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모씨 “전·현직 검사 100여 명에 수시로 촌지·향응”
검찰 측 “정씨, 구속될 때마다 폭로 거론 … 과장이다”
경남지역 N건설 전 대표 정모(52)씨가 “사업을 시작한 이후 20여 년간 100여 명의 전·현직 검사들에게
수시로 촌지와 향응을 제공하고 일부는 성접대까지 했다”며 “진정한 검찰 개혁을 위해 해당 검사들을 처벌해 달라”
는 내용의 진정서를 부산지검에 제출한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정씨가 제출한 진정서에는 현직 법무부·대검 고위 간부를 비롯해 지방의 검사장급 간부들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검사들은 대부분 부산 또는 경남지역 검찰청에 근무했던 전력이 있다.
이에 대해 부산지검 측은 “정씨가 자신에 대한 경찰과 검찰의 수사에 불만을 품고 허위사실이 담긴 진정서를 제출했다”며
“그의 주장은 대부분 과장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대검은 정씨 주장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감찰 조사를 벌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행사 때마다 스폰서 섰다” =정씨가 제출한 진정서에 따르면 그는 1984년 3월 아버지로부터 사업체를 물려받으면서 검사들과 친분을 맺었다. 이 건설회사는 부산·경남 지역에서 관급공사로 연간 수백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역유지 신분으로 자연스럽게 검찰 내 인맥을 쌓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검사들의 ‘스폰서’를 자처했다. 체육대회·등반대회 등 공식 행사는 물론이고 회식·환영식·송별식 등의 비용을 댔다. 촌지도 전달했다는 것이 정씨의 주장이다. 촌지의 경우 매달 지청장들은 100만원, 부장검사는 50만원, 평검사는 30만원 정도를 신권 현금으로 각각 줬다는 것이다.
그는 “다른 곳으로 근무지를 옮기는 검사들에겐 전별금조로 순금 마고자 단추를 선물한 적도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일부 검사에게는 고급 룸살롱에서 성접대를 했으며 서울에도 1년에 여러 번 올라가 서울로 임지를 옮긴 검사를 접대했다”고 덧붙였다.
정씨가 이 같은 주장을 하게 된 것은 변호사법 위반 및 사기 등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면서 검사들에게 배신감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정씨가 자신의 비리에 대한 수사와 관련해 평소 알고 지내던 검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대부분 모른 척하는데 앙심을 품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정씨는 본지 기자와의 통화에서 “검찰의 보복 수사가 두려워 피해 있으며, 지금은 몸이 아파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8월 사기·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됐으나 9월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났다.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정씨는 “모 지방검찰청의 경우 부장 이하 검사 전원을 모조리 접대했다”고 거듭 주장했다.
◆검찰, 정씨 주장에 진정성 의심=대검찰청은 “구체적인 내용이 확인되지 않아 공식 입장을 내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정씨 주장의 사실 여부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대검이 굳이 나서 검찰 전체의 문제인 것처럼 대응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진정서가 접수된 부산지검은 정씨의 전력을 문제삼으며 그의 주장의 진정성을 의심했다. “정씨가 검찰에 구속될 때마다 ‘검찰의 비리가 담긴 문건을 만들어 폭로하겠다’며 협상을 시도해 왔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그는 변호사법 위반 및 사기 등의 혐의로 10여 차례 이상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았고, 실제로 구속된 전력도 있다. 검찰에 따르면 정씨는 2004년을 전후해 사업체가 부도난 뒤 지난해 구속기소된 데 이어 올 2월 사기 등 혐의로 추가 기소됐다는 것이다.
정씨는 오락실 업자에게서 단속을 무마해 주는 대가로 2000여만원을 받은 혐의 외에 총경으로 승진시켜 주겠다는 명목으로 친구의 차명계좌로 5000만원을 받은 혐의가 추가로 드러났다. 이에 정씨가 검찰에 불만을 품고 사실과 다른 내용의 진정서를 내게 됐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다.
하지만 대검은 이번 사건이 자칫 검찰의 조직적인 비리인 것처럼 비치는 것을 우려하며 여론의 추이를 조심스럽게 살펴보고 있다. 또 대검 차원에서 감찰 조사에 나서더라도 해당자가 많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감찰 대상이 3년 이내의 비리 의혹인데, 정씨가 주장하는 내용은 대부분 10년 전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대검의 한 간부는 “수뇌부들이 이번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는 있지만 정씨 주장의 신빙성이 떨어지는 데다 설혹 사실이더라도 너무 오래돼 처리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밝혔다.
전진배·이철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