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3일 금요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39-42
그때에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제자들에게 39 이르셨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40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41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콩깍지가 여러 겹으로 덮여서
마음이 어린 휘니
서경덕
마음이 어린 후(後)이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만중운산(萬重雲山)에 어늬 님 오리마난
지는 님 부는 바람에 행여 긘가 하노라
마음이 어리석고 보니 하는 일이 모두 다 어리석다.
깊은 산 속에 어느 누가 나를 찾아 올까마는
그래도 떨어지는 잎새와 바람 소리만 들려도 혹시나 임일까 한다.
황진이의 유혹에 미동도 하지 않았다는 서경덕의 연정가(戀情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눈이 삔다고 합니다. 또 콩깍지가 끼어서 아무 것도 볼 수가 없다고 합니다. 아무리 잘못하는 것도 잘하는 것처럼 보이고, 얼굴의 큰 흉터도 보조개로 보인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렇게 눈이 삐도록 사랑에 빠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다가 어떤 날 눈이 정상으로 돌아오면, ‘내가 미쳤지, 귀신이 씌었나, 눈을 감고 살았군, 살았어!’하면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고 삽니다. 그런 때는 차라리 눈을 뜨지 않고 그냥 살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고 얘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작으로 눈을 뜨고 있거나 감고 있거나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마음이 떠나 있으면. 어떤 아름다움이나 교태도 소용이 없어집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나 마음 안에 아름다우면, 어떤 추함도 모두 아름다워 보일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에 큰 들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형제의 눈에 티끌을 볼 수 있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사람입니다. 자신 하나도 제대로 버틸 힘도 없으면서 정말 앞자락이 넓어서 다른 사람 참견까지 할 수 있다니 대단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신의 큰 허물을 모두 덮어두고 다른 사람의 작은 허물을 오히려 안타깝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정말 작은 허물 밖에는 아무 것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별로 하고 싶은 말은 아니지만 내가 그런 사람입니다. 내 앞자락은 지금 엉망진창으로 얽히고설켜 있는 데 다른 사람의 실마리를 풀어주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있는 꼴입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생각해서 충고도 해주고, 길을 인도해 준다고 나서기까지 하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한 노릇입니까? 교회도 그렇고 우리 공동체도 그런 모습을 잘 보입니다. 입을 뗄 형편도 아닌데 ‘충판해탐’(忠判解探)에 아주 익숙해져 있습니다. 충고(忠告)와 판단(判斷), 그리고 해석(解析)과 탐색(探索)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각오로 살고 있습니다. 누가 사람들을 잘 인도하는 사람인가? 누가 다른 사람들에게 진정한 리더로서 살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질문은 아주 자주 우리를 당혹하게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자신이 없는 질문입니다.
먼저 자신을 잘 살펴보고 자신의 결점을 고치고, 자신의 능력을 보완하고, 그리고 상대방을 잘 안다면 충고도 값질 것입니다. 자신의 판단이 부족하지만 주님의 성령으로 겸손해지고, 지혜의 은총을 받아서 이웃을 옳게 판단하고, 상담해서 좋은 길로 인도해 준다면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일 것입니다. 사람들이 편견이나 아집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소상하게 연구하고 조리 있게 해석해 준다면 얼마나 지혜로운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부족한 것이 있다면 연구하고 조사해서 좋은 방안을 찾아내서 제시해 준다면 그 얼마나 다행한 일이겠습니까? 그렇다면 충판해탐(忠判解探)도 절대로 가볍게 여길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정치가가 눈이 어두워 종교를 함부로 판단하고 말하고, 신앙을 함부로 얘기한다면 이는 큰일 날 일입니다. 그의 눈을 덮고 있는 그 교만을 말끔하게 씻어줄 것은 겸손한 자세뿐입니다.
교회도, 성직자도, 수도자도, 평신도도 그렇게 눈이 밝아지고, 자신의 결점을 잘 고치고 살았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매일 몹쓸 것이 잔뜩 끼어 백내장이나 녹내장처럼 소경을 만드는 그런 병들은 빨리 제거 수술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안약을 빨리 사서 골고루 발라야 합니다. 서로 무시하고, 서로 경시하면서 무슨 사랑이 이루어지겠습니까? 학문에 대한 교만이 가득한데 어떻게 학문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겠습니까? 질시와 질투가 사랑의 눈을 멀게 하는데 어떻게 사랑을 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신앙을 가진 크리스천부터 개안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무언가 정말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이 생길 것 같습니다. 지금은 아직 어둠의 속이라는 생각이 나를 우울하게 합니다. 그 사람들의 가장 앞에 내가 있음을 느낍니다. 더러운 속내를 교묘하게 포장하고, 겸손과 성덕을 위장하고 활개를 치고 살고 있는 사람들 중 내가 우두머리라는 생각이 더욱 슬픈 일입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나는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9,16-19.22ㄴ-27
형제 여러분, 16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
17 내가 내 자유의사로 이 일을 한다면 나는 삯을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는 수 없이 한다면 나에게 직무가 맡겨진 것입니다.
18 그렇다면 내가 받는 삯은 무엇입니까? 내가 복음을 선포하면서 그것에 따른 나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복음을 거저 전하는 것입니다.
19 나는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22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23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합니다. 나도 복음에 동참하려는 것입니다.
24 경기장에서 달리기하는 이들이 모두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이와 같이 여러분도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달리십시오.
25 모든 경기자는 모든 일에 절제를 합니다. 그들은 썩어 없어질 화관을 얻으려고 그렇게 하지만,
우리는 썩지 않는 화관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26 그러므로 나는 목표가 없는 것처럼 달리지 않습니다. 허공을 치는 것처럼 권투를 하지 않습니다.
27 나는 내 몸을 단련하여 복종시킵니다.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나서, 나 자신이 실격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축일9월 13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John Chrysostom)
신분 : 총대주교, 교회학자, 교부
활동 지역 :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활동 연도 : 344/354?-407년
같은 이름 : 금구, 얀, 요안네스, 요한 금구, 요한금구,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크리소스똠, 크리소스또모, 크리소스또무스, 크리소스토무스, 크리소스톰, 한스, 후안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Joannes Chrisostomus, 또는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시리아의 안티오키아(Antiochia)에서 아버지 세쿤두스(Secundus)와 어머니 안투사(Antusa) 사이에 태어났는데, 출생 연도는 정확히 알 수 없고 344-354년 사이로 추정된다. 아버지 세쿤두스는 어머니 안투사가 20세 되던 해에 사망했기 때문에, 요한은 젊은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세속적인 출세를 위해 이교도 수사학자인 리바니오로부터 수사학을 배웠으나, 이런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친구로 후에 타르수스(Tarsus)의 주교가 된 디오도루스(Diodurus)와 함께 성서 연구와 수덕 생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371년 안티오키아의 멜리티우스(Melitius) 주교는 그에게 독서직을 주고 자기 곁에서 일하게 하였다. 그러나 평소부터 수도생활을 갈망하던 그는 인근 광야에 가서 노(老) 은수자의 지도를 받으며 4년간 생활하였으며, 더 적극적인 수덕 생활을 열망하여 동굴에 들어가 2년간 고행과 성서 독서의 생활을 하였다. 지나친 고행으로 건강을 크게 해치자, 어머니 안투사의 눈물어린 간청 때문에 그는 안티오키아로 돌아왔다.
그는 381년 멜리티우스 주교로부터 부제품을 받았으며, 386년에는 플라비아누스(Flavianus) 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았다. 그 후 12년간 안티오키아의 설교 사제로 활약하면서 수많은 명강론을 하였다. 그의 강론이 너무 유명해서 크리소스토무스(Chrisostomus), 즉 ‘금구(金口)’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390년부터는 신약성서에 관한 연속 강론을 실시하여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397년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넥타리우스(Nectarius)가 사망하자 황제는 성 요한을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로 임명하려 하였다. 그는 이를 거절하였지만 황제의 뜻이 워낙 완강하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락하였다. 그래서 398년 2월 26일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인 테오필루스(Theophilus)로부터 주교품을 받았다. 수도의 총대주교가 된 그는 궁중생활과 너무나 밀착되어 부패한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화려한 생활을 질타하고, 신자들이 생활을 윤리적으로 쇄신할 것을 강조하였다. 뿐만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여러 가지 구호사업을 시작함으로써 교회의 개혁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에페수스(Ephesus)에서 주교회의를 개최하여 성직매매를 한 6명의 주교를 면직시켰다.
그러자 총대주교의 개혁에 불만을 품고 있던 적대자들이 연대하여 요한을 반대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가장 극렬한 적대자는 그에게 주교품을 준 알렉산드리아의 테오필루스 총대주교였다. 한편 처음에는 황실과의 관계가 좋았으나 황후의 지나친 사치와 탐욕을 비난하여 악화되었다. 그는 403년 콘스탄티노플 근교인 퀘르치아(Quercia)에서 개최된 주교회의에서 적대자들의 근거 없는 모략으로 고발되어 면직되었으며, 소심증이 있던 아르카디우스(Arcadius) 황제는 이 결정을 받아들여 그를 비티니아(Bithynia, 고대 소아시아 북서부 지역)로 유배시켰다.
그러나 신자들이 이 결정에 반발하여 폭동을 일으키자 이에 놀란 에우독시아(Eudoxia) 황후는 그의 유배를 취소하였다. 이 첫 번째 유배는 오래가지 않았으며, 성 요한은 군중의 환호를 받으면서 귀환하였다. 그 후 404년에 황제는 그를 다시 쿠쿠수스(Cucusus, 지금의 알바니아)로 유배를 보냈다. 그러나 그를 만나보려는 신자들의 순례행렬이 계속되자 황제는 다시 흑해 동편의 피티우스(Pityus)라는 험한 숲속으로 유배지를 옮기라는 명령을 내렸다. 성 요한은 새로운 유배지로 가던 중 407년 9월 14일 코마나(Comana)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요한은 금구라는 별명에 걸맞게 수많은 명강론과 저서를 남겼다. 그의 강론에는 사도 바오로(Paulus)의 서한들이 많이 인용되었다. 교황 인노켄티우스 1세(Innocentius I)는 412년 그의 명예를 회복시켰으며, 그의 유해는 1626년 5월 1일 이후 로마(Roma)의 베드로 대성전 성가대 경당에 안치되어 있다. 1568년 교황 비오 5세(Pius V)는 그를 교회학자로 선포하면서 ‘동방의 네 명의 위대한 교회학자’ 중 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오늘 축일을 맞은 요한 크리소스토모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