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에 새겨진 문구로, 익살과 재기를 과시한 사람 중엔 아일랜드 출신의 노벨문학상 작가, 버나드 쇼(1856~1950)가 손꼽힌다. 그가 직접 주문한 비명(碑銘)은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였다는 것이다. 이 같은 번역문으로 인생을 미루지 알고 현재를 즐기라는 뜻으로 종종 인용되고 있다.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젊은 시절 읽었던 명언집에도 있었던 것 같다.
묘지에 쓰인 영어 원문은 이렇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우물쭈물하다'라는 번역은 stay around에서 나온 것 같다. 이 말은 어느 곳의 부근을 어슬렁거리며 멀리 떠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평생 말솜씨로 먹고 산 작가의 고도로 계산된 위트가 있는 문장이니만큼, 대충 해석해서 묘미를 즐기려고 하는 것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 가깝다. 저 문장을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어' 와 같은 우리식의 구어체로 번역하는 것은 오역이다. 문제는 이 오역이 버나드 쇼의 대표적인 입담처럼 우리나라의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는 점이다.
직역을 하면 이렇다. "오래동안 어슬렁거리다 보면, 이 같은 일이 일어날 줄 나는 알았다." 버나드 쇼는 94세까지 장수한 사람이다. 이 세상을 얼쩡거리며 오래 살았다고는 하지만, 결국엔 이와 같은 일(죽음)이 닥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가 우스개로 집어넣은 말의 핵심은 something like this에 있다. 죽음을 '이 따위 것' 이라 표현한 것이다. 아무리 오래 산다 해도 죽음은 느닷없이 닥치며 동의 없이 찾아온다. "내가 비록 (이 지상에) 꽤 오래 머물긴 했지만, 이 따위 것이 결국엔 닥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 정도의 유머다.
인생을 우물쭈물하며 산 것이 포인트가 아니며. '이럴 줄 알았다' 는 방식의 후회를 의미하는 것도 아닌 듯하다.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자신의 죽음 앞에다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써놓은 것일 뿐이다. 오역에서 교훈을 얻으며, 섣부른 깨달음을 전파하지 않는 게 우스광스러운 언어오염을 줄이는 길이 아닐지~
(ㅎ Carpe Diem 과는 거리가 멀죠? Memento Mori 도 물론 아니고... 오히려 제행무상이라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