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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2009년 6월초순이었다.왕십리에서 주피터 국제결혼 문화원을 경영할 때 사무실 가까이 있는 아름다운 이치과를 다녔다.그런데,젊은 시절 해외에 나다니면서 찬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인지 성한 이가 몇개 없었다.할 수 없이 틀니를 했더니, 말이 새 나가고 무엇보다도 매일 빼서 씻고 다시 끼고 하는 일이 보통이 이니였다. 그래서.생각한 것이 김치과였다.그녀는 전남 의대 82학번으로 모범생중 모범생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어디에서 승부를 걸까 하고,생각한 곳이 둔촌아피트 건너편 건물이었다. 처음에는 간호사 2명두고 시작했는데,지금은 의사가 3명.간호사가 11명인 중소기업이다. 내가 상담하러 가자,한참을 설명하더니."사장님.혹 제2의 인생이란 말들어 보셨습니까?" 그런데,처음 약속과는 달리 거의 십년도 다 된 지금까지 년 2회 정도 다닌다. 그런데,돈이 많이 들었지만 참좋은 김치과이다 박사학위를 받았다.그리고 나에게"저 사장님과 동문이고 후배예요"한다. 오늘 치료 마치고 "김박사님.입술을 주지 못할망 애인처럼 사진 한장 찍어요 ."우리는 애인처럼 사진한 장 찍었다. 그리고 부흥회한다고 하도 시끄럽게 해서 각목을 들고가서 "엄목사.이 개새끼. 소리치며 부흥회를 엉망으로 만들었던 중흥교회는 내가 전원피아노를 팔고 신당동 삼성아파트로 갔던 일.옆에 우리 아이들이 다녔던 유정유치원도 보인다. 나는30여년의 추억을 더듬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