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951) - 국치일에 즈음하여 살핀 영화 ‘한산’과 소설 ‘하얼빈’
50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는 유럽. 중국 양쯔강 수위는 1865년 이후 최저로 떨어졌고 국내에서는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많은 물 폭탄이 서울 강남 일대를 물바다로 만들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갈등 등 국제정세가 복잡하고 환율과 물가의 고공행진, 인구절벽 등 총체적 위기상황. 그런데 우리 정치권은 민생은 뒷전인 체 스스로의 비상상황에 허둥대고 있다. 어수선한 정국에 대한 해외언론의 평가, ‘윤 대통령, 기본부터 배워라.’(영국 이코노미스트) 대통령뿐이랴, 정치권에 대한 뼈아픈 일침이다. 인터넷에서 살핀 이코노미스트 관련기사 오늘(8월 29일)은 112년 전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국치일, 얼마나 많은 선열들이 천하보다 귀한 목숨 바치며 지켜낸 나라인가. 언뜻 이순신과 안중근이 머리를 스친다. 식자들의 생각은 비슷한 것일까. 얼마 전 어느 언론인이 ‘이순신의 칼, 안중근의 총’이란 제목으로 이렇게 적었다. ‘이순신의 칼, 안중근의 총 광화문광장이 다시 열렸다. 지난 토요일 현장을 찾았다. 광장의 얼굴인 이순신 장군부터 만났다. 광장 바닥, 동상 좌우로 작은 승전비가 설치됐다. 왼쪽에 23개, 오른쪽에 12개 총 25개다. 왼쪽은 충무공의 23전 23승을, 오른쪽은 충무공이 치른 주요 전투를 가리킨다. 전문가에 따르면 충무공이 참여한 해전은 총 45회, 40승5무를 거두었다. 그야말로 불멸의 기록이다. 요즘 혼돈의 통치권을 꾸짖는 듯한 말도 눈에 띈다. ‘관직을 뽑는 지위에 있는 동안에는 같은 문중이라 만날 수 없다.’ 충무공의 조카 이분이 쓴 최초의 이순신 전기인 이충무공행록에 관련 대목이 나온다. 이순신은 성격상 아부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릴 적 친구 유성룡이 당시 이조판서 율곡 이이를 찾아가 부탁해 보라고 권유했다. 이순신과 이이는 덕수 이씨 같은 문중이었다. 하지만 충무공은 앞의 말 그대로 처신했다. 요즘 상영중인 영화 ‘한산’에 재연된 충무공의 밑바탕엔 이 같은 엄격한 자기 및 주변 관리가 깔려 있다. 영화에서 충무공은 전쟁은 ‘나라와 나라’가 아닌 ‘의(義)와 불의’의 싸움이란 말을 한다. 감독의 순진한 유추일 뿐이지만, 민생을 절멸시킨 불의의 전쟁에 통곡하는 충무공의 면모로 볼 때 마냥 허튼소리만은 아니다. 소설가 김훈의 밀리언셀러 “칼의 노래”(2001) 곳곳에는 이순신의 비애가 스며 있다. 작가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지도층을 충무공의 입을 빌려 성토한다. “그들은 헛것을 좇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언어가 가엾었다. 그것은 사실의 바다에 입각해 있지 않았다.” 충무공에게 칼은 시대의 고통을 베는 말이었다. 김훈의 문제의식은 청년 안중근의 고뇌와 결단을 다룬 신작 “하얼빈”에도 이어진다. 똑같은 동양 평화를 외쳐도 이토 히로부미의 총이 일본의 침략을 합리화한 총이었다면 안중근의 총은 한·중·일의 공생을 희구한 총이었다. 안중근이 거사 직후 생명을 끊지 않고 법정에 나선 것도 일제의 야욕을 만방에 알리려는 당당한 선택이었다. 이순신과 안중근, 400년 전과 100년 전의 두 대장부가 묻고 있다. 우리는 현재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느냐고…. 김훈 작가는 “지금이 더 위태롭다. 출구가 안 보인다”고 했다. 일촉즉발의 미·중 충돌이 대표적이다. 핵무장한 북한, 소통단절의 일본도 난제 중 난제다. 내부 총질이 점입가경인 여권은 또 어떤가.’(2022. 8. 8 중앙일보, 박정호 논설위원의 글에서) 충무공 이순신 종가에서 전해져 내려온 장검 한 쌍(보물)과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할 때 사용한 것과 같은 종류의 권총.(사진 문화재청, 전쟁기념관)
며칠 전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을 관람하였다. 국내최다관객의 기록을 세운 명량에 이은 김한민 감독의 역작, 명량 관람 후 두 차례에 걸친 백의종군길 걷기와 금년 봄 명량해전 승리의 길을 걸으며 충무공의 행적과 고뇌를 심신으로 체험한 터라 영화 '한산'을 보는 감회가 별다르다. 앞의 글에서 새긴 ‘의와 불의의 싸움’이란 대사도 더 선명하게 들리고. 지난봄 명량해전 승리의 길 탐사를 통하여 새긴 교훈, 극한의 악조건 속에서도 철저한 준비와 완벽한 대응으로 세계 해전사에 빛나는 전과를 거둔 충무공의 지략과 투혼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가 처한 대내외적 역경을 현명하게 헤쳐 나갔으면 좋겠다.
인터넷에서 살핀 영화 '한산' 화면 때 맞춰 접한 안중근 예찬 글, ‘안중근, 하얼빈, 그리고 코레아 후라(대한만세)!’에 눈길이 간다. 그 요지, ‘안중근, 하얼빈 그리고 코레아 후라(대한만세)!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 일본 초대 총리이자 조선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환영하기 위해 모인 수많은 인파 속에서 난데없는 총성이 울린다. 대한의 청년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고 그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 순간 안중근은 외친다. 코레아 후라! 대한 만세. 그는 무엇을 향해 만세를 외치며 온몸으로 저항하고 있는 것일까. 일본은 코레아의 존재 자체를 없앴다고 믿었지만, 코레아는 살아 있었고, 대일본제국의 폭주를 멈출 힘이 있었다. 포기하지 않은 한 사람, 깨어 있는 한 사람의 힘이었다. 한 사람이 과연 역사를 바꿀 수 있을까. 내 안에서 솟아오르는 이런 질문에 괴로울 때마다, 나는 안중근을 생각하고 유관순을 떠올리고 이순신을 기억한다. 한 사람의 힘은 결코 무력하지 않다. 깨어 있는 한 사람, 신념과 지성의 힘으로 세상을 깨우는 사람. 김훈의 역작 “하얼빈”을 읽으며 나는 하얼빈 기차역에서 내가 직접 청년 안중근을 만나고 온 듯한 강렬한 기시감을 느꼈다. 나는 그를 아름다운 청년으로 기억하고 싶다. 청년 안중근은 우리 안에 아직 죽지 않은 젊음과 용기, 품위와 열정을 일깨우기에. 우리가 아무리 나이 들어도 결코 잃어서는 안 될 신념과 투지를 일깨우는 아름다운 청년, 그가 바로 “하얼빈” 속에 살아 숨 쉬는 안중근이다.’(2022. 8. 27 중앙일보, 정여울 작가의 글에서) 총체적으로 어려운 때, 나도 안중근처럼 깨어 있는 한 사람이고 싶다. 우리 모두 다 그러하지 않은가!
지난주 독서에 관한 단상을 적은 기고문의 서두에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안 의사의 어록을 인용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