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자 유파(가문)는 총 49개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두 유파가 바로 코가와 이카 닌자입니다.(영화나 소설,만화에 주로 등장하죠)
두 유파의 역사에 대한 글이 있어서 옮겨 왔습니다.
코카(甲賀) 닌자의 역사
코카닌자가 그 존재를 크게 인정받는 것은 무엇보다도 長享원년(1487년) "마가리의 진"이라는 전투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막부의 명령에 등을 돌렸던 사사키의 토벌에 아시카가의 9대 장군 요시히사가 로카쿠를 몰아내고 코카성을 공격하였다.
로카쿠시는 자취를 감추고 코카산중에서의 게릴라을 전개하였지만 아시카가 장군의 권위에 도전하는 싸움은 장군 요시히사가 마가리 진의 집에서 연덕원년(1489)에 죽을 때까지 약 3년동안 계속되었는데, 코카닌자 군단의 활약만을 전국에 알리는 결과가 되었다.
그 5년 후 명응원년(1492)에도 장군직을 이어나간 요시타네가 코카총공격을 명령하였지만, 사사키 로카쿠는 코카닌자에게 체포되어 코카산중에서 이세로 멀리 달아나버렸다.
이와같이 사사키로서는 코카닌자와 결부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영록 11년(1568) 오다 노부나가로 부터의 치카에 안내역 의뢰를 거절한 사사키는 노부나가에게 거성, 지성의 곳곳을 공격당하고 만다. 그리고 천정(天正) 9년(1581), 노부나가는 안토성에 4만 6천의 대군을 모집하고 전멸작전 "덴쇼이카의 난"을 결심하고 행동하고 있다.
이로서 키차에의 영웅 사사키의 시대는 가버렸지만, 이때 코카닌자의 집단이 사사키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았던 것이 패인이기도 했다.
사실 그 이면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움직이고 있었다. 이에야스는 일찍부터 닌자의 실력에 주목을 하고, 영록원년(1558)에는 코카 이카 닌자 270명을 모아 고용하게 된다. 노부나가의 사사키 공격에 코카 닌자가 움직이지 않았던 것은 사사키에게 가담하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이에야스가 코카닌자의 공격을 회피하였기 때문이라고도 보여진다.
원래 코카닌자의 살아가는 방법은 절대로 공격적인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서 무력을 사용했던 것이다.
지금까지는 키차에의 일대세력으로 있었던 사사키와 손을 잡고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지만, 사사키의 쇠퇴를 본 닌자들은 노부나가의 세력을 더욱 견고하게 하였다.
노부나가의 함앞에 닌자들은 모두 굴복하였지만, 내심으로는 노부나가에게 반발을 하였다.
그 실력과 수완을 인정하면서도 강인한 방법에는 반감을 가지고 있었고, 또 노부나가 또한 코카닌자에게는 경게의 눈을 늦추지 않았다.
"덴쇼 이카의 난" 이 있은지 8개월 후의 덴쇼 10년(1582), 혼노우지(本能寺)의 변이 일어난다.
노부나가의 가신인 아키치 미쓰히데가 교토4조인 혼노우지에서 노부나가의 불의를 습격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궁지로 몰아넣었다.
이 때 노부나가의 초대로 교토를 여행중이던 이에야스는 여행지에서 이 대사건을 듣고 빨리 본거지인 미카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미쓰히데에게 길을 차단당해 궁지로 몰리게 되었다.
그러나 코카닌자의 호의적인 보호에 의해 우지타하라에서 시가라키에 들어가 코카 53년 중의 1명인 타라오가(家)에서 1박을 한다. 그전에는 하또리 등의 이카닌자에게 보호되었는데, 카부토를 넘어 이세의 시라코를 입고, 거기서 해로를 통해 미카까지 도망을 갈 수 있었다.
이 "이카 넘기"에 의해 타라오는 대관의 위치에 오르게 되고 이카닌자 200명이 결성하게 된다. 이렇게 앞을 볼줄 아는 닌자는 천하의 성패를 충분히 파악하였으며 이것이 바로 닌자의 특징이다.
노부나가, 히데요시, 이에야스 3인의 실력자 안에서 시대의 흐름을 먼저 꿰뚫고 취호에 천하를 통치할 사람은 이에야스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코카닌자가 에도로 이동하게 되는 것은 寬永11년(1634)으로 이카닌자의 에도 이주보다 50년 정도 앞서있다.
코카닌자는 합의제에 전통이 지속되고 있어서, 선조대대로부터 물려진 토지를 떠나 에도로 이주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었다. 그러나 장군의 엄한 권력을 거절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결국 오오하라를 비롯한 몇명이 에도이주를 결심하게 되고, 코카 100명도 결국 에도로 무대를 옮기게 된다.
전국(戰國)의 닌자들은 화술(火術)에 능숙했기 때문에 철포의 명수들도 많았고, 에도에서는 철포대의 직업으로서 활약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에도막부와 신분제와 세습제 속에서 인술(忍術)을 배울 필요가 없게되어, 점차 닌자의 모습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이카(伊賀) 닌자의 역사
닌자의 유파는 전국에 49개가 있다고 전해지는 가운데 코카와 더불어 이카는 기반은 달랐지만 지리적으로는 마주보는 인접지역에 있었다.
코카닌자집단 53가(家)와 친분을 두고 그 밑으로는 많은 지배를 따르는 "군중총"이라고 불리는 단체행동을 하는 코카닌자에 대해 이까류는 한마디로 이카류라고는 해도 하또리, 우치카와..등 그외에 주가된 유파만 해도 9개나 있었고 그들은 거의 비슷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우두머리격으로 알려진 하또리 일족이 또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코카도 이카도 공히 오와리, 미카, 교토의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중요한 거점을 차지하고 있었다. 영화나소설에서는 코카나 이카나가 어느쪽이 선하게 나오고 어느쪽이 악하게 나오기도 하는데, 사실은 그것과는 달리 두 유파의 관게는 무척 좋았다.
노부나가가 혼노우지의 변을 당한 시기를 맞았을 때도 이에야스가 힘없는 세력과 함께 오사카의 경계에서 미카까지 목숨을 건 탈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코카와 이카의 협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두 유파의 승리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