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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가좋다오 원문보기 글쓴이: 허창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마태복음 21 : 28 - 32
한국 교회가 세계 교회사에서 예루살렘 교회 다음으로 성장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들이 오순절 성령 강림하심으로 능력을 받고 거리로 나가 외치므로 하루에 삼천 명씩, 오천 명씩 회개하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 이후로 복음은 세계 여러 나라에 전파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복음은 들어왔습니다. 한국을 최초로 방문한 선교사는 칼 꾸쯔라프(Karl. F. A. Guzlaff) 입니다. 1832년에 황해도 백년도를 거쳐 군산만 창선도에 정박하고 상륙하여 무릎을 꿇고 감사기도를 하였습니다. 처음 한국인을 만나 의약품을 나눠 주고 병을 고쳐줌으로써 전도에 착수하였고 홍주목사 이민회와 수군우후 김영수를 통하여 국왕 순조에게 한문 성경과 교리서를 바치기도 하였습니다. 꾸쯔라프는 홍주목사의 서생인 양씨의 도움을 얻어 주기도문을 우리말로 번역하였으며, 감자 종자를 주고 재배법도 가르쳐 주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후 33년이 지나 1866년에 영국 선교사 토마스가 평양을 방문하다가 대동강에서 자기의 목을 칼로 치는 병사에게 성경책을 주면서 목숨을 바친 최초의 한국 선교사로서 순교를 하셨습니다. 토마스 선교사를 칼로 친 박춘근은 회개하여 1899년에 세례를 받으므로 평양에서 초대 교인이 되었습니다.
1907년 평양 대부흥성회를 통해 한국교회는 성령운동이 일어나고 순식간에 복음이 전파되어 평양을 한국의 예루살렘이라 할 정도로 많은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평양을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함경도를 넘어 중국 만주까지, 남쪽으로는 서울을 비롯하여 전라도 경상도까지 복음이 전파되어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한국교회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교회 성장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한국교회는 더 이상 성장이 멈추고 하향길이라고 합니다. 겉으로는 성장하는 것 같지만 사실상 한국교회는 중병에 걸렸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짓는다고 서로 다투어 교회당 건축을 합니다. 대형 교회들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중소 교회의 교인들을 빼앗아 갑니다. 전도해서 교회가 부흥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교회의 교인들을 빼앗아 갑니다.
그런가 하면 교회 지도자들의 윤리적인 문제가 한국 교회를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부흥성장 시키고 존경 받던 목사님들이 말년에 이런 저런 수치스러운 일들로 인하여 많은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청년들이나 청소년들은 교회를 떠나고, 유초등부도 문을 닫고 나이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지키고 있는 현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명절을 지키시기 위해 올라가시면서 나귀를 타셨습니다. 나귀를 타고 유대인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겉옷을 나귀 위에 얹고 그 위에 예수님이 타셨습니다. 나귀를 타고 입성하실 때 무리는 소리 높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하며 외쳤습니다(21:9).
이렇게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시니 온 성이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무리들은 ‘이는 누구냐’,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고 말하며 예수님을 환영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셔서 매매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습니다(12). 그리고 예수님은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라고 하셨습니다(13). 그때 많은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로 나아오매 예수님은 그들을 고쳐주셨습니다(14).
이러한 일들을 보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하시는 일을 이상한 일로 여겨 예수님께 ‘저들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소리치는 말을 듣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날은 더 이상 성전에 머물지 않고 베다니에 가셔서 유하셨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성전에 들어가시다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여 말라 죽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말라 죽게 한 것을 이상히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향한 경고로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 이였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수님께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라고 물었습니다(23).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당시 이스라엘의 최고 의결 기구인 산헤드린 공회원들입니다. 종교, 정치 지도자들로서 당시 대단한 권세를 가진 자들입니다. 이들이 예수님이 성전에서 하는 일들을 못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나귀새끼를 타고 무리의 호산나 환영을 받았던 일과,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셨던 일과, 무화과나무를 저주하는 일, 그리고 맹인과 걷지 못하는 자들을 고쳐주셨던 일, 이러한 것들을 누가 하라고 해서 하였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지방에서 활동할 때는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았지만 예루살렘에서 백성들의 환호를 받고 교권주의자들을 공공연히 위협하는 것을 알고는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고자 하여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였느냐 물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이들의 질문에 해명하지 못하면 예수님을 바라보는 백성들에게 실망을 안겨다 주게 될 것이며, 하나님으로부터 권세를 받아서 한다고 하면 신성 모독죄로 고소하여 예수님을 제거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역질문을 하시므로 교권주의자들을 난감하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나도 너희에게 묻겠다 너희들이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말하리라’고 하시며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그들은 서로 의논을 하였습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왔다고 하면 세례 요한을 죽인 사실에 대한 잘못을 시인하게 되는 것이고, 사람으로부터 왔다고 하면 당시 유대인들은 요한을 선지자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로부터 비난을 받게 될 것 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가 알지 못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두 아들에 관한 비유를 하시며 물었습니다.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맏아들은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고는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했더니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가서 일하였다.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라고 물었습니다(28-31).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둘째 아들이니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31). 이 말씀은 당시 교권주의자들에게는 충격적인 말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세리와 창녀들은 도무지 구원 받을 자가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누구보다도 최우선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과는 전혀 반대가 되는 세리와 창녀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 이지만 너희들은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맏아들처럼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듯했지만 결국 순종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당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온갖 종교적 특권과 기득권을 향유하면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말씀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배척하고 심지어 세례 요한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세리와 창녀들은 죄인처럼 취급을 받았지만 세례 요한의 외치는 말씀을 듣고 회개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라고 그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32).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 너희보다 세리와 창녀들이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크게 부흥 성장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 한국교회를 부끄럽게 만드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목회를 성공하셨던 분들이 교회를 사유화하며 자녀들에게 교권을 넘겨주고 있습니다. 은퇴하고서도 교회를 주관하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부끄러운 일들로 인하여 한국교회를 크게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의 한국교회가 예루살렘 성전을 닮아가는 것 같습니다. 제자들까지도 예수님께 예루살렘 성전의 크고 웅장함을 자랑했습니다. 오늘의 대형 교회들의 성전들 대단합니다. 누가 더 크게 짖느냐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대형 교회당을 건축합니다. 성도들까지도 대형 교회에 다니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은 마치 믿음 좋은 의인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형교회당은 성전다운 거룩함은 없고 재정적인 문제로 목사와 성도간에 법정 다툼까지 있다고 합니다. 어떤 교회는 집사회가 목사에게 ‘회개하라’고 외친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소까지 해서 법정 다툼을 하고 있답니다.
그런가 하면 농어촌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들은 대형 교회와 교권주의자들 앞에 능력없는 실패한 자처럼 기를 펴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형교회를 섬기는 그들 앞에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라고 묻습니다. 대형교회는 아닐 지라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말씀대로 순종하는 성도가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말씀을 들을 때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는 성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더욱 관심있게 보아야 할 말씀은 32절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라는 말씀입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 요한의 말씀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세례 요한의 외치는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눈을 돌려 우리 자신을 돌이켜 봅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맏아들과 둘째 아들 중 나는 어디에 속했는가를 스스로 생각해 봅시다. 작은 교회에 출석하기 때문에 둘째 아들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맏아들과 같은 성도들이 얼마든지 될 수 있습니다.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는 사명감을 받고 예 가겠나이다 라고 대답하고 그 일을 하지 않은 맏아들이 바로 내가 아닌가를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용서를 빌고 부족하지만 늦게라도 열심히 하려고 하는 둘째가 되어야 합니다. 맡겨준 사명에 최선을 다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의 핵심은 ‘말씀 순종’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 요한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리와 창녀들은 그 말씀을 듣고 뉘우쳐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핵심은 말씀을 순종하였느냐 순종하지 않았느냐 입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두 가지 상반된 일을 하셨습니다. 매매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시는 반면 많은 맹인과 저는 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자들은 맏아들과 같은 자들이므로 성전에서 내쫓았습니다. 그러나 맹인과 저는 자들은 둘째 아들과 같은 자들이므로 고쳐주셨습니다. 성전안에서 예수님은 축복과 저주를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도 축복 받을 자가 있고 저주 받을 자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에게는 축복을 하시지만 아버지의 뜻대로 하지 않은 자들은 내쫓으신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성전에서 내쫓기는 것은 영원한 저주를 상징합니다. 맏아들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야 합니다. 말씀에 귀를 막고 듣지 않는 것은 맏아들과 같은 자들입니다. 말씀을 듣고 자신의 잘못을 고칠 수 있어야 합니다. 고치지 않으면 맏아들처럼 내쫓기는 자가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둘째 아들처럼 말씀을 열심히 듣고 순종하는 성도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고쳐주시고 은혜 베풀어주시는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동성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