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선박과 항공 무역의 개척자 가이후 하치로(海部八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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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물에 대한 평가
가이후 하치로는 일본의 거대 상사인 닛쇼 이와이에서 부사장까지 역임하며 항공기 및 선박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인물이다. 그는 종합상사의 임원으로서 선박과 항공을 아우르는 산업 전반을 경험하였으며 특히 항공 관련 산업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그 분야의 선구자적 역할을 수행했기에 항공 개척자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1923년 도쿄 분쿄구 코이시카와에서 태어난 가이후는 아사노 부산 임원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매우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하였다. 그의 가정은 경제적으로 상당한 수준이었는데 중학교 시절 친구들이 20전이나 50전 정도의 용돈을 쓸 때 가이후는 5엔이나 10엔 지폐를 잘라 용돈으로 썼다는 일화가 있을 만큼 남다른 환경에서 자랐다. 그는 도쿄부립 제1중학교에 입학하여 졸업하였고 고등 교육 과정으로는 구제 고베경제대학(현 고베대학)을 졸업하였다. 학창 시절의 가이후는 일본어, 고전 중국어, 지리, 역사 등 인문학 과목과 영어에서 매우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반면, 과학 과목에는 서툴렀고 수학에서는 자주 낙제를 할 정도로 편차가 컸으며 스포츠에도 소질이 없었다고 한다. 이후 구 고베경제대학(현재 고베대학)에 진학한 그는 세미나 멘토였던 사카모토 야사부로 교수로부터 열렬한 독서가이자 학년 최고의 수재로 인정받아 교수로부터 대학에 계속 남을 것을 권유받기도 하였다.
1947년 닛쇼에 입사한 그는 1953년 미국에서 선박 수출 실적을 달성하며 국제 무역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다. 이 성공과 국제적인 협상 능력은 그가 이후 항공 산업으로 전환하여 1963년 닛쇼의 도쿄 항공국장으로 임명되는 결정적인 자산이 되었다. 그는 항공 자위대의 주요 항공기 도입 사업을 주도하며 강력한 상업적 정보력과 권한을 행사하였고, 그가 이끄는 부서는 카이후 군단이라 불릴 정도로 큰 영향력을 지녔다. 이는 종합상사의 정보력을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로, 이토추 기업의 세지마 기관과 자주 비교되기도 하였다.
승승장구하던 그의 삶은 1979년 더글라스 그루먼 사건에 연루되면서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외환법 위반 및 위증 혐의로 체포되어 부사장직에서 사임하게 되었고, 이후 국사이기센 사장, 극동해운실업 사장, 로열 컨스트럭션 사장 등을 거치며 활동을 이어가다 1994년 당나이 72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2 명조(命造) 분석(分析)
이 명조는 계수(癸水) 일간이 해(亥)월에 태어나 지지가 해자축(亥子丑) 방국(方局)을 이루고 천간(天干) 또한 수(水)로 구성된 천전일기(天全一氣)의 형상을 띄고 있다. 이것은 명리학적으로는 수(水)의 기운이 사주 전체를 지배하는 윤하격(潤下格)으로 분류된다. 일반적으로 정격에서는 사주에 오행이 모두 갖추어지는 것을 좋게 본다. 그러나 단지 하나의 형상으로 세력을 잡고 있다고 해도 흥성할 수 있다. 이는 권재일인(勸在一人)으로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곡직(曲直), 염상(炎上) 등이 이에 해당하며 화신이 존재하면 매우 좋다. 화신(化神)이라는 것은 독상이 생하는 기운으로 식신과 상관을 말한다. 이는 독상(獨象)을 설명하는 것으로 보통 전왕격(專旺格) 또는 일행득기격(一行得氣格)이라고도 한다.
윤하격이란 사주가 수(水)의 기운으로 일가(一家)를 이루는 독상(獨象)을 의미하며 일간이 자신의 기운을 잃고 대세를 따르는 기명종격(棄命從格)과는 그 성향이 다르다. 즉 수(水)라는 오행이 결집하여 한 일가를 이루어 독립된 세력을 형성한 전왕격(專旺格) 또는 일기전왕격(一氣專旺格)으로 해석한다. 이러한 격국에서는 수(水)가 대세를 형성하였기에 마땅히 수(水)를 따라 순기세(順氣勢)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로 수(水)를 돕는 금(金)과 수(水)가 희신(喜神)이 되고 이를 거역하는 화(火)와 토(土)가 기신(忌神)이 된다. 윤하격은 그 자체로 지혜와 유연함의 극치를 상징하여 사주의 전체적인 세력에 잘 순응할 때는 비범한 성취를 이루지만 세력의 흐름이 깨지는 시기에는 그 파급력 또한 매우 크게 나타나는 극단적인 특성을 가진다. 가이후 하치로의 삶은 이러한 명리학적 해석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수(水)의 세력이 일가(一家)를 이루었을 때 그는 항공과 선박을 아우르는 거대 상사(商社)의 리더로서 비범한 성취를 거두었으나 대운(大運)에서 국(局)을 충파(沖破)하는 화(火)의 기운인 오(午)운을 만났을 때 독상의 순수한 흐름이 깨지며 인생의 격변을 맞이하였다. 57세에는 더글라스 그루먼 사건에 연루되어 부사장직에서 사임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법정 위증 혐의로 기소되어 큰 파란을 겪었다. 이어 58세에는 닛쇼 이와이를 사임하고 국사이기센 사장으로 취임하였으나 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및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으며 사법적 단죄를 피하지 못하였다.
3 가이후 하치로(海部八郞) 주요 연혁
1923년 (癸亥) 1세: 도쿄에서 출생한다.
1947년 (丁亥) 25세: 구 고베경제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닛쇼에 입사한다.
1953년 (癸巳) 31세: 미국 일본 상공회의소에 파견되어 선박 수출 실적을 달성한다.
1963년 (癸卯) 41세: 닛쇼 도쿄 항공국장으로 임명된다.
1974년 (甲寅) 52세: 부사장으로 승진한다.
1979년 (己未) 57세: 더글라스 그루먼 사건으로 부사장직에서 사임한다.
1980년 (庚申) 58세: 닛쇼 이와이를 사임하고 국사이기센 사장으로 취임하나 징역 2년 및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는다.
1982년 (壬戌) 60세: 국사이기센 사장직에서 해임된다.
1985년 (乙丑) 63세: 극동해운실업(極東海運実業) 사장으로 취임한다.
1987년 (丁卯) 65세: 로열 컨스트럭션 사장으로 취임한다.
1992년 (壬申) 70세: 로열 컨스트럭션 사장직에서 사임한다.
1994년 (甲戌) 72세: 별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