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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4월 1일 월삭예배
○ 스바냐 3장 19-20절 하나님의 놀라운 반전
요즘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반전이라는 묘미를 빼면 사람들의 입맛에 맞출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반전은 사람들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반전이 성경에는 많이 등장합니다. 영화나 드라마의 반전은 작가의 이야기일 뿐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하나님의 임재로 인한 인생의 반전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반전은 사람들이 전혀 예측도 못하고 기대도 못했던 방향으로 역사가 전개됩니다. 그런데 선한 인생의 그 반전의 역사는 오직 의로우신 하나님 한 분 만이 만들어 내실 수 있으십니다.
여러분들이 창세기를 보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나옵니다. 이삭이 온 집안을 이끄는 가정의 주인이 되어서 수많은 가축들과 종들을 이끌고 다녔기에 목초지를 찾아 이동하는 목자로서의 삶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아버지때 임했던 심한 기근이 임했습니다. 그당시 가나안 땅 여기저기 다니면서 목축을 했던 이삭은 가족과 많은 종들과 가축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아버지가 했던 대로 블레셋 땅을 지나 애굽으로 내려가서 기근을 피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는 육신적인 인생의 내리막길에 접어 든 것입니다.
애굽으로 내려가는 길은 중간에 블레셋 땅을 지나가야만 했습니다. 그들이 블레셋 땅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창세기 26장 2-5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이삭에게 해야할 할 일만 명하신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까지 말씀하셨는데 그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복을 주시기 위해서인데 이 복은 세 가지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첫 번째 복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복이고, 두 번째 복은 이삭이 순종하여 머문 땅을 주시는 복이고, 세 번째 복은 자신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는 복입니다.
이삭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아브라함의 길을 따르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아브라함의 길은 의와 공도를 행하는 길이며, 이 길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길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보면 의를 행하시며 공도를 행하시고 가르치셨던 삶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고 그 순종으로 인해 아브라함의 후손들까지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세 번째 이유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인해 천하만민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 약속된 복을 이삭을 통해서 이루실 예정인데 그럴려면 이삭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하기에 하나님은 기근을 피할 수 있고, 또 삶이 보장된 것처럼 보이는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순종하면 기근으로 인해 고생할 것같은 블레셋 땅에 머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말씀을 받은 이삭은 도심지가 아닌 목축할 만한 장소를 찾다가 아버지가 잠시 머물면서 사셨던 브엘세바 근처의 땅에 정착을 하고 거기서 천막도 치고, 농사도 지고, 가축도 쳤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순종했던 이삭이 농사를 지었던 곡식들을 백배나 거두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뿐 아니라 가축들도 많이 태어났고번성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에게는 이삭처럼 백배나 거두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로인하여 블레셋 사람들은 “이 땅은 우리 땅이나 우리 땅에서 나가라”하면서 이삭과 그의 모든 소유를 내쫓아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주시겠다고 하셨지만 블레셋 사람들은 자기네 땅임을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아무런 항변도 하지 않고 그곳을 떠나 블레셋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 광야로 나갔습니다. 거기서 이삭은 우물을 팠습니다. 이삭이 판 우물은 전에 아브라함이 파서 사용했던 우물이었는데 블레셋 사람들이 시샘을 하고 돌을 던져 메꾸어 놓은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삭이 우물을 파고 가축을 치며 농사를 짓는데 하나님께서 복을 주심으로 잘되는 것을 본 그랄의 목자들이 이삭에게 달려가 여기는 우리 땅인데 네가 왜 여기서 농사를 지으며 가축들을 치느냐고 하면서 돌로 우물을 다시 막아버렸습니다. 그러자 이삭은 아무 항변도 하지 않고 그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우물을 또 팝니다. 그런데 우물물이 또 솟구쳐 나왔습니다. 그러나 블레셋 목자들이 또 쫓아와서 훼방을 놓았습니다.
그런일이 계속 반복되는데도 이삭은 그들과 싸우지 않았습니다. 쫓아내면 쫓겨나고 다른 곳으로 가면 우물을 팠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땅만 파면 우물물이 나왔습니다. 그것을 본 블레셋의 목자들은 이삭에게서 알지 못할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자기들은 아무리 여기 저기를 파도 나오지 않는 물이 이삭이 파면 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전에 이삭이 파놓은 물을 사용하고 이제는 더 이상 이삭이 파놓은 우물들을 막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블레셋의 왕과 군대장관이 이삭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서로 침범하지 말자는 맹세를 하자고 하였습니다. 이삭은 그 약속을 하면서 그들의 백성들이 이삭 자신과 종들을 괴롭혔던 일들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그러자 당황한 왕과 군대 장관은 사과를 하면서 “우리는 그런 일들이 일어난 것조차 몰랐다. 이제부터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단속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 두려워진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반전이 이삭 때문에 일어났습니까? 아닙니다. 이삭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삭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그 순종을 통하여 일하셨습니다. 그 순종의 과정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로인해 블레셋의 왕과 군대장관이 찾아오면서 동맹을 맺음으로 말미암아 안정이 보장되게 되었습니다.
오늘 스바냐 3장 19-20절 본문도 역시 그러한 하나님의 반전이 드러납니다. 이 일은 스바냐 선지자가 활동할 때에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그 후 어느 때인가에 일어날 일들을 예언한 것입니다. 우선 19-20절 말씀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기 보면 “그 때”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이스라엘의 대적들과 싸우실 때입니다. 이제까지 이스라엘은 주변의 강한 나라들로부터 엄청나게 고통을 당했습니다. 거기다가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망하고, 남유다는 바벨론에 망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앗수르도 심판하시고, 바벨론도 심판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을 멸망시킨 메데와 바사제국을 통해 유다 사람들을 유다 나라로 돌려보내셨습니다. 이것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예레미야선지자를 통해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요시야왕 때에 활동하던 스바냐선지자를 통해서도 이미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스바냐선지자를 통해 유다백성들을 다시 유다 땅으로 돌려보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약해빠져서 다른 나라에 멸망을 당하고 노예로 잡혀간 나라, 왕도 없어진 나라, 그렇다고 아주 뛰어난 지도자조차 없는 그런 나라가 그 큰 바벨론 나라를 멸망시킨 메대와 바사의 나라의 손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그런 반전이 가능합니까?
유다나라에 대한 설명을 보십시오. “너를 괴롭게 하는 자들”, “저는 자”, “쫓겨난 자”, “온 세상에서 수욕을 받는자”, “사로잡힌 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로부터 나병환자가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받드시 괴롭힘을 당할 것이고, 하반신의 한 쪽을 잃은 사람처럼 절고, 거지가 사람들로부터 쫓겨나는 것처럼 쫓겨남을 당하고, 돼지 울간에 들어가 돼지 똥을 잔뜩 뭍히고 나온 노예처럼 온 세상으로부터 갖은 수욕을 당하고, 아무 저항도 못해보고 나약한 상태로 사로잡힌 유다가 어떻게 자기 힘으로 해방과 자유를 얻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는 그런 열방의 웃음거리가 된 유다를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너를 괴롭히는 자를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고” “쫓겨난 자들을 다시 유다와 예루살렘으로 모으고”, “온 세상으로부터 수욕을 당하던 사람들을 명성과 칭찬을 받게 하고”, 이것이 하나님이 하실 일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반전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다른 나라에 잡혀 가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평화를 주시고 나라를 안정되게 하셨을 때에 행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위는 1절의 말씀처럼 패역하고, 더럽고, 포악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도 듣지 않고, 교훈도 받지 않았고 하나님의 의뢰하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지도 않았습니다. 방백들은 백성들에게 엄하게 하며 고통과 두려움을 심어주었고, 재판장들은 탐욕스러운 이리처럼 욕심껏 뇌물을 받고 부정한 재판을 했습니다. 선지자들은 경솔하고 간사했으며,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 의를 행하셨고 아침마다 빠짐없이 자기의 공의를 비추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불의한 자들은 자기들의 수치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그들에게 용서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구원하셔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14절입니다.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왜 이렇게 노래하고 기뻐게 부르라고 하십니까? 15절입니다.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일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찾은 것이라면 금방 잃어버릴까봐 전전긍긍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 일하셔서 다시 되찾게 하신 것이기 때문에 다시 잃어버릴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16절도 역시 같은 말씀입니다. 힘이 없으면 손을 아래로 떨어뜨립니다.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그러나 힘이 있으면 두 손을 위로 올리고 찬송하며 환영합니다.
왜 사람들이 이렇게 기뻐하고 찬송하며 환영을 합니까?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 때문입니다. 17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우리 신발장 맞은 편 벽에 달려있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어쩔 줄 몰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노래한 것입니다.
그렇게 여러분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구원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열국 가운데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지금도 그 약속이 어느 정도는 이루어져서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인정받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교회 역시 마찬가지이며 교회의 지체인 여러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아버지로써 여러분들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들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세계가 이스라엘을 부러워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재림하시는 날에는 육적인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들까지 천하만민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총을 입는 날이 옵니다. 여러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이 당했던 모든 어려움들과 수치스러움을 벗겨 내시고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실 그 날이 다가옵니다.
하나님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인 사라에게 90세에 아들을 주셔서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같이 많은 후손들을 허락하셨습니다. 또한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 때문에 대적 브닌나로부터 멸시받던 한나에게 아들을 주셔서 그를 이스라엘의 선견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또한 나이가 많아 노인이 되어 자녀를 낳지 못하는 엘리사벳에게 아들을 주셔서 그 아들로 하여금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길을 예비하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인생의 반전은 오늘날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백성들의 자유와 칭찬과 명성을 얻는 그날이 영원한 천국에서도 이루어집니다. 거지가 천국에 가고 그를 조금도 불쌍히 여기지 않았던 사랑없는 부자는 음부에 떨어져 고통을 당하는 날이 반드시 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있는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시기 위하여 이 땅에서도 여러분을 높이 드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능력이나 지식이나 실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에 이 모든 일들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월첫날 월삭예배를 드리시는 여러분 하나님 앞으로 나오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기꺼이 여러분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임을 당하셨던 에수님을 무덤에서 사흘만에 일으키심으로 인류 최고의 반전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반전의 복을 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성도들을 통해 이루시는 이 놀라운 반전의 축복이 가진 것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는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