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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능과 복음 원문보기 글쓴이: 朴大山 牧者
환난 날의 기도와 응답
오늘의 본문 말씀
"1 화 있을진저 너 학대를 당치 아니하고도 학대하며 속임을 입지 아니하고도
속이는 자여 네가 학대하기를 마치면 네가 학대를 당할 것이며 네가 속이기를
그치면 사람이 너를 속이리라 2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 3 진동시키시는 소리로 인하여 민족들이 도망하며 주께서 일어나심으로
인하여 열방이 흩어졌나이다 4 황충의 모임같이 사람이 너희 노략물을 모을
것이며 메뚜기의 뛰어오름같이 그들이 그 위로 뛰어오르리라 5 여호와께서는
지존하시니 이는 높은 데 거하심이요 공평과 의로 시온에 충만케 하심이라 6
너의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너의 보배니라 7 보라 그들의 용사가 밖에서 부르짖으며 평화의
사신들이 슬피 곡하며 8 대로가 황폐하여 행인이 끊치며 대적이 조약을
파하고 성읍들을 멸시하며 사람을 생각지 아니하며 9 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 레바논은 부끄러워 마르고 사론은 사막과 같고 바산과 갈멜은
목엽을 떨어치는도다 1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제 일어나며 내가
이제 나를 높이며 내가 이제 지극히 높이우리니 11 너희가 겨를 잉태하고
짚을 해산할 것이며 너희의 호흡은 불이 되어 너희를 삼킬 것이며 12
민족들은 불에 굽는 횟돌 같겠고 베어서 불에 사르는 가시나무 같으리로다
13 너희 먼 데 있는 자들아 나의 행한 것을 들으라 너희 가까이 있는 자들아
나의 권능을 알라 14 시온의 죄인들이 두려워 하며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
떨며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가 삼키는 불과 함께 거하겠으며 우리 중에
누가 영영히 타는 것과 함께 거하리요 하도다 15 오직 의롭게 행하는 자,
정직히 말하는 자,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자,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 16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견고한 바위가
그 보장이 되며 그 양식은 공급되고 그 물은 끊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이사야 33:1~16)
설교 / 朴大山 牧師
이사야 33장은 당시 강대국 앗수르의 심판이라는 역사적 배경 속에서,
궁극적으로 메시야 왕국의 완성에 대해 보여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사야 33:17~24). 이사야 33장은,세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① 당면한 환난 가운데서의 구원을 간구하는 전반부(1~6절)
② 이스라엘의 구원을 묘사하는 중반부(7~16절) ③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메시야 왕국의 모습에 대해 묘사하는 후반부(17~24절)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은 전반부와 중반부 내용을 중심으로,'환난 날의 기도와
응답'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첫째, 급박한 때에 드린 기도
오늘 본문 2절에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 이사야는 본문 1절을 통하여 사악한 앗수르에 대한 심판을 격앙된
목소리로 예언하다가,갑자기 중재기도를 삽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사야가 남유다 백성들의 위험이 너무도 급박한 것을 알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히스기야 왕 14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은,군대를 이끌고 와서 유다의 46개 성읍들을 비롯
욥바,에그론,딥나,라기스 등 중요한 요새들을 모두 탈취한 상태였습니다.
이 때 히스기야 왕은 막대한 양의 조공을 바쳐,더 이상의 침략을 막아보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산헤립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듯하였으나, 그는 일방적으로
평화 협상을 깨버리고 재차 예루살렘을 포위해 왔던 것입니다(참고,
열왕기하 18:13~17). 이러한 절대 절명의 위기 앞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먼저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되었고, 이 기도를 남왕국 제 13대 히스기야 왕이
본받아 이사야 37장 14절~20절 같이 기도함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사야는 어떻게 기도하였습니까.
1) '주님께서는 계속해서(아침마다) 우리의
힘이 되시고,환난에서 구원해 주옵소서'
라는 절실한 기도였습니다.
• 본문 2절에서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라고 한 기도 중에서
'아침마다'(히브리어로 라베카림)란 뜻은 문자적으로는 '빨리'란 뜻이지만,
본문에서는 '지속적으로' '계속해서'란 의미로 쓰였습니다.
• 오늘날 우리 역시 환난의 밤을 맞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교회적으로,
민족적으로,국가적으로 볼 때,악인이 의인을 에워싸고 첨예하게 사탄의
왕국이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는(마태복음 24:7) 환난의 어두운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세계의 모든 눈초리가 우리 한반도를 주시하고 있는
가운데 북한 공산당은 핵무기를 실험하는가 하면, 오늘날 현대 교회는
'종교다원주의' '종교혼합주의' '대형화 교회건물주의' '기복신앙' '성공주의'
'맘몬(物神, mammon) 숭배' ‘직통계시’ 등으로 혼탁해 가고 세속화되어 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때야 말로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성경의 진리를 찾아야 할 때가 아닙니까?. 지각 있고 깨어 있는
종들이라면, 이사야처럼 기도할 때입니다. 한국교회가 자성하며 죄를
회개하고,하나님을 찾아 만날 때입니다. 그러면 우리 민족에게 내리기로 한
재앙의 뜻을 돌이키실 뿐 아니라(참고, 예레미야 18:7~12),한국교회도
북한의 지하교회도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2) 기도 응답으로,주께서 일어나셨습니다.
오늘 본문 3절에 "진동시키시는 소리로 인하여 민족들이 도망하며 주께서
일어나심으로 인하여 열방이 흩어졌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 남유다 백성을 그 대적으로부터 구원해 달라는 간구의 기도에 이어,
본문 3절부터 6절까지는 그 간구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으로써 대적의
멸망과 남유다 백성의 확실한 구원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의 하나님의 기도 응답은 아직 그 응답이 실제로 이뤄지지
않았으나, 마치 이미 그 응답이 이루어진 것처럼 완료형으로 기록된 이유는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는 확실성을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유형을 '선취적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취적 신앙'이란 문자 그대로 '어떤 것을 미리 취하는 신앙'이라는 뜻으로,
예컨대 어떤 일이 현실적으로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다가 올 미래에
그 일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고 확신하는 신앙을 가리킵니다.
• 실로 성경에는 수많은 예언과 언약 등의 성취 사건들이 나타나 있는데,
우리 성도들은 이러한 성취된 예언과 언약의 기록들을 보고 아직 성취되지
않은 성경의 많은 약속들까지도 반드시 성취되리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선취적 신앙의 몇몇 실례들>
①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가나안 정복을 두려워하는
백성들에게 가나안 다음과 같이 담대히 독려하였습니다.
“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민수기 14:7~9).
②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고 채식만
먹었기로 작정할 때 환관장에게 청하기를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음식을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당신이
보는 대로 종들에게 행하소서"(다니엘 1:12,13)라고 담대히 말했습니다.
③ 다니엘의 세 친구도 느부갓네살 왕의 풀무 불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금신상에 절하지 않았는데, 그 때 “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17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다니엘 3:16,17) 라고 담대히 말했습니다.
• 한편 오늘의 본문 말씀 3절에서 '진동시키시는 소리'는 앗수르를 향한
여호와의 진노의 소리요,'민족들'이란 여러 식민지에서 차출되어 산헤립의
대군을 조직한 연합군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진노를 발하시자,
앗수르 군대를 구성하고 있던 여러 민족의 연합군은 사방으로 도주하고
말았습니다.
이 날은 곧 '여호와의 날'입니다. '여호와의 날'은, 심판과 구원이라는
양면성을 지닙니다. 즉 이 날은 택한 자들에 대한 신원의 날인 동시에,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자들에게 영원한 축복과 구원이 주어지는
날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는
악인들에게는 단호한 심판만이 내려지는 날입니다. 이러한 '여호와의 날'이,
신약시대에는 '주의 날'로 그 개념이 바뀌었습니다.
3) 앗수르군의 노략물을 회수하였습니다.
본문 4절에 "황충의 모임 같이 사람이 너희 노략물을 모을 것이며 메뚜기의
뛰어오름 같이 그들이 그 위로 뛰어오르리라"라고 하였습니다.
• 앗수르 군이 전쟁 시에 착취했다가 도망할 때 내버리고 가는 노략물을 다시
유다 백성들이 회수하기 위하여,'황충의 모임 같이' '메뚜기의 뛰어오름 같이'
그들 위로 뛰어오른다고 표현한 구절입니다. 이것은 비유로써 메뚜기 떼가
들판을 휩쓸고 가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처럼,앗수르 군의 노략물 또한
그와 같이 신속하고도 철저하게 유다 백성들에 의해 노획될 것임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1절에 “화 있을진저 너 학대를 당치 아니하고도 학대하며
속임을 입지 아니하고도 속이는 자여 네가 학대하기를 마치면 네가 학대를
당할 것이며 네가 속이기를 그치면 사람이 너를 속이리라”라고 한 것입니다.
4) 여호와를 경외함이 너의 보배라고 하였습니다.
오늘의 본문 5절과 6절에 보면 "5 여호와께서는 지존하시니 이는 높은 데
거하심이요 공평과 의로 시온에 충만케 하심이라 6 너의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너의
보배니라"라고 하였습니다.
• 여기서 '여호와께서는 지존하시니'라고 한 말씀은 여호와께서 높아지셨다는
뜻으로, 강대국 앗수르를 멸망시키시고 선민 남유다를 구원하셨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더 빛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히스기야 왕의 통치하에서 백성들은 평안한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게 되고,대적으로부터 구원 받은 기쁨 속에서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는 지혜와 지식이 풍성하게 될 것을 선취적 신앙으로 예언한 말씀입니다.
다만 이러한 모든 축복은 '여호와를 경외함이 너의 보배'라는,결론적인 말 속에
담겨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컨대 남방 유다가 당시의 앗수르의 침략으로부터
구원을 받고,나아가 나라가 부강하고 백성들의 삶이 평안하게 되는 것은,먼저
히스기야 왕의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의 회복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 진실로 여호와를 경외함은 우리 인생에게 절대 필요한 삶의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며(시편 111:10/잠언 1:7),영원하고 풍성한 복된 삶의 비결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복되고 의로운 나라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하는 이 세상 모든 악한 세력이 멸망한 이후 도래할 그리스도의
나라를 가리키지만, 현세에서도 우리 안에 이뤄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통해서도
누릴 수 있는 평안이요 또한 국가의 원수 대통령과 그리고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안보 속에서 우리 국민들이 누릴 수 있는
평안한 삶입니다(참고, 시편 127:1).
5) 그런데 평화의 사신들이 슬피 곡하게 되었습니다.
본문 7절에 보면 "보라 그들의 용사가 밖에서 부르짖으며 평화의 사신들이
슬피 곡하며"라고 하였습니다.
• '용사'는 히브리 원어로 '엘렐람'인데,사신(使臣)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평화의 사신들'로서,평화 협상을 위해서 앗수르의 왕 산헤립에게
파견된 히스기야 왕의 신하들을 가리킵니다.
히스기야 왕은 전쟁 중에 세차례에 걸쳐,사신들을 산헤립에게 보냈습니다.
① B.C. 701년에 앗수르 침입 당시 항복한다는 뜻으로,사신을 '라기스'로
보냈습니다(열왕기하 18:14).
유다의 히스기야 왕은 처음엔 부왕(父王) 아하스 때와는 다르게 앗수르 왕에게
바치는 조공을 거부하고 단호히 반(反) 앗수르 정책을 펼쳐 나갔습니다.
그러나 앗수르 왕 산헤립의 세력이 너무나 막강한 탓에,히스기야 왕의 마음이
약해져서 그만 앗수르 왕에게 굴복하게 되었고,백성들은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이사야 22:13) 하며 모두 절망하였습니다.
예컨대 히스기야 왕의 부족한 신앙심과 연약함 때문에,그 자신과 그의 백성들이
당한 고충은 실로 엄청났던 것입니다(참고,여호수아 1:5~9).
② 설상가상으로 히스기야 왕이 앗수르 왕 산헤립에게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내게 지우시는 것을 내가 당하리이다'하며(사탄에게
항복하고 시키는대로 하겠다 한 것임)
라기스로 사신을 보낸 것인데(열왕기하 18:14),이 때 산헤립은 무거운 조공을
히스기야로 하여금 바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히스기야 왕은 여호와의 전(殿)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銀).금(金)을
모두 끄집어냈으나 그것으로는 모자라,하나님의 성전 문과 기둥에 입힌 금(金)까지
모두 벗겨서 금 30달란트와 은(銀) 300 달란트를 채워서 두번째로 사신(使臣)을
앗수르로 보냈던 것입니다(참고,열왕기 하 18:13~16).
1달란트는 약 34.27kg에 해당하는 중량입니다.
③ 세번째는 산헤립이 남유다를 재침공하였을 때,화친을 목적으로 3명의 사신을
보냈습니다(이사야 36:3/열왕기하 18:17).
앗수르 왕 산헤립은 선물을 다 받고 화친을 맺어 침략을 안하는 듯하였으나,
뒤에서는 계속 유다를 공격하며 예루살렘의 완전 항복을 요구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히스기야 왕이나 평화의 사신들은 앗수르 왕에게 돈만 가져다 바치고
명예는 크게 손상을 입은 채 이제는 대책없이 다 죽게 생겼으므로,평화의 사신들
이 슬피 곡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6) 앗수르에게 점령당한 대로가 황폐해져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기고,가장 비옥한
땅이 쇠잔해졌습니다(본문 8,9절).
① 백향목과 전나무로 꽉차서 언제나 울창하던 유다 북쪽의 '레바론'은 바짝 말라
볼품없는 모양이 될 것이며 ② 지중해 연안의 넓은 평원으로써,아름다운 들풀과
목초지를 자랑하던 '사론'(역대상 27:29)은 사막과 같이 될 것이며 ③ 기름진 땅들
로 과일나무와 심림으로 유명한 '바산'과(이사야 2:13/예레미야 50:19/미가 7:14/
스가랴 11:2) '갈멜'은 나뭇잎을 떨어뜨리는 황량한 곳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런 때가,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여호와께서 비로소 일어나셨습니다.
오늘 본문 10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제 일어나며 내가 이제
나를 높이며 내가 이제 지극히 높이우리니"라고 하였습니다.
• 이 짧은 문장 속에 '이제'라는 말이 세 번이나 반복되었는데,'이제'라는
말은 백성의 고통이 극에 달한 시점이요 동시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
적당한 시기라는 말입니다. 인간이 실패하거나 연약하여 기진한 때는,
하나님께서 일하실 기회입니다.
1) 앗수르는 스스로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11절과 12절에 "11 너희가 겨를 잉태하고 짚을 해산할 것이며
너희의 호흡은 불이 되어 너희를 삼킬 것이며 12 민족들은 불에 굽는 횟돌
같겠고 베어서 불에 사르는 가시나무 같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 여기 11절에서 '잉태하고 해산한다'는 표현은,인간이 어떤 일을 시도할 때
그 결과가 어떠함을 나타내는 말입니다(이사야 26:18/59:4/시편 7:14 등).
따라서 예루살렘을 삼키고자 한 앗수르의 침략 계획은 '겨'같고 '짚'과 같은
것으로써,아무런 소득도 거두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뿐만 아니라 앗수르가
하나님의 백성을 치기 위하여 내뿜는 위협과 살기는 오히려 자신을 삼킬
것이며,하나님과 그의 이름을 거스려 내뿜는 호흡도 자신을 삼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2절은 앗수르 군대를 구성하고 있는 이민족들의 운명에 대해 예언한
것으로,그들의 운명 또한 '불에 굽는 횟돌(석회석) 같이 완전히 타버리고,
또한 '베어서 잘 말린 가시나무' 같이 순식간에 멸망하게 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2) 시온의 죄인들도 두려워하며 떨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13절과 14절에 보면 "13 너희 먼데 있는 자들아 나의 행한 것을
들으라 너희 가까이 있는 자들아 나의 권능을 알라 14 시온의 죄인들이
두려워하며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 떨며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가 삼키는
불과 함께 거하겠으며 우리 중에 누가 영영히 타는 것과 함께 거하리요
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 하나님의 심판하시는 권능은 너무나 놀랍고 위대한 것이어서,먼 데 있는
자들이나 가까이 있는 모든 자들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앗수르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은 시온에 있는 죄인들과 경건치
못한 자들에게도 두려움에 떨게 하였는데,이는 앗수르 민족 즉 어리석은
인간의 불의한 행위가 여호와의 진노를 격동케 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 오늘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 중에도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종들의 사역을 자기 잣대로 판단하거나 정죄하다가는, 남유다의 경건치
못한 자들과 같이 하나님의 진노 앞에 두려워 떨게 될 날이 오니 주의해야 합니다.
셋째, 의인들이 받을 축복
오늘 본문 15절과 16절에 보면 "15 오직 의롭게 행하는 자,정직히 말하는 자,
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자,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 16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견고한 바위가 그 보장이 되며 그 양식은 공급되고
그 물은 끊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 여기 15절과 16절은,14절에서 유다의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 죄악이 관영한
앗수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목도하고,그들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알고 두려워 떨며 "누가 하나님의 삼키는 불 심판을 피할 수 있으랴?"라는
절규에 대한 답변입니다. 본문 15절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자로
언급된 사람들은 '의롭게 행하는 자,정직히 말하는 자,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자,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입니다. 이들은 의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들이 하나님께 받을 축복은 무엇일까요?
1) 영육(靈肉) 간에 보호받게 됩니다.
본문 16절에서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견고한 바위가 그 보장이 되며"라고
하였습니다.
• '높은 곳'(히브리어로 메로밈)이란 적(敵)의 위협이나 어떠한 자연의 재해도
접근할 수 없는 가장 안전한 장소를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원수와
보수자(報讐者.앙갚음 하는 자)로부터(시편 8:2) 의로운 자를 보호하시는
'반석과 요새'가 되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시편 18:2). 여기서 '반석과 요새'가
되시는 구약시대 여호와 하나님은,신약시대 하나님의 형상으로 오신(고린도후서
4:4/골로새서 1:15)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한 분이십니다.
• 따라서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견고한 바위가 그 보장이 된다'는 말씀은
(본문 16절) 육신적으로도 그를 지켜 모든 위협에서 벗어나게 하실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피난처가 되어 주신다는 것이며, 영적으로도 '영적인
향상' '영적인 장성함의 차원'으로 이끌어주심으로 그의 신앙이 고난 앞에서도
흔들림 없고 어떠한 이단 사상에도 넘어지지 않게 보호해 주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2) 영(靈)의 양식으로,풍족하게 됩니다.
16절 마지막 부분을 보면 "그 양식은 공급되고 그 물은 끊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 양식이 공급된다는 것은 아모스 8장 11절 같이 종말론적으로 여호와께서
땅에 기근을 보내는 날, 곧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로 인해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비틀거릴 때에도, 의로운 자는 목마르지 않고 영(靈)의
양식으로 풍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마태복음 24장
44절~46절 같이 때를 따라 양식(말씀)을 나눠주는 지혜로운 종이 되어,
환난 날에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살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 결론
시편 50편 15절에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개인의 환난이나 교회의 환난이나
민족의 환난이 닥친 밤엔 인간의 방법이 아닌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으로
무릎 꿇고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특히 요한 계시록 8장 3절~5절에 보면 "3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4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5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성도들의 기도‘는 교회 공동체의 합심기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의 기도의 향연’이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고, 그리고 천사가 단 위의 불을 기도의 금향로에 담아서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무섭게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향로에 담은 '단 위의 불'은 구약에서 '번제단의 불'을 가리켰고(레위기
6:12,13),번제단은 또한 '십자가'를 상징함으로써,계시록 8장 5절 말씀은
성도들의 기도가 그리스도의 중보기도와 합해져서 땅 위에 응답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은 성도들의 기도는,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권세 있는 응답으로 이 세상에 떨어질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의 분량이 채워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위한 기도, 선교를 위한 기도,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의 분량을 채움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응답받는 기도의 용사들이 다 되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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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능과 복음 원문보기 글쓴이: 朴大山 牧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