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서요나
빙하기를 날아 인사동을 기어 토성의 금요일까지 외
동해 건너 폐수를 지나 서울로 갈게. 경복궁보다 동대문보다 일찍 늙기 전에 너한테.노이즈가 벌떼처럼 달려드는 초록색 라디오 한 손에 들고 바다로 걸어 들어갔지. 허공을 향해 솟은 너의 긴 팔 잠겨가고 푸른 기계 잠길 차례 오기 직전 되돌아 다시 걸어 나오는 너의 반대 팔에 붙들려 해변의 나는 젖어 있었네. 우라, 울고 있는 너의 머리가 울음의 불가능과 불가능한 울음 중 어디로부터 쫓겨오고 있었나. 나는 물고기야, 물에서 죽어도 육지에서만 애도하라고 우라에게 말을 했다. 아, 응. 너는 그 이야기 사실 어젯밤 꿈에서 들었다고, 아, 응. 꿈속에서 나는 수십 개의 아가미를 가진 나무였다고, 머리칼을 양 갈래로 쥐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 응 아 으 ㅇ 아 응 아 응 ㅇ ㅏ 으 ㅇ 아 ㅇ ㅡㅇ 출렁거리며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우리는 가위로 자를 수 없는 물의 후예다. 토템같이 떠는 초록색 라디오를 품고 눈물 쏟는 우라를 뒤로 하며 몸소 해변으로 뛰쳐나가 바다를 향해 몸 던졌다. 너는 무릎 위의 라디오를 부서질 듯 왼손에 옮겨 들고 소금물 속으로 따라 들어와 나를 건져 갔다. 그날 이후 우라는 새끼손톱과 새끼손가락을 물어뜯는 버릇이 없어져 있었다. 너의 양 끝에 맺힌 새끼손톱의 분홍빛이 아가미가 하나둘씩 닫혀가는 나무처럼 어두워져 가는 나날. 남해를 건너 하수구를 지나 마산에 와줄래, 나한테 와줄래.마음은 붉은 살갗 위로 잘려 나간 봉합 실밥처럼 외로워. 너를 마음해, 마음해, 마음해, 마음에, 마음에… 마음에? 어? 마음에 안 드니? 안개 항아리 같은 그 마음에 내가 술처럼 안 들어가지? 응. 그래, 맞아, 응. 네가 맞아. 버려진 텔레비전처럼 지구는 외로워, 지구는 찾은 적 없고 지번만 찾아 사계절 내내 대걸레처럼 무거운 두 날개를 늘어뜨린 채 어슬렁거리는 지구인들 아래에서. 여기는 금성이야, 지금도 구로에 있어? 그럼. 여기는 은하 속의 구로. 이 세상은 달보다 거대한 한 덩어리 정거장. 맨드라미 료 역에서 민트색 마을버스 좌석에 올라타 창밖의 우라에게 손 흔들다가 창문을 문질렀다. 맨드라미 료에서 맨드라미 묘묘 역까지 온몸을 뒤덮은 바닷물 뚝 뚝 흘려대며 잘도 갔다. 화성, 목성에서도, 금성에서, 명왕성에서도 맨드라미 묘묘 역으로 가려거든 흰수염고래 모양 우주선을 저 멀리 보내버리고 민트컬러 마을버스 A61을 타세요. 뒷문 바로 앞 창가 쪽 자리는 내 몸이 흠뻑 적셔놓은 시트가 있어요. 조심하세요, 그대. 화성에서도, 목성, 금성에서도, 명왕성에서도 인사동을 향해 날아 명동을 기어 신생대를 굴러 광화문을 뛰어 빙하기의 토요일로 그대. 우라, 다 울면, 다 울고 나면, 셔츠와 청바지, 양말에 깃든 바닷물이 모두 말라 떠나버릴 거야. 울고 있는 너의 품이 홀로 열어두기엔 너무 뜨거웠을까. 라 라 우라. 너는 이다음에 거인이 될 수 있다면, 인사동과 명동과 광화문을 두 발로 동시에 밟아버릴 수 있을 만큼 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2번지에서 3번지, 4번지에서 7번지로 가듯 은하에서 지구에서 지옥의 성탄절로 갈거야. 나는 뛰어들 바다가 없으니까 육지에서 죽어도 육지에서 애도해 줘. 해변에선 두 번 다시 달리지 말라고, 달리다 달려가다 지쳐 눈을 떠보면 심해 바닥을 걸어 다니고 있지 말라고. 인사동과 명동과 광화문만큼의 넓이를 혼자 걷지 말라고, 그러다가 물의 그림자 한가운데 갇혀 놀라, 아, 맞아. 종점을 지나왔구나. 보글보글 소리치지 말라고. 대걸레 같은 날개를 물속에서 빨고 있지 말라고 그랬다. 그런데…내가 빠져 죽을까봐 꺼내 온 게 아니었구나? 묻지 않았다. 폭우가 부엉이나비를 학명으로 부르지 않는 것처럼. 우라야, 내년 봄에 쓰러져 울 때는 봄이 지쳐 여름이 지쳐 가을이 지쳐 겨울이 다가와서야 뚝 그칠 사람처럼 울어라. 숨도 못 쉬게 우는 사람의 온기에만 녹겠다고 얼어붙은 날개 안에 숨어든 스물 한 살 검은 익룡님 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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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보다 멀리 하수보다 외로이
당신하고 같이 서역 끝에 가야 되는데 당신 가방만 들고 가는 길 흔들리는 물소 머리뼈 얼굴에 쓰고 인간 같은 것들의 마음을 믿어 불어닥치는 태풍에 꺼지지 않는 여기 전구 안 불빛처럼 진동하는 동공 아름다운 청산가리 같은 저기 저 세상 사방이 유리로 차단 돼 있다고 생각 했는데 물로 된 막이었지 옛날 옛적에 나는 물의 호위를 받는 불이었고 제3한강교 저 아래 양잿물이 오줌이 흐르건 오렌지 쥬스 설탕물이 흐르건 우리보다 빠르겠지 멀리 가겠지 치솟는 아침 저 불길은 반나절치가 부패하는 우리 갈비뼈 아래 깃털 수북한 미궁만 굽다가 또 돌아가겠지 어쩜 빙하기가 오면 센느강에 한강 아래 수장 된 익사체들보다 눈이 먼저 하얗게 멀고야 말겠네 변기의 어둠 속에 머리통 집어넣고 내장과 뼈까지 다 게워 내 아가리로 자식 낳는 거기 하나님 아버지 그 징그럽게 늙지도 않는 분의 식도 사이에 미처 걸려버린 두 안구가 토사물 타고 떠밀려 오지 못한 채 분만 된 아기를 뱃속에 키우고 베란다에서 정원에서 키우고도 머리통너머 귓속 너머가 얼마나 캄캄한지 알지 못하는 터질 듯 혈액이 들끓는 두 다리 두 팔 백성들에게 저녁 빙판 아래 암흑이 맹(盲)의 시간을 가르쳐 주네 당신 데리고 서역 끝에 갔다가 남해 입구로 가야되는데 당신 외투만 걸치고 가네 서울의 저녁 같은 미래로부터 심장과 무릎의 눈이 꺼지고 나무들의 눈이 꺼지고 펑 달의 눈이 돌의 눈들이 일제히 꺼진다 펑 펑 눈물도 없이 비가 우시네 눈 구멍 입 구멍도 없이 비가 울음 그치시네 비가 우시네 울음 그치시네 그 가슴 속에 허파를 빚고 있는 당신은 누구의 날숨? 들숨? 그대는 어떤 이의 오한이었음? 누구의 거짓말이길래 이렇게 떠나시나? 나 등에 모기 물렸나 봐줘 뒤 돌았다가 영영 제자리로 안 돌고 떠나시나? 사랑했어요? 누가 울고불고 콧물 훌쩍이며 뿜어대는 담배연기? 사랑은요 지랄…사냥총 맞은 사슴이요 사냥총 두 대 맞은 사슴이죠 사람 따위 없이도 절룩절룩 잘도 가요 천리만리 잘도 가요 나는 온 세상에 불을 밝히는 물 되지 못한 물의 낮잠 유리의 영정이었음? 빙점이 들이닥치면 가면처럼 얼어붙는 유리의 춤? 유리의 춤? 유리가 추는 춤 춤 가슴에 춤 춤 춤 대못 박히는 소리 겁대가리 쥐뿔도 없이 인두겁 속의 마음을 믿어 무엇을 냉각하여 이 땅에 태어났든 언 물은 얼음 하고 불러 녹은 물은 물 하고 불러 언 사람 녹은 사람 하고 불러 얼다가 녹은 사람 녹다가 언 사람 하고 불러 가슴에 대못 셋 대못 넷 뽑히는 소리 대못 여섯 뽑혀 나가는 소리 장밋빛 사랑도 도축장 비린내 피어오르는 사랑도 마른하늘에 웬 빨간 못 까만 못 맞을까봐 어금니로 동아줄 물고 저 멀리 등 돌려 빠지지도 않는 꽁무늬 달고 도망가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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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요나|2018년 계간 <페이퍼이듬> 창간호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 『물과 민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