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이다.

[ceylon]

금요일은 금성의 날이다.
금성을 뜻하는 비너스는 말 그대로 미와 사랑의 여신 비너스, 그러니까 그리스 여신 아프로디테에 해당하는 말이다. 실로 영어의 금요일에 해당하는 말 friday는 '비너스의 날'이라는 뜻의 고대 영어 frigedaeg가 변화한 말이다. 어떤 책에서 본 기억으로는 금성을 순 우리말로 개밥바라기라고 한다는데, 아마도 금성이 우리 눈에 보이는, 아니 좀 더 정확히는, 우리 조상들의 맨눈에 들어오는 초저녁과 새벽의 시간대를, 집에서 기르는 개에게 밥주는 시간과 접목시킨 이름이 아닐가 싶다.(이건 어디까지나 비너스와 개밥바라기라는, 어감상의 거리가 우스워서 해본 내 추측이지, 정말 거기서 유래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시 비너스, 그러니까 아프로디테는 사랑의 여신이라는 자신의 이름, 이라기 보다는 직분에 걸맞게 神世界에서, 그리고 地上界에서까지 숱한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 엄연히 대장장이 신 불칸, 그러니까 그리스 신으로는 헤파이스토스가 시퍼렇게(다리를 절며?) 살아있음에도 말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일화는 아레스(그러니까 전쟁의 신 마르스, 화성의 이름이기도 하다)와의 일을 꼽을 수 있다.
간단히 소개해 보면, 헤파이스토스가 외출한 사이에 우연히 집을 방문한 아폴로(또 그러니까 태양의 신인 헬리오스)가 둘의 연애(?)를 목격하고 남편인 헤파니스토스에게 밀고, 분개한 헤파이스토스는 보이지 않는 그물을 침대에 설치하고 외출, 그것을 모르는 둘은 또다시 연애를 벌이다 보기 좋게 알몸으로 잡혀 헤파이스토스가 이끌고 나타난 모든 신들의 구경거리가 된다. 이때 다른 신들 틈에 끼여 구경하던 머큐리(상업, 심부름의 신인 헤르메스, 수성의 이름이기도 하다)가 아폴로에게 건넨 나즈막한 한마디. '저 황금빛 비너스를 안을 수만 있다면, 나는 저보다 3배는 강한 그물에도 매달릴 수 있을텐데... 포세이돈(역시 그러니까 바다의 신인 넵툰, 해왕성의 이름이기도 하다)의 만류로 그물에서 풀어주자 번개처럼 사라졌다고 하는데, 그 사건 이후에도 그 둘이 다시 만났는지는 기록에서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로마족의 시조가 된 아에네아스도, 비너스가 안키시스라는 인간과 벌인 연애의 결과물이고, 아레스의 질투를 유발시킨 미소년 아도니스와 연애도 유명하다.

헤파이스토스의 부모인 제우스와 쥬노가 그렇듯, 헤파이스토스와 아프로디테도 오누이 지간이다.
즉 둘 다 제우스의 자식이란 말이다. 비너스를 제우스의 자식이 아니라, 거세된 우라노스(하늘의 신으로 실러스 또는 콜러스, 천왕성의 이름이기도 하다)의 피거품에서 나온 신이라 밝히고 있는 문헌도 있지만. 어찌됐든, 아프로디테를 탐하는 많은 잘난 신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절름발이의 추한 이복 오라비인 헤파이스토스와 짝을 이루었다는 사실에 대해 여러가지 해석이 있다. 헤파이스토스가 제우스로부터 상으로 점지받았다는 견해도 있고, 신들이 각기 갖는 의미를 중요시 여겨, 아름다움은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기술과 결합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또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아프로디테가 미와 사랑과 성욕을 겸해서 주관했던 신이었던 것을 보면, 수 천년전의 그리스인들도 이것들이 서로 무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러고 보면, 그래도 사랑과 성욕의 여신인데, 오직 한 남편만을 사랑하며 살았다면 이상할 것 같기도 하다. 이렇듯 비너스는 다분히 육체적인 사랑의 부분을 담당하는 신이었고, 정신적인 또 순결한 사랑을 주관하는 신으로는, 비너스의 아들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큐피드(역시 그리스 신으로는 에로스, 나에게 한번 쏴 주었으면 하는 활을 지니고 있다)가 사랑한 프시케가 따로 있다. psyche는 원래 그리스어로 숨결을 뜻하는 말이었지만, 영혼을 뜻하는 말로 변화되어, 그리스어를 근간으로 하는 언어들에서, 우리가 아는 것처럼 현재도 영혼, 정신을 뜻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다시 금요일로 와서, 금요일이 사랑을 주관하는 신의 날이면, 사랑의 날이라고 말하는 것에 크게 무리가 없을 듯싶다. 또 지금을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금요일부터가 사랑을 포함한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를 주니 말이다. 그래서 T.G.I.F. 즉 Thank God It's Friday! 라는 인사말도 생겨난 것일테고...(패밀리 레스토랑 TGI가 이것과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시는 분 리플 달아주시길)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예전에 어떤 사람과 헤어지는 시간(밤)이 아쉬워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오늘밤 저 비너스가 비춰주는 시간까지만 함께 있어달라고... 또 덧붙여 내년에도 함께 저 비너스를 볼 수 있겠냐고...
그때 비너스 대신에 이렇게 말했으면 어땠을까?
저 개밥바라기가 사라질 때까지 있어달라고... 우리 내년에도 저 개밥바라기를 보면서 또 비너스가 아니라 개밥바라기라고 부르며 웃어보자고...

며칠전에 '날 사랑한다면 오늘밤 집에 들어가지 마'(정확한지는 모르겠다.)라는 가사의 노래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연인들끼리 헤어지는 시간이(밤) 다가옴을 아쉬워하는 노랫말을 처음 들어본 것은 물론 아니다.
불과 몇 년 전의 젊은이들도 저 캐나다에 있는 오형근이 좋아했던 김종서의 '조금씩 집앞에서 널 들여 보내기가 힘겨워지는 나를 어떡해' 라는 가사의 노래를 부르며, 그 아쉬움을 공유했지만, 그때의 그 젊은이들은 '나를 어떡해~'라고 끝나는 노래를 불렀다.(노래 가사를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다음 부분은 '혼자인게 좋~~아...'로, 바로 전의 가사와는 의미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후렴구이다) 우리가 '... 나 어떡해...' 라고 말할때, 그 안에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것은 방법이 없다, 어쩔수 없다'라는 뜻이 들어 있다. 노래에서 풀이하면 '헤어지기 싫지만, 어쩔 수 없지'가 된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내가 무척이나 나이 많이 먹은 듯 말하지만, 언어를 포함한 다양한 문화적 코드에 있어서 스무살 전후와 20대 중반과의 경계는 슬프게도, 엄존한다.) '어쩔 수 없다'로 끝나지 않는다. 즉 그들에게는 '헤어지기 싫어, 어떻게 해?'라는 말로 되어서, 대답을 강요, '집에 들어가지 마'라는 가사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도대체 집에 들어가지 말라니...

정말 슬픈 일이다. 내가 겨우 이런 노랫말을 섬뜩해 하는 것이나, 문화의 중심에서 밀려난다는 사실과, 또 나이-자유-책임을 축으로 하는 3차 그래프가 머리속에서 그려지는 지금 이 순간이 모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