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3210] 滄江(창강)金澤榮 (김택영)시
和申紫霞朴淵瀑布詩 三首
참판 신자하의 박연폭포시에 화답하다 3수
김택영 ( 金澤榮 1850~1927)
이하=소호당시집 제1권 / 시(詩)○병자고(丙子稿)
참판 신자하의 박연 신라 때 박 진사가 연못가에서
피리를 불다가 물에 떨어져 죽었기 때문에 박연폭포라고 하였다.
폭포 시에 화답하다 3수
〔和申紫霞參判朴淵 新羅朴進士吹笛淵上墮水死故名 瀑布詩 三首〕
폭포수는 형세가 짧으면서도 험하니 시를 읊는 사람들이 형용하기 어려워
애를 쓰며 반드시 고심한다.
애를 쓰는 것이 괴로울수록 참모습과의 거리는 더욱 멀어진다.
그러므로 박연폭포 같은 경우 예로부터 지금까지
알려질 만한 아름다운 시가 없었다.
이번 겨울에 신자하 시를 읽었는데, 박연폭포를 읊은 시 1수에
“잔교를 굽어보며 구불구불 내려와선, 지나왔던 폭포를 돌아보네.
바위는 산이 솟은 땅에서 날고, 시내는 폭포가 드리운 하늘에 서 있네.
허공의 음악 소리 절로 들리니, 시끄러운 뭇소리 마침내 고요하네.
이제야 알겠구나 어제 묵었던 곳이, 흰 구름 그윽한 산마루였음을.
〔俯棧盤盤下回看所歷懸巖飛山拔地溪立瀑垂天空樂
自生聽衆喧遂寂然方知昨宿處幽絶白雲巓〕”이라고 하였다.
그 웅혼(雄渾)하고 진고(眞古)함은 실로 예스러워 힘쓴 자취를 볼 수 없으니,
참으로 박연폭포에 대한 천고 제일의 시이다.
공경하고 감복한 뒤에 우연히 화답하니,
참람하다는 꾸지람을 어떻게 면할 수 있겠는가.
성거관 밖에 석벽이 높으니 / 聖居關外石崔嵬
골짝과 산을 뒤집으며 폭포가 쏟아지네 / 倒峽傾山瀑布來
주야로 맑은 못엔 물결이 급하니 / 日夜空潭波浪急
성난 용 날아 걸려 온 몸에 천둥소리 내네 / 怒龍飛掛滿身雷
폭포 위 못에 용이 사는데, 《중경지(中京志)》에 상세히 보인다.
대개 이 시에서 인용한 용은 바로 폭포를 비유한 것이다.
산중에 새로 비 내리니 덩굴이 축축하고 / 山中新雨濕藤蘿
천 장 옥정에는 물이 더욱 많구나 / 玉井千尋水更多
저 돌다리 미련하여 깨닫지 못하네 / 何物石梁頑不覺
고래와 악어 채찍질하고 몰아서 해신이 지나가도
/ 鞭鯨驅鱷海神過 鱷=악어 악, 동자(同字)鰐.
이백(李白)의 시에 “해신이 지나가니 모진 바람 회오리치고,
물결이 천문산을 치니 석벽이 열리네.
〔海神來過惡風回浪打天門石壁開〕”라고 하였다.
정히 시내를 따라 걷다가 / 正信緣溪步
문득 폭포 향해 돌아오게 되었네 / 翻成向瀑歸
광풍은 절벽에 불어와 찢어지고 / 狂風吹壁裂
명월은 하늘에서 떨어져 날아 흩어지네 / 明月墮天飛
숲 속의 새는 깃들어도 안정하기 어렵고 / 林鳥棲難定
연못의 용은 잠들어도 위엄이 있네 / 潭龍睡亦威
술 깨자 옷깃이 차가우니 / 酒醒衣袂冷
지름길로 가서 절간을 찾네 / 徑去問僧扉
이백의 ‘해풍(海風)’ ‘강월(江月)’ 두 구는 폭포의 기세와 정신을 다 얻었으니,
앞 시대에도 있지 않았고 뒤로도 다시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구를 구사한 오묘함을 본다면,
본래 다만 ‘바람은 끊임없이 불어오고,
달은 비추어 도리어 고요하네.’라고 한
‘풍취부단 월조환공(風吹不斷月照還空)’ 여덟 글자로 지으려다가
도리어 ‘해(海)’ ‘강(江)’ 두 글자를 덧붙여 큰 기세를 울리고 펼쳤으니,
이것이 이백이 되는 이유이다.
이것을 기록하여 폭포를 읊기 어려움을 드러내고
또한 나의 부끄러움을 적는다.
和申紫霞參判朴淵
新羅朴進士吹笛淵上。墮水死故名。
瀑布詩 三首
夫瀑之爲水也。勢短而險。賦之者難於形容。用力必苦。用力愈苦。而去眞愈遠。故如朴淵瀑布者。自古及今。未有佳作之可聞者。今冬讀申紫霞詩有咏朴淵一首。
曰俯棧盤盤下。回看所歷懸。巖飛山拔地。溪立瀑垂天。
空樂自生聽。衆喧遂寂然。方知昨宿處。幽絶白雲巓。
其雄渾眞古。不見用力。洵朴淵千古第一之作也。欽服之餘。偶然有和。僭越之誚。其何以免。
聖居關外石崔嵬。
倒峽傾山瀑布來。
日夜空潭波浪急。
怒龍飛掛滿身雷。
瀑上之潭。有龍居之。詳見中京志。盖此詩之引龍。卽所以比瀑布也。
山中新雨濕藤蘿。
玉井千尋水更多。
何物石梁頑不覺。
鞭鯨驅鱷海神過。
李白詩。海神來過惡風回。浪打天門石壁開。
正信緣溪步。
翻成向瀑歸。
狂風吹壁裂。
明月墮天飛。
林鳥棲難定。
潭龍睡亦威。
酒醒衣袂冷。
徑去問僧扉。
李白海風江月二句。盡得瀑布氣勢精神。
盖前未嘗有而後不可更有者也。然觀其匠運之妙
。本只做風吹不斷月照還空八字。而却點過海江二字
。鼓張大勢。此其所以爲李白也。書此以見咏瀑之難。而亦以志吾之愧。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2005
[주-C001] 병자고(丙子稿) :
1876년(고종13), 김택영이 27세 되던 해에 지은 작품들이다.
[주-D001] 참판 신자하(申紫霞) :
이조와 병조의 참판을 지냈던 신위(申緯, 1769~1845)를 말한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한수(漢叟), 호는 자하(紫霞)이다.
1799년(정조23)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갔는데,
10여 년 간 한직에 머물거나 파직과 복직을 되풀이하는 등 기복이 많았다.
그 후 이조 참판, 병조 참판을 지냈다. 시서화 3절로 유명하였다.
저서로는 《경수당집(警修堂集)》, 《신자하시집(申紫霞詩集)》 등이 있다.
[주-D002] 성거관(聖居關) : 개성부(開城府)의 천마산(天磨山)과
성거산(聖居山) 중간에 있는 대흥산성(大興山城)의 북문이다.
이 북쪽에 박연폭포가 있다.
[주-D003] 옥정(玉井) : 태화산(太華山) 꼭대기에 있다는 못 이름인데,
여기서는 박연폭포 위의 못을 뜻한다
.[주-D004] 이백(李白)의 시 :
《이태백집》 권6의 〈횡강사(橫江詞)〉 6수 중 제4수를 말한다.
[주-D005] 이백의 …… 구 :
《이태백집》 권20 〈여산폭포를 바라보며[望廬山瀑布]〉에
“해풍은 불어서 끊이지 않고, 강월은 비추어 도리어 고요하네.
[海風吹不斷, 江月照還空.]”라고 한 구절을 말한다.
ⓒ 부산대학교 점필재연구소 | 남춘우 (역) | 2016
창강 ( 滄江 ) 또는 소호당 ( 韶濩堂 ) 이란 호를 사용한 김택영 선생은
동아시아 격변과 망국의 상황을 몸소 겪으면서도 전통적인 지식인으로서
올곧은 삶을 흐트러짐없이 지키고자 엄청 노력했다 .
또 자신의 시문 고치기를 반복하면서 사소한 흠결도 용납하지 않았으며
자기문집을 제자나 후손이 아니라 몸소 편집하고 다듬어서 직접 출간했다 .
그리고 자신의 사후에 세인들에게 이러쿵 저러쿵 입방아에
오르는 것 조차 싫은지라 스스로 자기의 일생을 정리한
자지 ( 自誌 ) 까지 남길 정도로 깔끔한 어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