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미(유니스) 선교사 묵상 최고의 날 ~ "나의 없음이 부끄러움으로 느껴지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시편 69편
이곳 애틀랜타에서 나의 요즘 루틴은 새벽에 일어나서 동네를 걸으면서 기도하는 것이다. 손자 하영이가 일찍 깨면 사위랑 딸 수진이가 조금이라도 잠 더 자라고 내가 손자를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
나는 기도하면서 걷고 손자 하영이는 동네 길을 뛰어다닌다. 손자 하영이의 뛰는 뒷모습을 보면서 손자를 위한 기도를 한다.
우리가 자녀들을 위해 기도할 때 "보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입게 하여 주옵소서!"라는 기도는 축복의 기도라고 나는 생각한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에스더는 왕비 간택을 받는 날 "에스더를 보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입었다"라는 성경 말씀이 있다.
나는 이 말씀을 내 딸 수진이가 태어나서 자라가는 과정에 자주 기도문으로 올려 드렸다. 수진이는 그래서 자기가 나의 그런 기도 덕분에 보는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입었다면서 자기도 아들 하영이에게 그런 기도를 해 준다고 한다.
지금 나는 손자를 매일 보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으니 손자를 보면서 여러 가지 축복의 기도를 해 준다.
우리가 우리들의 자녀를 위해 기도할 수 있음이 하나님을 믿는 부모들의 "특권"이 아닌가 한다.
나는 나를 위해 딱히 기도하는 것은 없는 편이지만 많은 사람을 위해서는 여러 종류의 기도를 하는 것 같다.
운전하다 옆 사람을 문득 보게 될 때 그 사람의 차 안에 이상한 부적 같은 것이 보이면 "아! 이 사람은 예수님 믿는 사람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얼른 이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저런 부적을 다 떼어버리고 예수님 믿는 사람 되게 해 달라고 기도드린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내가 기도해 주어야 할 것들이 눈에 보이면 막바로 기도를 해 준다. 예를 들어 지나가다가 발을 다쳐 깁스한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을 모른다 해도 그 사람이 얼른 발 부상당한 것 낫게 해 주십사 그런 기도를 드린다!
나 자신의 필요에 대한 기도는 자주 안 한다고 해도 이웃을 위한 기도는 많이 하면 할수록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지금 미국에 와 있는데 미국의 생활은 참 편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나 보고 나의 남은 삶을 편안(?)하게 미국에서 살라고 한다면 나는 만족할까?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나는 편안(?)함이 익숙하지 않은 선교사의 삶에 이제는 익숙해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앞으로 편안하면서 아무런 불편한 사역을 하지 않는 삶이 나의 여생이라고 한다면 나는 그러한 삶의 루틴에 우울증이 걸리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
평소에 하던 사역들을 별로 안 하는 앞으로의 2주 생활!! 이곳에 있는 동안 조금이라도 딸 수진이에게 도움이 되는 친정엄마였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드린다.
개역개정 시편 69편
6. 주 만군의 여호와여 주를 바라는 자들이 나를 인하여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를 찾는 자가 나로 말미암아 욕을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
이 성경 구절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이 사업이 잘 안 되거나 가정에 일이 잘 안 풀려서 주위 사람들이 "하나님 믿는 사람인데 왜 저렇게 일이 안 풀려?"라는 말 듣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 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간증"이라는 것을 들을 때 하나님 믿었더니 일이 잘 풀리고 자식이 잘되는 등 "성공담"에 대한 이야기들에 익숙해 있어서 그런 두려움이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 보게 된다.
하나님 잘 믿으면 모든 일이 다 잘 풀려야 하는가? 몸도 항상 건강해야 하는가? 사업을 시작하면 사업이 번창해야 하는가? 교회를 개척하면 단박에 부흥이 일어나야 하는가? 이웃과 관계는 모두 다 좋아야 하는가?
그래야만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으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예수님처럼 복이 없는 분이 또 있으실까?
서른세 살 나이에 아내를 맞이하지도 않았고 몸이 건강한 것도 아니었지 않은가? 직업이 마땅한 것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가족과의 관계가 다 좋았었는가? (예수님의 동생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처음에 믿지 않았으니 말이다) 재산이 많이 있었는가? 모든 사람에게 칭송과 칭찬을 받았는가?
오늘 성경 묵상의 말씀이 되는 시편 69편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그 상황을 예표한 시였음을 우리는 성경공부를 통하여 알고 있다고 하겠다.
얼마 전 내 멘티의 묵상 중에 이러한 글이 있었다.
*** (생략) 누워서 눈을 감고 기모 모임을 시작했는데 내 눈앞에 가까이 주님의 십자가가 드리워져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생생한 그림이나 이미지가 아니라 느낌이었다.
그다음은 무슨 영화 같았다.
주님의 십자가에 대해 들은 사람들도 있었고 멀리 서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가까이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가까이 갈수록 예수님을 가까이 볼 수 있었고 예수님의 고난을 더 체감할 수 있었다.
나는 가까이 가기로 결정하고 주님의 십자가 밑, 그 발밑으로 갔다. 내가 가졌던 여러 부담과 어려움들을 포스트잇 같은 것에 써서 갔던 것 같다.
그다음에 예수님이 십자가로 올라오라고 하셨다.
내 생각에 십자가로 올라가면 예수님을 더 가까이 볼 수 있겠구나...
그 십자가에 올라가니 예수님이 짊어지신 모든 것은 내가 가졌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힘들고 어렵다 무겁다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고
예수님을 내가 가까이 보고 있구나. 이것이 내가 예수님과 더 가까이 있을 수 있는 거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 ***
우리가 참되게 깨달아야 하는 "복"은 하나님을 가까이함인데 예수님의 십자가에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사람이 어쩌면 가장 "복된 사람"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주님 생각엔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 중 어떤 사람이 가장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주 만군의 여호와여 주를 바라는 자들이 나를 인하여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를 찾는 자가 나로 말미암아 욕을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
이 말씀을 어떻게 제 삶에 적용하면 좋을까요?
이 세상에서 말하는 부와 명예가 나에게 없음이 하나님 믿는 사람으로서의 부끄러움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지혜가 저희에게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나로 말미암아 욕을 당하지 않아야 함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 때문이 아니라 내가 마땅히 행해야 하는 일들을 행하지 못할 때임을 아는 지혜가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오늘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더 가까이 가는 것을 참된 복으로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있기를 또한 기도드립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하루 종일 기쁘시면 참 좋겠습니다.
외울 말씀 개역개정 시편 69편
6. 주 만군의 여호와여 주를 바라는 자들이 나를 인하여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를 찾는 자가 나로 말미암아 욕을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
💕 사랑하는 그대여 💕 2024. 9. 24.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여~ 출. 석. 부르고 있습니다. 대답하셔야죠?
“사랑하는 내 딸아 사랑하는 내 아들아
오늘 네가 고통스러우냐? 오늘 네가 겪는 이 일들 때문에 너는 수치스러우냐?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
내가 너의 수치를 이미 다 감당하였고 내가 너의 부끄러움을 이미 다 십자가에서 감당하였음이라.
오늘 네가 할 일은 십자가에서 너의 모든 부끄러움과 수치와 연약함과 괴로움과 모든 죄 된 것 모든 걸 다 감당한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사랑하는 일이오. 그분께 감사하는 일이오. 그분이 사랑하는 온 인류 너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너의 본분인 것이라.
내가 하라는 것만 잘하면 되는 것이라. 내가 하지 말라는 것 하지 말고 하라는 것 하고 가라는 곳 가고 가지 말라는 곳 가지 말고 너의 삶이 그렇게 복잡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너는 알아야 할 것이니라.
단순하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그 순종을 기뻐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너의 인생에 참된 복이 될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