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몽
퇴근길이었다. 부엌에 들어서자 새끼돼지 두 마리가 솥 안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뒷다리로 서서 빙글빙글 도는가하면 어깨를 추썩거리기는 모습이 제법 구성졌다. 흥에 취해 인기척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녀석들이 어떻게 부엌에 들어올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판자문이 삐걱거리고 벽에 틈이 벌어진 곳이 있긴 했지만 그들이 들락거릴 만큼은 아니었다. 솥이 낯익었다. 어릴 적 시골집 부엌에 있었던 것으로 어머니께서 양식을 안치고 겨울이면 고구마와 토란이 뽀얀 속에서 탐스럽게 익혀 나오던 그 가마솥이었다. 갸우뚱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집사람이 저녁상 앞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웬 돼지가 부엌에서 춤을 추느냐?’물었다. 그녀는 허리를 곧추세운 채 내전보살입네 할 뿐이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명상에 잠긴 듯도 하고 애써 경건한 자세를 취하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왜 눈을 감고 있느냐?’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이번엔 수저를 들어 밥상과 입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빈 수저였다. 궁금했지만 종일 지친 몸 가누지 못하고 곧 잠들어버렸다.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동네 확성기에서 흘러나온 새마을 노래가 이불 속으로 맹렬하게 파고들어왔다. 부엌에선 아침을 준비하는 집사람의 소리가 달그락달그락 간헐적으로 들리고 창엔 희부연 동살이 서려있었다. 간밤에 꿈을 꾼 것이었다. 동화나 우화의 삽화처럼 현실과 동떨어져 개꿈으로 결론 내렸는데 명색이 돼지꿈이라서 가벼운 미소에 싸 허공에 훌훌 날려 보냈다. 도시락 챙겨 문지방 나서니 무서리 가을아침이 제법 싸했다. 이듬해였다.
“시상에나 시상에나 삼신할미가 복댕이를 둘 씩이나 점지했디야. 어여 이원(의원)에 가봐, 어여.”
그렇잖아도 서둘러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마당 채마전을 돌보시던 집주인 할머니께서 나를 발견하고 손뼉 치며 반겼다. 성긴 치아사이에서 흘러나온 환한 미소는 순산의 메시지였다. 회임 중 내내 전신이 부어 출산 걱정이 적지 않았었던 것을 생각하면 날아갈 것만 같았다. 댓바람에 산부인과로 달렸다. 태양이 후끈 달아오른 구월 초순, 산모는 온돌방에 누워있었고 곁에는 배꼽아래 또 하나의 작은 배꼽을 단 신생아 둘이 나란히 나비잠자고 있었다. ‘복댕이 둘이 어쩌고저쩌고……’ 했던 집주인 할머니 말이 떠올랐다. 오렌지 빛 태양이 가슴 위로 차올랐다.
왔던 길 되돌아볼 때면 평탄하지만은 않았다고 다 들 회고하는 것처럼, 내 집사람 역시 그런 시기가 있었노라고, 그때가 신혼 첫해였다고, 거침없이 말할 것이다.
만나자마자 제대했고 곧 남녘 항구도시 어느 회사에 취직되어 혼인식의 기약 없이 집사람도 동행했다. 변두리 언덕바지에 아담한 방 한 칸 빌려 세간이랄 것 없는 신혼살림을 차렸다. 현실보다는 감상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접근했던 그 시절,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만으로 찾아간 직장이었다. 하늘과 바다 사이를 평화롭게 나래짓는 갈매기, 수평선을 바라보며 더욱 먼 세계로 꿈을 키워 이상을 실현해야할 도시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보소, 보소 뭐하능교?”
나의 작업 상태를 요모조모 살피던 책임자의 고개가 한쪽으로 기우는가싶더니 내 손에 든 홀더를 낚아챘다. 그리고 시범을 보이는 것이었다.
“와 이리케 안 되노. 각도는 이리케 간격은 이리케, 이리케 이리케……”
왜 그렇게 되지 않느냐고 사뭇 신경질적인 잔소리를 쏟았지만 내 눈엔 별 차이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 잊을만하면 그가 곁에 와 가시를 한 줌 씩 내뱉았고 그럴 때마다 미래의 멋진 꿈과 기대가 서서히 녹아내렸다. 텃새는 어디나 있기 마련이니 개의치 말라고, 곧 친구도 생기고 정이 들것이라며 참고 견딜 것을 집사람이 주문했지만 묵살하고 결국 입사 두 달 즈음에 단신 서울행 열차에 뛰어올랐다. 자존심 구기며 일할 순 없었다. 곧 직장을 구했지만 거기에도 비각은 있기 마련이었다. 집사람이 임신했던 신혼 첫해에 세 번을 새 직장 따라 이사를 했다. 어머니께서 임금님의 옥새 같기도 하고 미로 찾기 그림 같기도 한 종이 한 장을 접어 주머니 깊숙이 넣어주며 잘 간수하라고 했던 때도 그때였다. 부적이었다. 나의 역마살만큼은 잡아야 했던 모양이었다.
먼 곳에 밝아오는 희미한 등불을 보아서였을까. 별이라도 따다 줄 것 같았던 연애시절의 당찼던 남편의 모습을 상기하면서 콩깍지 씌우지 않았다면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고 오르내리던 집사람의 한숨이, 쌍둥이를 얻은 후부터 자기에게 속한 것들에 대해 더욱 애착을 갖는 것을 보면 아이 둘 안고 멀리 하늘로 올라 가버린 전설 속의 선녀보다는 확실히 현명했다. 만년이 된 지금까지도 혼인식은 기약 없지만 소박한 살림 꾸리기에는 부족하지 않은 지금의 셈평을 생각하면 열심히 노력한 대가이기도 하고 쌍둥이들이 스스로 복을 안고 태어난 것이 아닌가싶기도 하다. 태몽이 지시한 것처럼.
산만한 꿈이라고 허투루 취급했던 신혼적 그 꿈. 과학으로 풀기엔 든 지식이 부족하고 신의 섭리로 다가가기에는 신앙심이 미치지 못해 현상과 실제 사이의 함수관계를 밝힐 수 없지만 정확한 예측만큼은 경이로웠다. 가끔은,
“고생고생 집 장만해 장가보내주었으니 부모한테 잘 하렴.”
“엄마도, 제 몫은 제가 갖고 태어난 거지요.”이구동성이다.
집사람 말이 옳다. 아이들 말도 맞다. 그리고 할까 말까 망설이는 내 말 또한 맞다.
‘다 태몽 덕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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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짧은 글 속에서 오랜 세월을 관통하는 깊음 울림을 느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하라 북돋우어 주신 걸로 알고 용기를 얻습니다. 그런데 실은 지적을 해주시면 더욱 고맙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위에 건강하시구요.
저의 글 속에 고쳐야 할 부분이 많은것은 알고 있지만 님의 글을 읽고 제가 명심해서 고쳐야 할 3 가지를 배웠읍니다. 감사 합니다
그 세가지가 무엇인지 궁금한데요. 아직은 배우는 입장인데 ...도움이 되었다는 댓글에 저도 기쁩니다. 글 중에서 궁금하시거나 잘못을 지적해 주시면 같이 공부하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글이 참 맛깔 납니다.
맛깔 납니까? 글을 쓴다는 것이 어렵게만 느껴질 뿐 전 잘 모르겠네요. 감사드립니다.
이런 이야기형식의 수필은 예전에는 호평을 받아왔지만 요즘은 수필이나 소설들이 추상적인 스토리로 전개되는 것이 대세입니다.혹시 개인의 신상에 관한 글입니까? 상상력을 동원해 지은 글입니까? 궁금해지네요...
저는 수필 흐름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그러나 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허구가 아닌 진실이 바탕이 되어야만 한다고 들어왔기에 거기에 충실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난 삶을 되새김하는 자리에서 추상적이라든가 상상력을 동원한 허구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단 수필을 배우는 한 사람으로 아직 문학적으로 표현하지 못한 한계가 있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