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치는 소년/김종삼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희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어린 양(羊)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한국 대표 명시 3, 빛샘]=
김종삼(金宗三)
출생 1921. 3. 19, 황해 은율
사망 1984, 서울
초기에는 순수시를 지향하였으나 점차 정신적 방황의 세계를 노래했다. 생략을 통한 여백의 미를 중시했다. 대표작으로 <십이음계>가 있다. 6·25 전쟁 뒤 모더니즘 시인으로 주목받았다. 평양 광성보통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입학했다가 중단하고 일본 도요시마[豊島] 상업학교를 마쳤다.
유치진에게 연극을 배우고 음향효과를 맡아보기도 했다. 6·25전쟁 때 월남하여 피난지 대구에서 시 〈원정 園丁〉을 발표하고 이어 1951년 〈돌각담〉을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초기에는 피난민의 뿌리 뽑힌 삶과 허무를 노래했는데 비약적 상상력과 뜻밖의 어구를 연결하여 난해한 이미지를 만들고 시어의 음향효과를 높이려 했다. 이런 시정신은 전봉건·김광림과 펴낸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1957), 문덕수·김광림과 펴낸 〈본적지〉(1968)에까지 이어졌으며 전쟁 때문에 파괴된 삶을 그린 〈민간인〉(1971)으로 1972년 현대시학작품상을 받았다.
그 뒤에는 세계와의 불화 또는 인간 사이의 관계를 잃어버린 데서 나타난 정신적 방황을 노래했다. 이 방황은 세계와 조화를 이루기 위한 기나긴 역정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를 보헤미안적 시인이라고도 불렀다.
또 그의 시를 '여백의 시', '내용 없는 아름다움을 추구한 시'라고 말하기도 한다. 행의 과감한 생략과 비약으로 불완전한 문장과 불안한 문체를 통해 '여백'이 가지는 미적인 효과를 높이려 했다. 그리하여 전통적으로 익숙한 정서를 지워버리거나 독특한 질서로 바꾸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그리려 했다. 즉 시의 기법을 통해 비어 있는 세계를 깨닫게 하고 독특한 미를 창조하려 한 것이다. 그 뒤에도 이 생각은 이어져 소박한 세계에 대한 믿음으로 발전했다. 시집으로 〈십이음계〉(1969)·〈시인학교〉(1977)·〈누군가 나에게 물었다〉(1982) 등이 있다.
<다음백과>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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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에서 교회에 가려면 수십리는 걸어야 했습니다.
감히 엄두도 못냈습니다.
근처 절에는 엄마손을 잡고 일 년에 한두 번은 갔었습니다.
성탄절(크리스마스)가 되면 십자가, 교회, 기도하는 두 손, 사슴, 별, 소나무등이 화려하게 그려진 카드를 판매하였으나 우리는 누런 종이에 크레파스로 어설프게 카드를 직접 만들어 서울에 있는 누님에게 보내곤 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난 날이 성탄절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농촌에서 성탄절은 그렇게 기쁘거나 즐겁지 않았습니다.
만화나 읍내 공터에서 천막을 치고 상영하는 영화에서나 보았던 크리스마스였습니다.
몇몇 동네 형님은 천막을 들어 몰래 입장하기도 했습니다.
영사기에서 가끔 불이 나곤 해서 영화가 중간에 멈추기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눈이 쌓이고 사슴은 없지만 별은 밝게 빛나는 12월이었습니다.
영화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달이 가로등이되었습니다.
소박하고 고요한 성탄절,
예배당의 종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고향의 정경을 생각합니다.
커피가 유난히 맛있는 오늘입니다.
=적토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