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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결두레 아사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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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는 이야기 스크랩 잊혀진 영남과 충청 지역 동학사의 복원 -동학120주년에 출간된 세 편의 동학 소설을 중심으로- 정지창(문학평론, 전 영남대 교수)
방장 (추연창) 추천 1 조회 129 15.02.05 13:56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올해는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이 되는 해이다. 전북 정읍을 비롯한 각지의 동학유적지에서 이른바 동학 두 갑자를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가 벌어졌다. 특히 6월 초 충북 보은에서 열린 생명평화대회에서는 동학 100주년인 지난 1994년에 공연되었던 마당극 「칼노래 칼춤」(채희완 연출)이 재연되었고, 과천에서는 창작 뮤지컬 『들풀』(극단 ‘모시는사람들’)이 초연되었다. 문학 쪽에서도 동학과 관련하여 몇 편의 주목할 만한 작품이 창작되거나 출간되었으나 이에 관한 심도있는 문학적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4월 16일에 일어나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세월호 참사가 거대한 태풍처럼 모든 문학적 상상력과 논쟁의 에너지를 흡수하여 소진시킨 것이 가장 커다란 요인일 것이다.

충북 영동 출신의 두 작가 채길순과 조중의는 올해 상반기에 각각 장편소설『웃방데기』(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와 『망국』(영림카디널)을 발표하였다. 8월에는 천도교의 이론가 겸 문화운동가인 이돈화가 1935년에 탈고했으나 일제의 검열과 천도교 내부의 사정으로 출판되지 못한 장편소설 『동학당』(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이 원고 일부가 유실되어 미완인 상태로 뒤늦게 복원되어 출판되었다.

지금까지 창작된 동학 소설이나 시는 대부분 전봉준을 중심으로 하는 호남의 농민혁명 내지 농민전쟁을 다루었다. 가령 박태원의 『동학농민전쟁』과 송기숙의 『녹두장군』같은 장편 소설이 다같이 전봉준의 호남농민군이 봉기하여 패퇴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것이라면, 신동엽의 장편 서사시 『금강』은 가공의 인물 신하늬와 인진아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중심축으로 하여 전봉준의 동학농민군의 동선에 따라 스토리가 전개된다.

그런데 이번에 출간된 세 권의 동학 소설들은 다같이 호남 농민군 중심이 아니라 영남과 충청 지방의 동학 활동과 동학의 창도, 포덕 과정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동학 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하겠다. 『망국』은 1871년 경북 영해 지역에서 일어난 이필제의 난을 배경으로 동학의 2세 교주인 해월 최시형(1827~1898)의 행적과 포교 과정을 조명하고 있다. 반면에 『동학당』은 동학의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 선생(1824?1864)이 해월에게 법통을 전수하고 순교하는 과정과 이후 해월과 이필제의 엇갈린 사상과 행적, 그리고 해월의 뒤를 이은 천도교 창건자 의암 손병희 선생(1861?1922)의 행적을 일종의 설화적 수법으로 풀어낸다. 여기서도 작품의 무대는 호남이 아니라 영남과 충청 지방이고 그 내용도 동학의 법통이 전수되는 과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채길순의 장편 『웃방데기』는 주로 충북 영동 백화산 자락과 충청도 지역을 무대로, 동학 지도자가 아닌 밑바닥 민중의 시선으로 동학농민혁명의 전개과정을 조명한 이색적인 작품이다. 동학의 꿈이 민초들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어떻게 펼쳐지고 꿈틀거렸는지, 그리고 어떻게 실패하고 좌절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민중의 동학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80년만에 복원된 이돈화의 소설『동학당』

세 권의 동학 소설 가운데 필자가 가장 먼저 주목한 작품은 이돈화(1884?1950)의 소설『동학당』이었다. 그 이유는 최근에 동학 공부를 하면서 1920년대의 동학문화운동과 이를 주도한 이돈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야뢰(夜雷) 이돈화는 1920년대에 천도교의 종합잡지『개벽』의 편집자로 활동한 문필가 겸 사상가로서, 김기전 방정환, 차상찬 등과 함께 1920년대와 30년대에 이른바 동학문화운동을 이끌다가 1947년 월북한 인물이다. 전문 작가가 아닌 이돈화가 본격적인 소설 창작에 나선 것도 이채롭지만 동학을 다룬 최초의 장편역사소설로서 상당한 문학적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고 이 책의 출간을 위해 원고를 모으고 편집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작가 채길순은 평한다.

채길순에 따르면 이 소설은 1935년에 탈고되었으나 검열과정에서 몇 차례 원고를 수정하다가 출판을 포기했는데, 1965년에 원고가 공개되어 천도교 기관지인 『신인간』에 2회 실리다가 중단되었고, 10년 뒤인 1975년에 15회에 걸쳐 다시 연재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된 까닭은 아마도 소설 전반부가 영해작변의 주모자인 이필(이필제의 본명. 그러나 동학연구자인 표영삼에 따르면 동학 역사를 인쇄하는 과정에서 ‘제’자가 빠진 것을 잘 못 알고 이필로 표기한 것이라고 한다))을 주인공으로 삼아 최수운과 최해월의 행적을 조명한 점 때문에 천도교단 내부에서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채길순은 추측하고 있다.

이같은 의문을 염두에 두고 소설의 전개과정을 따라가 보자. 소설의 첫머리는 수운의 포덕과 순교, 해월에게 법통를 넘겨주는 과정이 서술된다. 이어 2장 ‘아버지를 죽인 원수’에서는 이필이 아버지를 죽인 원수인 상주 원님 김상현과 모함한 김진사를 죽여 원수를 갚는 대목이 영웅 설화처럼 펼쳐진다.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에서 박유복이가 이인을 만나 신통한 무술을 익혀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대목과 흡사하다. 이어 이필은 피신 중에 남원에서 수운을 만나 감화를 받고 동학에 입도한다.

다음 3장 ‘스승의 원수’는 이필이 스승의 원수를 갚기 위해 1871년 수운의 순도일인 3월 10일 동학교도들을 이끌고 영해에서 변란을 일으켜 부사를 효수하고 도주하다 영월에서 장렬하게 전사하는 대목이다. 영해작변 모의 과정에서 이필은 해월과 노선 차이를 보이자 독자적으로 거사를 감행한다.

 

“이제껏 참은 것만 해도 어디 참을 것을 참았소? 접장님 말씀과 같이 비천명과 사우는 것이 역시 천명이라 하면 싸우다 죽는 것도 또한 도를 위하는 것이 아니겠소?”

“싸운다는 것이 어디 총검을 가지고 싸우는 것만 싸우는 것인가요? 선생님의 도를 펴서 온 세상 사람에게 도덕의 풍화를 입게 하는 것도 역시 싸우는 일이 아닌가요? 지금은 도로 싸울 때요, 총검으로 싸울 때가 아닌 줄로 생각하시오.”

하고 해월은 이필의 오해를 풀게 하기 위해서 여러 번 간절히 말하였다. 이필은 해월의 말이 전부 옳은 줄 알면서도 자기의 의견 또한 틀린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다만 원수 갚는 방법이 서로 다를 뿐이라고 해석하였다. (147쪽)

 

이필은 해월과 생각과 노선이 달랐으나 근본적으로 해월의 뜻을 저버린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일월산에 남은 부하들에게 유언장을 통해 해월 선생의 뒤를 따라 후일을 도모하라고 당부하면서 해월이야말로 “(수운) 선생님이 직접으로 심법을 전해 주신 어른이요, 또 천명을 받은 어른이 분명하”(164쪽)다고 단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월의 말대로 총칼로써 원수를 갚는 것은 불가능하고 옳지도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 다만 자신은 본래 먹은 뜻을 변화시키는 것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이므로 최후의 죽음을 총과 칼 속에서 할 작정이라고 밝힌다.

이돈화는 천도교 교단의 대표적 이론가로서 수운에서 해월, 해월에서 의암 손병희로 이어지는 교단의 정통성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이 소설을 쓴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소설의 후반부에서도 그대로 관철된다. 여기서는 특히 해월의 포덕과 설법을 통해 동학의 기본 사상과 교리를 알기 쉽게 서술하고 있는데, 이럴 때 흔히 드러나는 상투적인 교훈적 설법 대신에 『임꺽정』식의 야담이나 설화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기법이 능수능란하다. 특히 대원군의 호위 무사였던 김석연이라는 장사가 민비와 민씨 일족의 탐욕과 부패로 촉발된 임오군란을 배후 조종하고 쫓기다가 강호의 호걸들과 어울리게 되고 충청도에서 동학 3대 교주이자 천도교 창시자인 의암 손병희의 수하로 들어가는 이야기는『임꺽정』에 나오는 청석골 두령들의 입산 과정과 흡사하다. 여기서는 특히 서출인 손병희가 소싯적부터 공부나 출세와는 다른 길로 나서 노름꾼과 난봉꾼으로 배포를 키우다가 동학에 입도하여 마침내 해월의 수제자로 성장하는 과정이 일종의 성장소설처럼 펼쳐지는데, 중산 중간에 그의 배포와 의리, 인정을 보여주는 일화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재미를 더해준다.

최시형과 이필제의 난: 조중의 『망국』

이 소설은 수운이 순교한 다음 법통을 이어받은 해월이 경상도 북동부와 강원도 산간 마을들을 떠돌던 신미년(1871년)에 이길재(이필제)가 일으킨 영해작변에서 갑오년(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기까지의 과정을 사실과 허구를 뒤섞어 재구성하고 있다. 대부분의 인물과 사건은 사실을 바탕으로 하였지만 대원군의 밀사로 파견되어 해월의 측근이 된 조민구와 그를 사모하는 동학 신도 수련은 가공의 인물들이다.

소설의 전반부를 이루는 영해민란은 출신이 미천하고 무식쟁이인 해월이 교주가 된 데 반발하는 향반 출신 동학접주 박사헌과 직업적 혁명가이자 모반자인 이길재가 합심하여 현지의 동학교도들을 선동하고 해월의 등을 떠밀어 일으킨 변란으로 묘사하였다. 겉으로는 교조신원을 내새웠으나 실제로는 교권을 노리는 분파주의자와 평등 세상을 꿈꾸는 모험주의자인 혁명가 사이에서 해월은 신중한 입장을 취하며 번민한다. 그리고 마침내 “영해성 공격이 개벽의 때가 아니라 평등이라는 이름의 첫 산을 넘는 무위의 행위라고 정리”(128쪽)하고 전국 각 지역의 교도들에게 동원령을 내린다.

영해변란은 일단 성공을 거두고 부사를 처형하기까지 했으나 바로 다음날 관군이 출동하자 주모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하고 만다. 해월도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며 구명도생하는데, 그동안 해월의 인품과 사상에 감화를 받은 조민구가 관군의 포위망 속에 갇히자 기지를 발휘해 스스로 인질이 되어 해월의 탈출을 돕는다. 이때부터 해월은 20년 넘게 곤궁한 잠행을 계속하면서 동학사상을 전파하게 되고 이것이 결국은 동학농민혁명의 원동력이 된다.

마침내 1894년 갑오년 가을, 조민구는 왕의 밀사로 보은 장내리의 동학군 진영으로 해월을 찾아온다. 그리고 청과 일본이 동학군 토벌을 위해 조선에 상륙하면 조선은 망하고 말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해월은 이미 정해진 혁명의 진로를 바꿀 수는 없다고 대답한다. 결국 조민구는 강대국의 무력 개입과 왕조의 부패 무능으로 나라가 망하는 길은 피할 수 없다는 절망감을 안고 발길을 되돌린다. 그러나 해월은 신미년의 실패를 딛고 이번에야말로 “평등한 나라, 신분차별이 없는 나라, 외세로부터 흔들리지 않는 나라”(324쪽)를 만들어야겠다는 혁명의 결의를 불태운다.

뒤이어 벌어질 우금치 전투를 비롯한 농민혁명과 조선 왕조 망국의 파란만장한 역정 속에 해월과 조민구, 수련의 행로는 어떻게 펼쳐질지,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쓰고 있는 후속편이 기대된다.

그렇다면 동학교도들의 영해성 습격사건은 역사적으로 어떻게 평가될까? 동학의 역사를 발로 뛰며 기록한 표영삼 선생은 이렇게 주장한다.

이번 운동은 해월신사의 동원령에 의해 16개 지역의 접 조직에서 동학도 5백명을 동원하여 이루어낸 운동이다. 비록 이필제의 선동에 의해 시작되었으나 동학조직이 이루어 낸 운동임에는 틀림이 없다. 영해병란이라고 이름하든지 이필제란이라 이름하든지 동학도에 의해 전개된 운동이요 교조신원운동을 명분으로 일으킨 운동인 것은 틀림이 없다.

(표영삼, 『동학』1, 397쪽)

 

이 소설 곳곳에는 해월의 입을 빌어 동학의 핵심적인 사상을 알기 쉽게 풀이해주는데, 가령 조민구에게 타이르듯이 회심에 대해 설명하는 해월의 메시지를 들어보자.

 

시천주하라신 뜻을 알겠는가? 모심으로써 육의 세계에서 영의 세계로 올라갈 수 있는 걸세. 이제 하늘님의 영을 통해 현세의 고난을 거뜬히 극복할 수 있을 걸세. 파란 하늘을 보고 깨달았든, 광활한 산야를 보고 깨달았든, 풀 한 포기의 가녀린 흔들림에서 깨달았든 다 마찬가지라네. 마음에 움튼 영성을 잘 기르시게. 살아가는 동안 오늘의 회심을 잊지 않는다면 하늘님은 언제 어디서든지 자네의 기도를 들어주실 걸세.

(조중의, 『망국』, 216쪽)

 

그렇지만 실패한 혁명가 이길재의 독백은 해월의 메시지와는 다른 의미에서 독자의 마음을 울린다.

 

나는 누구도 감히 건너려 하지 않았던 조선이라는 다리를 건너고자 했소. 금지된 다리를 건너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지 않겠소? 때로는 다치거나 귀양을 가거나 죽어야만 했소. 주자의 나라 조선은 다른 길을 모색하는 자를 이단으로 몰았소. 그래도 나는 숨 막히는 이 나라 강토를 바꾸고 싶었소. 방황 끝에 최수운의 동학에서 그 길을 엿보았던 거요. 나를 힐난해도 어쩔 수 없소. 동학을 이용했다고 비난해도 굳이 변명하지 않을 거요. 수운의 생각을 업고 조선을 뛰어넘고자 했던 거요. 이제 나의 운명은 하늘에 맡겨야 할 것 같소. 죽거나 귀양을 가거나 둘 중 하나겠지.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지는 않을 거요.

(앞의 책, 219쪽)

 

한울꿈을 꾼 밑바닥 민중의 갑오년 이야기: 채길순 『웃방데기』

 

채길순의 『웃방데기』는 동학농민혁명을 지도자가 아니라 밑바닥 민중의 눈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앞의 두 소설과 구분된다. 사실 동학의 신도 대다수는 농민이었고, 양반과 상놈, 적자와 서자, 남자와 여자, 가난뱅이와 부자를 차별하지 않는 교리에 이끌려 수많은 노비와 상민, 아전, 장사치, 우국충정에 앙앙불락인 퇴직 벼슬아치들까지 신도가 되었다. 외세의 침탈과 조정의 부패, 관리들의 탐학,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는 돌림병 등으로 막다른 길에 내몰린 백성들이 기존의 질서와 체제에 안주하지 못하고 새로운 질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동학에 들어온 것이다.

1893년의 보은 취회 당시 선무사 어윤중이 올린 장계를 보자.:

 

끝내는 경륜과 재기를 가졌으나 막혀서 뜻을 얻지 못한 이가 따랐으며, 탐관오리들의 횡포에 격분하여 백성들을 위해 막아보려고 목숨을 걸었던 이가 따랐으며, 오랑캐들이 우리나라 이권을 뻬앗는 데 통분하여 무턱대고 큰소리치던 이가 따랐으며, 탐학스러운 장수(將帥)와 권력을 휘두르는 관리들의 침탈행위와 학대를 어디에도 신원하고 호소할 길이 없는 이들이 따랐으며, 경향각지에서 무력으로 위협하고 억누름에서 스스로를 보전할 길이 없는 이가 따랐으며, 서울 이외의 곳에서 죄를 짓고 도망다니는 이가 따랐으며, 감영과 고을에 속한 벼슬아치(아전)들과 의지할 데 없어 각처에 흩어져 있는 이가 따랐으며, 어리석은 이들이 풍문에 따라 들어가면 살 수 있다고 하여 따랐으며, 빚 독촉을 참을 수 없는 이가 따랐으며, 상민과 천민으로서 신분을 벗어나려고 하는 이가 따랐다. (표영삼, 『동학』2, 309쪽)

소설의 주인공은 노비 출신인 갑이와 나비(아랑)이다. 갑이네 식구는 원래 남원의 김감사댁 종이었는데, 동학 접주 김개남의 도움으로 면천되어 한양에서 살게 된다. 아버지는 한양성의 큰 도적으로 부패한 고관대작들을 털어 가난한 서민들에게 나누어주는 활빈 활동을 하다가 붙잡혀 처형된다. 대장쟁이가 된 갑이는 양반집 종인 동학교도 바우덕이와 고리 백정 을동개를 사귀고 동학에 입도한다. 이후 충북 영동으로 피신해 살던 갑이는 계집종 출신인 나비를 아내로 얻어 딸까지 낳고 산다. 그러나 이곳의 세도가인 이용직 대감한테 나비를 빼앗기고 청주로 이사한다. 여기서 갑이는 동학군 지도부의 전령으로 각지의 접주들에게 통문을 전하면서 삼례와 보은 취회에 참가하고 금산 기포에는 창검대장으로 선봉에 선다. 이후 갑이는 청주성을 비롯하여 효포 널치, 예산 내포와 우금치의 싸움에 참전한 다음, 동학군 패잔병 부대와 함께 싸우다 보은 북실 전투에서 전사한다. 그러나 이용직 대감댁 안방마님이 된 나비는 그가 죽자 노비들을 풀어주고 자신도 자유의 몸이 되어 바우덕이의 아들 덕수와 갑이의 딸 당금이를 데리고 새 세상을 찾아 떠난다.

『웃방데기』는 밑바닥 천민인 두 남녀의 사랑과 이별을 축으로 하여 주로 충정도 일대의 동학농민혁명을 조명하였다. 이런 점에서 신동엽의 장편 서사시 『금강』의 스토리텔링 기법을 원용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동학소설만을 전문적으로 써온 작가답게 동학농민혁명의 큰 흐름을 한 개인의 삶을 통해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재구성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 소설의 장점은 속도감 있는 스토리 전개와 생동감 있는 대화이다. 그리고 짤막한 장면 장면을 연결해 놓아 마음만 먹으면 쉽게 연극이나 영화로 각색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대되는 여성작가들의 동학 연작소설

 

이런 가운데 동학의 문학적 형상화가 여성 작가들에 의해 연작 소설형식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보도가 눈길을 끈다. 이 야심찬 창작 기획은 전문 문인이 아닌 아마추어 여성 작가들에 의해 1년 전부터 조직적으로 추진되어 현재 집필이 완료되었거나 집필 중에 있다고 한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여성운동가이자 한의사인 고은광순 씨를 비롯한 4, 50대의 여성 15명이 각각 한 권씩의 동학 관련 소설을 창작하는데, 호남 지방 전봉준 농민군 중심의 서술을 뛰어넘어 충청과 강원 영남, 서울, 북한, 만주 등지로 무대를 넓혀 다양한 동학운동의 양상을 다룰 계획이다. 특히 전남 장흥의 여성 농민군 지도자 이소사와 해월 최시형의 외손자인 동요작가 정순철, 최시형의 아들로 만주에서 항일독립운동 단체인 고려혁명당을 이끈 최동희, 황해도의 동학 접주 출신으로 상해임시정부 수반이 된 백범 김구, 천도교 창시자 의임 손병희 선생의 사위인 소파 방정환 등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또한 동학군 최후의 저항 거점인 대둔산에서는 딸을 안고 투신하는 농민군의 애틋한 이야기가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생생하게 묘사된다고 한다.

이들의 창작 기획서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해월 최시형에 관한 관심과 동학사상의 여성주의적 해석이다. 좀 길지만 이들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동학은 19세기에 있었던 인류 최대의 사건. 동아시아 최대의 사건이었습니다. 인구 1,050만의 시대에 300만이 동학도였으며 그 중 30만이 희생되었고, 연발총을 가지고 들어온 일본군에 의해 두 달 간 5만 명이 집단살해된 비극적 사실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은 탐관오리의 학정에 반발한 기존의 민란과 완전히 다른 차원의 혁명이었습니다. 유교적 수직질서, 차별문화를 동학은 완전한 수평질서, 평등문화로 바꾸고자 하였습니다. 해월은 30여 년 간의 수배생활 동안 이를 비폭력, 평화적 방법으로 이루고자 경전 간행사업을 하며 수천, 수만리를 걸어다니며 생활의 성화를 꾀하며 포교, 포덕하였습니다. 심한 폭정과 외세에 힘없이 무너지는 무능한 정권이 농민들의 분노를 폭발시키자 동학도들은 아름다운 꿈같은 새 세상을 그리며 떨쳐 일어났고 죽어갔던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죽을 것을 알았으나 새로운 세상을 위해 참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세월이었습니다. 우리 역사 속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한 정신이었고 진화된 생각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동학의 실패와 식민강점은 역사의 반동을 불러왔으니 이것이 심하게 드러난 것이 집집마다 가짜 족보를 만들고, 허용되지 않았던 제사를 지내며 김,이,박 3개 성씨가 전 인구의 45%를 차지하는 등의 허세적 양반놀이가 전 국민에게 퍼지게 된 것이지요. 여성들에 대한 차별문화는 이후 최근까지도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http://news.hankooki.com/lpage/people/201401/h2014011521073991560.htm,한국일보,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01/15/0200000000AKR20140115096000055.HTML?input=1179m 연합뉴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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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02.17 17:10

    첫댓글 곰미곰미 곰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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