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흥분과 피곤이 아직도 온 몸에 젖어 있었다.
멀고도 험한 길을 하루만에 돌아 온 셈인데 그러고 보니 한 곳에서 오래 머물며
느긋하게 감상하는 시간은 적었던 것 같다.
그러나 욕심이 그런걸 어쩌랴.
일정을 정하다 보면 자꾸 자꾸 연결이 되고 그러다 보니 소화하지 못 할만큼 되고 마는 것을...
그러나 이것은 호기심과 지식에 대한, 또는 더 거창하게 말하자면 우리 조상들의 유산과 그 얼에 관한 것이므로
욕심이 조금 과하다 싶어도 크게 욕될 것은 아니지 싶다.
우리나라에 남은 석탑이 일천여기라고 하는데 이렇게 다녀도 결국 다 보지는 못 할 것이 아닌가,
더구나 가서 보고 온 탑도 어느 한 포인트를 빠뜨리고 나면 다시 가서 확인해야 할 일도 생기는 법.
결국 설보고 난 탑은 다음에 가면 다시 더 볼 것이 생긴다는 뜻일 것이다.
아침 시간을 끝내고 가을 햇살이 화사하게 내리쬐는 창밖을 보다가 나는 다시 길을 나섰다.
카메라는 이제 내 수족처럼 나에게 붙어다니니 언제든지 길을 나설 수 있고 그 길은 항상 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제 일정에서 빠뜨린 것이 세 군데,
하나는 횡성 시내, 읍하리에 있는 삼층 석탑이고 하나는 홍천에서 대명비발디 스키장과 골프장으로 나가는 길에 있는
양덕원의 삼층탑이며 나머지 하나가 횡성 청일면의 봉복산에 있는 신대리 삼층석탑이다.
그 중에서 가장 쏠리는 것이 봉복산의 신대리탑이다.
길은 뭐 어려울 것도 없다. 횡성에서 댐을 거슬러 올라서 갑천으로, 갑천에서 소구니계곡으로 주욱 따라 올라가면 된다.
따라서 봉복사지는 행정상으로는 청일면이지만 인문지리상으로는 갑천면 소속인 셈이다.
횡성 선돌마을에서 점심으로 국수를 한 그릇 먹고는 곧바로 갑천으로 향했다.
가을 햇살이 일렁이는 들판에는 벼가 누렇게 익고 있었고 하늘은 무척 파랬다.
아무래도 가을은 그냥 햇살만 받고 있어도 살이 찔만한 계절인가 싶었다.
창문을 열고 시원한 바람을 온 몸으로 안으며 나는 천천히 봉복산 쪽으로 가고 있었다.
이 계곡은 전에 학생들이 가끔 M.T.를 가기도 하던 골짜기인데 나는 처음 들어와 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때 한 번 따라와 보는건데...갑촌에서 청일 쪽으로는 더러 갈 일도 있었고 바람 쏘이러 가기도 했지만...
계곡길은 맑고 개울도 깨끗해서 여름에 잠시 오기는 좋은 곳이겠다 싶었다.
그런데 저 앞 높은 산에서 제법 많은 풍력발전기가 바람을 타고 천천히 돌고 있었다.
그것은 초록의 높은 산 위에서 깨끗한 흰 색으로 우뚝하니 서 있었고 그 날카롭고 큰 세 날개의 풍차가
천천히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순간 저기가 대관령 선자령인가 싶었다.
아닌데...선자령이 여기서 보일 리는 없고 저기는 태기산 정도일 텐데...
태기산은 횡성에선 가장 크고 높은 해발 1261미터의 산으로 횡성과 원주를 거쳐 흥원창에서 남한강과 합치는 섬강의 발원지이다.
태기산의 유래는 태기왕의 전설로부터 비롯되었는데, 옛날 삼한시대말 태기왕이 이곳에 와서 성을 쌓고
신라군과 대적하였다는 전설이 있으며 지금도 산 중턱에는 그 당시에 축성한 성터가 허물어진 채 남아있고,
이같은 태기왕의 전설이 담긴 "태기산성" 표지석이 세워져 있기도 하다.
태기산 남쪽은 보광휘닉스파크의 스키장과 골프장이 들어와 있다.
태기산을 넘으면 메밀꽃 필 무렵의 봉평이고 봉평을 지나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의 계방산,
계방산을 넘으면 오대산...오대산을 넘으면 주문진...
그러니 이곳은 퍽하면 무장공비가 나타났던 한반도의 한 가운데,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라고 하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봉복산은 태기산의 서쪽에 솟은 1022미터의 산이다.
안내표지도 하나 없는지라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봉복사 절까지 올라갔다.
절은 무척 깨끗하고 조용했는데 터도 적당하게 넓은데다가 주변의 경개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따사로은 가을 한낮, 사람도 하나 보이지 않고 바람도 한 점 없으니 절은 그야말로 나 하나만을 위한 공간이 되어
평화스럽기 그지 없었다.
이 깊은 산 중에 아무도 없으니 무서울만도 한데 가을 햇살이 밝아서인가 전혀 그런 느낌은 들지 않았다.
봉복사 전경
아름답게 배치된 건물
가을 햇살에 밝은 대웅전 문살
바람 한 점 없는 저 가을하늘의 고요....
햇살이 밝으니 만물이 밝고...
맑은 물이 흐르니 담쟁이도 길을 찾아 올라온다
사찰 안내판에는 이 절은 647년(선덕여왕 16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여서 횡성군에서는 가장 역사가 오래 되었다는 것,
그 사이에 몇 차례의 중건을 하는 등, 사연이 많았다는 내용, 6.25때 전소되었다가 다시 지었다는 내용,
한 때는 암자만 9개에 승려가 100명이 넘었다는 내용, 구한말에는 의병들이 머물며 일본군과 싸우기도 하였다는 내용
등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자장율사가 세운 3층탑이 있는데 그것이 지금 강원도 유형문화재 60호라는 것이다.
여기 있는 3층탑이 자장율사가 건립한 것이라면 시기는 7세기 말을 넘지 않는,
그야말로 신라의 삼국 통일시기의 탑이라는 뜻이다.
삼층석탑은 현 봉복사에 올라가기 직전 마지막 민가가 두 채 있는 계곡 왼쪽에 있다.
높지 않은 넓은 언덕배기는 콩밭이 되어 있었고 탑은 그 한가운데 외롭게,
그러나 한 점도 흐트러짐이 없이 고고하게 서 있었다.
넓은 밭에 들어갈 길도 한 줄 없이 콩들이 얽혀 있어서 가까이 가기가 무척 힘이 들었다.
넓은 밭에 높이 5미터나 되는 큰 탑이 우뚝 서 있으니 무척 장대해 보였다.
나는 탑 주위를 사방으로 다니면서 살펴보고 사진을 찍고 하였는데 내 모습을 보고는 스님이 가까이 다가오신다.
나이는 30대 쯤일까...무척 젊어 보이는 스님이었는데 내가 봉복사에 계시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당신도 이 절에 온지 며칠 되지 않아서 이 쪽 지리를 잘은 모른다고...
탑에 대해서, 그리고 이 절터에 대해서 이러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데 주변 산세에 비해서 아무래도 탑이
방향이 잘 못 서 있는 것이 아니냐며 고개를 갸웃하신다.
그러고 보니 방향이 좀 그렇게 보이긴 했다.
아마도 이 밭은 탑을 중심으로 해서 옛날 절터였을 것이고 그 절 이름이 봉복사였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발굴을 해서 명문이라도 나와서 봉복사절터라는 것이 확실해 진다면 이 탑의 이름도 신대리삼층석탑이 아니라
봉복사지삼층석탑으로 바뀔 것이다.
新垈里가 무엇인가?? 새터나 새마을이면 될 것을... 신촌이니 신대니 하는 이름들이 말하자면 새로 마을을 일군
새마, 새마을, 새터...를 한자로 적은 것에 지나지 않거늘...
마침 스님이 나타나셔서 기대도 하지 않았던 모델이 되어 주는 바람에 나는 조금은 미안한 눈치를 보이면서 셔트를 자주 눌렀다.
<빛으로 흐르는 시간> ; 때로는 역광이 아름다울 수가 있다. 역광은 빛을 거슬리는 것, 성공하면 혁명이요, 실패하면 역적이다.
<먼 산>
순간 순간 잡힌 모습...
나는 어떻게 그렇게 젊은 나이에 스님이 되었는지가 그렇게 궁금할 수가 없었지만 차마 물어보지는 못 했다.
그래서 그런가 먼 산을 보는 모습, 탑을 등뒤로 하고 멀리 보는 모습이 마치 번뇌에 시달리는 내 모습으로 생각되었던 것이다.
탑은 전반적으로 거친 모습이었다.
2층 기단에 3층 석탑이지만 다른 탑들과는 여러모로 다른 점이 눈에 띈다.
먼저 하층기단은 지대석과 면석, 하층갑석을 모두 일체형으로 만들었으며 그러다 보니 하층기단 자체가 아주 낮게 되었다.
두 개의 돌로 맞추어 하층기단을 삼았는데 우주와 탱주를 새겼다.
즉 하층기단의 면석과 하층갑석은 흉내만 내는 형식에 그쳤다는 뜻이다.
이러한 기법은 상층기단 면석에도 적용되어서 네개의 넓은 돌로 상층면석을 삼으면서 그 자체가 우주로 보이도록 하여
아예 우주도 탱주도 생략해 버린 것이다.
상층 갑석은 평면인데 부연으로는 2단의 갑석받침을 조출하였다.
몸돌과 지붕돌은 1~3층까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 졌고 지붕돌의 받침은 1-2층이 5단, 3층이 4단으로 되어 있다.
몸돌에는 우주만 새겼으며 지붕의 낙수면은 그렇게 급하지 않게 밋밋하게 평면으로 처리하였고 추녀는 일직선이다.
반전이 있으나 눈에 약간 뜨이는 정도이다. 상륜부는 노반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유실되었다.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많은 부분에서 양식화되고 생략, 축소 된점, 변화의 정도로 봐서 봉복사의 안내문과는 달리
이 탑의 건립연대는 고려시대 중기까지는 내려올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다시 내려 올 시간,
가을 햇살을 받으며 서 있는 석탑은 아무런 말이 없지만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당신이 나를 기다리며 이 자리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천 년을 기다려 왔음을...
밭을 나오면서도 나는 뒤돌아 보며 뒤돌아 보며 몇 장의 사진이라도 더 남기고 싶어 셔트를 눌렀다.
돌아가는 길, 나는 횡성군청에 들러서 읍하리에 있다고 하는 삼층석탑을 다시 찾을 것이다.
스님과 헤어져 내려오는 길,
오늘 하루도 풍족함에 젖어 햇살이 내 가슴 가득히 번지고 있었다.
2010. 9. 30.
첫댓글 상쾌한 가을 햇살이 온방 가득 채우고도 넘칩니다. 천년을 지켜온 적막감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