활동하게 하며 기능하게 한다.”고 하고 있다.
우리는 보통 호흡에 대해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만약 호흡에 대해 심각한 생각을 하면 과호흡에 의한 질병이 생기기도 한다. 늦은 밤 응급실에 숨이 막힌다고 찾아온 환자 중에는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로 말미암아 답답한 상태를 덜어보려고 호흡을 과다하게 하여 되려 호흡곤란 상태로 몰고간 이가 많다. 호흡에 대해서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조용히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평균점수는 얻을 수 있는 길이지만 잘 다듬어 활용한다면 실제로 호흡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2007년 2월 타임지에서는 뇌에 관한 특집 기사 중 스트레스를 조절할 수 있는 6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중 첫 번째가 ‘깊고 느린 호흡’이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방법 중에서도 첫 번째로 ‘호흡’을 권장하고 있다.
날숨은 뇌로 하여금 심장근육을 이완시키도록 신호를 보내며, 들숨은 심장을 활기차게 돌려준다. 들숨은 더욱 빠르게 기능하도록 하고 날숨은 더욱 느리게 기능하도록 한다. 들숨과 날숨의 조화는 완급의 조화요, 음양의 조화가 된다. 이는 인간의 육신과 정신을 건전하게 유지시켜 주며 스트레스를 이겨내게 하여 현대를 살아가는 힘을 북돋을 수 있는 것이다.
수행의 방법론 중 참선과 이를 통한 호흡의 조절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며, 유효한 심신안정과 건강증진의 결과를 가져온다. 호흡을 이용한 불교 수행법인 수식관(數食觀)에 대해 『마하지관(摩何止觀)』에서는 “약도산자(若掉散者), 응용수식(應用數息)”이라 하였는데, 이는 바로 자연계에서 이루어지는 대기의 호흡을 관찰하고, 자신의 호흡 수를 세면서 마음을 안정시키기고 번잡하고 산란한 상태를 가라앉히기 위한 선정 수행이다.
수식관을 행하는 것은 초심자들이 쉽게 행할 수 있고, 수행과정에서 진리를 보지 못하고 합리적이지 못한 사고에 빠지는 오류를 없앨 수 있다. 또한 이는 임상에 적용해보았을 때 가장 부작용이 적으면서도 효과적이기도 하다는 견해가 많다.
사실 호흡을 배에 집중한다든지 하면 머리가 아프거나 열이 오르는 등의 부작용이 생기기 쉬운데 수식관은 단지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숨결을 느끼고 그 횟수를 세는 것에 집중하면 되고 되도록 평소 본인의 호흡보다 천천히 한다는 느낌만 갖고 하면 된다. 중도에 다른 생각에 빠지면 빨리 이를 돌이켜 다시 세도록 한다. 이를 반복하다 보면 마음의 평정과 안정은 물론이거니와 집중력과 두뇌 활동력이 뛰어나게 된다. 그리고 신진대사의 원활화로 여러 가지 육체적ㆍ정신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자율신경계통이 안정되어 비만이 예방되고 혈당과 혈압이 낮춰진다. 물론 스트레스의 완화는 기본적인 효과이다.
이러한 내용을 『선비요법경(禪秘要法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구체화하고 있다.
“마땅히 다시 마음을 한 곳에 묶는 정심을 하고 배꼽에 생각을 집중하거나 혹은 허리에다 집중을 하고 호흡에 따라 나가고 들어오게 한다. 1의 숫자에서 2의 숫자를 따르고 혹은 2의 숫자에서 3의 숫자를 따르고…9의 숫자에서 10의 숫자를 따른다. 10의 숫자를 마치고 나면 다시 시작을 한다. 호흡을 따라 반복을 하고 10의 숫자에 이르면 수를 버리고 멈춘다. 이때 마음은 안정되고 무위에 이르게 한다.”
조용히 자신의 맥을 짚고 숨 쉬는 횟수를 세어보자.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호흡수를 갖고 태어난다고 한다. 내가 나의 숨결을 고르게 하지 않고 가삐 몰아쉰다면 내 생명력을 감소시키는 행위에 다름 아닌 것이다. 되도록 천천히 그리고 깊고 편안하게 호흡한다면 내 삶은 좀 더 길어지는 것이다.
삶과 죽음의 차이는 어쩌면 백지 한 장 차이고 한 숨 차이에 불과하다. 우리는 늘 그저 잊고 살 뿐이다. 내 인생을 좌지우지 하고 있는 소중한 우리의 숨에 대해 단지 매일 몇 분간이라도 집중하여 관(觀)하여 본다면 어느새 상심을 찾고 천지음양(天地陰陽)과 공존하는 주체로서의 평화로움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김동일 동국대 일산한방병원 교수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