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습니다. 우수, 경칩 다 지나고 3월이 되었으니,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이미 매화에 벚꽃까지 피기 시작하였다니 봄 맞습니다. 매년 ‘춘래불사춘’이라는데, 올해는 더욱 그러한 것 같습니다. 꽃샘추위 때문에 겨울옷을 다시 꺼내 입은 것도 그러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게 영, 봄기운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OECD가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2.7%에서 2.9%로 상향하였으나, 한국 경제성장률은 2.3%에서 2.2%로 하향 조정하였고, 물가상승률은 2.7% 수준으로 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러합니다. 전공의 파업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은 0.65명으로 1년 전보다 0.05명 줄었답니다. 어디를 돌아보고 귀를 기울여 봐도 시원한 소식은, 반가운 전언은 없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내면으로 침잠하고, 자신의 심지를 굳히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요즘 매 주말엔 아들 집에 가서 손자 둘을 봐주는 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주중엔 사돈댁에서 봐주고, 주말엔 아내와 저가 역할을 맡습니다. 아들 며느리가 우리 덕에 잠시라도 휴식의 시간을 가질 수 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자들 보며 웃을 수 있다는 게 요즘은 참으로 큰 행복입니다. 둘째는 아직 강보에 싸여 있지만, 큰아이는 잠시도 쉬지 않기에 자주 부딪치고, 작은 생채기가 여기저기 늘어납니다. 이젠 습관이 되어, 어디 부딪치면 바로 와서 그 부위를 가리키며 “아야” 합니다. 그럼, 호호 불어주고 어루만져줍니다. 밖에 나갔을 때 시린 고사리손에도 호호 불어줍니다. 반면, 밥 먹을 때 뜨거운 국물은 후후 불어 식혀줍니다. 부모님께 배웠던 게 자연스레 행동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호호’건 ‘후후’건, 36.5도인 제 체온에서 나오는 입김인데 하나는 덥혀주고 하나는 식혀주는 것도 참 이상하다 싶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같은 듯하지만, 확실히 다릅니다. 뜨거운 음식은 제 체온보다 높은 상태이니 36.5도인 입김을 불면 식는 게 맞지요. 더구나, ‘후후’의 입 모양으로 그 입김이 빠르게 주변 공기와 닿아 더 빨리 떨어진 온도로 뜨거운 음식에 닿게 되어 더 효과가 있게 되는 원리입니다. 차가운 손에 36.5도의 입김을 불면 당연히 따뜻하게 느끼게 됩니다. ‘호호’의 입 모양은 입김이 천천히 나가 주변공기와 접촉시간이 준 상태에서 전달되니 효과가 더 큰 거지요.
같은 입김이지만 ‘호호’, ‘후후’는 아주 다릅니다. 상대의 온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강도, 마음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에서도 손자를 대하는 우리의 마음과 행동처럼, ‘호호’, ‘후후’를 적절히 선택했으면 좋겠습니다. 시린 손에 한기를 더 불어넣거나, 안 그래도 뜨거운데 더운 기운을 더 불어넣는 행위와 행태를 주변에서 적지 아니, 봅니다. 할아비할어미, 부모의 마음으로 주변을 돌아보고, 살아간다면, ‘호호’, ‘후후’를 적절히 사용한다면 세상은 살아갈 맛이 나고, 더욱 따뜻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럴 때 진정한 봄이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춘래불사춘’, 다시 듣고 싶지 않은 말입니다. 요즘처럼 총체적 난국일 때에는 더 말입니다. 어쨌든 봄은 옵니다. 그 봄이 자기 몸으로 행복하게 꽃피우길 바라봅니다. 우리 모두의 아이들도...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모셔온 글)=========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 13도
영하 20도 지상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 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받는 몸으로, 벌받는 목숨으로 기립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에서 영상으로
영상 5도 영상 13도 지상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 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황지우 시집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