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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결실 | 개화 결실 | |||||||||||||||||||||||||||
내 력 | ||||||||||||||||||||||||||||
'시무나무'는 '20리목(二十里木)'으로도 부른다. 옛 말의 스무, 시무는 모두 20을 뜻한다. 거리가 벌어지는 10리나 20리마다는 '시무나무'를 심어서 지나가는 나그네가 길을 잃지 않도록 한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 ||||||||||||||||||||||||||||
형 태 | ||||||||||||||||||||||||||||
함북 이외의 낮은 지대에서 자라는 낙엽교목으로서 높이 20m, 지름 2m이고 가지에 큰 침지(針枝)가 있으며 어릴 때는 잔털이 있다. | ||||||||||||||||||||||||||||
잎 | ||||||||||||||||||||||||||||
호생하고 장타원형 또는 타원형이며 첨두이고 원저, 아심장저 또는 예저이며 길이 1~6cm로서 가장자리에 홑톱니가 있고 양면에 털이 없거나 뒷면 맥 위에 털이 있으며 측맥은 8~15쌍이고, 잎자루는 길이 1~3mm로서 잔털이 있으며 턱잎은 일찍 떨어지고 장타원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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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 ||||||||||||||||||||||||||||
1가화 또는 잡성화로서 5월에 피며 잎겨드랑이에 1~4개씩 달리고, 화피는 4개로 갈라지며 길이 1~2mm로서 연한 황색이다. 꽃자루는 길이 1~1.5mm로서 털이 없고 수술은 4개, 씨방은 1개, 암술대는 2개이다. | ||||||||||||||||||||||||||||
열 매 | ||||||||||||||||||||||||||||
한쪽에만 날개가 있는 시과(翅果)로서 10월에 익으며 편평한 반월형(半月形)이고 끝이 2개로 갈라지며 길이 5~6mm이고 밑부분에 화피가 남아 있으며 종자는 구부러지고 종피가 얇다. | ||||||||||||||||||||||||||||
효 능 | ||||||||||||||||||||||||||||
이수(利水), 소종(消腫)의 효능이 있다. 옹종(癰腫)의 치료에 근피 또는 수피에 초(醋)를 혼합하여 잘 짓찧어 붙이고, 수종(水腫)의 치료에는 어린 잎을 삶아서 먹는다.
(시무나무 이야기)
조선시대에 대장부가 출세하려면 괴나리봇짐을 둘러메고 산 넘고 물 건너 과거 길에 오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시무나무는 옛 과거길의 길라잡이 나무입니다. 길가던 나그네들은 이정표로 심은 시무나무를 보고 '스무 리(20리)'를 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5리 남짓한 가까운 거리에는 오리나무를 심고 좀 거리가 벌어지는 10리나 20리 마다는 시무나무를 심어 거리를 알아차리게 했다고 합니다.
5리마다 심는 오리나무야 아주 흔한 나무였습니다. 이정표가 아닌 오리나무를 보고 길을 잘못 들었다가도, 이 길이 아니다 싶으면 그리 먼 거리가 아니니 돌아가기도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십 리, 이십 리 같은 먼 길을 나타내는 나무를 오리나무 같이 흔한 나무로 심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또 엽전을 닮은 열매까지 달리니 이정표 나무로는 제격입니다. 나그네들은 그 나무 앞을 지나가게 될 사람을 위하여 해진 짚신을 이정표 나무인 시무나무에 걸어두어 눈에 잘 띄도록 했다고 합니다.
'시무나무 아래의 서러운 손님이 망할 놈의 마을에서 쉰 밥을 얻어먹었다'는 뜻입니다. 한자를 훈이 아니라 음으로 읽어야 멋진 시가 됩니다. 시무나무는 느티나무나 팽나무와 같이 흔히 동네를 지켜주는 당산나무나 서낭나무로서, 따뜻한 밥 한 그릇 얻어먹지 못한 김삿갓과 울분을 같이 하던 나무였습니다. 시무나무가 이정표나 당산나무로 쓰였다는 것을 반증하는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상진 <궁궐의 우리나무>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