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불멸의 삶
나는 이 세상에서 문화적 영웅의 아름다움이 가장 얻기가 힘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가 딛고 있는 토대는 그 입문의례과정을 통한 사상의 토대일 수밖에 없으며, 그는 그 사상의 신전에서 오늘도 언제나 어린 아이처럼 영원불멸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나는 한국문단과 한국의 지식인 사회에서 영원히 버림을 받은 이단자에 지나지 않지만, 나는 그 홀로된 자의 고독과 그 행복한 생활을 어쩌지 못하고 있다. 나의 서재는 나의 왕국이며, 니체, 칸트, 플라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미셸 푸코, 하이데거, 호머, 셰익스피어, 괴테, 보들레르, 랭보 등은 나의 충직한 신하들이다. 나는 오늘도 그들을 데리고 인류 전체의 행복과 그 건강을 토론하고, 그리고 정오에는 ‘愛知의 숲’을 하염없이 거닐었었다. 나는 언제, 어느 때나 행복하고 또 행복하다. 나는 언제, 어느 때나 새롭게 태어나고 또 태어난다.
칸트에 의하면 우리 인간들은 감성에 의하여 대상을 인지하고, 오성에 의하여 대상을 사고하게 된다. 감성은 사물의 표상을 인식하는 능력이며, 오성은 대상에 대한 최초의 이해, 즉 개념을 명명할 수 있는 능력이다. 만일, 개념이 그 대상에 대한 최초의 이해를 담지하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하나의 거대한 사유 체계를 만들어낼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사상과 이론이라고 부른다.명명자는 입법자이며, 최초의 가치의 창조자이고, 모든 인간들을 다스릴 수 있는 전제군주이다. 우리가 그가 명명한 개념과 사상과 이론들을 빌어다가 쓰는 것은 그것을 부정하거나 반박할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이다. 고전주의, 낭만주의, 현실주의, 실존주의, 공산주의, 구조주의, 탈구조주의 등등 앞에서 우리는 모두가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미 앞 장에서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싸움을 설명한 바가 있듯이, 개념, 사상, 이론에는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피 눈물나는 권력투쟁의 역사가 각인되어 있으며, 어느 것 하나 우연이나 공짜가 없다. 그 사상의 신전을 거닐고 있는 전제군주는 오늘도 이렇게 말한다. ‘나는 전제군주이지만, 너희들은 나의 臣民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사상은 그 어떤 것보다도 고귀한 명예이며, 삶의 완성이며, 보다 완전한 인간의 표지이다. 그 사상의 신전의 주인공들이란 우리 인간들의 이상적인 원형이며, 아름답고 또 아름다운 인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경환, [신생의 넋]({행복의 깊이 1})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