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테말라커피
無路 이 영주
서예교실 수강생 중 한 분이 전국 서예대전에서
대상을 탔다고 저녁을 사셨다.
우리 회원들은 축하의 저녁을 맛있게 먹고 헤어지려는데,
회장인 마농 선생이 바쁘지 않은 사람은 차 한 잔 하십시다.
하는 말에 소양강다리를 건너기전 아담한
커피 집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들어간 커피숍은 다리의 휘황한 불빛과 물비늘이
주변의 야경과 어울러져 운치를 더했다.
연인사이로 보이는 몇 분이 행복한 모습으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젊은 시절 술과는 끈끈한 정을 자주 통했지만 카페에 앉아
커피를 즐기는 것은 여자 친구를 만날 때나
내가 차를 대접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별로 없었다.
커피 마시는 값이면 술집을 찾는 편이었고
술을 끊기 전에는 커피를 즐기지 않는 편이었다.
주문 받으러 온 아가씨가 어떤 차를 마시겠냐며 물었다.
그때 마담인 듯 한 분이 다가오더니
오늘 저희 집 메인커피는 ‘과테말라’ 커피라면서
‘과테말라’ 커피를 권했다. 나는 처음 듣는 커피였다.
마농 선생이 회원들의 의향을 물으니 같은 커피를
마시겠다기에 나도 고개를 끄떡여 동조했다.
주문을 받던 마담은 5명 모두 통일하여 주문하니
자기가 추천한 커피라서 그런지 흐뭇한 표정이었다.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은 편이였다.
술 마실 때는 커피를 마시지 않다가 술을 멀리한 뒤로
커피를 자주 마시게 되었는데 일회용 믹서커피 정도였다.
커피를 볶는 향은 분위기와 함께 내 코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역시 일회용 믹스커피보다 볶는 커피의 향은 운치와
커피향이 온 몸에 배어 간직하고픈 기대를 갖기에 충분했다.
어느 정도 대화가 익어 가는데 아가씨가 커피를 가지고 왔다.
커피 맛이 이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달콤한 믹스커피에 밴 혀가
과테말라 커피 맛을 알 리가 없었다.
그냥 쓰면 이 커피는 쓴 맛이 나는 커피인가보다 하고
마시겠는데, 뭐라 말할 수 없는 맛이었다.
저녁 먹은 메뉴와 궁합이 맞지 않아서 그런 맛이
나나보다 생각하면서 다시 마시려는데,
조금 전 과테말라 커피를 권하던 여인이 우리에게 다가오며
“마농 선생님, 오늘 커피 맛이 어떠세요.”
‘참 향이 좋네요.’ 고개를 끄덕이며 찬사를 주고받는다.
그 여인은 이사람 저 사람에게도 맛을 묻더니
나에게도 묻는다.
참 난처했다 뭐라고 말해야 한담, 다들 커피 맛이 좋다는데,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렇다고 일부러 묻는데 대답을 안 할 수도 없었다.
나는 커피 마니아가 아니어서 그런지 몰라도
내 입에는 꼭 담배필터 삶은 물 같다고 했다.
갑자기 카페의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커피를 마시고 나왔다.
마담에게 담배 필터 삶은 물 같다고 한 말은 아무래도
잘못한 것 같다.
옆에 있던 重岩 선생이 말을 받았다.
“나도 커피 맛이 좀 이상하다 싶긴 한데
표현 할 수가 없었거든요.
無路 선생, 아주 정확하게 꼭 짚었어요.”
옆에서 걷던 일행들도 동조를 했다.
“마담이 커피 맛이 어떠냐고 물으니 다들
커피 맛과 향이 좋다고 하시던데요”
우리들은 밤하늘의 별똥별과 함께 실컷 웃었다.
카페에서는 다들 커피 맛과 향이 좋다고 했건만.......
지금도 잊지 않고 기억나는 커피 맛은 77년 결혼하던 해
여름 첫 휴가를 맞고 처갓집 앞 파로호에서
낚시를 하던 때인 것 같다.
밤이 되면 은은하게 들리는 여자의 노래 소리가 들렸는데,
그분이 파로호에서 노를 저으며 차를 파는 처녀라고 했다.
파로호의 온 호수는 강태공들의 카바이드 불빛으로
밤의 호수를 밝히고 있었다.
용호리에서 초저녁 노래 소리와 함께 시작을 알리던
커피 파는 아가씨의 노래 소리는 그 넓은 파로호 호수에
낚시하는 사람들에게 커피를 팔며 새벽이나 되어서야
내가 낚시하는 유촌리까지 찾아 왔다.
새벽이슬과 함께 마시던 커피가 지금까지 마신 커피 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커피 맛이다.
일행은 다리의 불빛을 받으며 소양강 둑을 천천히 걸었다.
그 뒤로 서예실에 가려면 그 카페 앞을 지나가는데,
행여 그 마담을 만날까봐 신경이 쓰이곤 했다.
다시 ‘과테말라’ 커피를 마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제는 담배필터 삶은 물 같다고는 하지 않을 것 같다.
흑과 백을 말해야 하는 성격이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회색이라고도 말할 줄 알아야
이 사회에 적응하는 길이라는 것도 알았다.
사회에 나와 여러 종류의 커피를 맛보며 5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까.
201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