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이야기-충분히 괜찮은 허탕
“전화 한 번 해볼까요?”
“아니에요. 그냥 두세요. 이유 있어 집에 들어갔을 텐데, 다시 나오게 해서 괜한 불편을 끼칠 필요는 없어요.”
2018년 5월 10일 목요일인 바로 어제 오후 1시쯤 해서, 내 중학교 동기동창인 김창현 친구와 함께, 같은 중학교 동기동창인 신대식 친구가 꾸려나가는 경기 부천의 ‘본죽’이라는 음식점을 찾았었는데, 마침 그 친구가 자리를 비우고 없어서 점심 끼니로 죽 한 그릇씩 먹고 나오려고 할 때, 그 집 종업원이 그렇게 그냥 가는 우리들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신대식 친구에게 전화를 하겠다고 하는 것을, 내가 손사래 치다시피 말리면서 나눈 대화가 그랬다.
그 집의 죽을 먹으러 간 것이 아니라, 친구 얼굴 좀 볼까싶어서 간 것이었기에 허탕이 되고 만 것이었다.
사연인즉슨 이랬다.
어제는 서초동 우리 법무사사무소 ‘작은 행복’가 좀 한가했다.
내 할 일도 딱히 없었다.
오후 2시 30분에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단골 치과에서 간단한 잇몸치료를 하는 일정, 그 하나밖에 없었다.
먼 길이어서, 이왕 멀리 나가는 김에 혹 어디 들를 곳이 없나 하고, 수첩의 메모장을 뒤적뒤적해봤다.
그때 딱 눈에 띄어들어오는 메모가 하나 있었다.
‘김창현 5만원, 전병환 혼사’
바로 그 메모였다.
두어 달 전으로 거슬러, 내 중학교 동기동창인 전병환 친구가 아들 장가보내는 혼사를 서울에서 치렀는데, 마침 이날에 내 나름의 일정이 따로 있어서 직접 발걸음으로 예식장을 찾아가서 축하를 하지 못해서, 김창현 친구에게 축의금을 대신 내달라고 부탁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 메모가 지워지지 않은 채로 있는 것으로 봐서, 내 그 돈을 갚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그동안에 갚을 기회가 두어 번 있었다.
한 달 쯤 전에 우리 중학교 동기동창으로 영등포구 양평동에서 치과를 하는 김명래 친구가 주위 친구들을 불러 밥사고 술사고 하던 그 날도 갚을 수 있었고, 사흘 전인 같은 달 7일 월요일 오후 2시에, 시내 광화문 인근의 금호아트홀에서 피아니스트 박혜윤의 피아노독주회 공연에서도 내가 그 친구를 초대해서 발걸음을 했었으니 그때도 갚을 수 있었다.
그런대도 그 기억을 하지 못해서 갚지를 못한 것이 아쉬웠다.
달리 아쉬운 것이 아니라, 김창현 그 친구는 내게서 그 돈을 받을까하고 기대를 했을 텐데, 내가 무심하게도 안 갚고 있으니, 달라는 소리도 못하고 그냥 찜찜한 기분으로 돌아갔을 것을 생각하니 그랬다.
마침 잘 됐다 싶었다.
그러잖아도 누구하고 점심을 먹을까 고심 중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정 정리를 다시 했다.
먼저 경기 부천에 사는 김창현 친구를 찾아가서 못 갚은 돈 5만원을 갚고, 그리고 그 가까운 곳에서 ‘본죽’이라는 음식점을 꾸려가고 있는 신대식 친구를 찾아 점심도 먹고 대화도 하고, 그 다음에 시간에 맞춰 ‘이봉재 치과’ 그 병원을 찾아가는 것으로 했다.
낮 12시 반쯤에 부천 상원초등학교 정문에서 김창현 친구를 만났고, 내 차에 같이 타서 신대식 친구의 ‘본죽’으로 갔다.
각자 입맛에 맞는 죽을 주문해놓고,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내가 네게 갚을 돈이 있어.”
“뭐? 없는데.”
“아니야. 있어. 전병환이 혼사때 축의금 대신해 준 것 있잖아.”
“아, 그 5만원. 받았는데. 이정인이 한테 보내줬잖아.”
“내가 그랬나?”
“그랬다니까. 에이! 그냥 모른 척 하고 받을 걸. 괜히 까발려서 손해났네.”
“하이고, 허탕 쳤네. 그런 줄 알았으면, 여기까지 안 와도 되는 건데 그랬어.”
“좋아. 대신에 오늘 점심은 내가 살게.”
그 대화는 대충 그렇게 끝냈다.
이미 갚은 돈을 또 갚겠다고 50리 길을 달려간 것이 허탕이었고, 우리가 점심을 먹을 그 집주인인 신대식 친구를 못 만났으니 그 또한 허탕이었다.
겉으로만 그랬다.
속으로는 허탕이 아니었다.
이미 갚은 돈을 아직 안 갚은 것으로 알고 그 돈 갚으러 간 나에 대해, 김창현 친구는 신뢰를 느꼈을 것이고, 없는 사이에 와서 점심을 먹고 가면서도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은 나와 김창현 친구에 대해, 신대식 친구는 인간미를 느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고 난 뒤에, 우린 잠깐 인근의 찻집을 들렀다.
받아들고 온 찻잔에 새겨놓은 글귀가 내 눈에 확 띄어들었다.
그 글귀, 곧 이랬다.
‘당신, 이미 충분히 괜찮은 사람’
그 글귀를 보는 순간, 내 문득 떠오르는 글귀가 있었다.
이랬다.
‘오늘 허탕, 충분히 괜찮은 허탕’
첫댓글 이래 찾아주는데 우짜 안 가까워지느냐...! ?
요즘은 쫌 조용해 졌다는 내 느낌이지만,
둘이 어쩌구저ㅉ구... 다 읽으니 그런생각도 났다.
새우죽 한 그릇 살까봐서 걱정해주는 친구--- 흔치 않더라구요!
두루 만나며 친구와 같이하는 세월도 보내봅시다.
충분히 괜찮은 허탕이네 저런데는 나도 낑가주면 좋은데....참말 보기가 좋아여...백발의 두사람....칭구여...
허탕이아닌걸 무슨탕인가....참탕인가 알탕인가 백발이되고 대머리가되도록 살아도 모르는건 모르네..
둘이서 속닥하게 하는 대화도 따스한 본죽
참으로 정겨웅 모습이구랴.
그나저나 그놈의 목구넝이 빨리 실해져야
할낀데 걱정이닷 .
일부러 귀한 발걸음 하셨는데,
조우를 못해서 미안합니다.
우리 직원은 입이 무거워(?)서 말을 안하네~
다음엔 꼭 연락주시길...
챙겨줘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