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선교, 유소년 축구로 몽골 지방에 진입하다
연경남선교사 (GMS)
몽골의 최동부에 위치한 초이발산 시를 선교지로 목표했을때, 10년이상 장기 거주할수 있을지가 우리에게 관건이었다.
초이발산은 몽골,러시아,중국 3개국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경도시라서 외국인들에 대한 통제가 심한곳이고 외국인에게 종교비자를 주지않는 지역이다. 지난 날 이곳에 왔던 한국 선교사들이 짧게는 4년, 길게는 10년을 넘기지못하고 철수한 사례들로 볼때 우리는 보다 멀리 보며 진입해야했다.
초이발산과 인접한 솜들에는 내가 관심을 가졌던 부리야트 종족이 있었고 그외에도 우즘층 종족, 바륵 종족이 거주하고 있었기에 나는 더욱 이곳을 찾게 되었다. 우리는 2013년 여름에 이곳을 정탐했고 그해 가을에 울란바타르에서 초이발산으로 완전 이주를 했다. 당시 간선 도로는 헨티까지는 포장이 되있었지만 그 뒤부터는 비포장 초원길이었다. 오면서 길을 잘못들기를 몇차례 반복하였다. 15시간 정도 걸렸다. 뒤따라온 이삿짐 차는 우리보다 하루 뒤에 도착했다. 초이발산은 지역 이민국이 따로 있었고 첩보대도 따로 있었다. 이민국이나 경찰 혹은 동사무소 직원들이 가끔 우리 집 문을 두드리면서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동태를 묻곤 했다. 우리는 한국어교사라는 신분으로 이민국에 등록을했지만 사설 학원이다보니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못했다. 어디를 가든지 주민들은 우리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물었고 그때마다 한국어 학원에서 일한다라고 설명하면 들어보지 못했다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며 도대체 여길 왜왔는지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병원이나 우체국, 관공서를 이용하기 무서울 지경이었다.
그래서 일단 초이발산의 공신력있는 기관에 소속이 되야겠다 생각해서 한 중고등학교를 두드려보았는데 학교장은 우릴 만나자마자 대뜸 학교를 위해 무엇을 해줄것인지부터 금전부터 요구했다. 우리는 거절하고 나왔다. 이후 계속 하나님께 좋은 길을 달라고 간구했다. 그러던중 하나님께서 스포츠연맹의 축구 담당자를 연결시켜주셨다. 오늘까지 계속 같이 일하는 나비감독이 그 담당자였다. 나비감독은 당시 신흑질 중고등학교 체육선생이었지만 곧 체육위원회의 축구담당자로 직장을 옮겼고 그때 나에게 같이 일하자고 제안했다. 나비 감독을 만나게 된 계기는 나비감독의 매제 때문이었다. 그 매제는 한때 울란바타르에서 한국김치공장을 했다가 초이발산에서 잠시 한국식당을 오픈했었는데 그때 우리가 식사하러 갔다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중 자기 처남이 유소년축구클럽을 하려고 준비중이라고 해서 연결이 되었다.
나역시 공신력 있는 기관의 소속이 필요했던차라 나비를 만나서 어떻게하면 되느냐고 물었더니 스포츠 연맹의 위원들 앞에서 축구 오디션을 받아야한다고 했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때 2년간 축구부였던 어린시절의 기본기가 있었고 3년간의 군대에서도 연대 대표로 차출되었던 경험도 있었기에 오디션 보는것은 크게 염려를 안했다. 선출 축구코치를 뽑는것도 아닌 어린이들 대상의 지도자 오디션이었기에 무난히 통과되었고 그때부터 오늘까지 10년 넘게 일하고 있다. 물론 그후 몽골 FIFA에서 요구하는 어린이 지도자 코스도 수료하였다.
이곳에서의 유소년축구클럽 아이들 수급의 어려움은 없다. 내가 개인적으로 아이들을 모집하지않아도 된다. 공적으로 스포츠연맹 에서 아이들을 모집해 주기때문에 아이들은 넘쳤다. 특히 우리 유소년 축구클럽에 아이들이 많은 이유는 월 수강비를 받지않기 때문이다. 간혹 약간의 수강료를 내는 아이들도 있지만 이는 다른 종목들 예를들면 농구, 배구, 배드민턴, 복싱, 유도등의 클럽에서 받는 수강료와는 비교가 안될만큼 저렴하다.
그동안 우리 유소년축구클럽에서 몽골 청소년 국가대표 남녀 1명씩을 배출했고 몽골 대통령배 유소년 전국대회에서 우승도 했고 준우승도 했다. 울란바타르에 수많은 사설 유소년축구클럽과 대항해서 우승과 준우승의 성적을 거둔것은 우리 초이발산은 물론 몽골지방 축구 수준의 향상을 가져온 역사적인 일이었다.
실제로 체육위원장은 나에게 더르너드 도의 축구 역사에 기록되었다고 격려해주었고 여러차례 방송에서 촬영해 가기도 했다.
나는 유소년축구클럽을 통해서 몽골 지방에 안정적으로 정착했다. 외국인이 찾아가기 힘든 무교회마을에도 스포츠 네트워크를 통해 방문할수 있었다.
초이발산에서 50km, 그리고 160km 외각에 있는 마을에다 교회개척을 하거나 초이발산에서는 교회에서 종교비자없이 설교사역도 수년째 하고 있다. 나아가, 몽골 동부지역 3개도의 중심도시인 칭기스허트에 몽골 동부 신학교를 개설하여 교회지도자를 양육하는 일도 실상 유소년축구클럽을 매개로 신분상의 보호를 받았기때문이라고 확실히 말할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스포츠라는 복음 사역의 도구를 주셨고 그 도구로 일하게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