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연수와 외국문화 습득을 목적으로 하는 조기유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높은 방법중의 하나가 바로 홈스테이 제도 이다. 왜냐하면 현지 가정에서 숫식을 해결하며 영어도 배울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준 미달의 가정, 거듭되는 오해와 마찰등의 문제도 드러나고 있다. 홈스테이의 성공을 위해 꼭 알아둬야 할 주의사항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영어연수와 홈스테이
‘영어수출’에 열을 올리는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의 학교들이 외국의 영어연수생을 위해 만들어 놓은 제도 가운데 홈스테이라는 것이 있다. 홈스테이는 간단히 말해 외국학생들을 위한 현지 원어민 가정 하숙이다. 민박이라고 해도 좋다. 우리나라의 하숙이나 민박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제도의 목적이 숙식 해결에만 한정되지 않으며, 관리 책임을 학교와 일부 전문업체가 진다는 것이다. 각국 영어학교가 판촉용으로 배포하는 화려한 전단에는 홈스테이 자랑이 꼭 들어 있다. 그 가운데 호주 아델레이드에 소재한 대학부설 영어학교 전단을 인용해 보자.
“홈스테이 프로그램은 아델레이드에서 공부하는 동안 호주 가정에 머무는 경험과 즐거움을 드립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모든 가정은 높은 기준에 따라 엄선되기 때문에 고객인 학생들에게 질 높은 숙식과 함께 일상 가정 생활속에서 영어회화를 익힐 기회를 제공합니다.”
단란한 현지 원어민 가정에 머물면서 숙식을 해결하고 영어와 현지 문화도 익힐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둔다는 것이다. 그러니 단기 영어연수를 온 학생들에게 홈스테이는 큰 매력으로 와 닿지 않을수 없다. 영어사용지역으로 나가는 한국 유학생의 70~805가 영어 연수생이다. 조기유학과 성인 정규유학의 경우도 처음 단계에서는 영어 학교에서 얼마 동안 지내는게 보통이다.
장밋빛 꿈은 사라지고
그럼 홈스테이는 과연 정말로 장밋빛 ‘외국 경험’인가. 대부분 한국인이 외국에 나가 경험하는 삶 자체가 그런것처럼, 여기에도 많은 허상이 존재한다. 한국인들은 대부분 ‘서양인 (특히 미국인)들은 부자여서 후하고 자상하고 친절하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많은 한국인들이 해외여행 경험을 가지고 있는 요즘도 그런 생각은거의 변하지 않고 있는 듯 하다. 막상 현지에서 살게되면 그런 ‘꿈’에서 깨어나게 되는데, 홈스테이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많은 한국 학생들은 학교가 정해준 홈스테이 가정을 찾아가 본뒤 실망한다. 살면서 문화적으로 느끼는 일반적 불편 말고도 주인과 겪는 오해와 마찰, 영어실력이 크게 늘 것이라는 기대가 깨지는 것 등으로 인해 오래 버티지 못하고 거처를 옮겨 다니기 시작한다. 결국 비슷한 처지의 한국학생들끼리 방을 얻어 나가, 가급적 영어를 쓴다는 원래 계획과는 딴판인 해외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유학생들이 숙식문제로 겪는 어려움은 크게는 문화충격의 일부로 유학의 성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렇지만 유학에 관련된 다른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에는 그 실상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해외에서 불행한 경험을 한 학생들은 벙어리 냉가슴을 앓다 떠나오면 그만이며, 한국에는 전체 유학교육의 틀안에서 이런 문제를 책임있게 모니터 하는 기구도 없기 때문이다. 더 크게 말해 한국의 신세대가 홈스테이로 외국인 가정에서 직접 살아본 경험과 그결과는 유학이라는 좁은 주제를 넘어서서 ‘국제화’라는 한국의 국가정책 속에서 심각하게 평가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국제교육 연구 (international education research) 의 일환으로 호주에 와 있는 한국 유학생들의 홈스테이 실태를 살펴보고 다양한 사례를 모아왔다. 이들의 친척이나 대리인을 자청, 여러 학교의 홈스테이 담당자와 가정을 돌아보기도 했다. 다음 내용은 그런 현장 경험을 토대로 한것이다.
‘인심’ 좋다는 호주의 경우
여기 내놓는 사례들은 대부분 좋지 않은 것이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또 책임의 상당 부분이 학생에게 있는 경우도 있따. 그러나 성공보다 실패의 예가 많은 것이 사실이며, 나쁜 사례들이 장래 해외 영어연수를 계획하는 학생들에게 좋은 가이드가 될 것으로 생각 돼 글의 방향을 이렇게 정하였다. 필자가 알아본 바로는, 호주 사례는 다른 영미국가에 그래도 적용가능하며, 그래도 ‘인심’은 호주가 미국, 영국, 캐나다보다 나은 편이다. (참고로 캐나다의 경우도 호주 만큼이나 인심이 좋습니다. 단 밴쿠버나 토론토와 같은 대도시를 제외한 그외 지역에서…편집자 주)
학교등록과 함께 홈스테이를 신청한 학생은 현지 공항에 내려 미리 팩스로 받은 주소를 가지고 직접 찾아가거나 등록을 알선한 유학원, 학교, 알선업체에서 마중 나운 사람의 안내를 받아 정해진 가정을 찾아간다. 그런데 처음 찾아가 만나는 가정은 주거 환경, 학교와의 거리, 가족상황, 출신 나라 등의 면에서 학생이 마음속에 그린 그림이나 홈스테이 본래 목적과는 빛나가 있는 경우가 많다. 여기 필자가 학생들을 도우면서 직접 경험한 두 사례를 보자.
첫번째 사례는 대학 2학년 재학 중 군대를 다녀와 1년간 영어연수를 시작한 P씨이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는P씨에게 학교가 정해준 가정은 시드니에서 경치 좋고 부자들이 많이 산다는 프렌치 포레스트 (French Forest) 지역이었다. 그러나 기차가 없어 버스로 다녀야 했고, 버스 연결이 좋지 않아 첫날 시내학교까지 오는데 2시간 반을 소모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버스를 바꿔 타지 않고 직행으로 오는 길이 있긴 했지만, 역시 1시간이 넘는 거리였다.
(참고로 캐나다에서 내가 전화를 받은 한 유학생의 경우도 학교 스쿨 버스를 타고 캐나다인 홈스테이에서 학교까지 매일 가는데 1시간반, 오는데 1시간 반, 그래서 하루에 총 3시간을 학교를 오가는데 보내는 학생이 있었다. 한국의 유학원들이 학생의 홈스테이와 학교와의 거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홈스테이를 배정하거나 학교를 배정하는 경우가 많다. 또 캐나다 현지에서 살고 있는 나의 경우에도 어느 학교가 좋고 어느 학교가 좋지 않은지를 잘 안다. 하지만 한국의 있는 유학원들이 이 모든 정보를 다 알지를 못한다. 그러나 보니 그냥 좋은 학교라고 이야기 해서 학생을 학교에 보냈는데, 나중에 알고보면 그 학교는 정말 나쁜 학교인 경우도 자주 있었다. 편집자주)
그나마 밤 9시가 지나면 버스는 끊겼다. 필자가 학생을 대신해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대화를 해 보려니까 다짜고짜 “Bull shit (입닥쳐)!” 하고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외국 학생을 직업적으로 많이 두어본 가정 가운데는 학생을 대신해서 찾아오거나 전화하는 현지 사람을 미워하는 경우가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을 자신이 알아서 관리해야 편할텐데 간섭한다며 싫어하는 것이다. 그는 혼자 사는 남자 노인이었다.
두번째 사례는 서울의 한 고등학교 1학년 생으로 여름방학에 2개월간 영어연수를 온 H양이다. 학교가 정해준 홈스테이 가정은 시드니 중심부에서 약 20km 서쪽의 덜위치힐 지역이었다. 기차역에서 멀지 않으나 꽤 으슥한 아파트 촌이었다. (호주 아파트는 대개 3층으로 근처에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 집을 포함, 낡은 아파트 베란다에느느 이불과 옷가지가 널려 있어 호주 수준으로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틀림없었다. 한국에서 온 16살 짜리 여학생을 머물게 하기에는 아무래도 불안했다.
노크를 하고 혼자 산다는 주인 여자를 만나 대화를 하면서 아직 마음을 결정하지 못했따고 하니깐 화를 벌컥 내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돈도 받았는데 무슨 소리냐며 공식적으로 항의하겠다고 했다. 다음날 학교에서 팩스가 왔는데, 필자가 그 여자 앞에서 난폭하게 굴어 그녀는 지금도 큰 충격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 여주인은 그리스계인 것 같았다. 그 지역은 그리스계가 많이 사는 곳이다 (호주에서는 인종 차별 금지 정책에 따라 언론 보도나 양식 작성에 있어 인종을 밝히는 일은 금기로 되어 있다).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라면 홈스테이 주인으로는 실격이다.
왜 이런 사례가 흔한 것일까? 각 학교는 1~2명의 홈스테이 전담직원을 두고 있다. 그는 홈스테이 희망 가정을 찾아 명단을 만들어 놓고 신청자인 유학생의 요구조건을 고려하여 짝을 맺어 준다. 대부분 신청자가 우너하는 조건도 그렇지만, 학교가 정한 기준도 ‘통학 거리가 기차로 40분 이내여야 하고 홈스테이의 취지에 맞는 원어민 가정’이다. 학교는 신청한 학생에게 추천하는 가정의 가족 구성원과 그들의 취미, 애완동물 유무, 직업, 주소, 전화번호 등의 정보를 팩스로 보내준다.
수요 따라 가지 못하는 공급
이런 절차가 있는데도 차질을 빗는 큰 이유는 이 분야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미권 사람들도 불경기를 만나 한푼이라도 더 벌려고 야단인데 무슨 소리냐고 할지 모르나 사실이다. 홈스테이의 이상대로 외국 학생들의 필요에 맞게 품위있는 영어로 대화하고, 호주 문화를 대표적으로 보여 줄수 있는 ‘규격품’ 가정이라면 적어도 중산층 이상이어야 한다. 예외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몇푼 더 벌기 위해 외국 학생들과 함께 살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비교적 좋은 가정은 언제나 ‘팔려나가’ 있어 새내기에게는 잘 걸리지 않는다.
얼마전까지 IDP 호주 교육위원회 시드니 지사 직원으로 많은 한국 유학생들을 학교와 홈스테이에 보내본 교민 구현모씨의 말도 공급 부족론을 뒷받침한다. 그에 따르면 ‘홈스테이에 맞는 구조의 집과 주인’이 따로 있는데, 그런 가정은 시내에 가까워 질수록 드물다. 구씨는 홈스테이에 맞지 않는 구조의 한 예로 방히 지하나 외진 곳에 있어 학생은 밥먹을 때를 빼고는 주인과 접촉하기 어려운 집을 들었다. 여인숙 구조에 카펫이 더러운 집도 많은데, 대개 그런 집은 주인도 엉망이라고 한다.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역시 방학을 이용해 서울에서 영어연수를 온 고등학생 재매의 경우인데, 이들이 들어간 홈스테이 가정은 시내 학교에서 가까운 노스 (The North Shore)로 고급 주택지역이며, 40대 주인 아주머니도 상냥한 편이었다. 다만 그는 원어민 영어 사용자가 아니어서 발음에 액센트가 많았다. 또 그는 한쪽 건물에 탁아소를 운영하면서 방하나를 홈스테이로 내 놓아 호주 가정의 표준이라 할수는 없었다.
시포스 (Seaforth)라면 시드니 동쪽 태평양 연안을 바라보는 백인 중심의 고급 지역으로 잘 알려져 있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1년간 영어공부를 하기 위하여 이곳에 온 N씨가 정한 홈스테이 가정은 주거 환경이 좋았다. 그러나 40대인 여주인은 칠레 출신으로 호주인 남편과 헤어져 중학교를 다니는 두 자녀와 살고 있었다. 전남편으로 부터 받는 자녀 양육비와 정부가 주는 과부수당으로 살면서 홈스테이를 부업으로 하는게 틀림없었다. 학생에 따르면 그는 안정된 사람이 아니었따. 남자를 사귀느라 외출이 잣고 영어도 원어가 아니어서 홈스테이 가정으로는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해 결국 4주만에 나왔다.
미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인구의 20~30%는 해외 출생자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비영어권 출신 백인으로 영어를 하긴 해도 원어민 같지 않다. 그런 가정이라면 홈스테이로는 애당초 적합하지 않으니 흔하게 볼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각 나라의 서민층으로 홈스테이 같은 부업을 원한다. 그러나 이들은 생활이 안정되어 있지 않으며 낮에는 집에 거의 없어 홈스테이에 적합하지 않다.
위험한 환경, 초라한 식사
대개 젊은 여성인 홈스테이 직원들은 성실하고 상냥하다. 그런데도 일이 이렇게 꼬이는 것은 역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때문이라고 할수 있다. 기업체인 영어학교에 고용되어 일하는 홈스테이 직원은, 신청이 쇄도하는데 좋은 가정이 없다며 사절하는 따위의 일은 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든 갈곳을 만들어 낸다. 한건을 가지고 며칠을 허비할수는 없기 때문이다. 될수 있으면 고객이 양보해 주기를 바란다. 현지 사정에 어둡고 의사 표현을 자유롭게 못하는 유학생들은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이런 문제들이 관행으로 굳어진 것이다. 담당자는 으레 “지금 정해진 아무개 가정은 나이스 (좋다) 하다”고 말한다.
어떤 30대 중반의 한국 여성은 레드펀에 거처가 정해졌다. 레드펀이라면 시드니 중심가에서 가깝지만 호주 원주민들이 모여 사는 곳이어서 주거 환경이 좋지 않다. 내가 담당자에게 왜 그렇게 위험한 곳을 연결해 주었느냐고 말하자, “요즘 시드니에 안전한 곳이 어디 있느냐”고 야교있게 반문했다. 잘 알려진 대학부속 영어학교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어학교는 대학부속일지라도 독립채산으로 운영되는 기업이다.
이런 틈새시장을 찾아 홈스테이만 알선하는 전문 기업체가 시드니에만 4~5개나 있다. 그 가운데 대표격인 ‘홈스태이 네트워크 (Homestay Network)’의 크라디아 콜러 사장은 사업 취지를 과시하듯 공급부족을 부인한다. 시드니 근교의 2,000개 가정을 회원제로 관리하고 있다는 콜러씨는 학교로서는 홈스테이가 부수적 사업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홈스테이 가정을 신문광고 대신 기존 회원 가정드로가 다른 개인간 네트워크를 통하여 찾고, 직접 가서 면접을 본 다음 선발한다고 했다.
에코스 유학원의 그레이스 김도 공급 부족이라는 논리를 부인한다. 그에 따르면 학교는 시드니 모닝 헤럴드 같은 큰 신문에만 광고를 내고 응해 오는 희망자를 중심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학교가 인원을 늘려 한국 문화에 특별히 관심을 갖는 가정, 한국인 입양아를 둔 양부모, 외출할때 어린 아이와 함께 집에 있을 사람을 원하는 젊은 엄마 등을 찾아 나선다면 사정은 달라질 것이라고 했따. 현재 가정이 받는 주 홈스테이비 (160~200 호주 달러)는 그대로 두고, 학교나 업체가 받는 알선비 (100~150 호주 달러) 를 조금 올려 적합한 가정을 찾는 노력을 계속하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돈에 포함된 하루 세끼 (어떤 가정은 주말만 하루 세끼, 그외는 하루 두끼)는 우리 식사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하다. 아침은 냉장고에서 꺼낸 우유와 콘플레이크, 점심은 샌드위치와 과일 한 개 정도 (주중은 도시락으로), 저녁 메뉴는 대개 매일 다른데 이틀은 스파게티가 나오는 정도다. 한식에 비하여 외형이 빈약한 서양음식 또한 유학생들이 만족하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영미사회가 계약중심사회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는 집을 임대할때 실감하게 된다. 집 상태를 세목별로 적은 체크 리스트가 있어 쌍방이 서명하는데 계약서 안에는 서로의 권리와 의무, 임대료 지불 방법, 위반시 대처 방안, 송상에 대한 배상 등이 깨알처럼 적혀 있다.
문화 차이가 스트레스 원인
홈스테이도 계약으 원칙이 그대로 적용된다. 그러나 당사자인 학교와 가정, 고객인 학생이 함께 서명하는 계약서는 없다. 학교는 홈스테이를 할 학생이 돈을 내야 할 항목과 지켜야 할 사항들이 자세히 적힌 한 장짜리 인쇄물만 내 주므로, 엄격히 말해 이것은 계약서가 아니라 학생의 의무를 적은 문서에 불과하다.
그 문서에는 ‘기물을 파손하면 배상한다’는 등 학교와 가정의 권익을 보호하는 사항과 학생이 가정 생활을 하면서 ‘해도 될 일과 안될 일 (Does and Don’ts)’ 이 더 많이 적혀 있다. 홈스테이 주인이 지켜야 할 의무는 학생에게 적절한 숙식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 정도다.
홈스테이 네트워크도 홈스테이 학생들이 지켜야 할 예의와 준수 사항 들을 자세히 적은 ‘스튜던트 핸드북’을 마련해 놓고 있다. 그러나 주인 가정이 지켜야 하거나 조심해야 할 사항에 대해서는 언급이 별로 없다. 홈스테이 네트워크 회원 가정의 스티브 문지 (에핑 거주)는 학생관리와 관련, 어쩌다 회람을 받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는 유학생은 호주의 주류 문화와 생활 양식을 배워야 할 학생 신분이고, 홈스테이 주인은 ‘호주 어른’인 만큼 늘 바르다는 사고방식을 반영한다.
고등학교 2학년인 여학생 C가 6개월간 호주에서 지낸후 한 영어학교의 알선으로 들어간 홈스테이 가정은 전형적인 영국계 호주 중류층 원어민 가족이었다.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켰고 시드니 중심가에서 전철로 30분 거리에 있는 2층 저택에 살고 있었다. 그 중 비어 있는 침실 네개를 홈스테이 용으로 개방한 것이다. 60대 초반의 남편은 오랜 공직생활 후 은퇴했고 50대 후반의 부인은 대학의 행정직에서 일하고 있었다. 퇴근 후를 이용,외국 학생을 뒷바라지 하는 것이므로 손빠르고 계획성 있는 여성임에 틀림없다. 아닌게 아니라 학생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부지런하고 경우가 밝았다. 대신 지나치게 깐깐한 잔소리 꾼이었다. 학생은 그드로가 말하기가 싫어 될수 있는 한 대화를 피했다고 했다. 학생 부모의 만류도 있고 해서 6개월을 견딘 뒤 입학이 확정된 고등학교 기숙사로 옮겼다.
이렇게 되면 홈스테이의 의미는 적어진다. 유학생과 홈스테이 주인의 불편한 관계는 문화차이와 그에 따른 상대에 대한 기대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한국과 서양의 문화적 차이가 크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상식이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심각한지는 현지에서 실제 그들과 가까이 지내 보지 안혹는 잘 모른다. 홈스테이를 해본 대부분의 한국 유학생들은 뒤늦게 이점을 깨닫게 된다. 시드니 에스터 유학원 대표이며 최근까지 호주 한인 유학원 협의회장을 지낸 이상기 씨느느 “해외 생활을 처음 하는 학생이 곧 바로 홈스테이를 하면 꼭 문제가 생기는데, 대개 언어 장벽과 문화장벽이 겹쳐 오해가 증폭되기 때문” 이라고 말한다.
유학생의 생활을 돕기 위한 자료를 읽다보면 왜 그런지를 깨닫게 된다. 여러가지 충고 가운데 한 구절을 소개하면, “ 말을 제대로 못 알아 들었으면 그렇다고 똑바로 말해야지. 알아들은 것처럼 대답하거다 행동하지 말라. 오해를 가중시킨다” 이다. 홈스테이 주인이 간곡히 부탁하거나 주의 준것을 학생은 알아들은 것처럼 대답하지만, 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흔하다. 학생들이 약속대로 행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에 그들은 대단히 불쾌해 한다. 이것은 비단 유학생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인이 서양인과의 관계에서 흔히 범하는 실수다.
10분 이상 샤워하지 말라
학교나 가정이 정한 홈스테이 룰은 사립학교 기숙사 생활이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친구들을 집에 초청할때는 주인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저녁을 밖에서 먹고 올때는 사전에 연락해야 한다’. ‘샤워장에는 한번에 10분 이상 있지 말며, 사용후에는 깨끗이 치우고 나와야 한다’. 등이다. 그런데 그에 대하여 주인이 주의를 줄때 “예스” 라고 해놓고 어기면 어떻게 될까. 이씨는 한국 여학생들이 샤워후 머리 카락을 샤워장에 그대로 남긴채 나오는 일이 흔하다고 말한다. ‘10분 이상 샤워하지 말라’는 이유는 대개 호주 가정의 물탱크 보일러 용량이 작고, 또 다음 사람의 이용을 위해서다. 대부분 서양인들이 그런 것처럼 호주인들도 비용에 민감하다. 유학생은 낮과 취침시간, 그리고 외출시에는 전등과 방에 있는 히터등을 꺼야 한다고 되어 있다.
시드니 서부에 위치한 커버데일 고등학교 (Christian Coverdale School) 는 한국 유학생을 많이 받고 그들의 홈스테이도 관장한다. 이 학교의 제프 클라크 교자은 홈스테이 가정이 학생에게 하는 가장 큰 불평도 바로 이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외 홈스테이 주인들은 전화사용과 요금 지불 방법등도 규칙으로 정해 놓는다. 이런 규칙들을 우리식으로 지키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면 꼭 말썽이 생긴다. 서양의 교육받는 중류층 중년 주부나 노년층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보수적이며 젊은이들에게 엄격하다. 말을 해도 씨가 안먹힌다고 생각하면 금방 잔소리꾼으로 바뀐다.
한국인들끼리 어울리기 일쑤
한국의 부모들은 한국 사람들이 적은 지역과 학교로 자녀를 보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인이 없는 곳에 갔다고 해서 바라던 대로 외국 사람과 섞여 지낼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한국 학생들은 해외에 나가면 자진해서 한국인 친구를 찾고 또 한국에서처럼 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 한다. 이 또한 현지에 나와서야 깨닫게 되는 유학의 실상인데, 왜 그렇게 되는가를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영미인들은 친한 친구라도 우리처럼 늘 붙어다니지 않는다. 그들의 생활은 개인주의적 가치관을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생김새와 언어가 달라 교류가 편치 않은 동양인과 특별한 일 없이 깊은 우정을 나눌 이유가 없다. 이쪽에서 가만히 있는데, 저쪽에서 접근해 오는 일은 드물다. 그게 영미인의 프라이버시 개념이다. 인간관계는 대개 쌍방행위가 아닌가. ‘탱고를 혼자서 출수는 없다 (It takes two to tango)’ 라는 영어표현대로, 한쪽만의 노력으로 친구가 될수는 없다. 그러니 한국인이 없는 곳에 가 있게 되면 유학생은 방과후나 주말에 완전히 고립되기 십상이다.
그럴때 이들이 잘 찾아가는 곳이, 한인 사회가 있는 도시라면 거의 다 있는 한인교회다. 이렇듯 교회, 학교 또는 유학생 모임에서 친해진 한인 학생들과 어울리며 고독을 달래는 것이다. 한인 사회가 있는 곳에는 어디나 이런 한인 유학생들의 필요에 맞게 꾸며진 가라오케, 카페, 당구장, 비디오가게, 술을 파는 레스토랑 등 위락 시설이 잘 발달되어 있다.
유학생이 일단 이런 또래 집단의 놀이 문화에 빠지면 공부는 말할것도 없고, 홈스테이 가정에서 지켜야 할 현지생활 양식과 충돌하게 된다. 홈스테이의 일반적 규율에 따르면 학생들은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는 전화를 써서는 않되며, 밤 8시 30분 이후는 소음을 내지 말아야 한다. 한국인 친구들과 붙어 다니다 보면 이런 규칙을 쉽게 어기게 된다.
한국 유학생들은 대부분 해외에서도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는데, 홈스테이 가정에 밤늦게 들어와 큰소리로 친구들과 우리말 통화를 해 주인이 신경쓰게 만드는 경우가 흔하다. 외국에서는 직업을 가진 학생이 아니면 휴대폰을 잘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우리 학생들이 친구들과 얼마나 밀착되어 지내는가를 보여주는 또다른 증거다.
대부분의호주 사람들은 저녁에 우리보다 일찍 잠자리에 드는 편이다. 예외가 있다면 주말이다. 한국인들은 저녁에 더 움직이고 노는 습성이 있다. 시드니 서부 지역 교통 중심지인 스트라스필드에느느 한인 가게가 밀집되어 있는데 한국 유학생들이 평소 많이 모이는 곳이다. 역 앞 광장은 일종의 놀이터처럼 되어 있는데 거기서 밤늦게 서성대는 사람들은 거의 예외없이 한국 학생들이다. 이렇게 외국에 와서도 한국인이 되어 버리면 아무리 좋은 가정을 만나도 홈스테이의 의미를 살릴수는 없다.
시드니 중심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반 정도 거리의 남태평양 바닷가 고스포드에 있는 영어학교에도 한국유학생들이 많이 다녀갔다. 비교적 조용하고 한국인이 많지 않아 영어를 위한 홈스테이로서는 이상적인 곳이다. 여러 얘기를 들어보면, 홈스테이 가정들이 주말에 야외로 나가 바베큐 파티를 열고 유학생과 함께 지내려 해도 다른 한국 친구들을 만나러 시드니로 가 버린다는 것이다.
한국 학생이 제일 골치
이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발언이지만, 호주 사람들이 하는 말과 여기 동포들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호주 사람들에게 한국 유학생들의 인기는 여러 나라 가운데 꼴찌다. 콜러씨는 지난 15년 동안 한국 학생을 1,000명 넘게 홈스테이 가정에 보냈는데, 회원 가정의 60%가 한국 학생은 더이상 받지 않겠다고 했단다. 그래서 그는 처음 홈스테이를 하는 가정에는 한국 학생을 절대로 보내지 않는다고 한다.
시드니의 유명한 사립학교인 크렌브룩 (Crenbrook) 고등학교에서 20년 넘게 교사 생활을 하다 최근 은퇴한 교민 이경재 씨는 지금도 한국 유학생 지도와 관련, 그 학교와 관련을 맺고 있다. 그에 따르면 외국 학생을 받고 있는 고등학교 교장들 사이에 한국 유학생들이 큰 골칫거리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구현모씨의 관찰도 재미있다. 홈스테이를 하면서 홍콩 학생들이 유독 문제가 많단다. 일본, 태국, 유럽 학생들은 대개 잘 적응한다. 왜 그럴까?
요즘 해외에 나오는 한국 젊은이들을 보면 외모나 자유 분방한 태도면에서는 현지 외국인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법과 규칙 준수등 책임감에 있어서는 아직 멀었다는게 필자의 결론이다. 영미사회에는 마약, 공공기물파괴, 기타 범죄로 법정을 드나드는 일탈 청소년이 적지 않으니, 중산층 이상의 가정의 자녀들은 책임과 규율 준수에 있어 매우 철저하다. 유학생 문제의 경우, 그 기준이 달라 쉽게 판단하기 어려우나,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도록 배려하는것’이라 정의할때 이들은 우리 젊은이들보다 한참 앞서 있다. 이것을 문화의 차이라 해야 할지 교육의 차이라고 해야 할지 분명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유학생들에 대한 홈스테이 주인들의 평판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갑자기 부자가 된 부모들이 아이들을 과잉보호하고 방임하여 키워서 망쳤다 (spoiled)는 것이다. 또 남학생들은 남존여비 사상에 물들어 있어, 홈스테이 여주인을 함부로 대한다는 것이다. “한국 남학생들은 동료 여학생들이 으레 그들을 위해 잔심부름을 해 주기를 바라며 실제로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 또 남학생들은 한국인 남자 어른이 무엇을 시키면 잘 따르지만, 여자 어른의 지시는 묵살하는 경향이 있다” 라는 클라크 교장의 평가를 깊이 되새겨 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