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엽(1920~2020) 장군
나를 따르라! 돌격! 앞으로!
내 사전에 후퇴란 없다. 후퇴한 놈은, 바로 쏴라! 나에게도 예외는 없다.
그 형에 그 아우
백인엽 소장이 탄 지프가 그만 물웅덩이에 빠졌다.
그러자 운전병이 차를 후진시켜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이에 백 소장이 불호령을 떨어졌다.
내 사전에 후퇴는 없다. 당장 병사를 영창에 넣어라.
백선엽 장군은 미국 코네티컷에 사는 딸 집을 찾았다. 그때 나이 71세.
고령인 99세 밴플리트 장군이 와병 중이니 찾아뵈어야겠다. 그러면서 다짜고짜로 플로리다 행 비행기 티켓을 끊으라고 했다.
주소나 전화번호도 모른 채, 무작정 장군의 고향인 플로리다 포크 시티에 찾아간 것이다.
장군이 세상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급히 서두른 것이다.
장군은 40년 전, 한국 전선에서 동고동락한, 젊은 지휘관을 한눈에 알아봤다.
장군은 그를 끌어안고 눈물만 흘렸다고 한다.
백선엽은 다부동 전투 등 전쟁의 국면을 좌우한 전투마다 승리를 이끌었다.
그리고 최초로 북진하여 평양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이다.
1950년 준장에서, 초고속 승진으로, 1953년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대장이 되었다.
그에게 별 넷 계급장을 달아준 사람이 바로, 밴 플리트(1892~1992) 미8군 사령관이다.
국가보훈부는 다부동 전적기념관에서 동상 제막식을 열었다.
그래서 백선엽 장군 동상은, 6· 25 격전지인 경북 칠곡군 다부동에 세워졌다.
높이 4.2m, 너비 1.56m 크기로, 동서남북 어디서든 대한민국을 지킨다는 의미를 담아, 360도 회전할 수 있게 제작되었다.
동상 제작에는 국민 성금 3억 5,000만원과 국비 1억 5,000만원 등 총 5억원이 투입되었다.
부연하여
백선엽 장군은 박정희 대통령은 프로필에서 공통점이 많다.
공짜로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치열하게 고민했다.
사범학교
학비가 무료다.
소(국민)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진학할 수 있다.
졸업하면 바로 교사가 된다.
육군사관학교
학비가 무료이고 용돈으로 월급을 받는다.
첫댓글 잘보고갑니다
좋은글 감사 합니다
시인님 ! 감사합니다
좋은글에 머물다갑니다
건강하시고 늘 행복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