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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 한재 이목과 다부 류건집 주해
제 1절 [다부] 의 시대적 배경과 한재의 사상
고려후기 신흥사대부들이 수용한 성리학(性理學)은 권문세족(權門勢族)의 횡포와
불교의 패해를 막는 지도이념으로 등장했다.
성리학은 안향(安珦) 이후, 백이정, 이제현, 이색, 정몽주, 길재, 권근,
정도전 등으로 이어지면서 실천학정 측면이 더욱 강조되었으니,
정도전의 [불씨잡변(佛氏雜辨)]에서 그 경향이 아주 뚜렷해진다.
그때까지 고려의 통치 이념을 뒷받침했던
불교자체를 인륜에 어긋나는 도라 하여 공박한 것이다,
따라서 좀 더 경직된 법도가 필요했던 조선사회는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원하게 되었다.
이에 선비들이 인격수행에 필요한 차를 늘 가까이에 두고 애용하게 된 것이다.
문벌 중심의 사회가 관료 중심의 사회로 전환되면서 통치 이념 또한
성리학의 중심적 이념인도학(道學) 쪽으로 옮겨갔다.
곧 조선사회에서 성리학은 정치적 이념일 뿐 아니라
학문적 . 사상적 우위를 점했고 이상생활의 규범이 되었다.
태조는 조선을 건국한 이후, 인재 중심의 관리 임용을 지향하고
지방에 전문행정관을 두어 과거 호족들의 세력을 꺾었다.
함편 개국공신(開國功臣)과 원종공신(原從功臣)들에게는 토지와
노비를 분급(分給)하여 나라에 충서토록 했다.
이런 변화를 거쳐 바로 왕권 중심의 절대 권력을 이루어 집권 체제를 학립했고
양반관료사회의 체제를 정립했다.
과거제도가 정착하면서 관계 (官界) 진출은 곧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공신들의 권세가 국정을 장악하고 그들의 영향 아래에서
관리가 임용되어 유능한 지방인재들의 중앙 진출이 좌절되는 등의 문제점이 대두했다.
이는 바로 건국 후
권력을 장악했던 훈신(勳臣)과 척신(戚臣)들의 부정과 비행에 대한 비관으로 이어진다.
이에 사람 계통의 참신한 유학자들의 이념이 더욱 엄격한 잣대로 작용했기에,
부당하게 비리를 저지른 수구세력들은 어려운 처지에 몰리게 되었다.
점필재 김종직(1431~ 1492)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학문적 경향은
이런 면에서 많은 주목을 받는다.
곧은 절의를 지키기 우해 낙향한 선비 김재의 학통을 이은 영남학파의
젊은 선비들이 중앙관계로 속속 진출하게 되니,
기존 정치 세력들의 견제가 없을 수 없었다.
그럴수록 이들은 굽히지 않고 관리 임용을 인재 중심으로 할 것을 주장하고,
엄격한 도학정신으로 그들에게 대항했다.
이 같은 유교 윤리의 엄격한 잣대는 계유정난 (癸酉靖難) 후의
세조정변 (世祖政變)부터 큰 반항을 일으켰다.
사림은 ‘인성은 원래 순진무구하지만 사람이 타고난 기의 작용으로
청명(淸明)하거나 혼탁(混濁)해질 수 있다. 곧 氣로인해 그 선악과 청탁이 결정되니,
형이하적인 것을 다스리는 데는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禮와 법을 강조하고, 그 배경으로 도학이 자리 잡았다.
본래 권력의속성상 오래가면 부패하게 되는 것이니, 국가의 기본인
공납제(公納制)와 부역제(賦役制)가 점점 느슨해져 방납(防納)이행애지기까지 한다.
이런 폐단으로 유민과 도적이 창궐하고 민심이 동요해,
의 정치세력이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얻었다.
점필재의 문하에는 김굉필, 정여창, 김일손 등이 중앙 정계로 진출하여
왕의 신임을 얻게 되니, 훈구대신들의 입장은 날로 어려워졌다.
점필재의 문하에서 학자는 물론 수많은 차인들도 배출되었는데,
이는 차가 도학을 수행하는 선비들에게 더없이 좋은 동반자였기 때문이다.
특히 조위, 정희량, 나효은, 김일손 유호인, 이종준, 강흔, 이원, 이주,
김흔, 최부, 김극성, 홍언충, 홍유손 등은 쟁쟁한 차 애호가들이었다.
이들 중 점필재의 문하에서 도학 이념의 강골인 한재(寒齋)가 등장한다.
그는 동문 중에서도 막내에 가까운 젊은 나이로 사림에 넘치던
도학정신과 절의정신을 실천하는 데 한 치의 굽힘이 없었다.
[다부] 또한 그러한 자신의 생각을 에 비유하여 읊은 작품이다.
한재이 차 생활 저변에는 노장사상이 혼재되어 있어,
한재는 양생에서 군자지도(君子之道)에 이르는 이상을 차에 결부시켜
선계에 이르기까지 확대시켰다.
그는[다부]에서 먼저 글을 쓴 동기와 배경을 병서(幷書)에 적고
차의 산지(産地), 생육환경,전다 (煎茶), 효능을 칠수(七修), 오공(五功),육덕( 六德)으로 나누어 노래한 후,
끝에 자신의 차 정신을 피력했다. (한국차문화사 <이른아침,2007>상권 399~ 423)
한재의 차 정신은 점필재의 문하답게 도학정신에 바탕을 둔
철저한 성리학적 사고를 중심으로 한다.
공부하기 위해 집을 떠나는 동생에게 준 시[송사제미지지송경독서(送舍第微之之松京讀書)]를 보면
그의 정신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1, [송사제미지지송경독서]에 나타난 사상
李氏自文學 愛書不愛金 이씨자문학 애서불애금
爺孃已白首 吾汝猶靑衿 야양이백수 오여유청금
鶴夢巖松老 茶煙淘月陰 학몽암송노 다연도월음
慇懃求道處 且莫看雲岑 은근구도처 차막간운잠
우리 집안 예로부터 글을 했기에
책을 즐기고 재물에는 생각 없었네,
부모님 이미 늙으시고
우리는 아직도 서생의 몸이라네.
바위 옆 노송 위에 학의 꿈 영글고
달빛 아래 집 주변엔 차 연기 피어나네.
도를 구함에 한결같이 하고
산봉우리 위의 구름에는 한눈팔지 말게나.
이 시는 어려움 속에서도 체모를 잃지 않고 학업에 정진하며
명리(名利)에 현혹되지 않기를 당부한 내용을 담았다.
학몽(鶴夢)은 집안의 품위요, 다연(茶煙)은 그의 정신이었다.
이것이 바로 육우의 [茶經]을 읽고 그가 터득한 의 실천이다.
그래서 그는 제례(祭禮) 때도 철갱봉다(撤羹奉茶)를 철저히 행했다.
이시에 표현된 ‘효심(孝心)’과 ’우애(友愛)’, ’금욕(禁慾)’, ’중정(中正)으로 복귀(復歸)’ 등의
다성은 한재뿐만 아니라 다른 선비 차인들의 사상에도 잘 표출되고 있다.
바로 이런 사상적 흐름이 당시의 큰 지도이념이자 사회적인 이슈였다고 하겠다.
이는 조선 역사를 일관하여 현재까지 변함없는 도덕률이자 생활의 지표가 되고 있다.
아울러 당대의 정신적 사조가 어떠했는지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청금은 벼슬하지 못한 선비가입은 옷을 뜻하며,
일반적으로 벼슬하지 못한 선비를 지칭한다.<유생>
[시경 - 국풍]의
“푸른 동정 멋진 옷 걸친 님이 그리워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네, 나를 가지도 못하게 하고서,
편지 한 장 없는 것은 너무하네요.“ 라는 대목에서 청금이 등장한다.>>
(1) 효심과 우애
淸虛寂寞是禪家 청허적막시선가 -- 고요할 적/쓸쓸한 막
每引胡僧手共義 매인호승수공의
미鹿山寒時入院 미록산한시입원 -- 사슴 록
沙彌晝永解煎茶 사미주영해전다 -- 두루미 미/낮 주/달일 전
松頭晴雪時時落 송두청설시시락 -- 갤 청
石底澄流脈脈斜 석저징류맥맥사 --밑 저/맑을 징/비낄 사
想得北堂安穩未 상득북당안온미--평온할 온
日興翹首望京華 일흥교수망경화 --꼬리긴 깃털 교
깨끗하고 조용하니 이 바로 선가라네
언제나 스님 만나면 합장하곤 한다네.
산속이 추어지면 사슴 가끔 찾아들고
낮 시간 길어지니 사미는 차 끓이네.
소나무위 눈덩이는 때때로 덜러지고
돌 사이 맑은 물은 비스듬히 흐른다네.
북당의 어머님 편안한지 궁금해서
날마다 어리 들어 경도를 바라보네.
-변계량 (卞季良), [재백화사망경도(在百華寺望京都)] -
여말선초의 문인 변계량(1369~ 1430)이 공부하러 절에 와 있을 때
집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지은 시다.
멀리 덜어져 있는 산사에 눈이 내리니,
어머니께서 추위에 혹 병환에 걸리지는 않으셨는지 염려하는 효심이 드러난다.
효는 사람의 기본적인 도리였으니,
변계량뿐만 아니라 한 재를 위시한 당시이 모든 선비들이 지향하는 바였다.
(2) 금욕
苟不私於方寸兮 極高明乎天地 구불사어방촌혜 극고명호천지-- 진실로 구/사사로울 사/다할 극/
진실로 마음에 사사로움이 없음이여,
높고 밝음이 천지에 극하였도다.
--한재. [虛室生白賦] --
세속적인 욕심을 버리고 나니 사람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경지에 이른다.
이는 바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말한 맹자(孟子)의 심득(心得)의 경지다.
그 드넓은 이상과 거리낌 없는 성현의 높은 세계인 것이다.
무욕(無慾)이면 무욕(無辱)이라 하지 않았는가.
貧窮賢達事 分外且無營 빈궁현달사 분외차무영 -- 다할 궁/ 경영할 영
빈궁하거나 현달하게 사는 일은 분수에 달린 것이니 어쩔 수 없도다.
--<한재집> [추서유월 중정독작유회(秋서유월 中庭獨酌有회)]--
여기에는 물론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정신과 분수를 거스르지 않는 마음자리가 있다.
曉日升時金殿耀 효일승시금전요 ---새벽 효/되 승/대결 전/빛날 요
茶燃양處蟄龍翔 다연양처칩용상 --- 불탈 연/양 ?/숨을 칩/빙빙돌아날 상/
自從遊歷淸閑境 자종유역청한경 -- -쫓을 종/놀 유/지낼 역/한가할 한/지경 경
榮辱到頭渾兩忘 영욕도두혼양망 ---욕 욕/이를 도/흐릴 혼/두 양/잊을 망
새벽 해 떠오르면 금빛 전각 빛나고
차 연기 흩날리면 서린 용이 나른다네.
맑고 한가로운 곳에 노닐면서
세상의 영욕 모두 잊었다네.
-- 김시습, [長安寺] --
남자들에게 가장 떨치기 힘든 것이 바로 부귀를 버리는 일이다.
더구나 뛰어난 재주를 지녀 촉망받는 선비로서 관계의 모든 희망을 위로하고
입산한다는 것은 대단떨 결단이다. 이 모든 것이 차의 힘을 입었다.
(3)본래심 (太處)
心地淨如水 소然無애隔 심지정여수 소연무애적 --- 깨끗할 정/소 ?/애 ?/막을 격
正是忘物我 茗梡宜自酌 정시망물아 명완의자작 ---네발도마 완/마땅할 의/따를 작
마음 바탕 깨긋하기 물과같고
혼연히 트여서 막힘이 없다네.
이것이 바로 우리를 모두 잊는 것.
찻잔 가득 차 따라 마신다네 --김 시습 [古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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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는 바가 많으면 욕됨이 있다고 했으니
약초밭에 사슴이 놀아도 차마 쪼지 못하고,
자연 그대로 내버려둔다.
이것은 바로 선의 경지니.
‘배움은 마음을 따라야 얻음이 있다’는 생각이었다.
고요한 장안사에 늙은 스님이 선정에 들고 흰 구름만 깔렸는데,
야학이 깃들이니 맑은 운치 길기도 해라.
여기에 야학은 자신을 옮겼는지도 모른다.
아침 해 뜨고 다연(茶煙)이 오르니 거기가 바로 선계(仙界)가 인고 무엇인가.
한밤 등불 아래 조용히 선정에 드니 정신은 벌써 육신을 떠나 명계에 노니는데,
빈 껍질인 육신과 그 그림자만은 여전하구나.
이어서 그는 밖에 눈이 내리고 구름 덮여도 곧 사라지는 것을 생각하며,
촛불 지우고 방바닥에 누워 생멸(生滅)의 이치를 생각한다.
이럴 때 그는 차를 찾았으리라, 그리고
[석로]라는 시에서 늙은 선사의 생활을 다심과 결부시켜
세속에서 얻을 수 없는 청정함을 노래했다.
功名眞畵餠 身世塊隨波 공명진화병 시세괴수파 -- - 떡 병/덩어리 괴/다를 수/
時有山僧到 淸談一梡茶 시유산승도 청담일완다 --- 이를 도/네발도마 완/
공명은 진정 그림의 떡이고
속세에 사는 몸, 세파를 따르는 어려움 있네.
때마침 산승이 이르렀기에
차 한 잔 앞에 놓고 청담을 논한다네.
-- 徐居正 [우차잠상인(又次岑上人)]--봉우리 잠
세속에 살면서 속진(俗塵-티끌 진)에 초연하기란 힘든 일이다.
그래서 선력(禪力)이 높은 잠상인과 고아한 이야기를 나누어서 속기(俗氣)를 없애려 한다.
“다른 날 고승과 함께 선문답하고 돌솥에 솔바람 소리 나게 차 달이며 보내리.”라는
시구절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는 유가에서 볼 때, 모든 이들이 자신의 본분을 지켜 넘치지 않는다면
모두 제대로 유지되고 해악이 없을 것이라는 그의 생각과 같은 것이다.
[홍문관부(弘文館賦)]의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비는 아비답게, 자식은 자식답게(君君 臣臣 子子]”라는
구절을 떠올려 봄직하다.
2. [절명시]에 나타난 한재의 사상
黑鴉之集處兮 白鷗兮莫去 흑아지집처혜 백 구혜막거 ---갈까마귀 아/갈매기 구/없을 막/갈 거
適彼鴉之怒兮 諒汝色之白歟 적피아지노혜 양여색지백여 ---맞을 적/저 피/갈까마귀 아/성낼 노/살필 양/너 여/어조사 여
淸江濁濁之身兮 惟慮染彼之血 청강탁탁지신혜 유려염피지혈 --흐릴 탁/생갃할 유/생각할 려/물들일 염/저피
掩卷而推窓兮 淸江白鷗浮 엄권이추창혜 청강백구부 --가릴 엄/문서 권/밀 추/갈매기 구/뜰 부
優爾唾延兮 漬濡乎白鷗背 우이타연혜 지유호백구배 ---넉넉할 우/너 이/침 타/끌 연/담글 지/젖을 유/등 배
白鷗兮莫怒 汚彼世人而唾也 백구혜막노 오피세인이타야 --- 없을 막/성낼 노/더러울 오/저 피/침 타/
검은 까마귀 모인 곳에 백구야 가지마라.
성낸 까마귀들 어의 흰색 시샘하여
맑은 강에 깨끗이 씻은 몸, 피 물들까 염려로다.
책 덮고 창을 여니 맑은 강에 백구 떴네.
우연히 침 뱉다가 백구 등을 더럽혔네.
백구야 성내지마라 세상사람 더러워 뱉은 침이라네.
--한재 [절명시(絶命詩)] --
(1) 절의념(節義念)
[절명시]는 죽음을 앞두고 지었기에 더욱 숙연하게 만드는 시다.
절의를 지키기 위해 버리는 생명이라 더 값지고, 그 의기는 자목 하늘을 찌른다.
이러한 큰 힘은 孔子와 같은 선현의 올바른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있다.
不義而 富且貴 於我如浮雲 불의이 부차귀 어이여부운
옳지 못한 방법으로 부자가 되고 귀하게 된다는 것은
나에게는 뜬구름처럼 아무 의미 없다. --논어 --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야 ---새길 조/
세상이 추워지고 난 다음이라야 늦도록 시들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 논어(論語)-
君子有殺身以成仁 군자유살신이성인
군자는 인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을 수도 있다. -- 논어--
(2) 배의여도(配義 與道) ---짝지을 배
近百餘年間 以言爲官 근백여년간 이언위관 --가까울 근/남을 유/
而能面擊權臣 이능면격권신 ---칠 격/
凜然若秋霜烈日 不可犯者 늠연약추상렬일 불가범자 ---찰 늠
근 백여년 사이에 언관이 되어서
능히 권신을 면전에서 치셨으니
의젓함이 가을 서리를 녹이는 해와 같이
감히 범할 수 없습니다. -- 최보신(崔 寶臣), [귀강능사(歸江陵詞)]. <병서( 竝書)> --아우럴 병
見義 不見人是非 견의 불견인시비
의만을 보고 이간의 시비는 보지 않았네.
-최보신,[귀강능사][병서] --
吾夫子懼基失也 書之六藝 以垂于後 오부자구기실야 서지육예 이수우후 ---두려워 할 구/재주 예/드리울 수/
우리 공자께서도 그 도를 잃을 까 두려워서
육예 에 기록하여 뒷사람들에게 전하게 하셨다. -- [홍문관부] --
이글은 대사헌으로 있던 최 보신이 권신의 면전에서 임금께 탄핵한 문제로
책임지고 물러나와 고향으로 돌아갈 때 한재가 칭송한 글이다.
옳은 것을 위해서라면 온몸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첫댓글 새삼 [漢詩 속으로 ]회원님들 존경합니다! -- 저는 너무 어려워서 -- 이 작은 숙제를 하면서 -- 휴! -- 절래절래 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자를 제외 - 모르는 한자만 풀이해 올리지만 - 절반 이상이니 --부끄럽습니다 - 하지만
이렇게라도 할 수 있음에 용기 백배합니다.( 지금도 백번 수정하며) - 류건집 교수님께 민폐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