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 가 주는 교육
손 수룡
올해도 벌초는 아랫 동생과 둘만이 했다. 간식과 음료수 그리고 벌초 할 연장만 있으면 된다. 매년 그렇게 음력 8월이면 5기의 산소에 벌초를 한다. 5 형제이지만 행사를 피하여 오지 않는 자도 있지만 직장관계로 오지 못하는 형제도 있다.
조상을 섬기는 것은 좋은 풍속에서 기인한다. 유교의 근본은 서열을 정함으로 순서를 정하여 살아간다는 것이다. 모든 사물은 정하여진 서열에 따라 배열하고 순서에 의하여 행한다. 그리고 죽은 조상이 살아 있는 후손을 부르는 것으로 선조의 뼈가 산사람을 모우게도 하고 흩어지게도 한다.
할아버지는 사형제의 둘째로 고향에서 살았다. 맏집은 인근 마을에서 , 다른 당숙은 모두가 객지에서 생활했다. 할아버지 아래로 당숙은 여섯분이시다. 자손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음력 팔월이 되면 모여서 함께 벌초를 하셨다. 다른 친척도 오니 마을에선 대단히 큰 잔치인양 여겼다. 벌초를 위하여 선조의 후손들이 모여 왔기 때문이다.
벌초는 묘지에 잡초를 베고, 돌보는 것이다. 친척이 함께 벌초를 가는 길은 어찌 잡초만 제거하는 것이겠는가? 산소마다 선조의 내력이 숨겨져 있다. 아버지가 아들에 전하는 조상의 이야기, 아재가 조카에게 들러주는 가족사의 이야기. 이산소가 여기 있는 사유. 등등이 조상의 역사를 말한다.
종조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 4기가 공동묘지에 있다. 다른 산소는 선산에 있는 데 왜 그곳에 있는 지 후손된 자의 의문이다. 당숙께서 말한 내력은 일제시대에 헛장을 공동묘지에 쓰고, 밤중에 시신은 선산에 쓰는 2중의 장례가 있었다 .그런데 집이 가난하고 객지생활을 하다보니 어쩔수 없이 공동묘지에 산소를 드린것이라 하면서, 그래도 터가 좋아 그데로 있다한다. .
청화산 의 중턱에 묘1기가 멀리 떨어져 있다. 참나무 밑을 혜치고 가야하고 ,길을 내면서 묘를 찾아 가야한다. 어느 한해는 산소에 도착하니,누가 벌써 벌초를 하였다. 다음 해에 할아버지가 함께 갔었데 .몇 년간 벌초한 것이 남의 조상이란다. 산을 더 올라 있는 산소가 벌초할 산소란다. 그동안 몇년 사이 참나무가 묘 위에 솟아 있었다.
선산 윗쪽에 12대조의 절충장군 묘소가 있다. 묘당에 서면 훤하니 내려다 보이는 아래가 정말 시원스럽다. 그런데 묘비는 쓰려져 가고, 축대는 무너져 있다. 왜 산소를 손 보지 않는냐하면 , 호혈로 손을 보면 후손에 해가 있어 벌초만 하지 다른 손은 볼수 없다 한다.
세월의 흐름에 연세든 분이 한분 한분 돌아 가시면서 ,묘를 쓰는 분도 있고 남골당에 모시는 분도 있었다. 어느 때부터가 맏집을 잇는 장손인 재종이 선산이 개인의 명의로 있으니, 선산에 묘를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당숙모의 묘가 고향에 오지 못하고 공동묘지나 납골당으로 가게 됨으로 그형제들은 고향에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조상의 산소를 한곳에 모시지 않고, 흩어지게 함으로 자손들도 모이지 못하고 흩어 졌다. 형제간의 교류도 없어 졌다.
벌초의 때는 한더위가 지나고 가을의 문턱이다. 식물로 보자면 성장이 절정기를 지난 씨앗을 맺는 시기다 .씨앗이 영글기 직전에 베어 줌으로 내년에 잡초의 성장을 막고 겨울 봄 동안이나마 묘지에 시원한 환경을 조성하여 준다.
벌초의 행사가 이루어 진다는 것은 전통적 유교사회의 교육과정이다. 산을 오르고 땀을 흘리면서 나눝는 선조와 가족사는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아버지에서 아들로 전하는 이야기로, 나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방안에서 말할수 없는 이야기를 친척들이 모여서 현장에서 이야기하고 듣고 전하여 지는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하는 역사인 것이다.
가정교육은 가족의 내력을 이야기하고 듣는 것이데, 들어줄 사람이 없으니 이야기 할 사람도 없다. 조상의 무덤 하나 하나에 내력이 있고 이야기가 있는데, 이야기를 전하지 못함으로 부자간의 대화가 단절되었다. 땀흘리는 고생만 보여 주었다. 친척이 있어도 모이지 않으니 선조의 역사는 필요가 없고, 아들이 있어도 함께 하지 않으니 벌초도 내 대(代)에서 끝나야 겠다. 아비 어미의 연애 이야기나 듣겠다는 자식들이니 그것이 가장 중요한 역사지.( 2015. 10.15. )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언제 작자의 연애이야기를 한번
들어 봅시다. 은근한 농주를 곁들이면 더 좋을 듯 합니다.
지금시기가 조상에 대한 인식 전환기 인가 봅니다. 조상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효의 개념이 없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탓할 것이 아니고 시대의 흐름에 순응할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벌초는 해야하고 벌초 할 사람은 줄어들고 있어 앞으로의 벌초, 걱정이 됩니다. 벌초를 하지 않아도 되는 길을 찾아봐야 하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