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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순간이다 (2)
- 삶이라는 타석에서 평생 지켜온 철학 -
"내 (저자) 별명은 '잠자리 눈깔'이다. 어떤 순간도 놓치지 않는다고,
가만히 서서 사방을 본다고 '야신' 보다 더 낫다. - 본문 중에서
독서 자료 보냅니다. 가을이 깊어 가네요, 모두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 이 수 영
■ 김성근 지음 (야구 감독)
◎ 4장 이름을 걸고 산다는 것
- 돈을 받으면 모두 프로다
■ 최강야구로 세상에 보여주고자 한 것
- ‘돈 받으면 프로’라는 말이 가진 뜻
“어떤 자리에 있다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세상에 어떤 의식을 남기고 싶은가?”
돈 받으면 프로다. 최강야구 선수들에게 한 말이다. 내가 저 말을 한 계기가 있다. 고등학생 야구단과의 시합에서 진 날, 시합이 끝나고서 선수들끼리 모여 ‘우리는 프로 출신인데 아마추어와 시합해서 졌다는 게 너무 창피하지 않느냐’ 이런 말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그걸 가만히 듣자니 시합 들어가기 전에 가진 의식부터 틀렸다 싶었다. ‘프로 출신’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프로 출신이라고는 하나 지금도 프로다. 방송국에서 돈을 받고 하고 있지 않은가. 돈을 받는다는 건 프로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시합에서 이겨야 하고, 시합을 봐주는 관중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줘야 한다. 프로라면 시합에 나가는 매 순간에 그런 의식이 필요하다.
그런데 시합에 들어가기 전 선발 투수를 정하려는데 누구는 몸이 아직 안 만들어졌다고 하고, 또 누구는 몸이 아파서 못 던진다고 하는 둥 핑계가 많았다. 돈을 받고 하는데 그런 말을 해도 되나 싶었다.
몸이 안 좋다면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를 고민하고 자신을 바꿀 생각을 해야 한다. 아무런 고민이나 생각 없이 아파서 야구를 할 수 없다는 건 프로가 할 말이 아니다. 그 정도의 의식밖에 안 된다면 야구단에 있을 가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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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하고 최강야구에 와 있는 선수들은 대부분이 전성기 시절 아주 뛰어난 실력자들이었다. 오죽하면 처음 인사한 날 선수단에게 “너희 전부 선수 시절 내가 미워했었다.”라고 말했다. 하나같이 상대하려면 까다로운 선수들이라 우리 팀이 아닐 때는 골치가 아팠다. 그 정도의 선수들이, 은퇴하고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최강야구라는 또 다른 구단에서 야구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렇다면 후배들에게 혹은 세상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보여주겠다는 요량이 있는 것 아닌가.
처음에야 그저 흥미로 봐 줬을지 몰라도 최강야구는 이제 2년 차에 접어들었다. 이쯤 되면 보는 시선도 엄격해진다. 작년과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야 사람들도 기대를 갖고 계속 응원해 준다.
■ 나의 일을 통해 세상에 어떤 의식을 전할 것인가
개막전 날, 애초에 선발 투수로 낙점해 놨던 선수가 전날 수술을 받아서 등판이 어렵다는 걸 시합 당일 알렸다. 그것은 조직의 팀원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다.
몸이 아파 수술을 할 지경까지 된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그렇다면 미리 수술했다는 사실을 알려서 팀이 준비할 수 있도록 했어야 한다.
선수단 뒤에는 200명의 스태프가 있다. 그 시합 하나를 만들기 위해 뒤에서 200명이 각자 치열하게 할 일을 한다. 그리고 스태프의 가족까지 합하면 족히 500~600명은 된다. 야구단도 방송도 똑같다. 선수들을 위해 뒤에서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이 일하고 있다.
팀이 잘해야 연봉이 오르고, 연봉이 올라야 각각의 가정이 화목해진다. 내 행동에 동료들의 연봉이, 가족의 생활이 달려 있다고 생각하면 뭐든 해이한 의식으로 할 수가 없다. 비단 야구뿐만이 아니라. 모든 일이 그럴 것이다.
나는 최강야구 감독 제의를 받아들였을 때, 무엇보다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나이 들어 은퇴를 했든 프로에 지명받지 못한 선수든 노력하면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는 걸, 노력을 통해 인생을 충분히 바꿔 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최강야구는 승률 7할을 달성하지 못하면 폐지된다. 높은 목표다. 결코 달성하기 쉽지 않은 고지다. 그럼에도 그 목표를 달성하는 걸 보여줌으로써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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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증명하고 싶었다. 내 나이에도 할 수 있다고, 그러니까 나이가 60살이든 70살이든 노력만 한다면 어떤 목표든 이룰 수 있다고 보여주고 싶었다.
■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별명, 잠자리 눈깔
- 관찰력이 격의 차이를 만든다
“힌트란 건 세상 아무 데나 가도 있다. 그 힌트들을 어떻게 붙잡고 느껴서 자기 길을 만들어가느냐의 차이다.”
얼마 전에 최강야구에서 경기를 하는데 주자로 나가 있던 한 선수가 스타트가 늦는 바람에 아슬아슬하게 세이프가 된 적이 있었다. 보니까 뛸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았다. 다음 타자가 볼을 꽤 잘 맞혀서 방망이에 ’땅‘하고 맞는 소리를 듣자마자 안타였는데 왜 그랬을까? 불러서 이유를 물었다.
“너 아까 왜 안 뛰었냐?”
“뛰었는데요.”
“첫 발 스타트 때 한 발 늦지 않았어? 안 뛸 생각이었던 것 아냐?”
그랬더니 그 선수가 무지 놀라는 것이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타이밍이 늦었던 건데 그걸 어떻게 보셨느냐고, 그렇게 미세한 차이를 들킨 게 오히려 신기하다는 반응이었다.
‘왜 그렇게 됐을까?’ 하는 질문은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사실 어마어마하게 크다. 모든 일은 조그마한 것에서부터 시작되기에 정말 사소한 것처럼 보여도 그 순간을 잡는 사람, 순간을 잡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 풀어가는 사람이 결국엔 이기는 법이다.
■ 순간을 붙잡을 수 있는가
그러다 보니 야구장에 있을 때 사람들에게 김성근은 왜 저렇게 맨날 화가 나 있느냐고 오해를 받았던 적도 있다. 하도 미간을 찌푸리고 있으니 그렇게 보일 수밖에. 벤치에 앉아 있으면 다가오기가 어렵다. 인상이 나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사실 화가 난 게 아니라 잘 보려고 해서 그런 것이다. 모든 걸 놓치지 않으려고 용을 쓰고, 기자들과 있을 때도 뒤에서 선수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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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있어야 하니까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선수들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이 선수는 오늘 컨디션이 나쁘구나’, ‘저 선수는 몸이 좀 가벼워보이니 내보내도 되겠다’. 판단을 한다.
그래서 내 별명이 ‘잠자리 눈깔’이었다. 어떤 순간도 놓치지 않는다고, 가만히 서서 사방을 다 본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나쁘지 않았다. ‘야신’이란 별명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힌트란 건 세상 아무데나 가도 있다. 그 힌트들을 어떻게 붙잡고 느껴서 자기 길을 만들어가느냐의 차이다. 힌트를 그냥 흘려보내는 사람과 그걸 보고 순간순간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의 차이는 엄청나게 크다. 순간을 잡을 수 있는 집중력이 사람의 미래를 결정한다.
■ 야구도 인생도 10Cm와 30Cm의 승부다
- 차이를 만드는 것은 ‘진’에 이른 관찰
“관심을 갖다 보면 퀘스천 마크가 생기는 지점이 뭐든 있을 것이다. 그 지점을 찾아 느낌표로 바꾸는 사람이 이기게 되어 있다, 야구도, 세상일도 다 그렇다.”
아마 전 세계의 야구선수, 감독들 중에서 이런 훈련은 나밖에 안 했겠다 싶은 게 있다. 국기 게양대의 공을 바라보는 훈련이다. 야구 경기가 시작할 때면 국민의례를 하고 애국가를 부른다. 그때 태극기가 걸린 국기 게양대를 보면 게양대 맨 위에 작은 크기의 공이 하나 달려 있는데, 나는 애국가를 부르는 시간이면 오로지 그 공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 공에만 집중하다 보면 애국가가 끝날 즈음에는 주변의 다른 것들은 흐릿해지고 공밖에 안 보인다.
이 훈련을 왜 했느냐면,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아주 미세한 차이라도 볼 수 있는 눈을 만들겠다는 마음이었다. 시합 때면 꼭 그렇게 했고, 나는 야구할 때 이 훈련에서 도움을 엄청나게 받았다.
야구에서 투수는 10Cm, 야수는 30Cm의 승부다. 투수는 10Cm의 차이로 스트라이크와 볼이 갈리고, 야수는 30Cm의 차이로 세이프와 아웃이 갈린다. 그 차이를 볼 줄 알아야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 세이프인지 아웃인지를 안다. 그 정도의 예리한 감각을 키워야 승부에서 이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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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에는 세까지 단계가 있는데 첫 번째 단계는. 견見, ‘견학’ 할 때의 견이다. 말 그대로 보기만 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사과가 사과나무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봐도 아무 생각이나 의문을 갖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사를 이 ‘見’의 단계에서 바라보는 데 그친다. ‘왜?’라는 물음표가 없는 것이다.
그다음 단계는 ‘관觀’, ‘관광’할 때의 관이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관심을 갖는 단계인데, 앞에서 말한 사과의 예를 들자면 ‘어 사과가 떨어지네?’ 정도의 생각을 갖는다면 ‘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관찰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 단계가 바로 ‘진診’이다. 진찰할 때의 ‘진’으로, 진은 내 눈으로 본 현상 속으로 파고들어 가장 깊숙이 보는 단계다.
■ ‘왜?’라는 퀘스천 마크의 힘
나는 어느 때든 진의 단계에서 세상을 바라보려 노력했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부터 야구를 보는 눈이 확 커지고 깊어졌다. 상대 선수나 코칭 스태프들의 동작 하나하나가 마치 텔레비전 중계에서 속도를 낮춰 다시 보기로 보여주듯 눈에 잡히기 시작했다. 사소한 행동이나 버릇까지도 눈에 딱 잡히니 마치 현미경으로 야구장을 보는 것 같았다.
관심 속에 있지 않으면 시간이 얼마가 지나든 해결되지 않는다. 관심을 갖다 보면 물음표가 생기는 지점이 뭐든 있을 것이다. 그 지점을 찾아 느낌표로 바꾸는 사람이 이기게 되어 있다. 야구도 세상일도 다 그렇다.
■ 펑고? fun go!
고난에서 기쁨을 깨닫는 사람만이 한계를 넘어선다
“ 몸에 저절로 새겨질 때까지 정신없이 열중해 본 적이 있느냐고
그만큼 절실했느냐고.”
감독 생활 내내 내게 꼬리표처럼 붙어 다닌 말이 있다면 그것은 ‘혹사’일 것이다. 김성근은 연습을 너무 많이 시킨다고, 선수들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은 행동이라고 비난하며 나를 손가락질했다. 그러나 나는 뭘 몰라서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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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을 목표로 할수록 거기까지 가는 데는 당연히 고통이 따르고 그만큼 오랜 시간이 든다. 엄청난 노력도 필요하다. 그걸 ‘혹사’니 ‘희생’이니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최정은 ‘수비 잘하는 내야수’하면 손꼽히는 국가대표 3루수다. 그런데 나와 처음 만났을 때는 수비 실력이 아주 형편없었다. 제주도 캠프에서 처음 만나서 펑고를 치는데, 도무지 아무것도 잡지 못하는 것이다.
그때부터 최정에게는 코치와 함께 하루에 펑고를 말 그대로 1000개씩 쳐줬다. 펑고 1000개를 받으려면 족히 세 시간은 걸린다. 그것도 정면으로 던져 주는 게 아니라 모두 온몸을 뻗어 다이빙캐치를 하게끔 양편으로 쳐주니 엄청나게 지치고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지치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훈련을 하면 할수록 최정은 공을 잘 잡게 되었다.
이유가 있다. 공을 잡을 때는 글러브가 밑에서 올라오느냐, 위에서 내려오느냐에 큰 차이가 있는데 최정은 생각부터 앞서서 글러브가 위에서 내려왔다. 그러니 공마다 부딪쳐서 놓치는 것이다. 머리로만 야구를 하려 하니 나오는 결과였다. 그런데 몇 시간씩 훈련을 하며 몸이 지치니까 손에 힘이 빠졌고 그 덕분에 공을 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피나는 훈련을 통해 머리가 아닌 몸으로 깨달으면서 최정이 점점 변해갔다. 스스로를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과정에서 몸에 야구의 ‘감’이 새겨졌다.
■ 도전하는 순간순간이 기쁘고 즐거워야
얼마 전 인터뷰를 하러 갔다가, ‘펑고 fungo’라는 단어가 ‘재미있게 한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말을 들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재미있다 싶었다. 그 말이 이해가 되는 것이, 실제로 펑고란 일종의 재미, 즐거움의 경지에 들어가는 일이다. 잡고 잡지 못하는 사이에 선수들이 육성되어 가고 성장을 한다. 그 ‘순간’에 얼마만큼 집중하느냐에 따라 얼마나 성장하는지도 달라진다. ‘얼른 연습을 끝내자’하는 마음으로 멍하니 받아치기만 하면 펑고를 500개를 받든 100개를 받든 달라지지 않는가 하면, 자기의 어떤 점이 문제였는지 어떤 자세를 취하고 어디에 힘을 주거나 빼야 하는지를 생각하면서 순간에 집중하면 단 100개만 받아도 확 성장하기도 한다.
즉 얼마나 집중하고 그 속에 흠뻑 빠져드는지가 펑고의 시작이자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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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처음부터 즐겁다는 생각을 가져야지, 고되다거나 힘들다고 생각하면 시작도 못 한다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 어떤 의식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바뀐다. 세상에 안 되는 건 없다.
높은 곳을 목표로 할수록 거기까지 가는 데는 당연히 고통이 따르고 그만큼 오랜 시간이 든다. 엄청난 노력도 필요하다. 그걸 ‘혹사’니 ‘희생’이니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 실패하는 순간에도 근거를 찾아라
- 아직도 야구가 어려운 이유
“그래도 근거를 찾으면 괜찮다. 거기서 반드시 ‘다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야구는 매 게임이 순간의 움직임으로 결정된다. 투수가 던진 볼이 타자와 만나는 그 순간 승부가 난다. 그때 머릿속에 숫자, 즉 데이터가 떠오르지 않으면 경기를 잡지 못한다. 야구란 스포츠는 확률이 싸움인데 확률이란 곧 경향이고, 그 경향에는 모름지기 근거가 있는 법이다. 언제나 근거를 갖고 움직여야 한다. 근거 없이 막무가내로 움직여서는 성공할 수 없다. 인생사 모든 게 다 그렇다.
초구에 스윙을 하는 걸 보고 흔히 공격적인 야구라고들 말한다. 나는 그게 왜 ‘공격적’인가 싶다. 이 투수는 초구에 항상 직구를 던지는 경향이 있다거나, 초구가 대체로 가운데에 몰린다거나 하는 근거가 있다면야 초구를 쳐도 된다. 그런데 그런 근거도 없으면서 무조건 초구에 방망이를 돌린다면 그것은 공격적인 게 아니라 소위 무식한 것이다.
언제나 근거를 갖고 움직여야 한다. 근거 없이 막무가내로 움직여서는 성공할 수 없다. 인생사 모든 게 그렇다.
나는 감독 시절 선수들과 밥을 함께 먹지 않았다. 사적인 정이 쌓여 맘이 약해질까 봐 경계한 것도 있었지만 밥 먹는 시간이 아깝다는 이유도 있었다. 룸서비스를 시키면 이동시간과 식사 시간을 아낄 수 있으니 그렇게 번 시간 동안 데이터를 보는 것이다. 데이터 분석팀이 데이터를 인쇄해서 가져다줘도 그걸 그대로 보지 않았다. 내 손으로 하나하나 직접 적었다. 아침, 점심, 저녁, 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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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하루 네 번 받아 적으며 데이터를 머리에 집어넣었다. 타고나길 머리가 별로 좋지 않아서 자꾸만 데이터를 까먹으니 그렇게 한 것이다.
■ 근거는 틀림없이 승률을 높인다
선수마다 가진 독특한 습관이 있다. ‘배트를 어깨 높이 만큼 올릴 때는 이런 행동을 한다.’ ‘투구 전에 발을 한 번 구르면 이런 공을 던진다.’ 같은 것들을 다 알고 있어야 하고 그들의 행동을 딱 보면 다음에 뭘 할지를 알아야 재빨리 대처할 수 있다. 그게 직감이다.
이렇게 데이터를 분석해 머릿속에 집어넣어도 야구는 시작부터 끝까지 알 수가 없다. 같은 선수가 나오고 비슷한 상황이 닥쳐도 승부는 순간순간마다 바뀐다. 선수의 컨디션에 따라, 상대방의 움직임에 따라 매번 달라진다. 데이터는 참고할 만한 것이고 믿을 만한 숫자이지만 어디까지나 어제까지의 원칙이지 오늘의 원칙은 아니라는 게 야구의 생리다.
그래서 야구에 완벽함은 없는 것이다. 야구에는 끝이 없다. 확률의 다툼이고, 그 확률은 매 순간 달라진다.
■ 거북이가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것들
- 나만의 프로세스를 만든다는 것
“어떤 핑계도 대지 않고, 포기하지도 않고 오늘 하루에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살아야 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이긴다.”
사람의 성공을 결정하는 것은 재능일까, 노력일까? 나는 언제나 노력이라고 말하곤 한다. 인생이란 100% 노력에 달려 있다.
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쉽다.
거북이는 위기를 만나면 가만히 서서 고민한다. 머리도, 손도, 발도 몸 안으로 깊숙이 넣고 멈춰선 채 자기 안에서 답을 찾는다. 고민하면서 자신과 싸우고, 세상과 싸운다. 거북이가 길을 걷다 멈춰 기다리는 것은 무조건 참기 위함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토끼는 다르다. 빠른 발을 타고났으니 거북이가 걸음을 옮기는 동안 한숨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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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되고, 게으름을 피워도 된다. 한눈을 팔다가도 깡충 뛰어 금세 목적지까지 올 수 있는 것이 토끼들이다. 어려움이 닥치면 재빨리 뛰어서 도망가 버리고, 어디 지름길이 없나 호시탐탐 찾다가 다른 길로 돌아간다. 위기를 돌파하고 해결하는 게 아니라 회피한다. 소위 재주를 부리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이 싫다. 도망치면 아무 프로세스도 남지 않는다.
인생을 살아가는 법도 똑같지 않나 싶다. 재주를 부리는 사람은 그 순간 당장은 위기를 모면할지 몰라도 그다음 위기가 오면 반드시 길이 막혀버린다. 위기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사람은 인생을 똑바로 살 수 없다. 야구에서는 타자 타율이 3할만 되도 잘한다고 평가한다. 그 이야기를 거꾸로 하면, 아무리 잘하는 타자라도 타석에 열 번 서면 일곱 번은 실패한다는 뜻이다.
■ 느릴수록 멀리 갈 수 있다
나는 스물여덟이라는 젊은 나이에 일찍이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마흔한 살부터 프로 지도자로 일했지만 첫 우승을 한 것은 예순여섯 살 때였다. 꼬박 25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그렇게 느렸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느린 만큼 부지런히 움직였고, 나 자신부터 느린 거북이였기에 인내심을 갖고 선수들을 기다려 줄 수 있었다. 그렇게 느리게 나아가며 얻은 프로세스가 나를 만들어 주었다.
나는 거북이형 인간이었다. 문제가 닥치면 해결할 때까지 오로지 내 안에서 고민하고 생각하며 아이디어를 찾았다.
◎ 5장 비정함 속에 담은 애정
- 리더는 부모다
■ 어머니로부터 배운 비정한 애정
- 모든 것은 육성을 위해서
“비정하다는 건 애정이 있다는 뜻이라는 걸,
키워야 하는 자식들이 생기며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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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니는 어떻게 보면 ‘어머니란 사람이 저렇게 비정할 수 있나’ 싶은 인물이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하루 종일 집 밖에서 동네 아이들과 놀다가 들어와도 “어디를 갔다 왔냐”, “왜 그렇게 늦게 돌아오냐” 같은 말은 일절 하신 적이 없었다. 그러니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알아서 찾아 먹었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동네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그저 내 마음대로 놀았다. 어린 시절은 공터에 모여 조악한 도구로 야구를 하고, 냇가에 가서 불고기를 잡고 노는 날의 연속이었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그때야 집에 들어가는 게 당연한 일상이었다.
오죽하면 우리 집에서는 내 성적표를 본 사람이 없다. 어머니도 형도 관심이 없었고 나도 펼쳐본 적이 없다. 그러니 아직까지 내가 공부를 잘했는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항상 그랬다. 자식들이 뭘하든 다 보고 있고,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 말을 하지 않으셨다. 정말 잘못된 길인 것 같을 때만 한두 마디 얹을 뿐이지 그 전에는 일절 아무 말씀도 없이 자식들이 하고 싶은 대로 놔두셨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 자유로웠던 가풍 덕에 나도 온전히 ‘나’라는 인간으로 자랄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나는 항상 나의 속에서 살았지,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한다고 해서 거기에 얽매이거나 남들처럼 살아야 한다는 의식이 없었다.
그런 어머니가 유일하게 완강히 반대하셨던 게 나의 영주 귀국이었다. 그때만 해도 한일 간 수교가 단절되어 있어서 매년 관광 비자를 갱신해 한국에 들어오곤 했었다.
그때 일본에는 한국, 그러니까 남한에 가면 무조건 군대에 입대해야 한다는 둥, 남한 사람들 모두가 밥을 굶고 산다는 둥 헛소문이 팽배했다.
내가 영주 귀국을 결정한 것이 1964년 12월인데, 다행히 그다음 달인 1965년 1월부터 한일 국교 정상화가 이뤄지며 가족과 문제없이 상봉할 수 있게 되었다. 한 달 사이에 내 인생이 바뀐 것이나 다름없다.
어머니는 강한 분이셨다. 아버지가 갑작스레 열차 사고로 돌아가셨을 때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으셨다. 아버지 없이 여자 혼자서 일곱 명이나 되는 자식을 키워야 했기 때문일까? 어머니에게는 오늘이 가장 중요했다. 오늘 살아남지 못하면 내일을 감히 생각할 수 없는 가난 속에서 어머니는 언제나 매일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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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을 다하며 살았다. 과거를 돌아보며 슬퍼할 새도 없었다. 나는 그런 어머니의 성정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나도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고, 수없이 많은 자식을 품게 되며 비로소 어머니의 비정한 애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 역시 비정해졌다. 엄격하게 대했고, 혹독하게 훈련시켰다. 넘어져도 당장 일어나라고 소리쳤다. 손자가 넘어졌을 때 할아버지가 매번 손을 내밀어주면 아이는 몇 번을 넘어져도 발전 없이 노상 도움만 기다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안 된다. 그래서 비정함이야말로 진짜 애정인 것이다. 비정하다는 건 애정이 있다는 뜻이라는 걸, 키워야 하는 자식들이 생기며 알게 되었다.
■ ‘나’라는 불명 안에서 살아라
- 리더란 옆이 아닌 앞을 보는 인간
“걔네들은 우리 야구를 몰라. 뭘 하더라도 비난은 내가 받을 테니 넌 내 뒤에 숨어 있어라. 그냥 그러면 돼.”
소프트뱅크에 있을 때 요새 젊은이들은 다루기가 어렵고 조직에 맞추기가 힘들다는 이야기가 종종 나왔다. 이는 소프트뱅크뿐만이 아니라 예전에 지바롯데마린즈(이하 ‘지바롯데’)에 있을 때도 익히 들었던 말이다. 그때 나는 감독에게 단호하게 말했었다.
“아이디어가 나오면 주위를 보지 말고 그냥 움직이세요. 불평을 하든 불만이 많든, 일단 감독이 생각한 아이디어대로 하세요. 세상에 맞추지 마시고요. 분명 처음에는 반발이 심할 겁니다. 그래도 이겨내야 합니다.”
욕을 먹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따르면 조직을 제대로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어떤 조직, 어떤 순간에 있어도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일을 해야 한다. 다 지나고 나서야 ‘아, 그때 내 생각대로 밀어붙일걸’ 하며 아쉬워할 일은 해서는 안 된다. 내가 55년간 리더로 살며 몸으로 느낀 것이다.
물병이 하나 있다고 해보자. 병 속에 있는 물이 나이고 바깥이 세상이다. 바깥이 시끄럽다고 해서 내가 밖으로 나가면 물은 그대로 흘러 사라져 버린다. ‘나’라는 인간이 온데간데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건, 밖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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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떠들건 나는 그 물병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돌파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지 그 ‘병 안에서의’ 방법을 고민해야지, 세상이 비난한다고 해서 무작정 바깥으로 나와 거기에 따르면 ‘내’가 아니게 되어 버린다.
나는 끝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욕을 얼마나 먹든 내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리더는 내가 욕을 먹진 않는지,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자꾸 옆을 봐선 안 된다. 그저 앞만 바라봐야 하는 존재다. 결국 그해 투수는 20승까지 달성했고 쌍방울은 2위까지 올라가는 쾌거를 이뤘다. 만년 꼴찌이던 팀이 준우승까지 해낸 것이다.
■ 살기 위해 일하는 것만큼 치욕스러운 게 없다
살기 위해 일하느냐, 일하기 위해 사느냐를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일하기 위해 살았다. 정확히 말하면 야구를 하기 위해 살았다.
살기 위해 일하다 보면 비굴해지는 순간이 많다. 내 목숨을 부지하려면 바깥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와 타협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일하기 위해 살면 바깥에는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일에만 필사적으로 살 수 있다. 자기 뜻을 확고하게 관철하며 일할 수 있다. 나는 평생 일하기 위해 살았기에 남에게 아부를 한다든지 세상 사람들에게 맞춰준 적이 없었다. 그러니 주위에 사람이 점점 없어지기도 했다.
이제까지 세상과 무수히 싸웠고 비난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세상과 타협하며 살았다면 오히려 지금보다 더 큰 비난을 받았겠다 싶다. 제대로 해낸 일이 아무것도 없었을 테니까.
물이 물병 바깥으로 나오면 물은 그대로 흩어져 버린다. 누구든 자기라는 물병 안에서 살아갈 방법을 찾으면 된다.
■ 부모는 자식을 버리지 않는다
- 실책한 선수에게 취해야 할 리더의 자세
“마지막에 자식이 다 컸을 때 비로소 자기 인생이 끝난다. 그게 리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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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야구에서 장충고와 경기를 했을 때 어떤 선수가 한 경기에서 두 번이나 실책을 한 적이 있다. 그건 전부 내 탓이었다. 왜 경기 전에 이렇게 하라고 미리 안 알려줬을까. 훈련을 덜 시켰을까….
사실 선수가 실책을 저지르는 것은 전부 감독 탓이다. 실책을 했다는 건 선수가 아직까지 그 정도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뜻이고, 감독은 선수의 수준을 올려줘야 하는 사람이니 결국 실책은 수준을 올려주지 못한 감독의 문제인 것이다. 그러니 실책을 저질렀다고 해서 선수를 혼낼 필요도 없다. 혼내는 게 아니라 다시는 그런 실책을 저지르지 않도록 고쳐놓는 게 관건이다.
시합이 끝나고 그 선수를 불러 한 시간이 넘도록 펑고를 쳐줬다.
원래 실책을 하면 선수는 기기에 얽매여서 ‘또 똑같은 실수를 하면 어떡하지’, ‘어제처럼 되면 어떡하지’ 하면서 주춤해서 제 플레이를 못하게 된다. 그러면 또 실수가 나고, 플레이를 하기가 두려워지면서 악순환이 반복된다.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게끔 고쳐놓는 게 내 역할이다.
■ 자신을 전부 바치는 리더가 사람을 살린다
리더는 자기를 전부 희생해서라도 아랫사람을 살리고, 조직을 살리겠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하는 사람이다. 어느 순간에 있든 미래를 봐야 한다. ‘이 사람은 어떻게 키우나’, ‘우리 조직은 어떤 모습을 목표로 나아가야 하나’ 생각하며 끈질기게 방법을 찾고, 그 방법을 실천하고, 성과를 내서 조직을 발전시키는 게 리더의 숙제다.
그래서 자기의 사적인 시간을 아랫사람을 위해 다 바칠 수 있어야 리더라고 할 수 있다. 자기를 희생하고 시간을 다 내어주더라도 전력투구해서 사람을 키우는 게 리더다. 그게 리더의 기본이다.
프로 감독 시절 딸들은 내게 “집에 놀러 오세요”라고 말하곤 했다 그만큼 집에 가지 않았다.
선수들은 각자가 타고난 소질이 다르고 성격이나 특성에 따라 키워줘야 하는 길도 다르다. 또한 잠재 능력이 100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500이 있는 사람도 있고 10 밖에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리더는 그 사람이 가진 만큼의 잠재능력을 모두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게 베스트다. 그런데 자기를 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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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하는 리더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기 시간만 중요하니까 누구를 키울 생각은 하지 않는다.
리더는 한 발 한 발 맞춰가며 더 높은 곳으로 아랫사람을 올려다 줘야 하는 사람이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연습은 내가 제일 많이 했을 것이다. 일본에서, 세계에서 봐도 제일 많지 않았나 싶다. 왜 그랬느냐 하면 그게 다 선수를 만들고 싶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 나만 살려는 것만큼 비참한 인생이 없다
- 강한 팀을 지탱하는 원천이란
“어쩔 수 없이 손가락질을 받아야 한다면 위에서 받는 게 리더다.”
나는 감독을 하면서 수없이 잘렸어도 구단을 원망한 적이 없다. 밖에서 뭐라고 하든 내 신념에 따라 일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일하지 않았다. 일이란 소위 신념을 가지고 강한 의지로 자기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 행위다. 일이 아니라 살아남는 걸 목적으로 삼으면 신념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위에서 하는 말에 흔들리고, 옆에서 하는 말에 흔들리니 자기 뜻대로 일을 펼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은 무조건 했다. 그래야 잘려도 회사를 원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깨끗하다. 그만 두라는 소리를 들어도 그저 ‘끝났구나’ 싶다. 아무런 타격이 없다. 하고 싶은 대로 하다가 잘리면 슬프게 생각할 필요가 하나도 없다. 기업에서 강의를 할 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열 명이면 열 명이 다 부럽다고, 그리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살아야 후회가 없다는 걸 나이가 들면 다 아는 것이다.
사실 당연한 것 아닌가. 야구로 이기기 위해, 선수들을 키우기 위해, 팀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 감독이란 자리가 있다. 그게 나라는 준재의 목적이다. 그렇다면 내 앞에 누가 있든 오로지 감독으로서 목적만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 술 한잔을 함께 마실 수 없는 자리
- 한국에 발을 디디며 품은 결심
“내가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품었다. 내게는 굉장한 결심이었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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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면 그게 한국에 와서 가장 좋았던 점인지도 모른다. 강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절대적으로 커지도록 만들어줬으니.”
재일교포 학생야구단으로서 한국에 와 야구를 했을 때는 시합이 끝나면 관중들에게 ‘쪽발이’라는 여유를 듣곤 했다. 일본에서는 사회인 야구단 입단 테스트를 봤지만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한곳에서는 테스트 결과는 괜찮았지만 국적이 문제가 되어 탈락 통보를 받았다. 소위 ‘조센징’이란 게 약점이 되던 시대였다. 조국인 한국에서도, 나고 자란 일본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게다가 파벌이나 연줄 같은 것도 없고 기질상 윗사람에게 아부해서 살아남을 성격도 아니었다. 그러니 살길은 하나, 내가 강해지는 것뿐이었다.
‘참아야지, 누군가에게 기대려 하지 말고 내가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
어쩌면 어려서부터 그런 기질을 키워온 덕분에 고독한 리더로서의 삶도 감내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사실 리더는 외로운 자리다. 시합에서 진 날이면 특히 그렇다. 시합이 지면
힘을 빼고 싶을 때도 있다. 기분이 안 좋으니 술 한 잔도 생각난다. 그래도 주
변에 있는 건 제자와 코치뿐이니 꾹 참았다. 개인적으로는 절대 코치와 술을
하지 않는 게 내 철칙이었다. 술을 마시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하소연을 하고 속
내를 털어놓을 수도 있는데, 그러면 불안함이며 약점 같은 것들이 다 드러난
다. 그래서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죽는 한이 있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약점이란 건 절대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렇게 고독을 자처하
며 약점도 불안도 철저히 숨겼다.
■ 홀로 걷고, 홀로 이겨내는 게 리더다
‘코끼리 무덤’이라는 말이 있다. 코끼리는 죽을 때가 되면 스스로 무리를 이
탈해 아무도 안 보는 데서 죽기 때문에 코끼리의 무덤은 아무도 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다. 코끼리가 실제로 그러한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그렇게 살고자 했다. 많은 사람이 간과하는 것이 있는데, 내게 찾아온 시련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라는 점이다. 내가 속한 조직이나 사회는 나의 아픔과 전혀 상관이 없다. 냉정하게 들린다 해도 어쩔 수 없다.
힘이 들든 뭘 하든 할 일은 해야 한다. 그게 사명감이고 리더다. 그래서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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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고독할 수밖에 없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자기 관리를 해야 하고, 절체절명의 순간에는 혼자 결단을 내려야 한다. 옆에서 뭐라고 말을 얹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이 확고하다면 물러서지 않고 그 길을 밀고 나가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결과도 보여줘야 한다. 그 과정에서 무지하게 욕을 먹는다 해도 할 수 없다. 아랫사람들은 다 내 뒤에 숨기고 혼자 비난들을 받아내는 게 리더의 역할이고 내가 해 온 일이었다.
그래서 세상살이를 뒤돌아보면 나한테는 남은 사람이 별로 없다. 보통은 무언가를 함께하면 친구가 되는데, 야구를 해왔으니 내게는 라이벌만 잔뜩 남은 것이다. 제자가 늘어날수록 반대로 친구는 줄어들었다. 지금까지 내내 싸우며 살아왔으니 어쩔 수 없다.
■ 진정한 리더는 존경을 바라지 않는다
- 승률을 높여가는 리더의 습관
김성근의 야구는 너무 승부에 집착한다거나 악착같아서 재미가 없다거나 하는 비난을 숱하게 들었다. 즐기는 야구를 해야 한다는 말도 들었다. 그러나 그건 틀렸다고 본다. 즐기는 야구란 말 그대로 ‘놀고 있는’ 것이지, 프로가 할 일이 아니다. 심지어 SK 감독 시절에는 모기업에서 나온 사람들에게 우승을 해도 기쁘지 않으니, 깨끗이 야구를 해서 존경받는 리더가 되어 달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야구를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싶었다.
나는 이제 리더가 된 제자들에게 절대 존경받는 리더가 되라고 말하지 않는다. 존경받는 감독, 존경받는 리더란 사실 일을 못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리더는 모든 식구의 살림을 책임지는 자리다. 감독 뒤에는 수많은 선수가 있다. 내 밑에 선수가 100명 있다면 식구가 다섯 명씩만 딸려 있어도 내게 500명이 달려 있는 것이다. 선수, 코치, 구단, 직원…. 모두 생각하면 1000명 이상의 밥줄이 감독의 손에 맡겨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돈이 있어야 행복하지, 돈 없는 가정이 행복할 수 있나? 회사가 돈을 벌어야 직원들에게 보너스가 들어오고 연봉이 올라간다. 그러니 리더는 결과를 내기 위해 기꺼이 목숨이라도 걸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니, 존경이니 하는 것들을 생각할 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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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어느 팀을 가든 간에 첫 시합, 개막전에 생명을 걸었다. 감독을 10년을 하든 20년을 하든 그것만큼은 똑같다.
보통은 상대 팀과 시합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개막전은 상대가 아니라 우리 팀 선수들과의 싸움이다. 거기서 이기면 선수들이 나를 믿게 되지만, 지면 신뢰를 잃는다. 지독하게 훈련을 시켜놓고 지면 선수들도 당연히 ‘큰소리 치고 연습을 그렇게 시키더니, 뭐야?’하고 생각한다. 신뢰를 완전히 잃는 것이다.
■ 단 하나의 순간이라도 놓쳐서는 안 된다
애초에 존경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할 필요도, 깨끗한 야구라는 것도 없다. 어차피 야구란 룰 안에서 움직인다. 룰 바깥의 일을 생각하면 실격이니 당연히 이기지 못한다. 룰 안에서 하는 일이라면 옳고 그름도, 좋고 나쁨도 없는 법이다. 오직 성공하는가와 실패하는가만 있다. 비즈니스의 세계도 그렇다.
그렇다면 룰 안에서라면 어떻게든 이기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찾는 게 리더가 해야 할 일이고 사명 아닌가.
이길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는 게 맞다. 오늘 장사가 잘 된다고 해서 내일도 잘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내일은 돈이 안 벌릴 수도 있으니 오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져서라도 필사적으로 베스트를 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매일 마주하는 고민, 훈련, 시합… 모든 게 다 붙잡아야 할 순간이다.
■ 감독은 할아버지가 되면 안 된다
- 정은 깊기에 더 멀리해야 하는 것
“약해지지 말라고, 리더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를 꾸짖었다. 누군가를 키우려면 불쌍하다는 생각은 없어야 한다.”
야구는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등산로에 들어서자마자 얼마 안 가 정상이 나오는 산은 없듯이, 야구에서도 어떤 경지에 오르려면 숨이 찰 만큼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한다. 그뿐인가. 오르다가 미끄러지기도 하고 갑자기 막힌 길이
나와 어떻게 하면 이 길을 뚫고 올라갈 수 있나, 한동안 고민해야 할 때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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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누구나 정상에 오르려면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 비단 야구뿐만이 아니라 모든 일이 그렇다. 리더는 아랫사람들도 자신의 뒤를 따라 잘 올라올 수 있도록 앞에서 끌어주고 때론 뒤에서 밀어주고, 어떻게 해야 잘 갈 수 있는지를 알려줘야 한다.
나는 사실 정이 많은 사람이다. 겉으로는 냉정해 보여도 속은 그렇지 못하다. 감독을 하면서 부족한 점 하나를 꼽자면 정이 많은 내 기질이었다. 프로 감독 시절에 일부러 선수들이나 코치들과 밥을 먹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부모의 마음이 약해지고 흔들리면 자식은 결코 성장할 수 없다. 오냐오냐 하면 그 순간이야 좋을지 몰라도 멀리 보면 지도자가 선수들의 미래를 죽이는 것과 같다.
■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기에
나의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사람이다. 그냥 어디에나 있는 개성 없는 아무개가 아니라 내 앞에 있는 선수 하나하나, ‘그 사람’ 말이다. 내게는 선수 하나하나가 다 소중한 자식이었다.
어렸을 때 내가 가난하고 힘들게 야구를 한 탓인지 부족한 선수나 못하는 선수들에게 계속 마음이 갔다. 선수 모두가 내 자식이었고 그 선수들 모두의 부모가 나였다. 다 자식이니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조금 모자라고 떨어진다 해서 자식을 버릴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더 엄격하게 대하고 가혹하게 연습시켰던 것 같다. 선수를 강하게 만들려면 잘했다거나 고생했다. 미안하다. 이런 말을 하면 안 되니 꾹 참았다. 칭찬에도 인색했다. 선수는 물론 코치들과도 사적으로 식사를 하거나 차 마시는 걸 자제했기에 속에 있는 말을 다 할 데가 없으니 속이 쓰라릴 때도 있었다.
◎ 6장 자타동일
- ‘나’가 아닌 ‘팀’속에서 플레이하라
■ 이대호, 양준혁, 최정 보다 팀워크가 먼저다
“폭포처럼 망설임 없이 자기를 던지는 것, 리더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
나는 폭포처럼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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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최강야구 개막전 때 선수들에게 큰 쇼크를 준 사건이 있었다. 이대호를 스타팅 멤버에서 뺀 것이다. 관중, 선수, 이대호 자신에게도 충격이었을 것이다. 이대호 같은 국가대표급 선수를 선발에서 빼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을 못했을 테니. 그것은 조직을 만들기 위한 일종의 시작점이었다. 내 결정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리더는 조직을 살리고 사람을 살려야 하는 사람이다. 그럴려면 희생이 필요하다. 조직의 분위기를 위해서라면 얼마나 뛰어난 인재가 있든 간에 과감한 결정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대호는 개인 스케줄이 많아 훈련에 많이 참가하지 못했고, 몸 상태가 어떤지 내가 자세히 보지도 못했다. 그러니 내가 훈련을 지켜보며 컨디션도, 수준도 이미 확인한 선수를 스타팅으로 내보내는 게 맞지 않겠는가. 그렇게 이대호를 뺌으로써 다른 선수들에게도, 조직 전체에게도 충격이 온다. 나에게도 기회가 올 수 있다는 확신, 또는 그와 반대로 해이해서는 안 된다는 의식이 생긴다. 그게 조직을 혁신하는 시작점이다. 성장하는 조직은 그렇게 움직인다.
나는 어디를 가든 개개인의 실력이 어떤지보다는 ‘팀을 얼마나 살릴 수 있는가’를 생각했다.
당시 SK 간판 타자였던 최정에게도 그랬다. 투수들을 연습시키고 있는데 어디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최정은 욕심이 많아서 자기 야구가 생각대로 안 되면 그걸 어마어마하게 안타까워했는데, 연습이 잘 안 돼서 꽥꽥 소리를 지르며 그 안타까움을 표출하고 있었다.
“지금 누가 소리를 지르는 거냐?”
“최정입니다.”
“집에 가라고 해?”
자기 마음이 어떻건 밖으로 표출하며 팀의 분위기를 저해해서는 안 된다. 그게 내 철칙이었고, 아무리 실력이 좋은 선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렇게 시합을 하기도 전에 팀의 4번 타자를 집에 보내 버렸다.
물론 그날 경기만 보면 필요할 때 쳐줄 4번 타자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이니 당장은 손실일 수 있다. 그러나 조직의 차원에서 보면 사실 이득이다. 선수들도 ‘아’ 이러면 안 되는구나‘ 하면서 조직에 맞춰서 의식을 바꿔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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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재적소란 것에 나이 제한은 없다
- 리빌딩이란 무엇인가
“컵에 물을 계속 부으면 어느 순간부터 원래 담겨 있던 물이 자연스럽게 빠져 나온다. 이런 것이 세대교체다.”
가끔 뉴스를 보면 어떤 회사에서 몇 살 이상은 전부 일괄 퇴직을 시켰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소위 ’세대교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모든 분야에서 그러한데, 경험이라는 걸 완전히 무시하고 있지 않나 싶다. 젊은 게 다라고 생각하며 베테랑을 괄시한다. 야구단도 그렇다. 더 이상 쓸데가 없다거나 젊은 아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해 줘야 한다는 이유로 베테랑들을 방출시킨다. 그런 꼴을 보자면 대체 무슨 짓인가 싶다. 나이를 먹어도 능력이 있으면 계속하는 것이고 능력이 없으면 떨어져 나가는 것이지, 나이를 먹었다 해서 자리에서 물러나거나 그만둘 이유는 없다.
■ 나이나 세대에 좌우되지 않고 의식을 키워가는 것의 중요성
맥주를 따를 때도 살살 따라야 거품이 안 나지, 급하게 따르면 컵에 남는 거라곤 죄다 거품이듯이 갑자기 조직을 젊은 사람으로 바꾼다 해서 조직이 강해지지는 않는다. 애초에 억지로 나이만 어린 사람을 갖다 놓는다고 해서 그걸 세대교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컵에 물을 넣는 걸 생각하면 쉽다. 컵에 물을 계속 부으면 어느 순간부터 원래 담겨 있던 물이 자연스럽게 빠져나온다. 이런 것이 세대교체다. 컵에 있는 물을 전부 비우고 새로 넣는 게 아니다.
리빌딩은 의식 없는 사람을 의식도 있고 성장할 수 있는 사람으로 교체하는 것이지, 그저 젊은 사람으로만 채우는 게 아니다. 나이를 먹은 사람도, 나이를 먹은 만큼 떨어져 나가지 않으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지 않은 사람은 베테랑이라 해도 쓸모가 없다. 죽을 때까지 성장해야 한다.
■ 타협 없는 거센 격론이 조직을 뒷받침한다
자기 뜻이 없는 사람들은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든 “그래요, 그래요”하며 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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춰준다. 어딜 갖다 놔도 거기에 잘 스며들고, 누구하고든 의견을 부딪치지 않고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팔방미인이다. 그런 사람들은 언뜻 무난
하고 평탄해 보이니 어느 조직에나 좋은 팔방미인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나는 틀렸다고 본다. 팔방미인은 반대로 어디에도 써먹지 못한다.
팔방미인이란 세상에 다 맞추는 사람이다. 그러면 여차하면 자기 생각이 금방 꺾여버린다. 그렇게 살아서는 자기 스스로도, 조직도 발전이 없다.
다행히 요새 젊은 사람들은 자기들 생각이 아닌 건 아니라고 확실히 의견을 말하고, 그것 때문에 고민하는 상사들도 많다고 하는 걸 보면 세상이 그래도 많이 바뀐 것 같다. 그럼에도 윗사람이 무슨 말만 하면 “회장님이 하신 말씀이 맞습니다”, “사장님 말씀이 다 맞습니다” 하며 아부하는 부류는 여전히 어디에나 있다. 그것은 필요 없는 타협이다. 자기 혼자 살려고 타협하는 것이다.
강해야 어디든 써먹을 수 있다. 팔방미인은 정작 일할 사람이 필요할 때에는부름을 받지 못한다.
■ 이기심을 버리고 동료의 실수에 공감하고
내가 팀에 가면 선수들에게 꼭 가르치는 말 중 하나가 ‘자타동일 自他同一’이다. 팀이라면 슬플 때 같이 슬퍼하고, 실수했을 때 팀을 위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나’라는 속에서만 플레이하는 게 아니라 팀 속에서 플레이를 해야 한다. 개인이 아닌 전체가 한뜻이 될 대 조직은 비로소 살아난다.
조직의 일원이라면 ‘나’가 아닌 ‘우리’라는 개념을 가져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최소한 자기가 남에게 피해를 줬을 때 미안해 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게 팀워크 좋은 조직이다.
■ 기다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 인내와 침묵이 필요한 길
“원래 부족한 사람일수록 시끄럽다.”
내가 소프트뱅크에서 일하는 동안 왕정치 회장은 홈 게임이 있는 날이면 거의 항상 거르지 않고 시합을 보러 오셨다. 함께 시합을 보면서 그분께는 좋은 이야기를 참 많이 듣고 많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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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느낀 가장 큰 특징이, 왕정치 회장은 남의 욕이나 비판하는 말은 일절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힘이 들어도 힘들다는 말도 안 한다. 모든 게 자기 속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분을 보며 다시금 느꼈다. 아랫사람이 어떤 과제를 해결하지 못했을 때 ‘리더가 어떻게 하느냐’가 조직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방법을 찾는 리더는 아랫사람이 과제를 해결하기를 충분히 기다려 주면서 동시에 자기도 길을 찾는다. 멀뚱히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함께 고민하며 아랫사람과 옆에서 함께 걸어준다. 먼저 방법을 찾아내도 일단은 아랫사람이 스스로 배우고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기다려 준다. 잘 안 풀려서 답답해하고 있으면 “이 방법은 어떠냐?” 하고 슬쩍 알려준 후 잘 해내는지 지켜보는 식이다.
■ 정상까지 가는 길을 찾는 것은 결국 리더의 몫이다
물론 리더에게도 도무지 길이 안 보일 때가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남들이 아무리 소위 ‘야신’이니 뭐니 말해도 나는 야구를 다 알지 못한다. ‘어떡하지, 어떡하냐’ 머리를 싸매고 하루 종일 고민하고, 이리저리 책도 뒤져보고, 온갖 방법을 더 써보며 고민한다. 치열하게 길을 찾으며 끝끝내 프로세스를 배운다, 그렇게 배운 프로세스를, 문제에 부딪힌 선수들도 스스로의 힘으로 찾을 수 있도록 조금씩 힌트를 주며 돕는다.
그래서 조직의 운명은 리더가 눈앞에 놓인 과제 속에 얼마나 깊게 빠져 있는지에 달려 있다. 문제가 닥쳤을 때 아랫사람들과 함께 고민하며 걷는 리더들은 아랫사람이 도중에 실수를 하더라도 그저 ‘아,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이구나’라고 생각하며 인내할 줄 안다.
■ 리더일수록 공부에 정진하라
- 나이도, 분야도 가리지 않는 유연한 공부.
배우는 데는 나이가 없고 가릴 것도 없다.
나는 배우는 걸 좋아한다. 야구를 그렇게 오래 했어도 나는 여전히 모르는 게 많다. 문제에 부딪히면 이 책, 저 책을 꺼내고 뒤적이며 답을 찾아나간다. 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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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로 책을 읽고, 생각하고, 책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이리저리 적용해 보면서 선수들을 키웠다. 지도자가 되어 선수들을 가르쳐 보니 배우는 것보다 가르치는 게 배는 더 어려웠다. 그때 책의 도움을 받았다. 당시 한국에는 야구에 관련된 책이 별로 없어서 일본에서 책을 사 모으며 연구했다.
책방에 가서 무작정 책을 펼쳐 고르면서 논어, 맹자 같은 고전과 리더들의 일대기도 읽었다. 처세술, 심리학, 경제…. 주제에 관계없이 일단 훑어보며 문장 몇 개만 맘에 들어도 사서 읽어나갔다. 한두 번 읽은 것으로는 기억에 남지 않길래 좋은 말이 나오면 줄을 긋고, 내 손으로 직접 따라 써보면서 공부를 했다.
사람들은 ‘저 사람은 어려서부터 운동이나 했으니 무식할 것이다.’ ‘이 사람은 대학원까지 나왔으니 엄청나게 똑똑할 게 분명하다’하는 고정관념을 갖고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다. 우리 사회 전반에 학력이 있어야 하고, 학위니 자격증이니 하는 일종의 KS마크가 붙어야 배울 게 있는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이 강하게 박혀있다. 나는 그게 싫어서 더 열심히 책을 읽고 공부했다.
■ 공부는 영원해야 한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예전에 김응룡이 이끌던 해태타이거즈 2군 감독으로 들어간 적이 있었다. 김응룡과 나는 동기여서 누가 누구를 가르치고 배운다 할 관계가 아닐뿐더러 딱히 친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그 밑으로 들어갔느냐고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역시나 배우기 위함이었다.
김응룡은 내가 해태에 갔을 당시에도 일곱 번이나 우승을 한 감독이었다. 김응룡이 만드는 팀이 왜 강한지 알고 싶었다. 어떤 방법으로 선수들을 통솔하는지, 해태가 강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그 옆에서 2년 동안 일하면서 직접 봤다. 좋은 경함이고 유익한 공부였다. 나중에 감독을 할 때 그때 본 것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니 내 모자람이 억울하거나 한스럽다면 당연히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다. 무식을 창피해해서는 안 된다. 무식한데 그렇지 않은 척하면 오히려 결국 큰 해가 되어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공부만이 살 길이다.
아무리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 해도 한 사람이 가진 지식에는 당연히 한
계가 있다. 완벽하지 못한 게 인간이다. 그러니까 책을 읽고, 전문 영역을 가진 사람을 보고 배우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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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강이 목표라면 나약한 게 당연하다
“리더라면 일단 목표는 높게 세워야 한다. 4위, 5위 같은 애매한 목표를 말하는 것은 이미 도망을 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리더가 있는 팀은 약하다.”
리더는 산이 높을수록 오히려 그곳에서 희망을 보는 사람이어야 한다. 산이 조금 높다고 해서 여기는 못 올라가겠다거나 힘들어서 못 가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리더가 될 자격이 없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 한 번 방법을 찾으려고 해봤는데 안 되더라며 그만둔다면 뭘 이룰 수 있겠는가. 될 때까지 계속 붙잡고 늘어져야 한다. 그런 데 요새 리더들은 그렇게 파고들지 않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당연히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거기에 대한 반성도 없다.
◎ 나가며
중학생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야구가 계속되어 어느새 80대가 되었다. 시간이 벌써 오래 흘렀다. 그래서인지 어떤 사람들은 나한테 앞으로 다시 태어나도 야구를 하고 싶으냐고 묻는다. 나는 거기에 뭐라고 대답하느냐면, “나는 지금도 야구를 모릅니다”라고 말한다.
나는 야구를 모른다. 그러니 다시 태어나도 야구를 하는 수밖에 없다. 이번 생에 찾지 못한 답은 다음 생에 찾아야 하니까.
60여 년 동안 야구를 하면서 이것만큼은 알게 되었다. 야구에는 정답도 끝도없다. 그저 공부하며 계속 배워 나갈 뿐이다.
내게 야구는 인생 그 자체, 전부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살아왔던 전부. 내 인생은 야구였고 야구 속에 인생이 있었다. 사는 내내 야구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어 끊임없이 고민했고, 야구를 알고 싶어 하는 내게 야구는 그 대신 사는 법을 가르쳐줬다. 야구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싸우지 않고 살았을 것이다.
2024.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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