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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양원길 장로님! 그리고 존경하는 은퇴장로님들..
며칠전 게시된「선교사님의 글을 읽고..」라는 제목의 글에서 '은퇴장로 양원길' 이라는
이름 석자를 보는 순간, 오래된 기억의 흔적 몇가지가 머리속에 계속 맴돕니다
어줍잖은 저의 생각 하나 더 얹는 것이 그리 도움이 될것 같지 않아, 들리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던 중, 양 장로님의 성함을 보면서 흩날리는 오래된 기억을 적어보는 것이 마음이
편할것 같아.. 이렇게 인사드리게 되었습니다.
주절주절 펼쳐내다 보니 장황해 졌지만.. 제 자신을 되돌아 보며 감사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글이 너무 장황해져 옥한흠 목사님에 대한 소회로 마무리하며.. 다시 기회가
된다면 양원길 장로님에 대한 작은 기억도 옮겨 보고자 합니다.
낙엽이 깊어가는 이 가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노년의 편안함이 가득하시길 소망 합니다.
- 은퇴장로님들의 헌신을 기억하는 허다한 증인들 중 한사람이 -
1980년대 진흥아파트 앞 3층건물의 지하에 자리하던 동네 목욕탕인.. 일명 '00사우나'의
주인장께선 당시 유행하여 불리기 시작했던, 자랑스런 이 명칭을 강력히 주장하셨습니다.
"우리 가게는 목욕탕이 아니라 사우납니다.. 사우나!"
( "누가 봐도 동네 목욕탕 인데. 그냥 00목욕탕이 잘 어울리는".. )
1층에 자동차 밧데리 가게와 세차장과 중화음식점.. 2층에는 몇개로 나누어진 주일학교
예배실과 사무실. 그리고 3층을 본당으로 사용하며 오손도손 지내는.. 당시 서울시내 곳
곳에서 흔히 볼수 있었던 비교적 작고 허름한 단독상가 회색빛 건물이었습니다.
" 한지붕 다섯가족 중 한 가족이었던 사랑의교회 "
건물앞 도로를 건너면 맞아주던 진흥아파드 단지 한켠의 작은쪽문은 한 두사람이 지나갈
만큼 좁았지만, 도로와 바로 연결시켜 주는 고마운 문이었습니다. 그리 볼품은 없었지만
정겹고 소중했던 '작은쪽문'..
옥한흠 목사님께서도, 이 작은쪽문을 통해 매일, 아니 하루에도 몇차레 들고나고 하셨습
니다. 그 길에서 목사님을 만나기라도 하면 "너-희들! 요즘 공부는 제대로 하고들 있니"
라고 물으시며, 당시 학생이었던 우리들이 별로 듣고 싶지않은 이야기로 인사의 첫 포문
을 여셨습니다.
목사님의 첫 인사말은 '예기치 않은 반가운 만남' '세대를 뛰어넘는 아름다운 만남' 과는
조화을 이루지 못했고, 이후 목사님을 슬금슬금 피하게 하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 첫 질문이자 인사말에.. 환한 웃음으로 화답할 수 있는 복되고 의로운 '의인학생' 이
과연 이 땅에 몇명이나 있었겠습니까! 그저 죄인임을 자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들의 신통치 않은 낌새을 살피신 목사님께서는
" 도데체 이유가 뭐니! 이유가.. 공부하지 말라고 뜯어 말리는 사람이라도 있니..
아니면 누가 밭에 나가 김을 매라고 하니, 소를 치라고 하니.. 그것도 아니면
너무 배가 고파 눈이라도 침침해 졌니? 입이 있으면 말 좀 해봐라 말 좀..
어디 들어 나 보자 "..
경상남도 바닷가 작은 시골마을에서 '똥지재를 지고 걸어가는 소년'.. 그 소년의 눈에는
우리들의 모습이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 " 목사님.. 우리는 그냥 "공부"가 싫어요! 아니 '공부'가 우리를 싫어해요" )
입밖으로는 내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크게 외쳤지요.
"우리도 공부와 친해지고 싶습니다. 그런데 공부가 자꾸 도망을 가요. 목사님..
우리도 참 답답합니다. 기도해도 잘 안돼요..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오는사람 막지말고 가는사람 붙잡지 말라는데.. 편안히 보내 줘야지"..
이처럼 목사님의 포화에 우리도 제법 잘 견뎌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길에서 옥 목사님
보면 "멀리 돌아서 가자" 는 암묵적 의견일치도 보았습니다.「예기치 않은 반가운 만남」
「세대를 뛰어넘는 아름다운 만남」은 이렇게 슬픈 결론으로 마무리 되곤 헀었지요.
그야말로, 철부지 청개구리들이었습니다. 무늬가 이쁜 '파란 청개구리'..
청개구리가 치뤄야할 댓가는 깊은 후회임을 동화책에서 이미 보았건만,그땐 그랬습니다.
본분을 잊지 말라는 목사님의 권면은 서늘하기까지 했으며,보면 볼수록 이쁘고 사랑스러
운 미래의 희망인 우리들에게도 예외는 없었습니다. 이 권면으로부터 자유로울수 있었던
사랑의교회 성도는 아마도 유치부 아이들 정도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혹시 모르겠습니다! 옥목사님께서 " 유치부 너희들! 부모님께 효도하고 이웃을 돌보는
아이들로 본분을 다하고들 있겠지" 라고 하셨는지는..
에너지 넘치는 우리들의 모습에서 똥지개를 걸친 당신의 모습.. 모진 시절을 살아낸 이
땅의 수많은 '똥지개 소년들' 을 회상하며 안타까운 마음에 그리 하셨다고 짐작됩니다.
비단 옥목사님뿐 아니라, 힘겹고 고된 시대를 살아낸 세대의 심경을 이제야 조금은 알것
같으니..
( 청개구리에게 시간은 약인지, 독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
그런 면에서, 옥목사님은 당시 우리들이 좋아하는 자상한 모습으로 비춰지진 않았습니다
멀리서 뒷모습이 보이기라도 하면, 한걸음에 달려가 길을 막고 "목사님! 안녕하세요"라고
먼저 인사하고 싶은 그런 모습은...
( 쪽문을 지나 떠벅떠벅 걸어가시는 잠바입은 뒷모습은 영락없는 '동네아저씬데'.. )
목회자의 본분은 무엇인가!..
성도들의 본분은 무엇인가!..
본분을 다하는 목회자.성도들의 교회는 어떤 모습인가!..
사랑의교회는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가!..
제자훈련으로 그 본분을 감당할 수 있는가!..
단순하지만 결코 양보할 수 없었던 이 질문들을 앞에 놓고, 기도하며 스스로 묻고 답하며
끊임없이 씨름하셨던 목사님에겐,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본분을 잊지 말라' 는 말씀은..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속에서
"지금 네가 서 있는 자리를 한번 돌아보라"는 경종이 되었고, 이 울림은 누구에게도 예외
가 없었으며 결코 양보되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은 겸손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내린 결정이라도 장로님.교역자들의 건의에
귀 기울이고 언제든 수정하여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할 수 있었던 모습은, 당신께서 서 있
을 자리를 잊지 않았기에 그리 하실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공손한 태도. 자상함. 말을 적게 하는것. 나서지 않는 것.
봉사하는 것.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지 않는것.남의 일에 발벗고 도와주는 것.온화한 말투
어쩌면,자기생각을 낮추는 것과 그 훈련이 되어있는 사람.. 의견의 내용과 성격은 달라도
자신의 생각을 상대과 같은 위치에 옯겨다 놓는것. 수용.비교.평가하기 이전에, 하나님께
서 허락하신 동일한 생명력을 가진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가 겸손의 본질이자 출발
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상황에 따라 고개는 좀 더 숙일지라도.. " 네..고객님! 고객님 말씀이 다 맞습니다" 며 상
냥한 목소리를 내며 얼굴빛에 공감하는 표정을 지을지언정.. 내 안의 생각은 조금도 움직
이지 않고 누구도 침범할 수없는 성역안에 쌓아놓은 나만의 철옹성이 조금이라도 손상을
으면 견딜 수 없어 어찌 할줄 모르며,
내 생각과 의견이 일단 왕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야만 비로소 " 네 의견도 한번 말해봐
내 들어줄께!.. 음. 네 생각도 그리 나쁘진 않군 알았어.. 내 한번 생각해 볼께" 라고
호의를 배풀며 스스로 만족하는 모습.
마음에 맞는 주변 사람들이 맞장구라도 쳐 주면, 겸손한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시킨 증거
라고 안도하며 마음속 왠지 불편함을 애써 외면하는 모습.
이것을 '겸손' 이라고 해야 할지.. '교만' 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아직은 완전한 겸손은 아닌 것 같고 작은 겸손이야.. 그러니 왕의 자리에 않아
더 많이 노력하면 언젠가 완전한 겸손이 될수 있다고, 주먹을 불끈 쥐어야 할지...
옥 목사님의 "이제 네가 서 있는 자리를 한번 돌아봐야 하지 않곘니" 라는 물음이 예사
롭게 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앞에.. 사람앞에서.. 자연앞에서.. 자신이 서 있어야 할
자리. 그래서 본분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겸손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런지..
대학입시 시험을 앞둔 마지막 주일의 일입니다. 매년 고등부를 찾아 기도하시던 옥목사
님의 모습에서, 제가 찾아낸 겸손은 이런 모양이었습니다.
그땐 그것이 겸손인지.. 잘 몰랐습니다
『 애들아!...
땅에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난다는 것은 너희들도 잘 알고 있지!
심는대로 거두는 것은, 하나님이 이 땅에 허락하신 정직한 자연의 법칙이란다.
나는., 너희들이 심은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하는 허황된 기대는 안 했으면 한다.
정직하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결과도 담담히 받아
들였으면 좋겠다.
다만, 너희들이 심은만큼 거두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드는것은 숨길
수가 없구나! 그 동안 어려운 시간보내고 여기까지 와준 대견스런 너희들을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시험장에 가면 많이 긴장이 된단다. 첫 시험지를 받으면 눈을 감고 조용히 기도해라..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실거야! 나도 기도 한단다... 』
" 첫 시험지를 받으면 눈을 감고 조용히 기도해라!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실거야 "..
그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생생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 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이 생명력을 부여한 사람들을 존중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겸손의 시작이자 본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수록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한 통찰로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에수님께서 " 네 이웃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 " 이라는 말씀이 여기에 해당되지는
계속 고민해봐야 겠습니다. 성경말씀을 내 생각에 끼워 맞추는 것은 아닌지.. 자신은 없
지만 중요한 것이라고 여기기에, 그 고민은 멈추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이 없다면 자상함. 공손함 .봉사.. '겸손을 담는 그릇' 을 겸손
이라 여기고 열심을 내며 안도하고 있지는 않는지.. 의문이 듭니다, 마치 '바닷물을 마
시며 해소되지 않는 갈증은 아직 내가 충분히 마시지 못했기 때문' 이라고 느끼듯 말입
니다.
이런 면에서, 제가 찾아낸 목사님의 겸손은 '겸손을 담는 그릇' 이전의 그것이라는 생각
을 하게 됩니다. 성도들을 향해 부담스럽고 때론 듣기 싫은 말씀을 해야 했던 것은..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은 겸손한 사람의 모습이지 않았는가.. 말입니다
제가 찾아낸 '겸손한 목회자 옥한흠'과 함께 한편으로 '외로운 사람 옥한흠'이라는 생각
도 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안에 갇혀 외로워 하지는 않았을지! "자신의 이야기는 누구에게 했을지"..
목회자에겐 누구보다 좋은친구가 있어야 한다는 당신의 고백처럼 자신을 목회자가 아닌
다정한 친구로.. 동네아저씨'로 대해줄 그 누군가를 그리워 하지는 않았을지 말입니다
옥 목사님 보면 "멀리 돌아서 가자" 던 청개구리들 처럼..
존경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홍수속에서,정작 물 난리에 먹을 물이 없듯.. 늘 서늘한 권면
을 해야했던 자신의 뒷모습을 보고 달려와서 "안녕하세요.. 목사님!. 어디가세요" 라고
인사하는 그런 사람을 기다리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쉽게 가시지 않습니다.
부질없는 후회는 청개구리의 속성이자 아둔한 자의 특징 같습니다.지금이라도 잠바입은
목사님의 모습이 멀리서 보이기라도 하면, 한 걸음에 뛰어가 거친 숨을 내쉬며
"목사님! 안녕하세요.. 어디가세요..
가을 낙엽이 참 아름답습니다"..라고 큰 목소리로 인사하고 싶습니다.
비록 제자답게 살지는 못할지라도, 또 야단을 맞을지라도, 꼭 그리 해보고 싶었는데..
시냇가 바위에 앉아있는 청개구리는.. 비만 내리면 혼자 이렇게 중얼중얼 거립니다
" 작은쪽문을 지나 잠바입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한 목회자를 보았다네 "...
-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찬송을 참 좋아했던 목회자..
- 남은 출장비 반납했던 목회자..
- 돈 뿌리는 감투는 쓰지 않은 목회자...
- 화장실 물묻은 휴지를 주우며, 아껴쓰라고 했던 목회자..
- 상암동 부흥100주년 기념대회의 축제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목회자..
- 교회가 제공한 대형승용차.. 설익은 젊은이들의 목소리에 당황하여 어쩔줄 몰라했던 목회자..
- 큰 건물에 많은 무리를 끌어 모으는 것은 자신의 소명이 아닌것 같다고 했던 목회자..
- 부목사의 건의에 자신의 결정을 꺾었던 목회자..
- 당회의 결의 없이, 어떤 지출도 하지 않은 목회자..
- 어린시절 어깨에 똥지개를 지면서,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던 목회자. 장학재단에 관심이 많았던 목회자..
- 교회주변 공사장앞을 지나가다 늙은 인부의 힘겨운 어깨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흐르는 눈물을
감추려고 고개를 돌린 목회자..
- 궁핍한 가정. 병마와 싸우는 교우. 군 복무중인 젊은이들을 위한 기도는 매주 빠뜨리지 않은 목회자..
- 죄 많은 이땅에서, 날개없는 천사들이 모여있는 사랑부에 눈길을 뗄수 없었던 목회자..
- 제자훈련을 통해 한바탕 예수축제에 우리를 초청했던 목회자..
- 초창기 몇명의 성도들과 제자훈련 했던 시절이 제일 행복했다고 했던 목회자..
- 초인적인 힘으로 강단을 지키며 설교에 진액을 쏟아내던 목회자..
- 사랑의교회에 유익이 되는 것이라면, 그 어떤것도 수용했던 목회자. 그래서 조기은퇴도 했던 목회자..
그리고..
자신의 육신보다 사랑의교회를 더 사랑하여.. 오랜 병상의 고통을 뒤로한 채, 태풍이 불던 어느 가을날..
낙엽이 지기엔 너무 이른 그 가을날..
" 내가 아는 사랑의교회 모든 성도들 얼굴이 보고싶다".. 는 마지막 바램과
" 나는 한 없이 흠 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는 말만 남기고...
우리곁읕 떠나 간 목회자...
첫댓글 아 많이 그립습니다. 그 경상도 사투리 억양...
목사님! 그립습니다.^^
한 시대에 잠시나마 동시대에 살았었고 그 분이 남기신 책과 녹음되어있는 설교라도 들을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 추억들이 있으신 여러 성도님들...의 애타는 마음을 조금은 아주 조금은 알아갑니다.
아~ 보고픈 목사님, 그리운 목사님
마당기도회 마치고 돌아가는 버스 속애서 울고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설교 듣다가 시도때도 없이 흘리던 그 눈물이 그리웠는데
오늘은 아름다운 밤이네요.
저도 저절로 눈물이..
저두 눈물이
안녕하십니까.... 글쓴이 입니다
7개월전, 사랑의교회관련, 또 다른 카페에, 권사님께...... 라는, 글을 하나
올린적이 있습니다 <제1권사회 권사입니다>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불현듯
권사님들에 대한 옛 기억이 떠올라...두서없이 적은 안부의 글이 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많은분들이 슬픔을 발견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중 한분도 지하철에서 눈물이 난다고, 해서 무척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 슬픔들을 살펴보며, 각각의 색깔과 모양이 있지 않은가..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온마음 집사님의 "눈물과 아름다움"에 대해 한번 생각해 봐야 겠습니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옥목사님이 생각 날때 흐르는 눈물은 단순한 말로 표현이 어렵습니다.
제 자신도 확실하게 표현 못할 감정과 눈물입니다.
85년도 교회에 등록했으나 옥목사님과 개인적인 교분은 없었습니다만
가슴이 싸하게 애려 오지요.
그러나 옛일을 추억하는 눈물은 아름답다는 것 만큼은 확실합니다.
생각하시는 것에만 그치지 마시고 어떤 글이라도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참 저도 권사입니다.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아 ~어떡해요...
기억속의 묻어둔 추억을 되새기는 맘으로 읽어내려갔습니다.~~
스잔한가을에 마당기도회서 뭉글했던 마음을 더 깊게 해주는 글이네요.
가끔 정말운이좋은 날 마당에서 뵈면 어찌나 좋던지~~누구든 반갑게 손잡아주시고 웃어주시던 모습 정말 그립습니다 목사님~~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아 옥목사님....
읽으면서 눈물이 절로 납니다
그 누구라도 목사님~하고 부르면
웃으며 반겨 주시던 우리 목사님ᆢ
목사님ᆢ 많이 뵙고 싶고
그때가 그립습니다
개인적으로 옥목사님을 잘모릅니다.
곁에서 함께하셨던 분들은 많은 추억과 많은 술회들이 있겠지요.
근데......
마지막순간 까지도 그인격을 지켜주셨으면 하는 아쉼이 있군요.
더 솔직히 말하면 그분에게 화가납니다.
결국은 교회를 개인의 교회로 만든 꼴이 됬으니까요.
깨지고 갈라짐이 두려웠겠지요.
허나 그댓가가 지금 이모양입니다.
자신의 후임을 세움에 독단과 교만을 회개하고 마무리 지었어야 했습니다.
왜 온전한 목사를 볼수가 없는건지....
본디 그런것이 사람이라서?
옥목사님이 계셨다면 이 글 읽으면서 우셨겠지요
성경에 만약은 없다지만 그럴수만 있다면 우는게 중요한게 아니고 바로잡는게 중요하겠지요.....
부디 지금의 이것이 많은 교회에 교훈으로 남기를 바랄뿐입니다!
결과적으로 옥 목사님 선택이 잘못된 것이긴 했지만, 옥 목사님이 관여 안 하시고 목사를 청빙했어도 교회에 문제 생겼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실제로 주변에서 많이 생기는 일이구요. 이 패역한 시대에 온전한 목사 너무 기대하지 마시고 안일한 신앙을 깨우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읍시다. 한 마디 말씀드리고 싶은 건, 옥목사님의 오 목사 선택이 잘못됐지만 그 분이 30년 동안 보여준 진정성에 대해서는 많은 교인들이 인정하고 그리워하는 바입니다. 이 글을 쓰신 분도 그러하시구요. 그 마음은 존중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가 그마음을 존중안했나요?
관점을 어디에 두나 차이죠....
수십년 목회활동을 평하는건 아니죠. 그럴 자격도 없구요.
추억을 얘기하는 자리에 제가 불편한 글을 올렸습니다.
다만, 청빙에 원칙들이 있지요. 순서도 있구요. 그건 누가 정하나요?
순리를 거스리면 안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자칫 말이 길어지고 시시비비의 여지를 남기기 싫지만 사실은 사실입니다. 잘못한건 잘못한거구요. 인정할건 인정해야 합니다. 그게 누구건....
그리고 누구보다 본인은 알고 계셨을 겁니다.
잘못됐다는걸....해결하고 정리하셨어야 할일입니다.
김창인목사의 회개와 용서구함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저도 눈물이 나고 너무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상당수 목사들이 옥목사님과 같을줄 알았고 그리고 옥목사님이 아끼셨던 전도사나 부목사들도 옥목사님과 비슷한분들일거라 생각했는데 정말 아니어서 놀랐습니다
목사님~ 그립습니다. 내딸 고3에게 옥목사님 대신해서 글을 보여주었습니다. 눈물이 멈추질 않네요. 추억과 감동을 주신 목사님 보고싶습니다~ 이글을 안수집사님 회보에 실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집사님
따님이 고3이라고 하니, 수십년전, 초조한 마음으로...옥한흠목사님과 함께
기도하던 생각이 납니다.
그때는 " 아저씨 목사님"이었는데.. 따님에게는 " 할아버지 목사님"이 되겠네요..
옥목사님이 계셨다면, 손자.손녀를 대하는 푸근한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함께 기도하지
않았을까..생각됩니다.
큰 위안이 되었을텐데......" 아버지 보다는 할아버지가 더 푸근하기에.."
제법 쌀쌀해진 날씨.. 남은기간 감기에 각별히 유의했으면 좋겠습니다
따님이 뿌린 씨앗이 풍성한 열매 맺길 소망합니다....
CAL세미나 때 안성수양관에서 순장반 마치고 떠날 즈음이면 옥목사님은 늘 밖에까지 나오셔서 우릴 배웅해 주셨어요.우리들은 옥목사님 옆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구요.마지막 버스 떠날 때까지 하염없이 손 흔들어주시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수님을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분의 성품을 닮은 목사님을 통해 예수님의 모습과 사랑을 대략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목사님을 찾아 보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참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기러기님이 올려주신 귀한글 감사함니다. 눈물과 함께 많은것을 생각하게 함니다. 말씀에 있는 정답을 더 잘 알게 하신 옥목사님께서 우리곁에 계셨던것에.. 다시 감사하게 되며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내가.. 우리가.. 잘 감당하길 소원함니다. 마당예배에 나오시는지요? 뵙고 싶네요. 감사함니다. 샬~롬!!
저는 이 글 읽으며
사랑의 교회 입성 한 주전에
난로에서인가 불이 났던 기억이 났습니다
새 건물 들어가기 전이라 다들 웃으며 지난 일까지....
옥목사님 정말 그립습니다 .......뵙고싶네요
옥한흠 목사님 그리게 하는 글... 읽다 말고 한참을 울어버렸어요. 그 분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기러기님^^ 감사해요!!!
사랑의 교회 서점 입구에서 책을 사고 싶어 돈이 없어,,,망설이던 그때,,,
옥목사님 지나가시길래,,,, 사정을 말했더니 친히,,,서점으로 가시어,,서점 직원에게 " 할인해주라고" 하시던,그분
제자훈련 당시 열정을 쏱아부으시던 생생한 목소리, 이런 귀한분들이 한국교계에 없으니 더 어지럽습니다.
휼륭하신분 발자취를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